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암살 직전 방한한 리콴유, 통역은 박근혜

입력 2015.03.23 (10:58) 수정 2015.03.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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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1세를 일기로 오늘(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생전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

첫 방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일주일 전인 1979년 10월19일이었다.

2000년 9월 출간된 회고록 '일류 국가의 길'을 보면, 리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첫인상에 대해 "날카로운 얼굴과 좁은 콧날을 지닌 작고 강단 있게 생긴 분으로 엄격해 보였다"며 "영어를 할 줄 아는 그의 20대 딸 박근혜의 통역으로 우리의 대화는 진행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작고한 모친인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18년 재임 기간 그(박정희 전 대통령)는 경제적 근대화를 열망하는 훈련되고 단결된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경제 번영을 이룩했다"며 "나는 한국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단호한 결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 당시 정상회담 후 만찬에서는 "어떤 지도자들은 언론과 여론조사에 호의적 평가를 받는 데 관심과 정력을 소모하지만 다른 지도자들은 일에 집중하고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 만약 각하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는 분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보는 이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리 전 총리가 한국을 떠난 뒤 닷새 만에 측근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됐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부녀-부자의 2대 인연이 주목받았다. 1979년 정상회담 통역으로 리 전 총리와 인연을 맺은 박 대통령은 2006년 한나라당 대표로 지방선거를 지휘하던 때 얼굴 부위에 흉기 테러를 당하기 직전에도 면담했고 이듬해 싱가포르에서도 회동한 바 있다.

특히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李顯龍·63) 현 총리와는 여러모로 닯은 꼴 정치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양국 근대화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부친을 둔 2세 정치인인 데다 1952년생 동갑이며 모두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 정치인이다.

두 사람은 2013년 12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해 창조경제 분야와 건설 및 연구개발(R&D) 분야 등에서의 양국간 협력증진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 밖에 리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그들이 집권했던 시기에 통용되던 그 당시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다"며 "그러한 기준에서 판단한다면 그들은 악한(villain)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리 전 총리를 잊지 못할 국가지도자의 한 명으로 꼽은 바 있다.

1981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건설에 참여할 당시 리 전 총리가 현대건설의 젊은 사장이던 이 전 대통령을 집무실로 불러 5분짜리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고 이 대통령이 깊은 인상을 받아 향후 국정 운영에 이를 반영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6월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이 전 대통령은 회의 후 리 전 총리를 면담하며 양국의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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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암살 직전 방한한 리콴유, 통역은 박근혜
    • 입력 2015-03-23 10:58:49
    • 수정2015-03-23 15:31:58
    정치
향년 91세를 일기로 오늘(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생전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

첫 방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일주일 전인 1979년 10월19일이었다.

2000년 9월 출간된 회고록 '일류 국가의 길'을 보면, 리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첫인상에 대해 "날카로운 얼굴과 좁은 콧날을 지닌 작고 강단 있게 생긴 분으로 엄격해 보였다"며 "영어를 할 줄 아는 그의 20대 딸 박근혜의 통역으로 우리의 대화는 진행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작고한 모친인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18년 재임 기간 그(박정희 전 대통령)는 경제적 근대화를 열망하는 훈련되고 단결된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경제 번영을 이룩했다"며 "나는 한국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단호한 결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또 당시 정상회담 후 만찬에서는 "어떤 지도자들은 언론과 여론조사에 호의적 평가를 받는 데 관심과 정력을 소모하지만 다른 지도자들은 일에 집중하고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 만약 각하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는 분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보는 이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리 전 총리가 한국을 떠난 뒤 닷새 만에 측근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됐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부녀-부자의 2대 인연이 주목받았다. 1979년 정상회담 통역으로 리 전 총리와 인연을 맺은 박 대통령은 2006년 한나라당 대표로 지방선거를 지휘하던 때 얼굴 부위에 흉기 테러를 당하기 직전에도 면담했고 이듬해 싱가포르에서도 회동한 바 있다.

특히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李顯龍·63) 현 총리와는 여러모로 닯은 꼴 정치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양국 근대화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부친을 둔 2세 정치인인 데다 1952년생 동갑이며 모두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 정치인이다.

두 사람은 2013년 12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해 창조경제 분야와 건설 및 연구개발(R&D) 분야 등에서의 양국간 협력증진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 밖에 리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그들이 집권했던 시기에 통용되던 그 당시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다"며 "그러한 기준에서 판단한다면 그들은 악한(villain)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리 전 총리를 잊지 못할 국가지도자의 한 명으로 꼽은 바 있다.

1981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건설에 참여할 당시 리 전 총리가 현대건설의 젊은 사장이던 이 전 대통령을 집무실로 불러 5분짜리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고 이 대통령이 깊은 인상을 받아 향후 국정 운영에 이를 반영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6월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이 전 대통령은 회의 후 리 전 총리를 면담하며 양국의 협조 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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