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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서울 도심 속 ‘장인정신’을 기록하다
입력 2015.02.10 (11:11) 수정 2015.02.10 (22:09) 취재후
■ 서울 장인과 첫 만남

추운 겨울날 옹기장 선생이 문틈으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옹기를 만든다. 옹기물레가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장인의 고개도 까딱까딱 움직인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들어온 장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촬영이 끝났음에도 아무 말 못하고 작업이 끝날때까지 지켜봤다.

옆에 서 있던 학예사가 옹기장 배요섭 선생은 유약이나 잿물을 발라 굽는 일반적인 옹기가 아닌 ‘푸레도기’를 만든다며 한마디 거들었다.

푸레도기는 고려·조선시대 왕실서 사용하던 옹기인데 가마온도를 1,300℃ 이상으로 올리고 천일염을 뿌려 만드는게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나무재가 옹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다량의 탄소가 침투해 안팎으로 공기를 통하게 하고 방부효과도 있다고 한다.

자연재료로만 만든 푸레도기는 숨을 쉬는 옹기라고 불리며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면서 그 수요가 줄었다. 가마에서 푸레도기를 굽는 모습을 보고싶어 부탁드렸지만 얼마 전 재정적 지원부족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가마가 없어져 보여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첫 ‘장인’과의 만남에서 매력에 빠졌고 잊혀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성 기획이었던 영상계획은 총 8개의 시리즈로 늘었다.

장인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약속된 날짜에 갑자기 몸상태가 나빠지는등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도 많았던 긴장을 늦출수 없는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기계로 재현할 수 없는 매듭

피아노를 치는 듯한 아름다운 손놀림에 실이 일정한 패턴으로 감기면서 매듭이 지어진다.

현대의 발전된 기술로도 매듭장 김은영 선생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매듭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다고 한다.

서울무형문화재 협회장을 맡은 매듭장 선생은 규칙적이고 촘촘하게 엮인 매듭처럼 꼼꼼하셔서 작업과정 시연이 끝나고 완성작품만 따로 촬영할때도 옆에서 지켜보며 완성품이 놓인 위치, 방향 하나까지도 직접 바로 잡아주었다.

매듭장 선생은 팔사틀이란 전통도구를 사용해 실 하나하나를 엮어가며 매듭을 만드는데 거기에 달린 나무 방울들이 부딪치는 특유의 맑고 고운소리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매듭장 뿐만 아니라 대부분 장인은 원재료비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고 수요는 거의 없어 판매수익이 높질 않아서 전통작품을 지속해서 재현해 나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부담되는 일이지만 전통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 혼과 예가 깃든 각궁

최대 300m까지도 날아간다는 우리나라 전통 각궁. 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아낸 최종병기도 이 ‘활’이었다. 궁장 권무석 선생은 물소뿔을 재료로 하는 전통 각궁(角弓)을 만든다,
물소 뿔, 소 힘줄, 뽕나무, 대나무, 화피, 민어부레풀 등 7가지 재료가 사용되는데 재료값도 비싸지만 하나를 만드는데 재료준비에서 완성까지 대략 1년 넘게 걸리는 장인의 혼과 정성이 담긴 것이다.

각궁 제작과정에 대해 한창 설명을 하던 중 요통으로 고생하고 있단 내 이야기를 듣고 대뜸 쉬는 날에 활 쏘러 오라신다.

우리나라 활쏘기는 구전으로 ‘위장병도 고친다‘, ’나이가 들어도 허리가 굽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바른 ‘자세’와 ‘호흡법’을 통해 심신단련을 하는 무예이다.

작업과정 촬영이 끝난 뒤 완성된 활을 직접 쏘는 모습을 담기 위해 실제 서울의 한 국궁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로 주인공이 바뀌었는데 권오석 선생의 뒤를 이어 궁장의 길을 이어나가고 있는 아들 권오정씨다.

촬영에 들어가자 그는 145m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 고개를 꾸벅하고 숙였다. 사실 국궁 활쏘기는 과녁에 활시위를 당겨 맞추는 그 행위보다 도와 예절을 배우고 중요시하는데 있다고 한다.

