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TV’

입력 2015.03.01 (17:25) 수정 2015.03.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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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술을 마시는 장면이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TV를 보는 시간대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청소년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술 광고는 금지하면서 정작 프로그램에서는 술 마시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건 아닐까요?

청소년이 보는 프로그램의 음주장면 노출문제, 구영희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12살 이상 시청 가능한 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들의 녹화 전 금주 약속을 소재로, 술 자리에 대한 용어와 대화가 오갑니다.

<녹취> MBC <무한도전>( 2014. 12. 13 ) : "야야 원샷해라 첫 잔은 왜 술 먹는 거 가지고... 2700만 주당들한테 당하고 싶어?"

저녁 8시대에 방송된 한 드라마에선 부녀가 포장마차에서 다정하게 술을 마십니다.

<녹취> KBS <파랑새의 집> (2.21) : "너 소주도 마셔? 제 나이가 몇 살인데요~"

모두 청소년 시청시간, 청소년 시청 등급의 프로그램입니다.

이렇다 보니 중.고생들까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인터뷰> 고등학생 : "같이 여행을 간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술을 많이 먹고 주사를 부렸어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인터뷰> 고등학생 : "드라마에서 상위 계층이 바에서 술마시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학생인데 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보건협회가 지난해 지상파 3사의 드라마 72편을 조사한 결과, 드라마 방송 횟수 2천 431회에서 음주장면이 2천 564번이 나왔습니다.

드라마 한 회당 평균 한 번이상 음주 장면이 나온 겁니다.

특히, 음주장면 가운데 36% (931회)는 청소년 시청시간대인 저녁 7시에서 10시 사이에 방송됐습니다.

<인터뷰> 이복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총장) : "미디어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음주 장면을 접했을 경우,그 아이들이 그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행위를 똑같이 따라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예전에 미디어를 통해 흡연 장면을 보고 그대로 그 상황에 따라하듯이 마찬가지가 되는 거죠."

특히 문제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주를 조장하거나 왜곡된 음주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보건협회 조사에서는 음주 장면의 95%에서 음주를 부추기는 대사와 장면이 연출됐고, 이른바 원샷 (772회) 이나 병째 마시는 행위 (110회) , 사발주(73회) 등의 행동도 자주 나왔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거나 화합의 수단 등으로 음주가 미화되기도 합니다.

<녹취> KBS <가족끼리 왜 이래>

<녹취>SBS <룸메이트>

<인터뷰>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드라마에서 주로 고민이 있거나 고통받고 슬플 때 습관적으로 술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요, 무엇보다도 술 때문에 벌어지는 분노,폭력, 인간과의 불협화음 같은 경우는 용인하는 듯한 관습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능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술이 있어야만 흥이 나고 의미가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자제되어야..."

프로그램 안에서의 음주 장면은 주류 광고 규제와는 비교가 됩니다. TV에서 술 광고는 17도 이상의 주류는 아예 금지돼 있고, 17도 미만이더라도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인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광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광고가 아닌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음주, 흡연 등의 내용을 다룰 때 신중해야 한다고만 심의 규정에 나와 있을 뿐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간혹 음주 관련 장면이 지나쳐 방송 심의에서 제재를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녹취> 방통심의위원회 보도자료 (2013.10) : "일명 성화봉송주라는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 다른 출연자들이 이를 보고 감탄하거나 받아마시는 장면 등을 자막과 함께 방송했다."

하지만 이같은 제재는 지상파 방송의 경우 1년에 1-2건뿐이고 대부분의 음주 장면은 그대로 방송됩니다.

이렇다 보니 술 광고는 규제하고 있지만, 방송에서의 음주 장면이 대신 광고 효과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 "음주 광고는 그 시간대에 할 수 없으니까, 아는 술병의 디자인을 차용한 디자인 형태로 새롭게 제작된 소품을 준비하거든요. 하지만 누가 봐도 동일한 상표는 아니지만 디자인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상표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거의 간접 광고 형태를 보이고 있어요."

물론, 제작자나 방송사 입장에서는, 드라마 등을 만들다 보면, 음주 장면이 불가피할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 : "드라마는 영상으로 표현해야 되는데 영상을 통해서 대립.갈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음주 장면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불가피하게 표현되는 상황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음주 장면이 빈번한 것은, 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 자체가 외국에 비해 엄격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에선 더욱 주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주로 인한 질병과 사고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19조 원으로 흡연에 따른 비용보다 훨씬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만큼, 과도한 음주에 따른 폐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복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총장) : "음주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담배에 비해서 금주 절주라는 캠페인이 더디게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담배로 인한 경제적 손실보다 주류로 인한 국가경제사회적 손실이 더 큽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음주에 대한 폐해성을 정확하게 알려야 되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1990년대까지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했지만 2000년대 초, 사회적인 금연 분위기와 함께, 지상파 방송사들이 스스로 흡연 장면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녹취>KBS 뉴스9 (2002.11.28) : "KBS는 다음 달부터 모든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없애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방송 심의 규정에는 음주나 흡연 모두, 신중해야 한다는 한가지 잣대를 적용하고 있지만, 실제 방송에서 음주 장면은 여전히 빈번한 반면, 흡연 장면은 사라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습관적으로 음주 장면들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에 술 자체에 대한 경각심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화면상에 고지하거나 영상 연출을 한다거나 전체 총량을 통해서 횟수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근본적으로는 술에 대한 인식 자체를 좀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와 구성원들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최소한 청소년들이 보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라도 음주 장면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한번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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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권하는 TV’
    • 입력 2015-03-01 15:44:42
    • 수정2015-03-01 17: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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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술을 마시는 장면이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TV를 보는 시간대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청소년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술 광고는 금지하면서 정작 프로그램에서는 술 마시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건 아닐까요?

