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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방패막이’ 사외이사 17년…“정상화 시급”
입력 2015.03.09 (06:39) 수정 2015.03.09 (07:26) 연합뉴스
올해 10대 그룹 주주총회에서도 정부 부처나 법조계 등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가 무더기 선임될 예정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인 1998년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비정상적 운영 행태는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도 취지와 반대로 사외이사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내부 경영진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는다거나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 10명 중 4명이 권력기관 출신…'심판' 아닌 '플레이어'

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이 올해 주총에서 선임(신규·재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약 40%가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분석 대상 기업을 넓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의원이 63개 대기업 소속 사외이사 786명의 직업군을 분석했을 당시에도 관료 또는 판·검사 경력이 있는 권력기관 출신이 35%로 집계됐다.

기업이 정부 고위직 출신 사외이사에게 '대정부 창구' 역할을,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에게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은 업계의 오랜 정설이다.

기업이 사외이사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뛰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경영진의 업무 추진에 제동을 걸지 않는 '예스맨'이 돼 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에 가깝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차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부지를 감정가의 3배인 10조5천500억원에 낙찰받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지만, 이사회에서 반대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총수가 징역형을 사는 SK·CJ와 사실상 그룹이 와해된 동양·STX 등의 사외이사도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 부연구위원은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기업이 위기를 맞는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의사 결정에 참여한 사외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그들만의 리그…"기관투자자 제 역할 해야"

이사회가 '그들만의 리그'가 된데는 사외이사 선발 및 운영 방식의 영향이 컸다.

사외이사 후보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서 추천하는데 사추위원의 절반 이상만 사외이사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경영진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로 구성할 수 있다. 그만큼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렵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사외이사의 보수는 웬만한 교수 연봉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라며 "기업 총수나 경영진이 (입깁을 넣어) 사외이사로 선임했다면 사외이사가 그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주주들이 나서서 사외이사가 제도 취지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를 다음 주주총회에서 재선임하지 않도록 의견을 피력하고, 주주제안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진수 연구위원은 "주주행동을 통해 사외이사가 제 구실을 못한데에 책임을 묻는 사건이 발생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관투자자가 대기업과의 여러 이해관계로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면, 해외 기관투자자에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고 덧붙였다.

윤 연구위원은 "다만, 해외 기관투자자의 경우 언어나 정보 취득에 한계가 있는만큼 외국인 지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은 주총 안건 등을 영문으로 발송하도록 의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제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관련 지침을 제시해 책임 있는 투자를 끌어내도록 하는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준칙'이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기관에 원칙 준수를 요청하고 준수하지 못하면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는 것으로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연기금 등이 수동적으로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만 행사할 게 아니라, 사외이사 후보 추천부터 주주 대표 소송 등 다양한 주주권을 행사해야만 대주주 및 경영진의 전횡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거수기·방패막이’ 사외이사 17년…“정상화 시급”
    • 입력 2015-03-09 06:39:10
    • 수정2015-03-09 07:26:44
    연합뉴스
올해 10대 그룹 주주총회에서도 정부 부처나 법조계 등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가 무더기 선임될 예정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인 1998년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비정상적 운영 행태는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제도 취지와 반대로 사외이사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내부 경영진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는다거나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 10명 중 4명이 권력기관 출신…'심판' 아닌 '플레이어'

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이 올해 주총에서 선임(신규·재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약 40%가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분석 대상 기업을 넓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의원이 63개 대기업 소속 사외이사 786명의 직업군을 분석했을 당시에도 관료 또는 판·검사 경력이 있는 권력기관 출신이 35%로 집계됐다.

기업이 정부 고위직 출신 사외이사에게 '대정부 창구' 역할을,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에게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은 업계의 오랜 정설이다.

기업이 사외이사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뛰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경영진의 업무 추진에 제동을 걸지 않는 '예스맨'이 돼 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에 가깝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차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부지를 감정가의 3배인 10조5천500억원에 낙찰받았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지만, 이사회에서 반대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총수가 징역형을 사는 SK·CJ와 사실상 그룹이 와해된 동양·STX 등의 사외이사도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 부연구위원은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기업이 위기를 맞는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문제가 있는 의사 결정에 참여한 사외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그들만의 리그…"기관투자자 제 역할 해야"

이사회가 '그들만의 리그'가 된데는 사외이사 선발 및 운영 방식의 영향이 컸다.

사외이사 후보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서 추천하는데 사추위원의 절반 이상만 사외이사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경영진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로 구성할 수 있다. 그만큼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렵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사외이사의 보수는 웬만한 교수 연봉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라며 "기업 총수나 경영진이 (입깁을 넣어) 사외이사로 선임했다면 사외이사가 그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주주들이 나서서 사외이사가 제도 취지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를 다음 주주총회에서 재선임하지 않도록 의견을 피력하고, 주주제안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진수 연구위원은 "주주행동을 통해 사외이사가 제 구실을 못한데에 책임을 묻는 사건이 발생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관투자자가 대기업과의 여러 이해관계로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면, 해외 기관투자자에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고 덧붙였다.

윤 연구위원은 "다만, 해외 기관투자자의 경우 언어나 정보 취득에 한계가 있는만큼 외국인 지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은 주총 안건 등을 영문으로 발송하도록 의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제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관련 지침을 제시해 책임 있는 투자를 끌어내도록 하는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준칙'이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기관에 원칙 준수를 요청하고 준수하지 못하면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는 것으로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연기금 등이 수동적으로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만 행사할 게 아니라, 사외이사 후보 추천부터 주주 대표 소송 등 다양한 주주권을 행사해야만 대주주 및 경영진의 전횡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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