활쏘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큰 소리를 내거나 잡담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활쏘기가 끝난 뒤에도 정면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나 옆에 함께 활을 당긴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예를 갖춘다.

화살이 과녁에 잘 안 맞아도 누굴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도구 탓만 하니 정신도 흐트러져 제대로 쏠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아버지께 배운 활의 기본이다.



■ 우리 전통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

북촌에 위치한 소목창호장 공방은 장인의 손을 거치기 전엔 그저 평범한 한옥이었다.

소목창호장 심용식 선생이 이 한옥에 살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했고 한옥 자체가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심용식 선생의 작품은 창덕궁 인정전과 창경궁 등의 궁궐 전각 창호와 경주 불국사, 순천 송광사, 청도 운문사 등 전국 5백여 사찰에 들어가 있다.

국내 뿐만 아니라 런던 대영박물관 한국관에 전통 사랑방을 재현해 놓았는데 거기에 있는 창호도 심용식 선생의 작품이다.

공방에는 소목창호를 배우려는 제자들이 많아 취재하기가 불편할 정도였는데 촬영중에도 생기발랄하게 인사하며 공방에 들어오는 여대생부터 장인과 동년배로 보이는 중년의 신사까지 공방을 가득 채웠다.

심용식 선생에게 비결을 묻자 잘 모르겠다며 웃으셨지만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것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소목창호장 선생 같은 경우에는 국내외적으로 홍보가 잘된 편이라 많은 사람이 알게 됐고 인기가 많다.

하지만 장인들 대부분이 수요감소와 무관심으로 인해 찾는 사람도 없고 특히 이어나갈 전수자들이 없어 자녀, 사위등 가족들만 남거나 맥을 잇지 못할 위기에 놓인 종목이 늘고 있다.

실제로 체장 같은 경우엔 2012년 작고한 뒤 현재 이수자가 없다.

■ 기록의 가치

조선시대 각 지방 소문난 공예기술자 장인들인 경공장(京工匠)은 수도 한양에 올라와 공방을 열어 그 공예품들이 궁궐로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경국대전 기록에 따르면 경공장은 약 130여개가 넘는 종목이 존재했지만 일제 문화말살 정책과 해방 후 현대·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사라졌고 몇몇 종목만이 남았었다.

이에 서울시에서 1989년 3월부터 남아있는 소수의 종목부터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했고 2012년까지 25종의 무형문화재 종목과 보유자들을 지정했다고 한다. ‘경공장’의 마지막 후예들이 다수 포함된 서울무형문화재 장인들은 수도 서울에서 여전히 그 장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의 편찬을 맡아 초고(草稿)를 쓰는 일을 맡던 ‘사관’이 있던 것처럼 이 시대의 촬영기자는 붓이 아닌 ‘카메라’로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써 사관의 역할을 한다.

이번 광장영상은 현란하고 화려한 볼거리와 빼어난 영상미보다는 대도시 수도 서울에서 사는 소박한 장인들의 현재 모습을 ‘기록(記錄)’하고자 했다.

무관심으로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는 서울장인들의 작품들과 그들이 살고있는 모습과 얼굴의 주름하나 그리고 표정까지 담고자 했다.

평균 35초의 광장영상에 들어갈 수 있는 영상의 길이는 제한되어 있었지만 긴 시간 촬영했던 이유도 방송시간 내 주요 작업 과정을 최대한 보여주고 방송에 전부 나가지 못해도 기록함으로써 역사적 자료로 남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상기록이 현대적이고 빠르고 편함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온고지신”의 뜻과 아침에 방송되는 광장영상을 보는 시청자에게 잠시 여유를 갖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 서울시 무형문화재 광장 영상 보러가기

옹기장 배요섭

옥장 엄익평

매듭장 김은영

궁장 권무석

삼해주장 권희자

옻칠장 손대현

악기장 김복곤

소목창호장 심용식
  • [취재후] 서울 도심 속 ‘장인정신’을 기록하다
    • 입력 2015-02-10 11:11:23
    • 수정2015-02-10 22:09:54
    취재후
■ 서울 장인과 첫 만남

추운 겨울날 옹기장 선생이 문틈으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옹기를 만든다. 옹기물레가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장인의 고개도 까딱까딱 움직인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들어온 장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촬영이 끝났음에도 아무 말 못하고 작업이 끝날때까지 지켜봤다.

