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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망가진 세탁기’에 ‘막가는 감정 싸움’
입력 2015.02.20 (14:34) 수정 2015.02.20 (14:51) 취재후
● '점입가경'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점입가경'이란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점입가경 :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내 가전업계를 양분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다툼이 최근 딱 이런 모습입니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으로 시작된 진실 공방이 이제는 노골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 1차전은 삼성 완승

진실 공방 1라운드의 승자는 삼성전자였습니다.

삼성전자가 LG전자 조성진 사장이 일부러 세탁기를 망가뜨렸다며 고소했는데, 검찰이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검찰은 지난 15일 조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재물손괴 혐의 외에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까지 적용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LG전자 측이 삼성 세탁기의 품질 문제인 것처럼 허위 내용을 배포했다는 이유입니다.

반면, LG전자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맞고소는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LG전자 측은 상당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26일, 크리스마스의 들뜬 기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LG 여의도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습니다.

조 사장이 검찰 수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며 출국금지했고, 이후 조 사장을 검찰청사로 불러 15시간 가량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습니다.

LG전자로서는 체면이 상할대로 상한 겁니다.

한 LG전자 관계자는 "입사 이래 최대의 수모를 겪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LG전자의 반격…동영상 공개

법원의 판단으로 공이 넘어가면서 잠잠해지나 싶었던 양사 간의 갈등은 조 사장이 당시 현장의 CCTV 영상을 공개하면서 다시 불붙었습니다.

조 사장은 독일 검찰을 통해 입수한 CCTV 화면을 한국 검찰 조사 과정에서 편집·제출했는데, 이걸 지난 16일 유튜브에 전격 공개했습니다.



언론들은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줄곧 양사에 현장 CCTV 영상을 요청했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이 갑작스레 공개된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조 사장이 세탁기 문을 열고 수차례 아래로 누른 사실 자체는 명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조 사장은 당시 현장에 일행은 물론 수많은 일반인들이 있었고 바로 옆에서 삼성전자의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며, 만일 고의로 세탁기를 파손했다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행이 세탁기를 살펴본 뒤 1시간 넘게 머무르는 동안 삼성전자 직원들은 아무런 제지나 항의를 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을 수사한 독일 검찰도 이미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 삼성전자 "사실 왜곡"…'악마의 편집'?

삼성전자는 발끈하고 있습니다.

LG전자가 공개한 동영상은 조 사장의 잘못이 가려지도록 자의적으로 편집됐다고 바로 반박했습니다.

특정 장면만을 부각한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는 얘깁니다.

전체 동영상을 보면, LG전자의 주장과 달리 당시 삼성전자 직원은 문제가 된 세탁기와 떨어진 곳에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게 삼성전자의 설명입니다.

특히, 한 방송사가 국내 백화점에서 촬영한 정상 제품을 마치 독일에서 촬영한 파손품인 것처럼 비교 영상에서 제시했다며,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다음날인 17일에도 블로그를 통해, "경쟁사 제품을 파손하고도 무책임한 변명만 일삼는 것은 명백히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 "이쯤되면 막나가자는거죠?"

두 회사의 대립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차갑습니다.

물론 세탁기 파손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겠고, 경쟁업체 간에 마냥 사이가 좋을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 대신 감정싸움으로까지 일을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다.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야 할 핵심 조직들인 법무실과 홍보실 등이 이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쯤되면 막나가자는거 아니냐"며, "두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해외업체들이 뭐라고 보겠느냐. 나라 망신이다"라고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두 회사 모두 물러나기 힘든 상황이 됐지만,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취재기자로서 제 개인적으로도, 두 회사가 최근의 감정 싸움 대신 제품의 품질이나 고객 서비스의 차별성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 '치킨 게임'의 끝은? 

이제 삼성전자의 주장대로 조 사장에게 제품을 파손할 고의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LG전자의 해명처럼 일반적인 제품 시험이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만이 남았습니다.

