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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구직자 ‘스펙8종 세트’로 무엇을 평가할 수 있습니까?
입력 2015.03.30 (16:33) 수정 2015.03.31 (11:52) 취재후·사건후
■ 스펙 8종은 기본?

학벌, 학점,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 수상경력. 취업준비생들이 이른 바 ‘스펙 8종 세트’로 부른다는 항목입니다. 김모 씨는 10여 차례의 도전 끝에 지난해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습니다. 김 씨의 스펙은 이렇습니다.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의 인문계열 전공, 토익점수 965점, 영어말하기 최고 등급, 미국 대학의 부설 기관에서 어학연수, 대기업 3곳에서 인턴, 창업경진대회와 UCC 공모전 수상. 물론 김 씨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했던 노력이 이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나의 능력을 계량화(이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만...)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남들보다 이만큼 나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스펙 쌓기’가 나쁘지 않은, 아니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정점을 찍을 때가 바로 ‘나의 스펙을 입사지원서에 채워 넣을 때’입니다. 그걸 꼭 적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걸 적어 넣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도대체 나는 대학 생활 내내 뭘 한 건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A라는 일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걸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정작 입사지원서를 쓸 때는 그 동안의 노력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자기소개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자신감과 강심장이 아니라면 각종 스펙 입력란을 텅텅 비워두고 “훌륭한 자소서로 승부하면 돼”라고 야무지게 말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그게 실제로 입사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얼마나 반영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적화 된 혹은 최소한 남들과 비슷하게 채워 넣을 수 있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입사지원서에 스펙을 적는 란은 해가 갈수록 늘어 이제는 최소 8종이 기본이 된 거고요.

■ 스펙보다는 직무능력



그래서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서 가급적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한 일부 대기업들의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LG그룹이 지난해 하반기 채용부터 먼저 시작했습니다. 입사지원서에 ▷공인 어학성적 ▷자격증 ▷수상경력 ▷인턴 ▷어학연수 ▷봉사활동 입력란을 없앴습니다. 개인정보로 분류되는 주민번호, 사진, 가족관계, 주소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채용부터 입사지원서를 바꿨습니다. 역시 지난해까진 적을 수 있었던 ▷외국어 성적 ▷IT활용능력 ▷해외경험 ▷업무경험 ▷논문내용 입력란을 없앴고 ▷사진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삼성은 올해 하반기부터 ‘삼성 고시’로 불리는 필기시험 직무적성 검사를 없애고 일종의 서류 전형인 직무 적합성 평가를 도입하는데 이 평가에서 스펙은 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스펙 항목을 하나, 둘씩 서류에서 빼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은 다만 해외 영업, 연구직처럼 외국어 능력, 특정 분야 자격증 등이 업무에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는 관련 내용을 제시하도록 했습니다. 전공, 학점 등은 최소한의 검증을 위해 필요한 항목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더해 올해부터 공공기관 130곳도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스펙보다는 직무능력을 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변화하는 시대상, 스펙만으론..

기업들은 그 동안 ‘관행’처럼 해 왔던 서류심사에 왜 변화를 주겠다는 걸까요? 먼저, 입사한 뒤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려는 것이고 두 번째로, 스펙을 만드는데 드는 과도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게 해당 기업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이 말은 곧, 천편일률적인 스펙은 직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데 적절한 기준이 아니고, 스펙을 만드는데 연간 천 5백만 원 넘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과도한 비용이 든다는 지적에 대해 고민했다는 뜻입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양한, 내용면에서도 충실한 스펙을 갖고 있다는 게 입사 희망자의 성실함을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 있겠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최소한 이런 노력들을 하며 게을리 보내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보면 해당 업무 수행 능력과 스펙은 영 상관관계가 떨어집니다” 라고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도 그만큼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점도 ‘탈스펙’ 흐름을 만든 배경이겠죠.

■ 구직자, 준비는 이렇게!



