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영영 사라지나?

입력 2015.03.24 (06:04) 수정 2015.03.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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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가 안 밝혀지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경북 상주의 고서적상 배모씨)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공개 의향을 묻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앞으로 세상이 해례본을 영영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했다.

해례본의 소재는 물론 보존상태에 대해서도 거듭 묻자 그는 “알아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내 누명이 벗겨지기 전까지 공개도, 기증도 없다. 이건 절대적 기준이다”고 반복했다.

배씨가 보관하고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이 문화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 훈민정음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 그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게 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40년 이전만 해도 한글 창제원리에 대해 학자들은(주로 일본 학자들) 고대글자 모방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등의 다양한 가설들을 내놨다. 이런 가설들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가설들이 모두 엉터리였음이 밝혀진 건 한 건의 책 덕분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다.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게 ‘예의’라면, 해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예의 부분은 간략해 『세종실록(世宗實錄)』과 『월인석보(月印釋譜)』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을 자세히 적은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린 훈민정음 정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원리는 비로소 밝혀졌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바로 해례본이었다.

이 ‘소중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까지 딱 한본만 전해지고 있다. 간송 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이른바 ‘간송본’이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 2008년 발견된 해례본 상주본

지난 2008년 8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씨가 올린 글이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서적 한권이 나왔는데, 문화재로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조사를 나간 문화재청 학예사 2명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세상에 딱 한본인줄 알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서문 네 장과 뒷 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무엇보다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은 한글 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소중한 자산이었다. 이 소식은 한 지역방송국에 보도되기도 했다.

☞ 훈민정음 해례본 500년 만에 ‘햇빛’ [기사 출처 = 안동 MBC 보도]

그 후 7년, 이 훈민정음 해례본(편의상 상주본으로 부름)은 자취를 감췄다. 이 해례본의 실물을 본 사람은 관련 당사자들을 빼곤 4명에 불과하다. 초기에 현장 조사를 나간 2명의 학예사와 관련 보도를 했던 지역방송 기자와 촬영기자 등 모두 4명이다.

◆ 소유권 분쟁으로 사라진 해례본

문화재계를 술렁이게 했던 해례본의 발견 소식은 이로부터 한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 골동상 조모씨(작고)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 해례본은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데, 배 씨가 고서적들을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며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조씨의 주장을 반박하며 자신은 조씨로부터 해례본까지 포함해 고서적들을 함께 사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형사 고소건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민사소송은 조씨 손을 들어줬다. 2011년 6월 대법원은 “해례본을 조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민사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배씨는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 무렵 다시 수사에 나선 검찰은 결국 배씨에 대해 해례본을 훔치고 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배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인 2심은 ‘훔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6월 무죄 원심을 확정했다.

◆ 배 씨 “해례본 절대 내놓을 수 없다”

동일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재판은 조씨의 손을, 형사재판은 배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은 꼬였다.

또 조씨가 생전에 해례본을 기증했지만, 이것 또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배씨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2012년 5월, 민사소송에서 이긴 조씨(작고)는 해례본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며 기증식까지 가졌다. 실물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기증식이었다. 배씨의 절도혐의를 확신한 문화재청은 보도자료까지 내며 조씨의 기부를 환영했다.

하지만 몇달 뒤, 배씨가 형사재판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형사재판 공판에서는 몇 차례 국가에 기증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 배씨는 대법원 최종심 이후 이런 입장을 바꿨다. 그에게 직접 이유를 들어봤다.

- 왜 공개 약속을 해놓고 안 지키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저쪽에서 제멋대로 사건을 조작해놓고....이 상태에선 한발짝도 할 수 없다.”

- 저쪽이 누군인가?

“나를 문서 절도범으로 공모한 사람들이다. ”(그는 실명을 언급하며 당시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문화재청 전현직 공무원들과 조모씨 측을 강하게 비난했다.)

-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

“재판 몇 년 하면서 몸과 마음 다 너무 상했다. 367일간 옥살이 했고, 집도 온통 압수수색 당해 피해가 막심하다. 이런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절대 공개할 수 없다. 이건 절대 원칙이다.”

- 일단 공개하고, 전문가들의 관리를 받으면서 해법을 모색하는 건 어떤가?

“민사소송에서 나는 졌다. 민사재판은 엉터리 증언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내가 풀려날 거 같으니까 저들이 문화재청에 소유권 넘겼다. 이런 상태에서 공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소유권을 정부에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실물은 잘 보관되고 있나? 어디에 뒀나?