수차례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사안이 부풀려져 온 만큼 어느 쪽이든 패한 쪽은 기업의 신뢰도와 도덕성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특히,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키워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난도 패한 쪽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겁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세탁기 고의 파손? LG전자, CCTV 일부 영상 공개
  • [취재후] ‘망가진 세탁기’에 ‘막가는 감정 싸움’
    • 입력 2015-02-20 14:34:27
    • 수정2015-02-20 14:51:40
    취재후
● '점입가경'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점입가경'이란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점입가경 :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내 가전업계를 양분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다툼이 최근 딱 이런 모습입니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으로 시작된 진실 공방이 이제는 노골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 1차전은 삼성 완승

진실 공방 1라운드의 승자는 삼성전자였습니다.

삼성전자가 LG전자 조성진 사장이 일부러 세탁기를 망가뜨렸다며 고소했는데, 검찰이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검찰은 지난 15일 조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재물손괴 혐의 외에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까지 적용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LG전자 측이 삼성 세탁기의 품질 문제인 것처럼 허위 내용을 배포했다는 이유입니다.

반면, LG전자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맞고소는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LG전자 측은 상당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26일, 크리스마스의 들뜬 기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LG 여의도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습니다.

조 사장이 검찰 수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며 출국금지했고, 이후 조 사장을 검찰청사로 불러 15시간 가량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습니다.

LG전자로서는 체면이 상할대로 상한 겁니다.

한 LG전자 관계자는 "입사 이래 최대의 수모를 겪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LG전자의 반격…동영상 공개

법원의 판단으로 공이 넘어가면서 잠잠해지나 싶었던 양사 간의 갈등은 조 사장이 당시 현장의 CCTV 영상을 공개하면서 다시 불붙었습니다.

조 사장은 독일 검찰을 통해 입수한 CCTV 화면을 한국 검찰 조사 과정에서 편집·제출했는데, 이걸 지난 16일 유튜브에 전격 공개했습니다.



언론들은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줄곧 양사에 현장 CCTV 영상을 요청했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이 갑작스레 공개된 겁니다.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조 사장이 세탁기 문을 열고 수차례 아래로 누른 사실 자체는 명확해 보입니다.

하지만 조 사장은 당시 현장에 일행은 물론 수많은 일반인들이 있었고 바로 옆에서 삼성전자의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며, 만일 고의로 세탁기를 파손했다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행이 세탁기를 살펴본 뒤 1시간 넘게 머무르는 동안 삼성전자 직원들은 아무런 제지나 항의를 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을 수사한 독일 검찰도 이미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 삼성전자 "사실 왜곡"…'악마의 편집'?

삼성전자는 발끈하고 있습니다.

LG전자가 공개한 동영상은 조 사장의 잘못이 가려지도록 자의적으로 편집됐다고 바로 반박했습니다.

특정 장면만을 부각한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는 얘깁니다.

전체 동영상을 보면, LG전자의 주장과 달리 당시 삼성전자 직원은 문제가 된 세탁기와 떨어진 곳에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게 삼성전자의 설명입니다.

특히, 한 방송사가 국내 백화점에서 촬영한 정상 제품을 마치 독일에서 촬영한 파손품인 것처럼 비교 영상에서 제시했다며,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다음날인 17일에도 블로그를 통해, "경쟁사 제품을 파손하고도 무책임한 변명만 일삼는 것은 명백히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 "이쯤되면 막나가자는거죠?"

두 회사의 대립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차갑습니다.

물론 세탁기 파손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겠고, 경쟁업체 간에 마냥 사이가 좋을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 대신 감정싸움으로까지 일을 키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다.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야 할 핵심 조직들인 법무실과 홍보실 등이 이 일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쯤되면 막나가자는거 아니냐"며, "두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해외업체들이 뭐라고 보겠느냐. 나라 망신이다"라고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두 회사 모두 물러나기 힘든 상황이 됐지만,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취재기자로서 제 개인적으로도, 두 회사가 최근의 감정 싸움 대신 제품의 품질이나 고객 서비스의 차별성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 '치킨 게임'의 끝은? 

이제 삼성전자의 주장대로 조 사장에게 제품을 파손할 고의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LG전자의 해명처럼 일반적인 제품 시험이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만이 남았습니다.

수차례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사안이 부풀려져 온 만큼 어느 쪽이든 패한 쪽은 기업의 신뢰도와 도덕성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특히,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키워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난도 패한 쪽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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