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신라 왕궁’…경주 월성 발굴조사 결과 첫 공개

입력 2015.03.19 (06:51) 수정 2015.03.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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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8백 년 넘게 신라왕궁으로 사용됐던 곳이 바로 경주 월성인데요.

월성의 첫 시굴 조사에서 대규모 건물터와 다량의 유물이 발굴돼 신라왕궁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습니다.

정혜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작은 돌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고 곳곳에는 커다란 초석이 자리 잡았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때 집을 지으려고 기초를 쌓은 흔적입니다.

서기 101년, 신라 파사왕 때 궁궐로 지어져 834년 동안 신라왕궁이었던 월성의 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중심부에서는 건물터 6곳과 담장, 배수로도 발견됐습니다.

가장 큰 건물은 길이가 28미터, 폭이 7.1미터로 면적은 2백제곱미터에 이릅니다.

<인터뷰> 어창선(경주 월성 조사단) : "월성 조사를 봤을 때 현재 건물지와 유물들을 비교하면 통일신라 시대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의 주요 건물로 활용되지 않았을까."

특히 건물터 밑에서는 연꽃 모양이 새겨진 기와와 음각 기호가 그려진 토기 등 신라시대 유물 수 만점도 출토됐습니다.

대부분 생활용품이나 건축물에 활용됐던 것입니다.

<인터뷰> 심영섭(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 : "(월성이) 왕궁터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들이 아마 밑에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 월성 주변에서 간헐적인 조사는 있었지만 이렇게 내부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연구소는 내일 문화재 위원회 승인을 거친 뒤, 정밀 발굴 조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KBS 뉴스 정혜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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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일 벗는 ‘신라 왕궁’…경주 월성 발굴조사 결과 첫 공개
    • 입력 2015-03-19 06:53:07
    • 수정2015-03-19 07:18:51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8백 년 넘게 신라왕궁으로 사용됐던 곳이 바로 경주 월성인데요.

월성의 첫 시굴 조사에서 대규모 건물터와 다량의 유물이 발굴돼 신라왕궁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습니다.

정혜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작은 돌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고 곳곳에는 커다란 초석이 자리 잡았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때 집을 지으려고 기초를 쌓은 흔적입니다.

서기 101년, 신라 파사왕 때 궁궐로 지어져 834년 동안 신라왕궁이었던 월성의 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중심부에서는 건물터 6곳과 담장, 배수로도 발견됐습니다.

가장 큰 건물은 길이가 28미터, 폭이 7.1미터로 면적은 2백제곱미터에 이릅니다.

<인터뷰> 어창선(경주 월성 조사단) : "월성 조사를 봤을 때 현재 건물지와 유물들을 비교하면 통일신라 시대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의 주요 건물로 활용되지 않았을까."

특히 건물터 밑에서는 연꽃 모양이 새겨진 기와와 음각 기호가 그려진 토기 등 신라시대 유물 수 만점도 출토됐습니다.

대부분 생활용품이나 건축물에 활용됐던 것입니다.

<인터뷰> 심영섭(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 : "(월성이) 왕궁터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유적이나 유물들이 아마 밑에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주 월성 주변에서 간헐적인 조사는 있었지만 이렇게 내부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연구소는 내일 문화재 위원회 승인을 거친 뒤, 정밀 발굴 조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KBS 뉴스 정혜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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