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 ④ “아직도 하루 손님 1명도 안 오기도”…진도 주민들의 고통

입력 2015.04.09 (06:05) 수정 2015.04.0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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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고 사돈에게 멸치랑 김을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도 바다가 얼마나 오염됐겠느냐며 하나도 안 먹었더라.”

진도에서 만난 김 모(62)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예전에는 지인에게 전복이나 미역을 보내면 진도 특산품이라며 반겼는데, 이제는 그냥 보내준다고 해도 꺼린다는 것이다. 김 씨는 최근 운영하던 음식점마저 정리했다. 지난해 사고 이후, 진도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탓이다. 7년간 운영해 왔던 백반집은 사고 이후로 하루 손님 한 팀 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김 씨는 7개월간 적자운영 끝에 사업을 정리했다.

그나마 김 씨의 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예식장과 사진관을 운영하는 조 모 씨는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할 수 없다. 사고 이후, 예약돼 있던 결혼식과 칠순 등 잔치는 모두 취소됐고, 하루 25~30만 원 하던 사진관 매출은 이제 5만 원을 채우기 빠듯해졌다. 하지만 제법 덩치가 큰 건물과 사업체를 인수할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진도 군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사고 직후 3달간 진도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 금액을 898억 원으로 집계했다. 관광객 감소에 따른 외식업, 특산품 판매 등의 주요관광소득 피해가 202억 9,000만 원, 수협위판장과 양식업, 수산물 판매 저하와 유류 피해 등 어업 피해가 695억 원에 달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시 찾은 진도는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로 붐볐던 거리는 텅 비어있고, 최상품으로 인정받던 농수산 특산품 거래는 끊겼다. 또 유통과 소비가 침체된 마을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 “한달 매출 10만 원도 안 돼”…소상공인 피해 심각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진도지역을 찾은 관광객은 17만 2,467명(유료관광객)이다. 이는 같은 기간(4월~12월) 30만 9,939명이 찾은 2013년의 55% 수준이다. 대책위는 지난해 관광객 감소로 인한 피해를 약 127억 4,000만 원으로 추정했다. 1인당 평균지출금액 9만 2,680원을 기준으로 한 피해 규모다.

하지만 진도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피해규모는 이보다 더 크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박근완 진도군지부장은 “한 달 매출이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게가 수두룩하다”며 “정부의 소상공인 특별 대출지원금 2,000만 원을 받고, 그 이자를 내지 못해서 연락 끊긴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식당의 매출은 전년도 대비 30~40%, 호프집은 60~70%, 노래방은 80%가량 줄었다”며 “이로 인해 오랫동안 거래해온 도소매 유통망도 다 끊겼다”고 했다.

진도군 기획조정실 오귀석 주무관은 “세월호 사고 1년이 지났지만, 진도군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며 “마을 이미지 회복과 경제 활성화에 몇 년이 소요될지 예측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 최상급 상품이 기피 상품으로…“어민 피해 산정 어려워”

“자존심 상하죠. 진도 미역은 최상품인데, 그나마 사는 사람들은 마치 불우이웃 돕는 태도로 대하고 있어요.”

“수산물 피하는 것까지도 억지로 이해하는데, 대파나 흑미 같은 농산물 유통까지 길이 꽉 막혔어요.”

진도에서 만난 상인들은 서운함을 토로하기 바빴다. 진도군에서 운영하는 특산품 쇼핑몰 ‘진도몰’과 오프라인 판매장 매출은 사고 전보다 30%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현금거래가 많았던 특산물 판매는 상인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판매부진은 이보다 심각하다.

진도 군민대책위 관계자는 “전복과 김, 미역 등 수산물 매출은 사고 후 3개월간 100억 원 가까이 줄어들었다”며 “이후에도 진도 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아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군에서는 축제유치 및 특산품 유통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관공서를 중심으로 특산품 판매의 장을 마련하고, 축제를 통해 판매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수적인 대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신비의 바닷길 행사에 참가한 이평기 문화관광해설사는 “참가자들이 현지에서 식사하고 특산품을 구입해야 도움이 되는데, 진도산은 불편하다며 외부에서 음식을 챙겨왔더라”며 “특산품 판매도 지난해 절반에 불과했다”고 했다.

정부의 배·보상 대책이 나왔지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다. 진도군 세월호수습과 허은철 총괄담당은 “어민들 피해 배·보상 안이 나왔지만, 피해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가 여전하다”며 “김과 미역, 전복같이 진도산 특산품은 타 지역 상품보다 2~3배 높게 거래됐기 때문에, 실거래 가격 반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민들의 입증자료 구비도 문제다. 하성주 지원보상담당자는 “피해 산정을 하려면 3년간 매출자료가 필요한데, 현금거래가 많은 영세 어민들이 그간 거래 내용을 챙겨놓은 경우가 많지 않다”며 “이를 입증하는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 평온했던 마을이 ‘공포의 섬’으로

진도주민 허은경 씨는 아직도 지난해 4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허 씨가 자라온 이곳은 평온한 마을이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참사는 마을 전체를 공포와 슬픔으로 뒤덮었다.

