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선 아이스하키 감독 “한국 선수 키워야”

입력 2015.03.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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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선(48·미국명 짐 팩)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은 최근 미국인 아내와 그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를 두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다음 달 13일부터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B(3부리그) 대회 준비를 위해서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 2부 리그로 승격된다.

전망은 밝지 않다. 대회 참가국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 선수들을 무려 7명이나 귀화시키면서 전력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축 수비수 2명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한국은 선수층이 얇아 대체 선수를 구하기도 어렵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발표한 한국의 세계 랭킹은 23위. 2부 리그 승격도 쉽지 않은 한국에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등이 속한 1부 리그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한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 기회를 얻어 바로 그 세계 최정상 권의 1부 리그 국가들과 대결할 수 있게 됐다.

안방 팬들을 열광시키는 멋진 승부가 될지, 아니면 큰 실력 격차를 드러내며 차라리 출전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될지는 앞으로 3년 후면 드러난다.

백 감독은 그러한 섣부른 기대와 차가운 냉소 사이에서 중심에 서 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무대를 밟았고, 아시아인 최초로 NHL 우승 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두 차례나 들어 올린 백 감독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과연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백 감독을 지난 25일 낮 대표팀의 훈련이 진행된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만났다. 그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를 물었다.

백 감독은 승리에 대한 장밋빛 약속 대신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우리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그동안 준비한 것을 경기에서 온전히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물론 우리보다 다른 팀이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올림픽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귀화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백 감독은 "우리는 한국 국가대표팀이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원하고, 그들을 발전시키고 싶다"며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플레이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해외 선수를 귀화시키면 당장에는 성적이 나지만 한국 선수들의 성장에는 치명적"이라며 "일본이 올림픽 이후에 추락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귀화 문제에서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의 요지는 3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올림픽 이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 감독은 "나의 목표는 대표팀이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자세로 차근차근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한 뒤 그때 가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울 태생으로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을 한 백 감독은 1990년대 초반 NHL 명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1990-1991 시즌과 1991-1992 시즌에 스탠리컵을 맛본 스타 플레이어다.

2005년부터는 NHL 하부리그인 아메리칸하키리그(AHL)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산하 그랜드 래피즈 그리핀스의 코치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13-2014 시즌까지 총 9시즌을 치렀다.

세계 아이스하키를 선도하는 북미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백 감독은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고국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해 지난해 8월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한국이 지난해 9월 17일에 IIHF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확보한 것도 절반 이상은 백 감독 덕분이었다. 자동출전권 부활의 조건으로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내걸었던 IIHF는 백 감독이라는 확실한 '보증 수표'가 사령탑에 앉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다음은 백 감독과의 일문일답.

-- 한국에 오기 전에 예상했던 한국 아이스하키 수준과 와서 보니 어떤 차이가 있는가.

▲ 감독직을 수락했을 때 어떤 것도 예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먼저 여기에 와서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수준에 대해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편견도 없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이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선수들을 봤다. 그들은 더 나은 플레이를 하길 원했고 그들을 가르쳐줄 지도자를 원했다. 선수들은 열정이 가득했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이곳에 왔고, 내가 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 아닌, 내가 직접 본 것을 개선하려고 했다.

-- 지금까지 진행상황은 어떤가. 가장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아시아리그에 출전한 상황이어서 지금 상황에서 평가하긴 어렵다. 지금까지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돕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어린 선수들은 그들보다 더 우수한 선수들과 함께 연습경기를 치러왔다. 이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개선이 이뤄지려면 많은 것이 맞물려야 한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구조적인 면과 경기, 선수들의 성장 등 많은 것이 지금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 더 많은 선수가 경쟁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수들은 성장한다.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를 만드는 데에는 그런 많은 것이 결합해야 한다.

-- 대표팀에 들어오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 대표팀의 문턱은.

