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등굣길, 아이들은 왜 4m 담을 오를까?

입력 2015.02.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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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침마다 아찔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난간까지 합쳐 4.3미터나 되는 담장을 초등학생들이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돌담을 기어 올라간 뒤, 담장에 오릅니다. 그런데 바로 난간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철조망이 처진 부분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난간을 붙잡고 1미터 이상 곡예하듯 아슬아슬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담장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왜 이토록 위험하게 담장을 넘어다닐까요?



작년 5월 일입니다. 한 아파트 단지 옆에 1500세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습니다.(이 아파트는 편의상 새아파트라 부르겠습니다.) 입주가 시작되고 얼마 뒤 해당 아파트 측에서 새 아파트와 연결된 공공보행통로 입구에 전자식 차단문을 설치했습니다. 이 차단문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입주민에게만 지급되는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외부인의 출입을 봉쇄해버린거죠. 그러면서부터 새 아파트의 아이들은 해당 아파트를 가로질러갈 때보다 2배 거리를 돌아서 가야하는 불편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죠, 아이들은 담을 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요? 등굣길 초등학생들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남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한번 이상은 담을 넘어 등교를 했고, 바쁠 때마다 자주 넘는 다닌다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숱하게 아이들이 지나가다보니 난간은 휘어져 있습니다. 어른인 기자가 잡으면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렸습니다. 수개월 동안 안전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정도였습니다.



담을 넘지 않는 아이들은 어떻게 등교를 할까요. 지켜보니 이것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습니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차단문 앞에서 몇분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자주하는‘뻗치기’처럼요. 지나가는 마음씨 좋은 아파트 주민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입주민이 카드를 대주면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차단문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아이들에게 심한 면박을 준 어른들도 있다는 걸, 아이들을 통해서 들을수 있었습니다.

공공보행통로가 과연 뭐길래 이 난리일까요? 쉽게 말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반인들에게 24시간 개방된 보도입니다. 소유는 토지주가 가지고 있지만 공공보행통로로 지정되면 임의로 통로를 차단하거나 보행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파트 사업자들이 모두 공공보행통로를 만들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공보행통로를 만들면 용적률이 높아지는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애초 설계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입주 후가 문젭니다. 입주민들은 공공보행통로의 존재를 모르고 입주를 합니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 생활을 원했던 입주민들에게 외부인의 출입은 불편합니다. 특히나 옆 단지 아이들의 출현은 안전하고 쾌적한 사유권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에 큰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차단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이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렇게 공공보행통로를 막는 것은 불법입니다. 우선 관청에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시설물로 간주됩니다. 주택법 42조에 따르면 "공공주택을 신축, 증축, 개축, 대수선 또는 리모델링 하는 행위는 군수에 허가를 받거나 신고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입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도 위반했습니다. 지구단위계획에는 공공보행통로를 만들겠다 해놓고, 사실상 그 쓰임새가 입주민들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54조(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의 건축 등) 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 건축물을 건축 또는 용도변경하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려면 그 지구단위계획에 맞게 하여야 한다"



이 차단문이 설치된 것은 지난 9월입니다.(새아파트 입주민 측은 5월이라고 주장하지만, 해당 아파트 단지와 군청을 통해 확인한 시점은 9월입니다) 적어도 한 학기 이상 이러한 위험한 등굣길을 지켜보면서,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요?

