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소리없이 다가오는 전쟁의 먹구름

입력 2015.02.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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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a Russian spy?”

라트비아 국민 50% 이상, “전쟁 발발할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발트 3국이라고 불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세 나라를 모두 합쳐도 한반도 절반 정도의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들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 옛 소련에 강제 편입됐던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차르 시대 때부터 러시아 제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그래서 러시아는 늘 두려운 존재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과 러시아 간의 신냉전이 확대되면서, 발트 3국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인구 백만 명이 조금 넘는 에스토니아의 경우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군사 점령할 수 있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올 정도다. 라트비아의 경우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50% 이상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의 35%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러, 유럽 한복판에 전술 탄도 미사일 배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는 발트 3국 접경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잇달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말 ‘칼리닌그라드 훈련’은 주변국들을 사실상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는 대륙의 섬인데, 북쪽은 발트 해 그리고 주변 국경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둘러싸여 있다. 러시아 대륙과 연결된 육로가 없는 이른바 ‘역외( 域外)영토’. 세기의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으로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당시 소련에게 양도한 땅이다. 이곳에서 대규모 훈련을 한 것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신형 단거리 전술 탄도 미사일 이스칸데르 배치 훈련은 특히 위협적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미사일 방어 체계인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에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

군사적 위협과 더불어 비군사적 작전은 이미 전쟁 수준이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 (Hybrid War)‘.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군사력은 일부일 뿐이며, 사이버전과 정보전 등 비군사적인 방법들이 대거 동원된다. 발트 3국에서 시청되는 러시아 방송을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럽 연합의 주요 정책 등에 대해 이른바 ‘러시아식 해석’이 짙게 묻어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반군의 독립 요구는 정당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운다. 러시아는 이미 서방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발트 3국의 농산물과 식품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려 러시아 수출량이 많은 이들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또 러시아 정부와 연계된 악성 소프트웨어 등이 유럽 각국의 주요 시스템을 감염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서방의 주장이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처럼 일사불란하게 경제· 정치·문화·사회적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발트 3국의 대응은 힘겨워 보인다.

미군 기지로 변한 옛 소련 기지

발트 3국은 미국과 나토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은 뒤늦게 해당 지역에 대한 병력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발트 3국에 파견된 미군 병력은 5백 명 정도. 러시아군의 침략을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주둔 기간도 올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미군은 발트 3국 군대에 대한 군사 교육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경우 수도인 리가(Liga) 외곽의 삼림지대에 위치한 아다지 기지에는 세계 최강의 기갑 부대로 알려진 미 육군 제1 기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아다지 기지는 냉전 때 소련군 기지였던 곳이다. 취재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격 전술 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발트 3국은 이번 기회에 아예 미 지상군 병력의 장기 주둔을 내심 강력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 국방부에서 만나 샤르츠 국방 차관은 미군뿐 아니라 나토군이 라트비아에 주둔해 달라고 대놓고 인터뷰한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라트비아는 본인의 지원에 의한 직업 군인들로 군대를 유지하는 모병제를 택하고 있다. 대대급 규모의 지상군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토니아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에 공군기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애마리 공군기지는 냉전이 끝나기 전인 1992년까지 소련 공군의 항공 연대가 주둔했던 곳. 에스토니아는 최근 이 기지를 전면적으로 재보수했다. 나토 역시 러시아 국경과 3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애마리 공군 기지에 나토군 전투기를 배치할 계획입니다.