옆에 서 있던 학예사가 옹기장 배요섭 선생은 유약이나 잿물을 발라 굽는 일반적인 옹기가 아닌 ‘푸레도기’를 만든다며 한마디 거들었다.

푸레도기는 고려·조선시대 왕실서 사용하던 옹기인데 가마온도를 1,300℃ 이상으로 올리고 천일염을 뿌려 만드는게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나무재가 옹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다량의 탄소가 침투해 안팎으로 공기를 통하게 하고 방부효과도 있다고 한다.

자연재료로만 만든 푸레도기는 숨을 쉬는 옹기라고 불리며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면서 그 수요가 줄었다. 가마에서 푸레도기를 굽는 모습을 보고싶어 부탁드렸지만 얼마 전 재정적 지원부족으로 가지고 있던 전통가마가 없어져 보여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첫 ‘장인’과의 만남에서 매력에 빠졌고 잊혀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성 기획이었던 영상계획은 총 8개의 시리즈로 늘었다.

장인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약속된 날짜에 갑자기 몸상태가 나빠지는등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도 많았던 긴장을 늦출수 없는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기계로 재현할 수 없는 매듭

피아노를 치는 듯한 아름다운 손놀림에 실이 일정한 패턴으로 감기면서 매듭이 지어진다.

현대의 발전된 기술로도 매듭장 김은영 선생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매듭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다고 한다.

서울무형문화재 협회장을 맡은 매듭장 선생은 규칙적이고 촘촘하게 엮인 매듭처럼 꼼꼼하셔서 작업과정 시연이 끝나고 완성작품만 따로 촬영할때도 옆에서 지켜보며 완성품이 놓인 위치, 방향 하나까지도 직접 바로 잡아주었다.

매듭장 선생은 팔사틀이란 전통도구를 사용해 실 하나하나를 엮어가며 매듭을 만드는데 거기에 달린 나무 방울들이 부딪치는 특유의 맑고 고운소리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매듭장 뿐만 아니라 대부분 장인은 원재료비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고 수요는 거의 없어 판매수익이 높질 않아서 전통작품을 지속해서 재현해 나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부담되는 일이지만 전통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 혼과 예가 깃든 각궁

최대 300m까지도 날아간다는 우리나라 전통 각궁. 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아낸 최종병기도 이 ‘활’이었다. 궁장 권무석 선생은 물소뿔을 재료로 하는 전통 각궁(角弓)을 만든다,
물소 뿔, 소 힘줄, 뽕나무, 대나무, 화피, 민어부레풀 등 7가지 재료가 사용되는데 재료값도 비싸지만 하나를 만드는데 재료준비에서 완성까지 대략 1년 넘게 걸리는 장인의 혼과 정성이 담긴 것이다.

각궁 제작과정에 대해 한창 설명을 하던 중 요통으로 고생하고 있단 내 이야기를 듣고 대뜸 쉬는 날에 활 쏘러 오라신다.

우리나라 활쏘기는 구전으로 ‘위장병도 고친다‘, ’나이가 들어도 허리가 굽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바른 ‘자세’와 ‘호흡법’을 통해 심신단련을 하는 무예이다.

작업과정 촬영이 끝난 뒤 완성된 활을 직접 쏘는 모습을 담기 위해 실제 서울의 한 국궁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로 주인공이 바뀌었는데 권오석 선생의 뒤를 이어 궁장의 길을 이어나가고 있는 아들 권오정씨다.