“잊어달라. 물건에 대해선 알아도 말을 못한다.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 미안하다.”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로선 배씨가 순순히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스스로 공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민사재판 결과에 따라 해례본 소유권은 조씨에게 넘어갔고, 조씨의 기부 약속에 따라 현재는 정부가 가진 상태다. 따라서 실물이 발견되면 즉시 정부의 강제압수가 가능하다. 절도 혐의를 벗은 배씨로서는 손놓고 해례본을 뺏기지 않기 위해 해례본을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 출처부터 미궁인 해례본 상주본

그렇다면 배씨가 감추고 있는 해례본 상주본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이 문제를 오래 다뤄온 문화재청 공무원인 Q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Q씨는 “진실은 신의 영역이다. 나도 알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동안 이 사건을 오래 지켜본 당사자로서 개인적인 추정을 섞어 이 사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 상주본은 원래 누가 가지고 있었던 건가?

“2008년 7월 무렵 배씨가 조씨 집에서 상주본을 가져온 것은 대체로 맞는 얘기로 보인다. 단 이 부분에 대해서 조씨는 ”배씨가 다른 고서적에 슬쩍 끼워 훔쳐갔다“고 주장한다.”

- 누구 말이 맞나?

“알 수 없지만, 배씨가 진짜로 책을 훔쳤다면 책을 넘겨받은 1주일 뒤 언론에 이 책의 존재를 알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도 절도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런 정황을 고려한 것이다.”

- 30만 원에 국보1호급 문화재를 팔았다는 게 말이 되나?

“이게 훈민정음 해례본임을 몰랐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배씨는 이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서 접근했을 가능성은 있다. 정황도 있다. 매도자가 매도했더라도 명백하게 착오에 의한 법률행위를 했을때는 민법상 취소 문제가 생긴다. 배씨가 처음에 조씨로부터 책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집 정리를 하다가 나왔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씨는 이 해례본을 어디서 구한 것인가?

배씨와 조씨의 소유권 분쟁 와중에 검찰은 해례본의 출처를 문화재 도굴 1인자로 알려진 서상복(53)씨로 지목한 적 있다.

즉, 서씨의 진술에 따르면, 경북 안동 광흥사 대웅전의 나한상 등에 들어있던 수십권의 고서를 절취했는데 이 안에 상주본이 있었고, 이를 조씨에게 500만원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검찰은 처음 결론냈던 배씨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뒤집고, 조씨에 대해선 장물을 사들인 혐의로, 배씨에 대해선 장물을 훔친 혐의로 재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런 검찰 시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신라때 창건된 광흥사 불상에서 불경이 아닌 상주본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씨는 과거 주요 문화재 사건 때마다 자신이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며 “검찰이 처음 무혐의 처분을 뒤집기 위해 서상복씨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청으로서는 일단 조씨 소유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씨에게 기부약속을 받은 문화재청으로선 조씨 주장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해례본을 정부가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미 배씨집을 몇차례 수색했지만 해례본의 소재는 찾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유일한 방법은 배씨가 스스로 해례본을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공개 즉시 국가로 해례본이 귀속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화재청의 여러차례 설득에도 배씨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 경매에 나왔던 훈민정음 해례본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씨는 검찰이 처음 절도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한차례 매각을 시도했다고 한다.

당시 한 고미술품 경매 사이트를 통해 100억원대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최종 성사 단계에서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민사소송과 검찰의 재수사가 이어지면서 해례본은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해례본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금처럼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대처할 경우 길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소유권이 정부에게 있다는 민사소송 때문에 배씨가 해례본을 영구히 공개하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하고 있다”며 배씨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서라도 국가가 사들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정부가 민사소송 결과만 믿고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배씨와 적극적으로 보상책을 협의해서 사들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우려되는 해례본 훼손 가능성

정부가 시급히 나서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해례본의 훼손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7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해례본의 보존 상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배씨는 재판에서 해례본을 낱장으로 분리한 뒤 비닐봉지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배씨가 해례본을 인적이 드문 야산 등에 묻어놨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고미술상은 “고서는 비닐에 쌌더라도 땅에 묻히는 순간, 급격히 부패한다. 하루라도 빨리 손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들은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해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배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글날도 아닌데 왜 전화를 했소. 이제 세상에서 나를 잊어버린 거 같은데" 작년까지 전화를 걸던 문화재청도 더이상 배씨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고 배씨는 말한다.

그러는 사이, 경상북도 어느 야산의 땅 밑에서는 우리 민족 최고의 창작품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썩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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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4 06:04:05
    • 수정2015-03-24 15:10:29
    문화
“이 문제가 안 밝혀지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경북 상주의 고서적상 배모씨)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공개 의향을 묻는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앞으로 세상이 해례본을 영영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했다.