러-서방 모두 “방어 전략”이라고 주장

현재 발트 3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항공 전력만 비교해 볼 때 발트 3국 접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서부 군관구에서만 3백 20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발트 3국은 자국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없는 상황. 에스토니아가 나토에 공군기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이 같은 절박한 사정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현격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항공 전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차세대 스텔스기인 수호이 T-50를 내년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미국의 신형 스텔스기인 F-22에 대항해 개발한 수호이 T-50을 투입해, 유럽 동부 지역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것. 국경 부근에서 훈련도 지난해 3천 건에서 올해는 4천 건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루블화 가치 폭락에 따른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국방 예산은 지난해 보다 30% 늘렸다.
이런 ‘군사 대국화’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정책에 따른 방어적 행동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옛 소련권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 둘씩 나토에 가입하고, 러시아 국경 쪽으로 근접하는 나토의 군사시설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군사 독트린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를 러시아의 핵심적 외부 위협이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쪽 진출은 새로운 베를린 장벽을 쌓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이 국제사회에 긴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맞지만, 이는 순수하게 자기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나토는 러시아의 새로운 군사독트린 채택을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나토가 회원국의 안보를 보장하려는 모든 조처는 명백히 방어적인 행동이며, 러시아와 어떤 나라도 위협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러시아와 서방 모두 서로 자기 쪽의 군사전략이 ‘방어적’이라는 주장이다.



회색 표지 외국인 여권


민족 간의 대립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발트 3국에는 구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로 이주하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 러시아계 주민들이 있다. 전체 인구 중 러시아계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라트비아는 26%, 에스토니아는 25%, 그리고 리투아니아는 6% 정도다. 특히 에스토니아 동부, 러시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나르바(Narva)의 경우 6만 3천여 명 주민의 80% 정도가 러시아계다. 문제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에스토니아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는 점. 시민권이 없는 러시아계 주민들은 붉은색 표지의 일반 여권 대신 회색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 회색 여권 겉장에는 ‘alien(외국인)’이라고 쓰여 있다. 취재팀이 만난 블라지미르 씨 역시 외국인용 회색 여권 소유자. 냉전 시대 때인 1971년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에서 에스토니아로 왔고, 소련이 붕괴한 뒤에도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에스토니아에서 계속 살고 있다. 회색 여권 소유자는 외국 여행을 할 수 있지만, 선거권 같은 정치적 권리는 제한받는다. 블라지미르 씨는 “40년 넘게 세금 내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살고 있는데 늘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고 울분을 터트린다. 발트 3국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때처럼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울 경우 블라지미르 씨 같은 러시아계 주민들이 국가 안보의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발트 3국에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 대신 민족 분쟁을 은밀하게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러-서방 각축장 이반고로드(Ivangorod)

에스토니아 접경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의 국경 도시 이반고로드는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를 상징하는 주요 도시. 북유럽 발트 해의 중요 거점 도시인 이곳을 놓고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는
수백 년 동안 뺏고 뺏기는 전쟁을 계속해 왔다. 이반고로드는 중세 때 만들어진 성채와
철옹성 같은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요새 도시. 취재팀은 발트 3국 취재 일정을 에스토니아 나르바를 거쳐 러시아 이반고로드로 넘어가는 육로를 정했다. 사건은 에스토니아-러시아 국경을 승용차로 통과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인 기자, 러시아 카메라맨, 그리고 에스토니아 러시아계 통역과 기사 등 4명으로 이뤄진 취재팀의 ‘민족 조합’에 에스토니아 국경 수비대가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에스토니아 방문 목적 등을 캐묻더니 방송 장비와 개인 장비 등을 일일이 검색한다. 여권도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모든 출입국 날짜와 출입국 스탬프 등도 하나하나 촬영하면서 확인해 본다. 결국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군사기지 위치 등이 표시된 지도를 발견한 국경수비대 정보 장교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다. “Are you a Russian spy?(당신 러시아 스파이 아닙니까?)”