그럼 구직자들은 이제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탈스펙’이 오히려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직무 연관성, 직무 수행 능력...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을 말하는 건지,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갖춰야 하는 건지 더 까다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취업준비생들은 그 직무 수행 능력이라는 것이 또 다른 종류의 스펙이 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기업들은 ‘자기소개서’ 비중을 높이겠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개인 역량 혹은 직무 능력을 소개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도입하거나 심층면접을 강화하면 구직자가 과연 기업에 필요한 인재인지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잡코리아의 변지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의 조언은 이렇습니다.

“일괄적으로 쌓은 스펙은 실제 현업에 투입됐을 때 직군별로 업무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취업할 기업보다 어떤 직무에서 일할 것인지를 먼저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직무에 대한 이해와 정보 수집은 필수가 돼야 할 것이고요. 직무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기간에 쌓은, 단답형으로 적는 스펙이 아니라 그 직무에서 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경험을 했는지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서 쓰는게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서 제가 “00기업에 입사하고 싶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그 기업에 이미 입사한 사람들의 스펙에 맞춰 준비를 하면...안 된다는 거죠. “해운회사에서 일하고 싶고 -> 특히 해외영업을 해 보고 싶으며 -> 영업 중에서도 석유화학제품을 취급하는 탱커 쪽이 매력 있다” 이런 목표를 세운 뒤에 이 목표를 위해서 어떤 공부를 했고, 전공과목 중에서는 어떤 부분에 집중했으며, 전공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노력을 했다...이렇게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추가적인 예를 들자면, 글로벌 해운회사의 영업 전략을 분석해 봤다, 세계 경기불황에서 해운 영업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분석 자료를 써봤다, 해운영업에 필요한 전문 영어 용어들을 공부했다, 관련한 자격증이 있다면 어떤 것을 땄다...라는 내용을 자기소개서, 발표, 면접 과정에서 풀어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구직자가 이 과정에서 화려한 글 솜씨와 언변으로 과장, 거짓된 경험을 어필할 수도 있지 않냐는 우려에 대해 기업들은 심층면접과 발표 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경험은 다 걸러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뀐 취업 요령이 ‘또 다른 형태’의 취업 준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단답형으로 쓰던 스펙을 작문으로 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스펙’의 내용이 '8종 세트'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일에 대한 이해와 열정, 능력을 더 많이 갖춘 사람을 뽑고 싶은 건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고 당연합니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하고요. 하지만 이제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었고 졸업도 했다는 게 구직자의 덕목은 아니라는 겁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웠는지를 평가해야 그 직업이 어떤 직업이든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고 구직자 입장에서도 취업 후의 혼란은 적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을 수 있을 겁니다.



‘탈스펙’ 경향에 대해 쓰기 시작했지만 이 즈음에선 ‘이렇게 준비해서 갈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는 건 어떻게 하나’라는 물음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난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이 올해 투자는 늘리지만, 채용은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는 자료를 내놨습니다. 30대 그룹이 계획한 올해 투자액은 지난해보다 16% 정도 늘었지만 신규 채용 인원은 12만 명 남짓으로 6% 넘게 줄었습니다. 2년 연속 감소입니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살로 늘어나고 통상임금 범위가 늘어나죠. 인건비 부담이 증가해 신규 채용 여력이 없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입니다. 물론 이 자료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내수 진작을 위해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정부와 기업 간의 힘겨루기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요.



청년 취업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구직자가 선호하는 일자리 숫자는 크게 늘지 않는데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특히 일자리의 질, 임금과 근로여건 등의 격차가 너무 큽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이 대기업 정규직의 37%에 불과합니다. 청년들에게 왜 대기업만 바라보느냐고 타박하는 게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불성설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 비싼 어학 연수 경력, 한 번 응시에만 많게는 십만원 넘게 들기도 하는 영어시험 성적, 이런 게 무기가 되는 서류전형부터 고쳐나가려는 시도가 반가운 겁니다. 바뀐 채용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입사 후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요.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우리 사회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취업준비생들이 결과가 보장될 지 알 수도 없는 스펙 쌓기에 돈과 노력,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고 특히 어학 연수, 해외 경험 등 돈이 많이 드는 스펙 때문에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절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기업들의 바뀐 채용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또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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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익·수상경력 NO”…대기업 ‘스펙 줄이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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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30 16:33:43
    • 수정2015-03-31 11:52:59
    취재후·사건후
■ 스펙 8종은 기본?