▲ 성격과 열정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팀에서 어떤 동료인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 코치진의 지도를 따라올 수 있는 선수인지도 중요하다. 물론 재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 그런데 그런 자질은 파악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 다양한 길이 있다. 나는 선수들에게 항상 '누가 최고의 코치냐'라고 묻는다. 그러면 선수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내게 최고의 코치는 시간이다. 페널티 상황이나 실점 상황, 경기 종료를 남겨둔 마지막 몇 분 등 경기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들의 성격이 드러난다. 벤치에서 그들이 어떻게 경기를 지켜보는지, 그들이 경기에 뛰지 않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보면 그들의 성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 기술적인 부분은 개선할 수 있지만 북미나 유럽 선수들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 체격 조건 등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한국 선수들은 스케이트를 잘 타고 빠르다. 열정이 넘친다. 그런 긍정적인 면을 봐야 한다. 우리가 가진 스피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체계를 잡고 선수들에게 우리가 왜 이것을 하는지 이해시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아이스하키가 인기를 얻는다면 체격이 좋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스포츠 종목을 보라. 누가 한국인의 체격이 왜소하다고 하겠는가. 한국에서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춘 많은 선수가 야구나 축구 등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이건 한국에서 아이스하키가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세계에서 가장 아이스하키를 잘하는 것도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 나의 목표는 대표팀이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올림픽 무대에서 뛸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일단 지금은 과정에 초점을 맞춰 지도하고 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크리스털 볼이 있다면 좋겠지만,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경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심리 상태가 변수가 될 수 있고 올림픽에서 어떤 상대를 만날지도 모른다.

부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부상자가 나오면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다. 우리는 선수의 깊이가 얕다. 지금으로서는 나이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 때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은 좀 더 성장하고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과연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열심히 훈련하는 것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행운이 따라야겠지만 행운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올림픽에서 캐나다와 같은 강팀과 만났을 때 수비적으로 임할 것인가. 아니면 물러서지 않고 맞붙을 것인가.

▲ 좋은 질문이다. 내가 앞으로 3년 동안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수비를 견고하게 쌓은 뒤 역습을 노릴 것이냐고 묻자) 캐나다는 워낙 강팀이라 그것조차 힘들 수 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라트비아가 보여준 모습을 참고할 수 있다. (라트비아는 당시 8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캐나다를 상대로 연장 승부 끝에 1-2로 패했으나 철벽 방어로 캐나다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킬 뻔했다.) 라트비아는 정말로 수비적으로 임하면서도 끝까지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경기 내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는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라트비아는 골리가 너무나 대단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대단한 골리가 필요하다. 아이스하키 경기에서는 골리가 정말로 중요하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우승한 팀을 보면 알겠지만 탁월한 골리 없이 우승한 팀은 어디에도 없다.

-- 한국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귀화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가.

▲ 우리는 한국 국가대표팀이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원하고, 그들을 발전시키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플레이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접점을 찾기가 정말로 어렵다. 귀화 선수를 많이 기용하면 한국 선수들이 발전할 기회를 빼앗을 것이다. 반대로 귀화 선수가 많아지면 한국 선수들이 그들과 경쟁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너무 많아도 안 되겠지만, 너무 적어서도 안 된다.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탈리아는 올림픽에서 대표 선수 전원을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으로 채웠다. 일본도 나가노 올림픽에서 마찬가지로 귀화에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1998 나가노 올림픽 때 캐나다·미국에서 9명을 귀화시켰다.) 그러면 당장에는 성적이 나지만 국내 선수들의 성장에는 치명적이다. 일본이 올림픽 이후에 추락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귀화 문제에서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나친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 물론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조직력을 갖추고 준비를 잘한다면 자신감 있게 경기에 나설 수 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더불어 내가 불안하면 선수들도 불안해진다.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준비한 것을 경기에서 온전히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물론 우리보다 다른 팀이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내는데 힘들지는 않은지.