현재 발트 3국은 과거와 다른 형태의 전쟁을 러시아와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처럼 아직 총을 쏘고, 사람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들이 체감하는 위기감과 긴장감은 대단하다. 유럽 언론은 푸틴의 다음 목표는 발트 3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바로가기 [월드 리포트] 신냉전 시대, 불안한 ‘발트 3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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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소리없이 다가오는 전쟁의 먹구름
    • 입력 2015-02-22 07:00:28
    취재후·사건후
“Are you a Russian spy?” 라트비아 국민 50% 이상, “전쟁 발발할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발트 3국이라고 불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세 나라를 모두 합쳐도 한반도 절반 정도의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들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 옛 소련에 강제 편입됐던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차르 시대 때부터 러시아 제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왔다. 그래서 러시아는 늘 두려운 존재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과 러시아 간의 신냉전이 확대되면서, 발트 3국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인구 백만 명이 조금 넘는 에스토니아의 경우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군사 점령할 수 있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올 정도다. 라트비아의 경우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50% 이상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의 35%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러, 유럽 한복판에 전술 탄도 미사일 배치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는 발트 3국 접경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잇달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연말 ‘칼리닌그라드 훈련’은 주변국들을 사실상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는 대륙의 섬인데, 북쪽은 발트 해 그리고 주변 국경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둘러싸여 있다. 러시아 대륙과 연결된 육로가 없는 이른바 ‘역외( 域外)영토’. 세기의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으로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당시 소련에게 양도한 땅이다. 이곳에서 대규모 훈련을 한 것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신형 단거리 전술 탄도 미사일 이스칸데르 배치 훈련은 특히 위협적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미사일 방어 체계인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에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 군사적 위협과 더불어 비군사적 작전은 이미 전쟁 수준이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 (Hybrid War)‘.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군사력은 일부일 뿐이며, 사이버전과 정보전 등 비군사적인 방법들이 대거 동원된다. 발트 3국에서 시청되는 러시아 방송을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럽 연합의 주요 정책 등에 대해 이른바 ‘러시아식 해석’이 짙게 묻어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반군의 독립 요구는 정당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운다. 러시아는 이미 서방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발트 3국의 농산물과 식품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려 러시아 수출량이 많은 이들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또 러시아 정부와 연계된 악성 소프트웨어 등이 유럽 각국의 주요 시스템을 감염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서방의 주장이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처럼 일사불란하게 경제· 정치·문화·사회적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발트 3국의 대응은 힘겨워 보인다. 미군 기지로 변한 옛 소련 기지 발트 3국은 미국과 나토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은 뒤늦게 해당 지역에 대한 병력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발트 3국에 파견된 미군 병력은 5백 명 정도. 러시아군의 침략을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주둔 기간도 올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미군은 발트 3국 군대에 대한 군사 교육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경우 수도인 리가(Liga) 외곽의 삼림지대에 위치한 아다지 기지에는 세계 최강의 기갑 부대로 알려진 미 육군 제1 기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아다지 기지는 냉전 때 소련군 기지였던 곳이다. 취재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격 전술 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발트 3국은 이번 기회에 아예 미 지상군 병력의 장기 주둔을 내심 강력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 국방부에서 만나 샤르츠 국방 차관은 미군뿐 아니라 나토군이 라트비아에 주둔해 달라고 대놓고 인터뷰한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와 달리 라트비아는 본인의 지원에 의한 직업 군인들로 군대를 유지하는 모병제를 택하고 있다. 대대급 규모의 지상군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토니아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에 공군기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애마리 공군기지는 냉전이 끝나기 전인 1992년까지 소련 공군의 항공 연대가 주둔했던 곳. 에스토니아는 최근 이 기지를 전면적으로 재보수했다. 나토 역시 러시아 국경과 3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애마리 공군 기지에 나토군 전투기를 배치할 계획입니다. 