허 씨는 “하늘에는 헬기가 수시로 오가고, 마을 공터에는 헬기 6대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개인의 삶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대참사에 마을 주민들은 눈물로 동참했다”며 “옷차림부터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조심 또 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진도 주민들은 또 다른 고통에 빠져있다. 동료들과 퇴근 후 맥주 한잔 하던 일도 누구 하나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박근완 진도군지부장은 진도군 이미지 개선사업의 시급함을 말했다. 박 지부장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는 침체된 분위기로 주민들도 사고 후유증이 심각하다”며 “시설 정비와 마을 정화 작업 등 이미지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도항 근처에 있던 낚시 집은 거의 폐업상태다. 사고 전 월매출 1,000만 원이 넘던 점포가 많았지만, 지금은 매출이 전혀 없다. 진도에서 만난 한 어민은 “하루아침에 죽음의 바다, 저주받은 섬이 됐는데, 누가 낚시를 하겠느냐”며 “팽목항 인근 낚시가게는 폐업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 같이 울며 지켰는데, 아픔만 고스란히 남아


▲ 고 문명수 목사 사모, 목사 증명사진

세월호 참사는 진도 주민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사고 직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에 힘쓰던 진도 나눔교회 고(故) 문명수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끝내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해서도 현장에서 아파할 유가족 생각뿐이었다. 퇴원 후, 의사의 만류에도 사고 현장을 찾은 문 목사는 패혈증으로 재차 쓰러졌고, 결국 병상에서 숨을 거뒀다.

고 문명수 목사의 사모 김금숙 씨는 “목사님은 막내 아이가 막 수학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더 가슴 아파하셨다”며 “사고 직후 심적인 고통을 많이 호소했다”고 했다.

사고현장 최전선에서 유족들의 아픔을 나눴던 경찰은 사고 트라우마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진도경찰서 고(故) 김태호 경감은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의 입장을 해경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접했기에 정신적인 피해가 컸다.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유가족에게 인사를 했던 그는 며칠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고인을 기억하는 지인은 “태호 형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이 있어,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받은 심적 고통이 더욱 컸다”며 “업무상 스트레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의 아픔에 발 벗고 뛰어든 고 문명수 목사와 고 김태호 경감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문 목사는 의사자 지정을 신청했으나 반려된 상태고, 김태호 경감은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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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 1년] ④ “아직도 하루 손님 1명도 안 오기도”…진도 주민들의 고통
    • 입력 2015-04-09 06:05:47
    • 수정2015-04-09 08:53:12
    사회
“명절이라고 사돈에게 멸치랑 김을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도 바다가 얼마나 오염됐겠느냐며 하나도 안 먹었더라.”

진도에서 만난 김 모(62)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예전에는 지인에게 전복이나 미역을 보내면 진도 특산품이라며 반겼는데, 이제는 그냥 보내준다고 해도 꺼린다는 것이다. 김 씨는 최근 운영하던 음식점마저 정리했다. 지난해 사고 이후, 진도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탓이다. 7년간 운영해 왔던 백반집은 사고 이후로 하루 손님 한 팀 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김 씨는 7개월간 적자운영 끝에 사업을 정리했다.

그나마 김 씨의 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예식장과 사진관을 운영하는 조 모 씨는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할 수 없다. 사고 이후, 예약돼 있던 결혼식과 칠순 등 잔치는 모두 취소됐고, 하루 25~30만 원 하던 사진관 매출은 이제 5만 원을 채우기 빠듯해졌다. 하지만 제법 덩치가 큰 건물과 사업체를 인수할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진도 군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사고 직후 3달간 진도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 금액을 898억 원으로 집계했다. 관광객 감소에 따른 외식업, 특산품 판매 등의 주요관광소득 피해가 202억 9,000만 원, 수협위판장과 양식업, 수산물 판매 저하와 유류 피해 등 어업 피해가 695억 원에 달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시 찾은 진도는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로 붐볐던 거리는 텅 비어있고, 최상품으로 인정받던 농수산 특산품 거래는 끊겼다. 또 유통과 소비가 침체된 마을 경기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 “한달 매출 10만 원도 안 돼”…소상공인 피해 심각

지난해 세월호 사고 이후 진도지역을 찾은 관광객은 17만 2,467명(유료관광객)이다. 이는 같은 기간(4월~12월) 30만 9,939명이 찾은 2013년의 55% 수준이다. 대책위는 지난해 관광객 감소로 인한 피해를 약 127억 4,000만 원으로 추정했다. 1인당 평균지출금액 9만 2,680원을 기준으로 한 피해 규모다.

하지만 진도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피해규모는 이보다 더 크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박근완 진도군지부장은 “한 달 매출이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게가 수두룩하다”며 “정부의 소상공인 특별 대출지원금 2,000만 원을 받고, 그 이자를 내지 못해서 연락 끊긴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식당의 매출은 전년도 대비 30~40%, 호프집은 60~70%, 노래방은 80%가량 줄었다”며 “이로 인해 오랫동안 거래해온 도소매 유통망도 다 끊겼다”고 했다.

