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때려친 장애인 스키 선수 ‘2관왕’

입력 2015.02.10 (13:47) 수정 2015.02.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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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금융맨'이 안정적인 회사를 박차고 나와 설원 위에 몸을 던졌다.

제12회 전국 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 서울 대표로 출전한 이정민(31)은 1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부 5㎞ 좌식 부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엔 같은 종목 2.5㎞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으니 벌써 2관왕이다.

고작 한 달여 전인 지난달 9일에야 크로스컨트리스키를 시작한 이정민이 동계 대회에 처음 출전해 첫 종목에서 이룬 놀라운 성과다.

그는 10살 때 길랭바레증후군이라는 희소병을 앓아 전신마비에 시달린 끝에 현재는 두 다리 무릎 아래쪽에 마비가 남아 있다.

이정민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91년 11월 어느 날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는 데 갑자기 힘이 풀리더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은 물론 하반신에서 시작된 마비가 목 부분까지 넘어오면 사망한다는 무서운 병이지만 마비 전이는 다행히 몸통에서 멈췄다. 이후 꾸준한 재활과 치료를 거쳐 지금은 걸어 다닐 수도 있다.

병마와 싸우느라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1년 더 다녔으나 고등학교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이정민은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영국계 금융회사에 근무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으며 안정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3년 전 방영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의 조정 특집 방송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무작정 미사리를 찾아가 조정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정민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조정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열린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조정 시범 종목에서 2위에 오르며 시원하게 물살을 갈랐다.

동계 종목으로 눈을 돌린 것은 조정 비시즌인 겨울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으면서다.

장거리 코스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심폐 기능과 근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크로스컨트리스키가 제격이었다.

조정으로 다져진 실력 덕분인지 이날 다른 선수들은 제자리에서 나아가려고 애쓰는 크로스컨트리스키 오르막 구간에서도 이정민은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는 압도적인 페이스를 자랑했다.

수상·설상 종목을 오가며 기량을 과시하는 이정민이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적지 않다.

그는 "솔직히 말해 회사를 나온 것이 힘들 때도 있다"며 "장애인체육 시스템에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은 데다가 냉정하게 말하면 고정 수입도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누구는 연봉이 얼마라더라, 이번에 보너스 받았다더라, 결혼을 한다더라'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허탈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설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득일지도 모른다.

이정민은 "직접 운동을 하면서 얻은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느낌, 인간의 한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등에 업고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조정과 스키가 가져다준 보람으로 꼽았다.

경력에 대한 고민은 2013년 9월, 연세대 국제대학원 입학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회 기간과 다음 학기 수강신청 기간이 겹쳐 골머리를 싸매기도 했지만 그는 장차 장애인스포츠 외교 전문가를 꿈꾼다.

이정민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출전권이 걸린 올해 장애인조정 세계선수권대회가 당면 목표"라며 "대학원을 잘 마무리하고 장애인체육계에 계속 몸담으면서 관련 기관으로 진출해 국제 관계 업무를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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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10 13:47:58
    • 수정2015-02-10 14:22:04
    연합뉴스
잘나가던 '금융맨'이 안정적인 회사를 박차고 나와 설원 위에 몸을 던졌다.

제12회 전국 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 서울 대표로 출전한 이정민(31)은 1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부 5㎞ 좌식 부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엔 같은 종목 2.5㎞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으니 벌써 2관왕이다.

고작 한 달여 전인 지난달 9일에야 크로스컨트리스키를 시작한 이정민이 동계 대회에 처음 출전해 첫 종목에서 이룬 놀라운 성과다.

그는 10살 때 길랭바레증후군이라는 희소병을 앓아 전신마비에 시달린 끝에 현재는 두 다리 무릎 아래쪽에 마비가 남아 있다.

이정민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91년 11월 어느 날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는 데 갑자기 힘이 풀리더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은 물론 하반신에서 시작된 마비가 목 부분까지 넘어오면 사망한다는 무서운 병이지만 마비 전이는 다행히 몸통에서 멈췄다. 이후 꾸준한 재활과 치료를 거쳐 지금은 걸어 다닐 수도 있다.

병마와 싸우느라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1년 더 다녔으나 고등학교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이정민은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영국계 금융회사에 근무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으며 안정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3년 전 방영된 한 TV 예능 프로그램의 조정 특집 방송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무작정 미사리를 찾아가 조정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정민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조정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열린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조정 시범 종목에서 2위에 오르며 시원하게 물살을 갈랐다.

동계 종목으로 눈을 돌린 것은 조정 비시즌인 겨울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으면서다.

장거리 코스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심폐 기능과 근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크로스컨트리스키가 제격이었다.

조정으로 다져진 실력 덕분인지 이날 다른 선수들은 제자리에서 나아가려고 애쓰는 크로스컨트리스키 오르막 구간에서도 이정민은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는 압도적인 페이스를 자랑했다.

수상·설상 종목을 오가며 기량을 과시하는 이정민이지만 현실적인 고민도 적지 않다.

그는 "솔직히 말해 회사를 나온 것이 힘들 때도 있다"며 "장애인체육 시스템에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은 데다가 냉정하게 말하면 고정 수입도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누구는 연봉이 얼마라더라, 이번에 보너스 받았다더라, 결혼을 한다더라'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허탈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설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득일지도 모른다.

이정민은 "직접 운동을 하면서 얻은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느낌, 인간의 한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등에 업고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조정과 스키가 가져다준 보람으로 꼽았다.

경력에 대한 고민은 2013년 9월, 연세대 국제대학원 입학으로 이어졌다.

이번 대회 기간과 다음 학기 수강신청 기간이 겹쳐 골머리를 싸매기도 했지만 그는 장차 장애인스포츠 외교 전문가를 꿈꾼다.

이정민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 출전권이 걸린 올해 장애인조정 세계선수권대회가 당면 목표"라며 "대학원을 잘 마무리하고 장애인체육계에 계속 몸담으면서 관련 기관으로 진출해 국제 관계 업무를 맡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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