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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우리와 인연은?
입력 2015.03.24 (12:38) 수정 2015.03.24 (15:58) 뉴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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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굿바이 파파"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로 싱가포르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애도 행렬이 이어지고있습니다.

먼저, 이예진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늦은밤까지 리콴유 전 총리를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은 마음을 담아 조의를 표합니다.

<인터뷰> 존 치아(추모객) : "리콴유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공서 등 공공건물엔 조기가 내걸렸고,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했습니다.

<인터뷰> 반기문(UN 사무총장) : "아시아와 전 세계의 영감을 줬던 훌륭한 지도자를 잃게 되어서 매우 슬픕니다."

폐렴으로 입원했던 리콴유 전 총리는 어제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콴유는 실용과 청렴의 지도자였습니다.

36살에 총리가 돼 31년 동안 나라를 이끌며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적극적 인재 양성 정책 등을 통해, 작은 항구도시 싱가포르를 국제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벌금과 태형 등 엄격한 국가 통제로 아시아의 히틀러라는 비판도 따랐습니다.

<인터뷰> 리콴유(前 총리(생전 CNN 인터뷰)) : "나를 이끄는 원칙은 사회 평화와 국가 안정 그리고 민족. 종교 사이의 비폭력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7일간의 애도 기간을 거친 뒤 현지 시간으로 오는 29일 국장으로 리콴유의 장례식을 치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예진입니다.

<앵커 멘트>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내쫓기다시피 독립한 가난한 섬 나라를 아시아 '네 마리 용'의 반열로, 나아가 세계 금융.물류 중심지로 올려놓은 주인공이 바로 리 전 총리입니다.

국민 아버지, 국부(國父)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애도 성명에 이어 오는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리 전 총리 장례식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남다른 인연 때문입니다.

리 전 총리가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건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열흘 전이었습니다.

당시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로서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2대에 걸친 '부녀 대통령' 처럼, 리콴유 역시 대를 이어 아들이 총리에 오른 '부자 총리'란 점도 닮은꼴입니다.

개발 독재의 상징이기도 했던 리콴유 전 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바탕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는 리 전 총리의 기고문에, 당시 정계를 떠나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김 전 대통령은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는 필연"이라고 맞받았습니다.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 온 리콴유 총리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던 중국 덩샤오핑과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왔는데요.

이런 실용정신은 "내가 죽거든 지금 사는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에까지 깃들어 있습니다.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우리와 인연은?
    • 입력 2015-03-24 12:43:52
    • 수정2015-03-24 15:58:35
    뉴스 12
<앵커 멘트>

"굿바이 파파"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로 싱가포르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애도 행렬이 이어지고있습니다.

먼저, 이예진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늦은밤까지 리콴유 전 총리를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은 마음을 담아 조의를 표합니다.

<인터뷰> 존 치아(추모객) : "리콴유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공서 등 공공건물엔 조기가 내걸렸고,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했습니다.

<인터뷰> 반기문(UN 사무총장) : "아시아와 전 세계의 영감을 줬던 훌륭한 지도자를 잃게 되어서 매우 슬픕니다."

폐렴으로 입원했던 리콴유 전 총리는 어제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콴유는 실용과 청렴의 지도자였습니다.

36살에 총리가 돼 31년 동안 나라를 이끌며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적극적 인재 양성 정책 등을 통해, 작은 항구도시 싱가포르를 국제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벌금과 태형 등 엄격한 국가 통제로 아시아의 히틀러라는 비판도 따랐습니다.

<인터뷰> 리콴유(前 총리(생전 CNN 인터뷰)) : "나를 이끄는 원칙은 사회 평화와 국가 안정 그리고 민족. 종교 사이의 비폭력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7일간의 애도 기간을 거친 뒤 현지 시간으로 오는 29일 국장으로 리콴유의 장례식을 치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예진입니다.

<앵커 멘트>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내쫓기다시피 독립한 가난한 섬 나라를 아시아 '네 마리 용'의 반열로, 나아가 세계 금융.물류 중심지로 올려놓은 주인공이 바로 리 전 총리입니다.

국민 아버지, 국부(國父)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애도 성명에 이어 오는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리 전 총리 장례식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남다른 인연 때문입니다.

리 전 총리가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건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열흘 전이었습니다.

당시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로서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2대에 걸친 '부녀 대통령' 처럼, 리콴유 역시 대를 이어 아들이 총리에 오른 '부자 총리'란 점도 닮은꼴입니다.

개발 독재의 상징이기도 했던 리콴유 전 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바탕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는 리 전 총리의 기고문에, 당시 정계를 떠나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김 전 대통령은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는 필연"이라고 맞받았습니다.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 온 리콴유 총리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던 중국 덩샤오핑과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왔는데요.

이런 실용정신은 "내가 죽거든 지금 사는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에까지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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