해례본의 소재는 물론 보존상태에 대해서도 거듭 묻자 그는 “알아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내 누명이 벗겨지기 전까지 공개도, 기증도 없다. 이건 절대적 기준이다”고 반복했다.

배씨가 보관하고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이 문화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 훈민정음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인 한글, 그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게 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40년 이전만 해도 한글 창제원리에 대해 학자들은(주로 일본 학자들) 고대글자 모방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등의 다양한 가설들을 내놨다. 이런 가설들은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가설들이 모두 엉터리였음이 밝혀진 건 한 건의 책 덕분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다.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게 ‘예의’라면, 해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예의 부분은 간략해 『세종실록(世宗實錄)』과 『월인석보(月印釋譜)』 등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용법을 자세히 적은 해례는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린 훈민정음 정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의 원리는 비로소 밝혀졌다. 한글의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바로 해례본이었다.

이 ‘소중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까지 딱 한본만 전해지고 있다. 간송 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이른바 ‘간송본’이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 2008년 발견된 해례본 상주본

지난 2008년 8월, 문화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고서적상 배씨가 올린 글이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서적 한권이 나왔는데, 문화재로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조사를 나간 문화재청 학예사 2명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세상에 딱 한본인줄 알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서문 네 장과 뒷 부분 한 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었다. 보존상태도 양호했다.

무엇보다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 소리 등에 대한 당시 연구자의 주석은 한글 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소중한 자산이었다. 이 소식은 한 지역방송국에 보도되기도 했다.

☞ 훈민정음 해례본 500년 만에 ‘햇빛’ [기사 출처 = 안동 MBC 보도]

그 후 7년, 이 훈민정음 해례본(편의상 상주본으로 부름)은 자취를 감췄다. 이 해례본의 실물을 본 사람은 관련 당사자들을 빼곤 4명에 불과하다. 초기에 현장 조사를 나간 2명의 학예사와 관련 보도를 했던 지역방송 기자와 촬영기자 등 모두 4명이다.

◆ 소유권 분쟁으로 사라진 해례본

문화재계를 술렁이게 했던 해례본의 발견 소식은 이로부터 한달 뒤인 2008년 8월 상주시 골동상 조모씨(작고)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 해례본은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데, 배 씨가 고서적들을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슬쩍 끼워 훔쳐갔다”며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배 씨는 조씨의 주장을 반박하며 자신은 조씨로부터 해례본까지 포함해 고서적들을 함께 사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형사 고소건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민사소송은 조씨 손을 들어줬다. 2011년 6월 대법원은 “해례본을 조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민사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배씨는 해례본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강제 집행과 압수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 무렵 다시 수사에 나선 검찰은 결국 배씨에 대해 해례본을 훔치고 훼손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배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인 2심은 ‘훔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6월 무죄 원심을 확정했다.

◆ 배 씨 “해례본 절대 내놓을 수 없다”

동일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재판은 조씨의 손을, 형사재판은 배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은 꼬였다.

또 조씨가 생전에 해례본을 기증했지만, 이것 또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배씨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2012년 5월, 민사소송에서 이긴 조씨(작고)는 해례본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며 기증식까지 가졌다. 실물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기증식이었다. 배씨의 절도혐의를 확신한 문화재청은 보도자료까지 내며 조씨의 기부를 환영했다.

하지만 몇달 뒤, 배씨가 형사재판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형사재판 공판에서는 몇 차례 국가에 기증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 배씨는 대법원 최종심 이후 이런 입장을 바꿨다. 그에게 직접 이유를 들어봤다.

- 왜 공개 약속을 해놓고 안 지키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저쪽에서 제멋대로 사건을 조작해놓고....이 상태에선 한발짝도 할 수 없다.”

- 저쪽이 누군인가?

“나를 문서 절도범으로 공모한 사람들이다. ”(그는 실명을 언급하며 당시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문화재청 전현직 공무원들과 조모씨 측을 강하게 비난했다.)

-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

“재판 몇 년 하면서 몸과 마음 다 너무 상했다. 367일간 옥살이 했고, 집도 온통 압수수색 당해 피해가 막심하다. 이런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절대 공개할 수 없다. 이건 절대 원칙이다.”

- 일단 공개하고, 전문가들의 관리를 받으면서 해법을 모색하는 건 어떤가?

“민사소송에서 나는 졌다. 민사재판은 엉터리 증언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내가 풀려날 거 같으니까 저들이 문화재청에 소유권 넘겼다. 이런 상태에서 공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소유권을 정부에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실물은 잘 보관되고 있나? 어디에 뒀나?