진도군 기획조정실 오귀석 주무관은 “세월호 사고 1년이 지났지만, 진도군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며 “마을 이미지 회복과 경제 활성화에 몇 년이 소요될지 예측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 최상급 상품이 기피 상품으로…“어민 피해 산정 어려워”

“자존심 상하죠. 진도 미역은 최상품인데, 그나마 사는 사람들은 마치 불우이웃 돕는 태도로 대하고 있어요.”

“수산물 피하는 것까지도 억지로 이해하는데, 대파나 흑미 같은 농산물 유통까지 길이 꽉 막혔어요.”

진도에서 만난 상인들은 서운함을 토로하기 바빴다. 진도군에서 운영하는 특산품 쇼핑몰 ‘진도몰’과 오프라인 판매장 매출은 사고 전보다 30%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현금거래가 많았던 특산물 판매는 상인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판매부진은 이보다 심각하다.

진도 군민대책위 관계자는 “전복과 김, 미역 등 수산물 매출은 사고 후 3개월간 100억 원 가까이 줄어들었다”며 “이후에도 진도 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아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군에서는 축제유치 및 특산품 유통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관공서를 중심으로 특산품 판매의 장을 마련하고, 축제를 통해 판매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수적인 대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신비의 바닷길 행사에 참가한 이평기 문화관광해설사는 “참가자들이 현지에서 식사하고 특산품을 구입해야 도움이 되는데, 진도산은 불편하다며 외부에서 음식을 챙겨왔더라”며 “특산품 판매도 지난해 절반에 불과했다”고 했다.

정부의 배·보상 대책이 나왔지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다. 진도군 세월호수습과 허은철 총괄담당은 “어민들 피해 배·보상 안이 나왔지만, 피해산정 기준에 대한 문제가 여전하다”며 “김과 미역, 전복같이 진도산 특산품은 타 지역 상품보다 2~3배 높게 거래됐기 때문에, 실거래 가격 반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민들의 입증자료 구비도 문제다. 하성주 지원보상담당자는 “피해 산정을 하려면 3년간 매출자료가 필요한데, 현금거래가 많은 영세 어민들이 그간 거래 내용을 챙겨놓은 경우가 많지 않다”며 “이를 입증하는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 평온했던 마을이 ‘공포의 섬’으로

진도주민 허은경 씨는 아직도 지난해 4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허 씨가 자라온 이곳은 평온한 마을이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참사는 마을 전체를 공포와 슬픔으로 뒤덮었다.

허 씨는 “하늘에는 헬기가 수시로 오가고, 마을 공터에는 헬기 6대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개인의 삶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대참사에 마을 주민들은 눈물로 동참했다”며 “옷차림부터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조심 또 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진도 주민들은 또 다른 고통에 빠져있다. 동료들과 퇴근 후 맥주 한잔 하던 일도 누구 하나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박근완 진도군지부장은 진도군 이미지 개선사업의 시급함을 말했다. 박 지부장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는 침체된 분위기로 주민들도 사고 후유증이 심각하다”며 “시설 정비와 마을 정화 작업 등 이미지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도항 근처에 있던 낚시 집은 거의 폐업상태다. 사고 전 월매출 1,000만 원이 넘던 점포가 많았지만, 지금은 매출이 전혀 없다. 진도에서 만난 한 어민은 “하루아침에 죽음의 바다, 저주받은 섬이 됐는데, 누가 낚시를 하겠느냐”며 “팽목항 인근 낚시가게는 폐업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 같이 울며 지켰는데, 아픔만 고스란히 남아


▲ 고 문명수 목사 사모, 목사 증명사진

세월호 참사는 진도 주민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사고 직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에 힘쓰던 진도 나눔교회 고(故) 문명수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끝내 목숨을 잃었다. 고인은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해서도 현장에서 아파할 유가족 생각뿐이었다. 퇴원 후, 의사의 만류에도 사고 현장을 찾은 문 목사는 패혈증으로 재차 쓰러졌고, 결국 병상에서 숨을 거뒀다.

고 문명수 목사의 사모 김금숙 씨는 “목사님은 막내 아이가 막 수학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더 가슴 아파하셨다”며 “사고 직후 심적인 고통을 많이 호소했다”고 했다.

사고현장 최전선에서 유족들의 아픔을 나눴던 경찰은 사고 트라우마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진도경찰서 고(故) 김태호 경감은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의 입장을 해경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접했기에 정신적인 피해가 컸다.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유가족에게 인사를 했던 그는 며칠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고인을 기억하는 지인은 “태호 형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픔이 있어,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받은 심적 고통이 더욱 컸다”며 “업무상 스트레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의 아픔에 발 벗고 뛰어든 고 문명수 목사와 고 김태호 경감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문 목사는 의사자 지정을 신청했으나 반려된 상태고, 김태호 경감은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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