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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창덕궁에 기린이 있다…궁궐에 사는 동물들
입력 2015.02.20 (07:09) 수정 2015.02.20 (10:51) 취재후
궁궐에 기린이 살고 있다고 하면, 창경궁에 있었던 동물원을 떠올리는 분들 계실 겁니다. 일제 강점기 창경궁에는 동물원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를 위로해드리겠다면서 만든 것인데, 동물원이 된 창경궁은 이름까지 창경원으로 강등됩니다. 1984년 과천 서울대공원이 생기기 전까지 창경원은 수도권의 유일한 동물원이자, 벚꽃놀이 명소로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였습니다. 궁궐에 살던 동물들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가고 일제가 심은 벚나무가 모두 뽑힌 뒤 창경원은 제 이름 창경궁을 되찾았습니다.

창덕궁 경훈각 굴뚝 '기린' 조각



제가 말씀드리려는 기린은 '아픈 역사' 창경원에 살던 동물이 아니라, 창덕궁에 사는 전설 속의 기린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기린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동양의 전설에서 기린은 사슴의 뿔과 용의 머리, 말의 몸통을 가진 상서로운 동물입니다. 덕망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 모든 동물의 으뜸으로 쳤던 것인데, 명나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목이 긴 기린'을 발견한 중국인들이 '전설 속의 기린'을 찾았다고 황제에게 진상하면서 실제 동물에도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상월대 계단 '사신상' (왼쪽부터 주작·현무·백호·청룡)



조선의 궁궐에는 이렇게 전설 속의 동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사신상으로 바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주인공들입니다. 청룡과 백호는 이름대로 용과 호랑이인데 주작과 현무는 조금 낯선 것들입니다. 주작은 닭의 머리와 공작의 날개를 가진 새이고, 현무는 뱀의 머리와 거북이의 몸통을 지닌 전설 속의 동물입니다. '조작'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가 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해진 '주작'은 근정전 현판이 보이는 남쪽 계단 난간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영제교 서수상, 경복궁 근정전 월대 서수가족상



전설 속의 동물이지만 귀여운 녀석들도 있습니다. 먼저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면 영제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는데 다리 옆으로 동물 4마리가 보입니다. 위 사진 왼쪽이 그중 하나인데 턱을 괴고 혀를 내민 모습이 애완동물 같기도 합니다. 이 녀석은 머리에 뿔을 달고 있어 '하늘의 사슴'이란 뜻으로 '천록'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사진 오른쪽은 아까 본 '주작' 근처,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해치 가족상'입니다. 자세히 보면 엄마 아빠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는 귀여운 '아기 해치'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 '십이지신상'



주작과 아기 해치가 있는 경복궁 근정전에는 위에 보시는 12지신상도 있습니다. 경복궁에 가시면 자기 띠의 동물을 찾아 '인증샷' 찍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다만, 열두 동물 가운데 용, 개, 돼지는 없으니 해당 띠를 가진 분들에겐 아쉽게 기회가 없습니다. 왜 3가지가 빠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용은 임금을 뜻해서 빠졌고 개와 돼지는 불경한 동물이라 궐에 들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제일 그럴듯하다지만 개와 돼지, 그리고 개띠와 돼지띠 입장에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속설'일 뿐입니다.

경복궁 경회루 난간 '코끼리상'



전설의 동물은 아니지만, 경복궁 경회루 입구에는 코끼리상이 있습니다. 동물의 큰 특징만 간략하게 묘사된 다른 석상과는 달리 긴 코와 상아가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코끼리는 태종 때인 1411년 일본 사신이 처음 데려왔다고 나와 있고, 경회루는 역시 태종 때인 1412년 중건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혹시 태종 임금이나 경회루 공사에 참여했던 석공이 생전 처음 본 코끼리가 마음에 들어 다른 동물들보다 자세하게 묘사를 하지는 않았을까요? 6·25전쟁을 거치면서 곳곳이 떨어져나간 이 코끼리상은 경회루가 개방되는 4월부터 10월 사이에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 거론한 동물들 말고도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궁궐에는 수천 혹은 수만 마리의 동물 조각과 석상이 있습니다. 선조들은 이 동물들이 궁궐에 사는 사람들과 건물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붕 위에, 기와 문양에, 계단이나 다리 난간에, 굴뚝이나 담장 문양에, 궁궐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라도 반드시 동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설 연휴에, 또 곧 찾아올 따뜻한 봄날 궁궐 나들이하면서 마음에 드는 동물 찾기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사진 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 바로가기 주작·천록…수백 년 궁궐을 지키는 동물 조각
  • [취재후] 창덕궁에 기린이 있다…궁궐에 사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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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5-02-20 10:51:03
    취재후
궁궐에 기린이 살고 있다고 하면, 창경궁에 있었던 동물원을 떠올리는 분들 계실 겁니다. 일제 강점기 창경궁에는 동물원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 황제를 위로해드리겠다면서 만든 것인데, 동물원이 된 창경궁은 이름까지 창경원으로 강등됩니다. 1984년 과천 서울대공원이 생기기 전까지 창경원은 수도권의 유일한 동물원이자, 벚꽃놀이 명소로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였습니다. 궁궐에 살던 동물들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가고 일제가 심은 벚나무가 모두 뽑힌 뒤 창경원은 제 이름 창경궁을 되찾았습니다.

