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도 피해간 ‘후원금 쪼개기’…“뭐, 걸려도…”

입력 2015.04.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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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을 가장한 청부 입법일까, 정당한 소액 정치후원 행위일까?

입법이나 민원 해결 등을 대가로 직원들 명의로 소액 후원금을 몰아주는 이른바 ‘후원금 쪼개기’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 측으로부터 법안 개정 청탁과 함께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비례대표) 의원을 8일 소환,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도 전형적인 '청부입법'의 양상을 띄고 있다고 한다.

전 의원은 한전KDN 측으로부터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개정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2012년 12월과 2013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816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2012년 11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사업에 상호출자제한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전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상정되자 한전KDN 측이 전 의원을 상대로 입법로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KDN은 '소프트웨어사업 대처팀'을 꾸린 뒤 '제한 기업 중 공공기관은 제외한다'고 개정안을 수정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직원 100여명을 동원, 후원금을 전달했다.

전 의원은 2013년 2월 사업 참여 제한 대상에서 공공기관을 빼는 내용의 재개정안을 다시 발의했고, 수정된 법안은 2013년 말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경찰은 한전KDN 김모(59) 전 사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입건한 데 이어 전 의원의 당시 보좌관들을 조사해 이중 혐의가 중한 전직 보좌관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날 조사에서 전 의원을 상대로 한전KDN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의 성격에 대해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전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전 의원은 이날 경찰청에 출두하며 기자들과 만나 "(불법 후원금 수수) 의혹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후원금을 받은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

지난 2004년, 여야는 돈 정치의 고리를 끊자며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거액의 정치후원은 막는 대신 개인들의 소액 후원은 장려하며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까지 해주기로 했다. 이른바 '오세훈 법'이다.

하지만 이 틈을 파고 드는 수법이 등장했다. 직원들을 동원해 거액을 10만 원씩 나눠내는 '쪼개기 후원' 수법이 나온 것이다.

이런 후원금 쪼개기가 최초로 문제된 사례는 노무현 정부 시절 발생한 문석호 전 의원에 대한 에쓰오일(S-Oil) 의 후원금 제공 사건이었다.

충남 서산ㆍ태안지역 국회의원인 문 의원은 2005년 12월 에쓰오일 제2공장을 서산지역에 설립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에쓰오일 직원 546명으로부터 1인당 10만 원씩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인당 10만 원씩 소액 후원이라는 합법을 가장했지만, 제공액수는 모두 5000만 원이 넘는 거액이었고, 후원금 수수에는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문석호 의원에게 벌금 1000만 원에 추징금 556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문씨가 보좌관 등을 통해 후원회 계좌를 사실상 지배ㆍ장악하고 있었으므로 후원회를 통해 금원을 받았다 해도 문씨 본인이 바로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고, 김 씨가 내막을 모르는 직원들의 기부행위를 유발한 사실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일부 무죄사례도

문 의원 사례처럼 후원금 쪼개기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아니다.

문 전 의원과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다른 의원의 경우 후원 내역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렸다.

의사협회로부터 입법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김병호 전 의원은 유죄, 같은 혐의를 받은 고경화 전 의원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두 정치인의 운명을 가른 것은 해 의원이 후원금의 출처와 성격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고 전 의원은 후원 내역을 구체적으로 몰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후원금 쪼개기는 피해갈 수 있는 구멍도 많지만, 법원의 관대한 판결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0년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청목회 사건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청원경찰의 친목단체인 청목회는 2003년 결성 이후 지속적으로 청원 경찰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청원경찰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했다. 결국 2009년 12월 관련 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청목회 간부들은 담당 상임위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회원과 가족, 친지 명의를 이용한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했다. 의원들에게 후원된 돈은 500만~3000만 원 씩이었다.

검찰은 2010년 10월 수사에 착수해, 여야 의원 6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5명(권경석, 유정현, 조진형, 이명수, 최규식 의원)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심지어 입법을 주도한 최규식 의원에 대해서도 ;총선 불출마‘ 가 참작돼 선고유예판결이 내려졌다. 유일하게 실형을 받은 사람이 강기정 의원이었는데, 벌금 90만 원에 그쳤다.