“잊어달라. 물건에 대해선 알아도 말을 못한다.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 미안하다.”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로선 배씨가 순순히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스스로 공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민사재판 결과에 따라 해례본 소유권은 조씨에게 넘어갔고, 조씨의 기부 약속에 따라 현재는 정부가 가진 상태다. 따라서 실물이 발견되면 즉시 정부의 강제압수가 가능하다. 절도 혐의를 벗은 배씨로서는 손놓고 해례본을 뺏기지 않기 위해 해례본을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 출처부터 미궁인 해례본 상주본

그렇다면 배씨가 감추고 있는 해례본 상주본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이 문제를 오래 다뤄온 문화재청 공무원인 Q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Q씨는 “진실은 신의 영역이다. 나도 알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동안 이 사건을 오래 지켜본 당사자로서 개인적인 추정을 섞어 이 사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 상주본은 원래 누가 가지고 있었던 건가?

“2008년 7월 무렵 배씨가 조씨 집에서 상주본을 가져온 것은 대체로 맞는 얘기로 보인다. 단 이 부분에 대해서 조씨는 ”배씨가 다른 고서적에 슬쩍 끼워 훔쳐갔다“고 주장한다.”

- 누구 말이 맞나?

“알 수 없지만, 배씨가 진짜로 책을 훔쳤다면 책을 넘겨받은 1주일 뒤 언론에 이 책의 존재를 알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도 절도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런 정황을 고려한 것이다.”

- 30만 원에 국보1호급 문화재를 팔았다는 게 말이 되나?

“이게 훈민정음 해례본임을 몰랐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배씨는 이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서 접근했을 가능성은 있다. 정황도 있다. 매도자가 매도했더라도 명백하게 착오에 의한 법률행위를 했을때는 민법상 취소 문제가 생긴다. 배씨가 처음에 조씨로부터 책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집 정리를 하다가 나왔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씨는 이 해례본을 어디서 구한 것인가?

배씨와 조씨의 소유권 분쟁 와중에 검찰은 해례본의 출처를 문화재 도굴 1인자로 알려진 서상복(53)씨로 지목한 적 있다.

즉, 서씨의 진술에 따르면, 경북 안동 광흥사 대웅전의 나한상 등에 들어있던 수십권의 고서를 절취했는데 이 안에 상주본이 있었고, 이를 조씨에게 500만원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검찰은 처음 결론냈던 배씨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뒤집고, 조씨에 대해선 장물을 사들인 혐의로, 배씨에 대해선 장물을 훔친 혐의로 재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런 검찰 시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신라때 창건된 광흥사 불상에서 불경이 아닌 상주본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씨는 과거 주요 문화재 사건 때마다 자신이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며 “검찰이 처음 무혐의 처분을 뒤집기 위해 서상복씨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청으로서는 일단 조씨 소유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씨에게 기부약속을 받은 문화재청으로선 조씨 주장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해례본을 정부가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미 배씨집을 몇차례 수색했지만 해례본의 소재는 찾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유일한 방법은 배씨가 스스로 해례본을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공개 즉시 국가로 해례본이 귀속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화재청의 여러차례 설득에도 배씨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 경매에 나왔던 훈민정음 해례본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씨는 검찰이 처음 절도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한차례 매각을 시도했다고 한다.

당시 한 고미술품 경매 사이트를 통해 100억원대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최종 성사 단계에서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민사소송과 검찰의 재수사가 이어지면서 해례본은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해례본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금처럼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대처할 경우 길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소유권이 정부에게 있다는 민사소송 때문에 배씨가 해례본을 영구히 공개하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하고 있다”며 배씨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서라도 국가가 사들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정부가 민사소송 결과만 믿고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배씨와 적극적으로 보상책을 협의해서 사들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우려되는 해례본 훼손 가능성

정부가 시급히 나서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해례본의 훼손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7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해례본의 보존 상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배씨는 재판에서 해례본을 낱장으로 분리한 뒤 비닐봉지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배씨가 해례본을 인적이 드문 야산 등에 묻어놨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고미술상은 “고서는 비닐에 쌌더라도 땅에 묻히는 순간, 급격히 부패한다. 하루라도 빨리 손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들은 훈민정음을 국보1호로 해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배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글날도 아닌데 왜 전화를 했소. 이제 세상에서 나를 잊어버린 거 같은데" 작년까지 전화를 걸던 문화재청도 더이상 배씨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고 배씨는 말한다.

그러는 사이, 경상북도 어느 야산의 땅 밑에서는 우리 민족 최고의 창작품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썩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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