군청에 확인해보니, 등교시간만이라도 차단문을 열어달라는 새 아파트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새 아파트 측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공식적이고 대표성 있는 조직과 이야기하겠다는 뜻인데요, 아이들의 안전과 맞바꿀만큼 중요한 사항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도 이후 다행히 해당 아파트 측에서 새학기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해당 관청과 교육청에서도 두 아파트 간 갈등을 중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법대로 하면 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최선은 아닐 겁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들끼리 자칫 원수가 되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전국 곳곳에서 불거지는 이 공공보행통로 갈등, 부산 기장군에서 아름답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 곧 속보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바로가기 [뉴스9]‘공공통로’ 차단…4미터 담 넘어 등교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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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등굣길, 아이들은 왜 4m 담을 오를까?
    • 입력 2015-02-17 11:30:43
    취재후·사건후
부산 기장군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침마다 아찔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난간까지 합쳐 4.3미터나 되는 담장을 초등학생들이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돌담을 기어 올라간 뒤, 담장에 오릅니다. 그런데 바로 난간을 넘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철조망이 처진 부분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난간을 붙잡고 1미터 이상 곡예하듯 아슬아슬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담장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왜 이토록 위험하게 담장을 넘어다닐까요? 작년 5월 일입니다. 한 아파트 단지 옆에 1500세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습니다.(이 아파트는 편의상 새아파트라 부르겠습니다.) 입주가 시작되고 얼마 뒤 해당 아파트 측에서 새 아파트와 연결된 공공보행통로 입구에 전자식 차단문을 설치했습니다. 이 차단문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입주민에게만 지급되는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외부인의 출입을 봉쇄해버린거죠. 그러면서부터 새 아파트의 아이들은 해당 아파트를 가로질러갈 때보다 2배 거리를 돌아서 가야하는 불편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죠, 아이들은 담을 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요? 등굣길 초등학생들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남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한번 이상은 담을 넘어 등교를 했고, 바쁠 때마다 자주 넘는 다닌다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숱하게 아이들이 지나가다보니 난간은 휘어져 있습니다. 어른인 기자가 잡으면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렸습니다. 수개월 동안 안전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정도였습니다. 담을 넘지 않는 아이들은 어떻게 등교를 할까요. 지켜보니 이것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습니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차단문 앞에서 몇분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자주하는‘뻗치기’처럼요. 지나가는 마음씨 좋은 아파트 주민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입주민이 카드를 대주면 우르르 몰려가는 아이들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비싼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차단문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아이들에게 심한 면박을 준 어른들도 있다는 걸, 아이들을 통해서 들을수 있었습니다. 공공보행통로가 과연 뭐길래 이 난리일까요? 쉽게 말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반인들에게 24시간 개방된 보도입니다. 소유는 토지주가 가지고 있지만 공공보행통로로 지정되면 임의로 통로를 차단하거나 보행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파트 사업자들이 모두 공공보행통로를 만들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공보행통로를 만들면 용적률이 높아지는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애초 설계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입주 후가 문젭니다. 입주민들은 공공보행통로의 존재를 모르고 입주를 합니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 생활을 원했던 입주민들에게 외부인의 출입은 불편합니다. 특히나 옆 단지 아이들의 출현은 안전하고 쾌적한 사유권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에 큰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차단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이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렇게 공공보행통로를 막는 것은 불법입니다. 우선 관청에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시설물로 간주됩니다. 주택법 42조에 따르면 "공공주택을 신축, 증축, 개축, 대수선 또는 리모델링 하는 행위는 군수에 허가를 받거나 신고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입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도 위반했습니다. 지구단위계획에는 공공보행통로를 만들겠다 해놓고, 사실상 그 쓰임새가 입주민들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54조(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의 건축 등) 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 건축물을 건축 또는 용도변경하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려면 그 지구단위계획에 맞게 하여야 한다" 이 차단문이 설치된 것은 지난 9월입니다.(새아파트 입주민 측은 5월이라고 주장하지만, 해당 아파트 단지와 군청을 통해 확인한 시점은 9월입니다) 적어도 한 학기 이상 이러한 위험한 등굣길을 지켜보면서,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요? 군청에 확인해보니, 등교시간만이라도 차단문을 열어달라는 새 아파트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새 아파트 측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공식적이고 대표성 있는 조직과 이야기하겠다는 뜻인데요, 아이들의 안전과 맞바꿀만큼 중요한 사항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도 이후 다행히 해당 아파트 측에서 새학기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해당 관청과 교육청에서도 두 아파트 간 갈등을 중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법대로 하면 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최선은 아닐 겁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들끼리 자칫 원수가 되는,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전국 곳곳에서 불거지는 이 공공보행통로 갈등, 부산 기장군에서 아름답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어떻게 해결됐는지 곧 속보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바로가기 [뉴스9]‘공공통로’ 차단…4미터 담 넘어 등교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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