러-서방 모두 “방어 전략”이라고 주장 현재 발트 3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항공 전력만 비교해 볼 때 발트 3국 접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서부 군관구에서만 3백 20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발트 3국은 자국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없는 상황. 에스토니아가 나토에 공군기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이 같은 절박한 사정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현격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항공 전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차세대 스텔스기인 수호이 T-50를 내년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미국의 신형 스텔스기인 F-22에 대항해 개발한 수호이 T-50을 투입해, 유럽 동부 지역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것. 국경 부근에서 훈련도 지난해 3천 건에서 올해는 4천 건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루블화 가치 폭락에 따른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국방 예산은 지난해 보다 30% 늘렸다. 이런 ‘군사 대국화’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정책에 따른 방어적 행동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옛 소련권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 둘씩 나토에 가입하고, 러시아 국경 쪽으로 근접하는 나토의 군사시설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군사 독트린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를 러시아의 핵심적 외부 위협이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쪽 진출은 새로운 베를린 장벽을 쌓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이 국제사회에 긴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맞지만, 이는 순수하게 자기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나토는 러시아의 새로운 군사독트린 채택을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나토가 회원국의 안보를 보장하려는 모든 조처는 명백히 방어적인 행동이며, 러시아와 어떤 나라도 위협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러시아와 서방 모두 서로 자기 쪽의 군사전략이 ‘방어적’이라는 주장이다. 회색 표지 외국인 여권 민족 간의 대립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발트 3국에는 구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로 이주하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 러시아계 주민들이 있다. 전체 인구 중 러시아계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라트비아는 26%, 에스토니아는 25%, 그리고 리투아니아는 6% 정도다. 특히 에스토니아 동부, 러시아 접경지역에 위치한 나르바(Narva)의 경우 6만 3천여 명 주민의 80% 정도가 러시아계다. 문제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에스토니아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는 점. 시민권이 없는 러시아계 주민들은 붉은색 표지의 일반 여권 대신 회색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 회색 여권 겉장에는 ‘alien(외국인)’이라고 쓰여 있다. 취재팀이 만난 블라지미르 씨 역시 외국인용 회색 여권 소유자. 냉전 시대 때인 1971년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에서 에스토니아로 왔고, 소련이 붕괴한 뒤에도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에스토니아에서 계속 살고 있다. 회색 여권 소유자는 외국 여행을 할 수 있지만, 선거권 같은 정치적 권리는 제한받는다. 블라지미르 씨는 “40년 넘게 세금 내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살고 있는데 늘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고 울분을 터트린다. 발트 3국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때처럼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울 경우 블라지미르 씨 같은 러시아계 주민들이 국가 안보의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발트 3국에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 대신 민족 분쟁을 은밀하게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러-서방 각축장 이반고로드(Ivangorod) 에스토니아 접경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의 국경 도시 이반고로드는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를 상징하는 주요 도시. 북유럽 발트 해의 중요 거점 도시인 이곳을 놓고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는 수백 년 동안 뺏고 뺏기는 전쟁을 계속해 왔다. 이반고로드는 중세 때 만들어진 성채와 철옹성 같은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요새 도시. 취재팀은 발트 3국 취재 일정을 에스토니아 나르바를 거쳐 러시아 이반고로드로 넘어가는 육로를 정했다. 사건은 에스토니아-러시아 국경을 승용차로 통과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인 기자, 러시아 카메라맨, 그리고 에스토니아 러시아계 통역과 기사 등 4명으로 이뤄진 취재팀의 ‘민족 조합’에 에스토니아 국경 수비대가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에스토니아 방문 목적 등을 캐묻더니 방송 장비와 개인 장비 등을 일일이 검색한다. 여권도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모든 출입국 날짜와 출입국 스탬프 등도 하나하나 촬영하면서 확인해 본다. 결국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군사기지 위치 등이 표시된 지도를 발견한 국경수비대 정보 장교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다. “Are you a Russian spy?(당신 러시아 스파이 아닙니까?)” 현재 발트 3국은 과거와 다른 형태의 전쟁을 러시아와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전처럼 아직 총을 쏘고, 사람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들이 체감하는 위기감과 긴장감은 대단하다. 유럽 언론은 푸틴의 다음 목표는 발트 3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바로가기 [월드 리포트] 신냉전 시대, 불안한 ‘발트 3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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