창덕궁 경훈각 굴뚝 '기린' 조각



제가 말씀드리려는 기린은 '아픈 역사' 창경원에 살던 동물이 아니라, 창덕궁에 사는 전설 속의 기린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기린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동양의 전설에서 기린은 사슴의 뿔과 용의 머리, 말의 몸통을 가진 상서로운 동물입니다. 덕망이 높고 재주가 뛰어나 모든 동물의 으뜸으로 쳤던 것인데, 명나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목이 긴 기린'을 발견한 중국인들이 '전설 속의 기린'을 찾았다고 황제에게 진상하면서 실제 동물에도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상월대 계단 '사신상' (왼쪽부터 주작·현무·백호·청룡)



조선의 궁궐에는 이렇게 전설 속의 동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사신상으로 바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주인공들입니다. 청룡과 백호는 이름대로 용과 호랑이인데 주작과 현무는 조금 낯선 것들입니다. 주작은 닭의 머리와 공작의 날개를 가진 새이고, 현무는 뱀의 머리와 거북이의 몸통을 지닌 전설 속의 동물입니다. '조작'을 뜻하는 인터넷 은어가 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해진 '주작'은 근정전 현판이 보이는 남쪽 계단 난간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영제교 서수상, 경복궁 근정전 월대 서수가족상



전설 속의 동물이지만 귀여운 녀석들도 있습니다. 먼저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면 영제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는데 다리 옆으로 동물 4마리가 보입니다. 위 사진 왼쪽이 그중 하나인데 턱을 괴고 혀를 내민 모습이 애완동물 같기도 합니다. 이 녀석은 머리에 뿔을 달고 있어 '하늘의 사슴'이란 뜻으로 '천록'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사진 오른쪽은 아까 본 '주작' 근처,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해치 가족상'입니다. 자세히 보면 엄마 아빠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는 귀여운 '아기 해치'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 '십이지신상'



주작과 아기 해치가 있는 경복궁 근정전에는 위에 보시는 12지신상도 있습니다. 경복궁에 가시면 자기 띠의 동물을 찾아 '인증샷' 찍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다만, 열두 동물 가운데 용, 개, 돼지는 없으니 해당 띠를 가진 분들에겐 아쉽게 기회가 없습니다. 왜 3가지가 빠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용은 임금을 뜻해서 빠졌고 개와 돼지는 불경한 동물이라 궐에 들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제일 그럴듯하다지만 개와 돼지, 그리고 개띠와 돼지띠 입장에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속설'일 뿐입니다.

경복궁 경회루 난간 '코끼리상'



전설의 동물은 아니지만, 경복궁 경회루 입구에는 코끼리상이 있습니다. 동물의 큰 특징만 간략하게 묘사된 다른 석상과는 달리 긴 코와 상아가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코끼리는 태종 때인 1411년 일본 사신이 처음 데려왔다고 나와 있고, 경회루는 역시 태종 때인 1412년 중건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혹시 태종 임금이나 경회루 공사에 참여했던 석공이 생전 처음 본 코끼리가 마음에 들어 다른 동물들보다 자세하게 묘사를 하지는 않았을까요? 6·25전쟁을 거치면서 곳곳이 떨어져나간 이 코끼리상은 경회루가 개방되는 4월부터 10월 사이에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 거론한 동물들 말고도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궁궐에는 수천 혹은 수만 마리의 동물 조각과 석상이 있습니다. 선조들은 이 동물들이 궁궐에 사는 사람들과 건물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붕 위에, 기와 문양에, 계단이나 다리 난간에, 굴뚝이나 담장 문양에, 궁궐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라도 반드시 동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설 연휴에, 또 곧 찾아올 따뜻한 봄날 궁궐 나들이하면서 마음에 드는 동물 찾기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사진 제공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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