◆김영란법도 피해간 후원금 쪼개기

이처럼 후원금 쪼개기는 대가성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의원들이 후원 내역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처벌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에서 이런 후원행위를 금지하는 방안이 한 때 논의됐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언론인들에 대해 일정 액수 이 상의 금품을 받을 경우 대가성과 관련없이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에서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들은 예외로 돼 있다. 김영란법 5조는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공익 목적으로 한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 등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 사무처장은 "김영란법에 국회의원들이 예외로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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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란법도 피해간 ‘후원금 쪼개기’…“뭐, 걸려도…”
    • 입력 2015-04-08 16:48:08
    정치
합법을 가장한 청부 입법일까, 정당한 소액 정치후원 행위일까? 입법이나 민원 해결 등을 대가로 직원들 명의로 소액 후원금을 몰아주는 이른바 ‘후원금 쪼개기’가 또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KDN 측으로부터 법안 개정 청탁과 함께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비례대표) 의원을 8일 소환,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도 전형적인 '청부입법'의 양상을 띄고 있다고 한다. 전 의원은 한전KDN 측으로부터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개정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2012년 12월과 2013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816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2012년 11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소프트웨어사업에 상호출자제한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전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상정되자 한전KDN 측이 전 의원을 상대로 입법로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KDN은 '소프트웨어사업 대처팀'을 꾸린 뒤 '제한 기업 중 공공기관은 제외한다'고 개정안을 수정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직원 100여명을 동원, 후원금을 전달했다. 전 의원은 2013년 2월 사업 참여 제한 대상에서 공공기관을 빼는 내용의 재개정안을 다시 발의했고, 수정된 법안은 2013년 말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경찰은 한전KDN 김모(59) 전 사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해 11월 입건한 데 이어 전 의원의 당시 보좌관들을 조사해 이중 혐의가 중한 전직 보좌관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날 조사에서 전 의원을 상대로 한전KDN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의 성격에 대해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전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전 의원은 이날 경찰청에 출두하며 기자들과 만나 "(불법 후원금 수수) 의혹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후원금을 받은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 지난 2004년, 여야는 돈 정치의 고리를 끊자며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거액의 정치후원은 막는 대신 개인들의 소액 후원은 장려하며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까지 해주기로 했다. 이른바 '오세훈 법'이다. 하지만 이 틈을 파고 드는 수법이 등장했다. 직원들을 동원해 거액을 10만 원씩 나눠내는 '쪼개기 후원' 수법이 나온 것이다. 이런 후원금 쪼개기가 최초로 문제된 사례는 노무현 정부 시절 발생한 문석호 전 의원에 대한 에쓰오일(S-Oil) 의 후원금 제공 사건이었다. 충남 서산ㆍ태안지역 국회의원인 문 의원은 2005년 12월 에쓰오일 제2공장을 서산지역에 설립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에쓰오일 직원 546명으로부터 1인당 10만 원씩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인당 10만 원씩 소액 후원이라는 합법을 가장했지만, 제공액수는 모두 5000만 원이 넘는 거액이었고, 후원금 수수에는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문석호 의원에게 벌금 1000만 원에 추징금 556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문씨가 보좌관 등을 통해 후원회 계좌를 사실상 지배ㆍ장악하고 있었으므로 후원회를 통해 금원을 받았다 해도 문씨 본인이 바로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고, 김 씨가 내막을 모르는 직원들의 기부행위를 유발한 사실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일부 무죄사례도 문 의원 사례처럼 후원금 쪼개기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아니다. 문 전 의원과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다른 의원의 경우 후원 내역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렸다. 의사협회로부터 입법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김병호 전 의원은 유죄, 같은 혐의를 받은 고경화 전 의원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두 정치인의 운명을 가른 것은 해 의원이 후원금의 출처와 성격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고 전 의원은 후원 내역을 구체적으로 몰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후원금 쪼개기는 피해갈 수 있는 구멍도 많지만, 법원의 관대한 판결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0년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청목회 사건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청원경찰의 친목단체인 청목회는 2003년 결성 이후 지속적으로 청원 경찰의 처우 개선을 목표로 청원경찰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했다. 결국 2009년 12월 관련 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청목회 간부들은 담당 상임위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회원과 가족, 친지 명의를 이용한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했다. 의원들에게 후원된 돈은 500만~3000만 원 씩이었다. 검찰은 2010년 10월 수사에 착수해, 여야 의원 6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5명(권경석, 유정현, 조진형, 이명수, 최규식 의원)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심지어 입법을 주도한 최규식 의원에 대해서도 ;총선 불출마‘ 가 참작돼 선고유예판결이 내려졌다. 유일하게 실형을 받은 사람이 강기정 의원이었는데, 벌금 90만 원에 그쳤다. ◆김영란법도 피해간 후원금 쪼개기 이처럼 후원금 쪼개기는 대가성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의원들이 후원 내역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처벌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에서 이런 후원행위를 금지하는 방안이 한 때 논의됐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언론인들에 대해 일정 액수 이 상의 금품을 받을 경우 대가성과 관련없이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에서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들은 예외로 돼 있다. 김영란법 5조는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공익 목적으로 한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 등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 사무처장은 "김영란법에 국회의원들이 예외로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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