학벌, 학점,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 수상경력. 취업준비생들이 이른 바 ‘스펙 8종 세트’로 부른다는 항목입니다. 김모 씨는 10여 차례의 도전 끝에 지난해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습니다. 김 씨의 스펙은 이렇습니다.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의 인문계열 전공, 토익점수 965점, 영어말하기 최고 등급, 미국 대학의 부설 기관에서 어학연수, 대기업 3곳에서 인턴, 창업경진대회와 UCC 공모전 수상. 물론 김 씨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했던 노력이 이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나의 능력을 계량화(이 표현이 적합한지 모르겠습니다만...)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남들보다 이만큼 나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스펙 쌓기’가 나쁘지 않은, 아니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정점을 찍을 때가 바로 ‘나의 스펙을 입사지원서에 채워 넣을 때’입니다. 그걸 꼭 적어 넣으라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걸 적어 넣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도대체 나는 대학 생활 내내 뭘 한 건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A라는 일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걸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정작 입사지원서를 쓸 때는 그 동안의 노력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자기소개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자신감과 강심장이 아니라면 각종 스펙 입력란을 텅텅 비워두고 “훌륭한 자소서로 승부하면 돼”라고 야무지게 말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그게 실제로 입사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얼마나 반영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적화 된 혹은 최소한 남들과 비슷하게 채워 넣을 수 있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입사지원서에 스펙을 적는 란은 해가 갈수록 늘어 이제는 최소 8종이 기본이 된 거고요.

■ 스펙보다는 직무능력



그래서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서 가급적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한 일부 대기업들의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LG그룹이 지난해 하반기 채용부터 먼저 시작했습니다. 입사지원서에 ▷공인 어학성적 ▷자격증 ▷수상경력 ▷인턴 ▷어학연수 ▷봉사활동 입력란을 없앴습니다. 개인정보로 분류되는 주민번호, 사진, 가족관계, 주소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채용부터 입사지원서를 바꿨습니다. 역시 지난해까진 적을 수 있었던 ▷외국어 성적 ▷IT활용능력 ▷해외경험 ▷업무경험 ▷논문내용 입력란을 없앴고 ▷사진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삼성은 올해 하반기부터 ‘삼성 고시’로 불리는 필기시험 직무적성 검사를 없애고 일종의 서류 전형인 직무 적합성 평가를 도입하는데 이 평가에서 스펙은 보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스펙 항목을 하나, 둘씩 서류에서 빼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은 다만 해외 영업, 연구직처럼 외국어 능력, 특정 분야 자격증 등이 업무에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는 관련 내용을 제시하도록 했습니다. 전공, 학점 등은 최소한의 검증을 위해 필요한 항목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더해 올해부터 공공기관 130곳도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스펙보다는 직무능력을 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변화하는 시대상, 스펙만으론..

기업들은 그 동안 ‘관행’처럼 해 왔던 서류심사에 왜 변화를 주겠다는 걸까요? 먼저, 입사한 뒤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려는 것이고 두 번째로, 스펙을 만드는데 드는 과도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게 해당 기업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이 말은 곧, 천편일률적인 스펙은 직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데 적절한 기준이 아니고, 스펙을 만드는데 연간 천 5백만 원 넘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과도한 비용이 든다는 지적에 대해 고민했다는 뜻입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양한, 내용면에서도 충실한 스펙을 갖고 있다는 게 입사 희망자의 성실함을 평가하는 기준은 될 수 있겠죠.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최소한 이런 노력들을 하며 게을리 보내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보면 해당 업무 수행 능력과 스펙은 영 상관관계가 떨어집니다” 라고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도 그만큼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점도 ‘탈스펙’ 흐름을 만든 배경이겠죠.

■ 구직자, 준비는 이렇게!