▲ 물론 힘들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척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다. 나는 거의 하루 대부분을 아이스링크에 보낸다. 훈련이 없을 때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본다.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저녁 늦게 집에 혼자 있을 때 가족이 그립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7월에는 가족이 잠시 방문할 것이다. 내년에는 가족이 한국에서 지낼 예정이다. 아이들은 한국에 온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나 있다. 그들에게 아주 좋은 삶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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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지선 아이스하키 감독 “한국 선수 키워야”
    • 입력 2015-03-26 08:33:37
    연합뉴스
백지선(48·미국명 짐 팩)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은 최근 미국인 아내와 그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를 두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다음 달 13일부터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B(3부리그) 대회 준비를 위해서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 2부 리그로 승격된다. 전망은 밝지 않다. 대회 참가국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 선수들을 무려 7명이나 귀화시키면서 전력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축 수비수 2명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한국은 선수층이 얇아 대체 선수를 구하기도 어렵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발표한 한국의 세계 랭킹은 23위. 2부 리그 승격도 쉽지 않은 한국에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등이 속한 1부 리그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한국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 기회를 얻어 바로 그 세계 최정상 권의 1부 리그 국가들과 대결할 수 있게 됐다. 안방 팬들을 열광시키는 멋진 승부가 될지, 아니면 큰 실력 격차를 드러내며 차라리 출전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될지는 앞으로 3년 후면 드러난다. 백 감독은 그러한 섣부른 기대와 차가운 냉소 사이에서 중심에 서 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무대를 밟았고, 아시아인 최초로 NHL 우승 트로피인 스탠리컵을 두 차례나 들어 올린 백 감독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과연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백 감독을 지난 25일 낮 대표팀의 훈련이 진행된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만났다. 그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를 물었다. 백 감독은 승리에 대한 장밋빛 약속 대신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림픽에서 우리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그동안 준비한 것을 경기에서 온전히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물론 우리보다 다른 팀이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올림픽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귀화 문제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백 감독은 "우리는 한국 국가대표팀이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원하고, 그들을 발전시키고 싶다"며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플레이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해외 선수를 귀화시키면 당장에는 성적이 나지만 한국 선수들의 성장에는 치명적"이라며 "일본이 올림픽 이후에 추락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귀화 문제에서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의 요지는 3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올림픽 이후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 감독은 "나의 목표는 대표팀이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자세로 차근차근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한 뒤 그때 가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울 태생으로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을 한 백 감독은 1990년대 초반 NHL 명문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면서 1990-1991 시즌과 1991-1992 시즌에 스탠리컵을 맛본 스타 플레이어다. 2005년부터는 NHL 하부리그인 아메리칸하키리그(AHL)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산하 그랜드 래피즈 그리핀스의 코치로 부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13-2014 시즌까지 총 9시즌을 치렀다. 세계 아이스하키를 선도하는 북미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백 감독은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고국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해 지난해 8월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한국이 지난해 9월 17일에 IIHF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확보한 것도 절반 이상은 백 감독 덕분이었다. 자동출전권 부활의 조건으로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내걸었던 IIHF는 백 감독이라는 확실한 '보증 수표'가 사령탑에 앉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다음은 백 감독과의 일문일답. -- 한국에 오기 전에 예상했던 한국 아이스하키 수준과 와서 보니 어떤 차이가 있는가. ▲ 감독직을 수락했을 때 어떤 것도 예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먼저 여기에 와서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수준에 대해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편견도 없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이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선수들을 봤다. 그들은 더 나은 플레이를 하길 원했고 그들을 가르쳐줄 지도자를 원했다. 선수들은 열정이 가득했다. 나는 열린 마음으로 이곳에 왔고, 내가 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 아닌, 내가 직접 본 것을 개선하려고 했다. -- 지금까지 진행상황은 어떤가. 가장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아시아리그에 출전한 상황이어서 지금 상황에서 평가하긴 어렵다. 지금까지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돕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어린 선수들은 그들보다 더 우수한 선수들과 함께 연습경기를 치러왔다. 이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개선이 이뤄지려면 많은 것이 맞물려야 한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구조적인 면과 경기, 선수들의 성장 등 많은 것이 지금보다 더 좋아져야 한다. 더 많은 선수가 경쟁해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수들은 성장한다. 