촬영에 들어가자 그는 145m 떨어져 있는 과녁을 향해 고개를 꾸벅하고 숙였다. 사실 국궁 활쏘기는 과녁에 활시위를 당겨 맞추는 그 행위보다 도와 예절을 배우고 중요시하는데 있다고 한다.

활쏘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큰 소리를 내거나 잡담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활쏘기가 끝난 뒤에도 정면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나 옆에 함께 활을 당긴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예를 갖춘다.

화살이 과녁에 잘 안 맞아도 누굴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도구 탓만 하니 정신도 흐트러져 제대로 쏠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아버지께 배운 활의 기본이다.



■ 우리 전통을 알리는 것의 중요성

북촌에 위치한 소목창호장 공방은 장인의 손을 거치기 전엔 그저 평범한 한옥이었다.

소목창호장 심용식 선생이 이 한옥에 살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했고 한옥 자체가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심용식 선생의 작품은 창덕궁 인정전과 창경궁 등의 궁궐 전각 창호와 경주 불국사, 순천 송광사, 청도 운문사 등 전국 5백여 사찰에 들어가 있다.

국내 뿐만 아니라 런던 대영박물관 한국관에 전통 사랑방을 재현해 놓았는데 거기에 있는 창호도 심용식 선생의 작품이다.

공방에는 소목창호를 배우려는 제자들이 많아 취재하기가 불편할 정도였는데 촬영중에도 생기발랄하게 인사하며 공방에 들어오는 여대생부터 장인과 동년배로 보이는 중년의 신사까지 공방을 가득 채웠다.

심용식 선생에게 비결을 묻자 잘 모르겠다며 웃으셨지만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것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소목창호장 선생 같은 경우에는 국내외적으로 홍보가 잘된 편이라 많은 사람이 알게 됐고 인기가 많다.

하지만 장인들 대부분이 수요감소와 무관심으로 인해 찾는 사람도 없고 특히 이어나갈 전수자들이 없어 자녀, 사위등 가족들만 남거나 맥을 잇지 못할 위기에 놓인 종목이 늘고 있다.

실제로 체장 같은 경우엔 2012년 작고한 뒤 현재 이수자가 없다.

■ 기록의 가치

조선시대 각 지방 소문난 공예기술자 장인들인 경공장(京工匠)은 수도 한양에 올라와 공방을 열어 그 공예품들이 궁궐로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경국대전 기록에 따르면 경공장은 약 130여개가 넘는 종목이 존재했지만 일제 문화말살 정책과 해방 후 현대·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사라졌고 몇몇 종목만이 남았었다.

이에 서울시에서 1989년 3월부터 남아있는 소수의 종목부터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했고 2012년까지 25종의 무형문화재 종목과 보유자들을 지정했다고 한다. ‘경공장’의 마지막 후예들이 다수 포함된 서울무형문화재 장인들은 수도 서울에서 여전히 그 장인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의 편찬을 맡아 초고(草稿)를 쓰는 일을 맡던 ‘사관’이 있던 것처럼 이 시대의 촬영기자는 붓이 아닌 ‘카메라’로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써 사관의 역할을 한다.

이번 광장영상은 현란하고 화려한 볼거리와 빼어난 영상미보다는 대도시 수도 서울에서 사는 소박한 장인들의 현재 모습을 ‘기록(記錄)’하고자 했다.

무관심으로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는 서울장인들의 작품들과 그들이 살고있는 모습과 얼굴의 주름하나 그리고 표정까지 담고자 했다.

평균 35초의 광장영상에 들어갈 수 있는 영상의 길이는 제한되어 있었지만 긴 시간 촬영했던 이유도 방송시간 내 주요 작업 과정을 최대한 보여주고 방송에 전부 나가지 못해도 기록함으로써 역사적 자료로 남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상기록이 현대적이고 빠르고 편함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온고지신”의 뜻과 아침에 방송되는 광장영상을 보는 시청자에게 잠시 여유를 갖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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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장 배요섭

옥장 엄익평

매듭장 김은영

궁장 권무석

삼해주장 권희자

옻칠장 손대현

악기장 김복곤

소목창호장 심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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