청소년이 보는 프로그램의 음주장면 노출문제, 구영희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12살 이상 시청 가능한 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들의 녹화 전 금주 약속을 소재로, 술 자리에 대한 용어와 대화가 오갑니다.

<녹취> MBC <무한도전>( 2014. 12. 13 ) : "야야 원샷해라 첫 잔은 왜 술 먹는 거 가지고... 2700만 주당들한테 당하고 싶어?"

저녁 8시대에 방송된 한 드라마에선 부녀가 포장마차에서 다정하게 술을 마십니다.

<녹취> KBS <파랑새의 집> (2.21) : "너 소주도 마셔? 제 나이가 몇 살인데요~"

모두 청소년 시청시간, 청소년 시청 등급의 프로그램입니다.

이렇다 보니 중.고생들까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인터뷰> 고등학생 : "같이 여행을 간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술을 많이 먹고 주사를 부렸어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인터뷰> 고등학생 : "드라마에서 상위 계층이 바에서 술마시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학생인데 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보건협회가 지난해 지상파 3사의 드라마 72편을 조사한 결과, 드라마 방송 횟수 2천 431회에서 음주장면이 2천 564번이 나왔습니다.

드라마 한 회당 평균 한 번이상 음주 장면이 나온 겁니다.

특히, 음주장면 가운데 36% (931회)는 청소년 시청시간대인 저녁 7시에서 10시 사이에 방송됐습니다.

<인터뷰> 이복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총장) : "미디어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음주 장면을 접했을 경우,그 아이들이 그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행위를 똑같이 따라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예전에 미디어를 통해 흡연 장면을 보고 그대로 그 상황에 따라하듯이 마찬가지가 되는 거죠."

특히 문제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음주를 조장하거나 왜곡된 음주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보건협회 조사에서는 음주 장면의 95%에서 음주를 부추기는 대사와 장면이 연출됐고, 이른바 원샷 (772회) 이나 병째 마시는 행위 (110회) , 사발주(73회) 등의 행동도 자주 나왔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거나 화합의 수단 등으로 음주가 미화되기도 합니다.

<녹취> KBS <가족끼리 왜 이래>

<녹취>SBS <룸메이트>

<인터뷰>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드라마에서 주로 고민이 있거나 고통받고 슬플 때 습관적으로 술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요, 무엇보다도 술 때문에 벌어지는 분노,폭력, 인간과의 불협화음 같은 경우는 용인하는 듯한 관습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능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술이 있어야만 흥이 나고 의미가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자제되어야..."

프로그램 안에서의 음주 장면은 주류 광고 규제와는 비교가 됩니다. TV에서 술 광고는 17도 이상의 주류는 아예 금지돼 있고, 17도 미만이더라도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인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광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광고가 아닌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음주, 흡연 등의 내용을 다룰 때 신중해야 한다고만 심의 규정에 나와 있을 뿐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간혹 음주 관련 장면이 지나쳐 방송 심의에서 제재를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녹취> 방통심의위원회 보도자료 (2013.10) : "일명 성화봉송주라는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 다른 출연자들이 이를 보고 감탄하거나 받아마시는 장면 등을 자막과 함께 방송했다."

하지만 이같은 제재는 지상파 방송의 경우 1년에 1-2건뿐이고 대부분의 음주 장면은 그대로 방송됩니다.

이렇다 보니 술 광고는 규제하고 있지만, 방송에서의 음주 장면이 대신 광고 효과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 "음주 광고는 그 시간대에 할 수 없으니까, 아는 술병의 디자인을 차용한 디자인 형태로 새롭게 제작된 소품을 준비하거든요. 하지만 누가 봐도 동일한 상표는 아니지만 디자인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상표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거의 간접 광고 형태를 보이고 있어요."

물론, 제작자나 방송사 입장에서는, 드라마 등을 만들다 보면, 음주 장면이 불가피할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 : "드라마는 영상으로 표현해야 되는데 영상을 통해서 대립.갈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음주 장면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불가피하게 표현되는 상황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음주 장면이 빈번한 것은, 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 자체가 외국에 비해 엄격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에선 더욱 주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주로 인한 질병과 사고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19조 원으로 흡연에 따른 비용보다 훨씬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만큼, 과도한 음주에 따른 폐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복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총장) : "음주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담배에 비해서 금주 절주라는 캠페인이 더디게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담배로 인한 경제적 손실보다 주류로 인한 국가경제사회적 손실이 더 큽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음주에 대한 폐해성을 정확하게 알려야 되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1990년대까지는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했지만 2000년대 초, 사회적인 금연 분위기와 함께, 지상파 방송사들이 스스로 흡연 장면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녹취>KBS 뉴스9 (2002.11.28) : "KBS는 다음 달부터 모든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없애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습니다.

방송 심의 규정에는 음주나 흡연 모두, 신중해야 한다는 한가지 잣대를 적용하고 있지만, 실제 방송에서 음주 장면은 여전히 빈번한 반면, 흡연 장면은 사라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습관적으로 음주 장면들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에 술 자체에 대한 경각심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화면상에 고지하거나 영상 연출을 한다거나 전체 총량을 통해서 횟수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근본적으로는 술에 대한 인식 자체를 좀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방송 프로그램은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와 구성원들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최소한 청소년들이 보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라도 음주 장면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한번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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