그럼 구직자들은 이제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탈스펙’이 오히려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직무 연관성, 직무 수행 능력...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을 말하는 건지,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갖춰야 하는 건지 더 까다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취업준비생들은 그 직무 수행 능력이라는 것이 또 다른 종류의 스펙이 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기업들은 ‘자기소개서’ 비중을 높이겠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개인 역량 혹은 직무 능력을 소개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도입하거나 심층면접을 강화하면 구직자가 과연 기업에 필요한 인재인지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잡코리아의 변지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의 조언은 이렇습니다.

“일괄적으로 쌓은 스펙은 실제 현업에 투입됐을 때 직군별로 업무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취업할 기업보다 어떤 직무에서 일할 것인지를 먼저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직무에 대한 이해와 정보 수집은 필수가 돼야 할 것이고요. 직무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기간에 쌓은, 단답형으로 적는 스펙이 아니라 그 직무에서 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경험을 했는지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서 쓰는게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서 제가 “00기업에 입사하고 싶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그 기업에 이미 입사한 사람들의 스펙에 맞춰 준비를 하면...안 된다는 거죠. “해운회사에서 일하고 싶고 -> 특히 해외영업을 해 보고 싶으며 -> 영업 중에서도 석유화학제품을 취급하는 탱커 쪽이 매력 있다” 이런 목표를 세운 뒤에 이 목표를 위해서 어떤 공부를 했고, 전공과목 중에서는 어떤 부분에 집중했으며, 전공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노력을 했다...이렇게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추가적인 예를 들자면, 글로벌 해운회사의 영업 전략을 분석해 봤다, 세계 경기불황에서 해운 영업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분석 자료를 써봤다, 해운영업에 필요한 전문 영어 용어들을 공부했다, 관련한 자격증이 있다면 어떤 것을 땄다...라는 내용을 자기소개서, 발표, 면접 과정에서 풀어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구직자가 이 과정에서 화려한 글 솜씨와 언변으로 과장, 거짓된 경험을 어필할 수도 있지 않냐는 우려에 대해 기업들은 심층면접과 발표 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경험은 다 걸러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뀐 취업 요령이 ‘또 다른 형태’의 취업 준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단답형으로 쓰던 스펙을 작문으로 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스펙’의 내용이 '8종 세트'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일에 대한 이해와 열정, 능력을 더 많이 갖춘 사람을 뽑고 싶은 건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고 당연합니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하고요. 하지만 이제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었고 졸업도 했다는 게 구직자의 덕목은 아니라는 겁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웠는지를 평가해야 그 직업이 어떤 직업이든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고 구직자 입장에서도 취업 후의 혼란은 적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을 수 있을 겁니다.



‘탈스펙’ 경향에 대해 쓰기 시작했지만 이 즈음에선 ‘이렇게 준비해서 갈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는 건 어떻게 하나’라는 물음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난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이 올해 투자는 늘리지만, 채용은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는 자료를 내놨습니다. 30대 그룹이 계획한 올해 투자액은 지난해보다 16% 정도 늘었지만 신규 채용 인원은 12만 명 남짓으로 6% 넘게 줄었습니다. 2년 연속 감소입니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살로 늘어나고 통상임금 범위가 늘어나죠. 인건비 부담이 증가해 신규 채용 여력이 없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입니다. 물론 이 자료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내수 진작을 위해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정부와 기업 간의 힘겨루기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요.



청년 취업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구직자가 선호하는 일자리 숫자는 크게 늘지 않는데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특히 일자리의 질, 임금과 근로여건 등의 격차가 너무 큽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이 대기업 정규직의 37%에 불과합니다. 청년들에게 왜 대기업만 바라보느냐고 타박하는 게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불성설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 비싼 어학 연수 경력, 한 번 응시에만 많게는 십만원 넘게 들기도 하는 영어시험 성적, 이런 게 무기가 되는 서류전형부터 고쳐나가려는 시도가 반가운 겁니다. 바뀐 채용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입사 후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요.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우리 사회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취업준비생들이 결과가 보장될 지 알 수도 없는 스펙 쌓기에 돈과 노력,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고 특히 어학 연수, 해외 경험 등 돈이 많이 드는 스펙 때문에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절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기업들의 바뀐 채용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고 또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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