좋은 아이스하키 선수를 만드는 데에는 그런 많은 것이 결합해야 한다. -- 대표팀에 들어오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나. 대표팀의 문턱은. ▲ 성격과 열정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팀에서 어떤 동료인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 코치진의 지도를 따라올 수 있는 선수인지도 중요하다. 물론 재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해야 한다. -- 그런데 그런 자질은 파악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 다양한 길이 있다. 나는 선수들에게 항상 '누가 최고의 코치냐'라고 묻는다. 그러면 선수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내게 최고의 코치는 시간이다. 페널티 상황이나 실점 상황, 경기 종료를 남겨둔 마지막 몇 분 등 경기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들의 성격이 드러난다. 벤치에서 그들이 어떻게 경기를 지켜보는지, 그들이 경기에 뛰지 않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보면 그들의 성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 기술적인 부분은 개선할 수 있지만 북미나 유럽 선수들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 체격 조건 등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한국 선수들은 스케이트를 잘 타고 빠르다. 열정이 넘친다. 그런 긍정적인 면을 봐야 한다. 우리가 가진 스피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체계를 잡고 선수들에게 우리가 왜 이것을 하는지 이해시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아이스하키가 인기를 얻는다면 체격이 좋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스포츠 종목을 보라. 누가 한국인의 체격이 왜소하다고 하겠는가. 한국에서는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춘 많은 선수가 야구나 축구 등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이건 한국에서 아이스하키가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세계에서 가장 아이스하키를 잘하는 것도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 나의 목표는 대표팀이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올림픽 무대에서 뛸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일단 지금은 과정에 초점을 맞춰 지도하고 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크리스털 볼이 있다면 좋겠지만,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경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의 심리 상태가 변수가 될 수 있고 올림픽에서 어떤 상대를 만날지도 모른다. 부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부상자가 나오면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다. 우리는 선수의 깊이가 얕다. 지금으로서는 나이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 때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은 좀 더 성장하고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과연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열심히 훈련하는 것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행운이 따라야겠지만 행운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올림픽에서 캐나다와 같은 강팀과 만났을 때 수비적으로 임할 것인가. 아니면 물러서지 않고 맞붙을 것인가. ▲ 좋은 질문이다. 내가 앞으로 3년 동안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수비를 견고하게 쌓은 뒤 역습을 노릴 것이냐고 묻자) 캐나다는 워낙 강팀이라 그것조차 힘들 수 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라트비아가 보여준 모습을 참고할 수 있다. (라트비아는 당시 8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캐나다를 상대로 연장 승부 끝에 1-2로 패했으나 철벽 방어로 캐나다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킬 뻔했다.) 라트비아는 정말로 수비적으로 임하면서도 끝까지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경기 내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는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라트비아는 골리가 너무나 대단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대단한 골리가 필요하다. 아이스하키 경기에서는 골리가 정말로 중요하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우승한 팀을 보면 알겠지만 탁월한 골리 없이 우승한 팀은 어디에도 없다. -- 한국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귀화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가. ▲ 우리는 한국 국가대표팀이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원하고, 그들을 발전시키고 싶다. 그런데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플레이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접점을 찾기가 정말로 어렵다. 귀화 선수를 많이 기용하면 한국 선수들이 발전할 기회를 빼앗을 것이다. 반대로 귀화 선수가 많아지면 한국 선수들이 그들과 경쟁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너무 많아도 안 되겠지만, 너무 적어서도 안 된다. 접점을 찾아야 한다. 이탈리아는 올림픽에서 대표 선수 전원을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으로 채웠다. 일본도 나가노 올림픽에서 마찬가지로 귀화에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일본은 1998 나가노 올림픽 때 캐나다·미국에서 9명을 귀화시켰다.) 그러면 당장에는 성적이 나지만 국내 선수들의 성장에는 치명적이다. 일본이 올림픽 이후에 추락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귀화 문제에서 무척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나친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 물론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조직력을 갖추고 준비를 잘한다면 자신감 있게 경기에 나설 수 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더불어 내가 불안하면 선수들도 불안해진다.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준비한 것을 경기에서 온전히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물론 우리보다 다른 팀이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내는데 힘들지는 않은지. ▲ 물론 힘들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척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다. 나는 거의 하루 대부분을 아이스링크에 보낸다. 훈련이 없을 때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본다.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저녁 늦게 집에 혼자 있을 때 가족이 그립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7월에는 가족이 잠시 방문할 것이다. 내년에는 가족이 한국에서 지낼 예정이다. 아이들은 한국에 온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나 있다. 그들에게 아주 좋은 삶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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