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 ⑦ 수습 때만 영웅…끝나니 ‘나몰라라’

입력 2015.04.14 (06:08) 수정 2015.04.1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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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입니다. 당시에는 수색과 구조에 집중해 말을 아꼈던 이들이 최근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 수중 수색이 중단된 지도 6개월이나 지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수습 한창일 때는 ‘영웅’…끝나고 나니 ‘외면’

"병원에 갔더니 치료비 지원이 중단됐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4월 24일부터 6월 말까지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김 모 씨.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과 허리 디스크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던 그에게 지난 8일 치료비 지원 중단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후유증으로 현업에 복귀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치료비 부담까지 떠안게 된 그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난 1월, KBS는 세월호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의 의료 지원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잠수사들은 40m에 이르는 깊은 수심에서 거센 물살을 이겨내고, 비좁은 공간에서 작업하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치료비 지원 기간을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지난해 말(2014년 12월)로 규정해 놓는 바람에 민간잠수사들은 해가 바뀌자마자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관련 피해자들의 배·보상 문제를 다룬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늦어지면서 공백기가 생겼다고 해명했고, 보도 이후 보건복지부는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될 때까지 치료비 지원을 연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부터 잠수사들은 다시 치료비 지원을 받을 길이 막막하게 됐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치료비 지원을 재개한 지 불과 한 달 만입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피해 지원 대상을 배에 탄 사람과 그 가족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민간잠수사 21명이 잠수병의 일종인 골괴사와 근골격계 질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완치되지 않으면 다른 잠수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정확히 언제 끝날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는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 보상 약속한 해경…“알아서 하세요”

그렇다면 보상을 받을 길은 없는 걸까요? 애초 해경은 업체 소속이 아닌 민간 잠수사들은 부상을 입어도 산재 신청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지난해 7월 수난구호법에 따른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이 법에는 "수난 구호 업무에 종사한 사람이 부상을 입은 때에는 치료를 하고, 사망이나 장애를 입은 때에는 보상금을 지급"하게 돼 있습니다. 법상 신청 대상이 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입니다. 이에 따라 잠수사들은 지난해 10월 전라남도에 보상금 지급 신청을 했습니다. 전라남도는 이미 보건복지부에서 치료비 지원을 하는 상황에서 중복 지급 우려가 있다며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습니다.

그사이 해경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천과 부산, 대전 등 전국에 흩어져있는 잠수사들이 직접 여러 차례 전라남도를 방문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법을 살펴보고, 경과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결국, 6달이 흐른 지난달에서야 법제처는 전라남도의 판단이 옳다고 결정했습니다.

해경은 뒤늦게 수난구호법이 아닌 '의사상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상을 신청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숨진 고 이광욱 잠수사가 의사자로 지정된 선례도 있습니다. 잠수사들은 이번엔 진도군에 의사상자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어디에서도 보상을 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 아직도 계속되는 ‘악몽’

세월호 수색 작업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현장 경험이 10~20년이 넘는 베테랑 잠수사들도 극복하기 어려운 대참사였습니다. 희생자만 304명. 대부분 희생자가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었던 만큼 잠수사들은 제 아들, 딸을 수습하는 애달픈 심정으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희생자 가족들의 통곡에 함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야가 나빠서 앞이 잘 안 보이니까, 손에만 의지해서 더듬더듬 찾아요. 시신은 감촉이 달라요. 한 번은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데, 도저히 움직이지를 않는 거예요. '엄마 보러 가자, 엄마 보러 가자!' 이렇게 달래면서 물 위로 나왔어요."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 잠수사)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세월호 잠수사(민,관,군) 434명 가운데 10%에 이르는 45명이 위험군에 포함됐습니다. 또 상당수가 우울감이나 불면증 등 이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24일 취재를 위해 만난 한 민간 잠수사는 "밤에 잠을 잘 수 없어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신 수습을 하면서 목격한 희생자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남아있는 실종자들에 대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제주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 10여 명을 구해내 '파란 바지의 영웅'으로 불리는 김동수 씨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충격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 “차라리 그 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민간잠수사들이 참사 현장에 달려간 이유 중 하나는 사명감입니다. 열악한 작업 여건에 수당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한 명이라도 구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후유증과 부상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잠수사들에게 정부는 무책임한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잠수사들은 차라리 세월호 수색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평소처럼 산업 잠수일만 했다면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걱정 없이 지냈을 거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국가에 큰일이 생기더라고 나서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가 돼버린 민간잠수사들. 보람은 사라지고, 불신과 후회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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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 1년] ⑦ 수습 때만 영웅…끝나니 ‘나몰라라’
    • 입력 2015-04-14 06:08:39
    • 수정2015-04-14 08:24:34
    사회
세월호 참사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입니다. 당시에는 수색과 구조에 집중해 말을 아꼈던 이들이 최근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 수중 수색이 중단된 지도 6개월이나 지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수습 한창일 때는 ‘영웅’…끝나고 나니 ‘외면’

"병원에 갔더니 치료비 지원이 중단됐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4월 24일부터 6월 말까지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김 모 씨.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과 허리 디스크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던 그에게 지난 8일 치료비 지원 중단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후유증으로 현업에 복귀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치료비 부담까지 떠안게 된 그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난 1월, KBS는 세월호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의 의료 지원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잠수사들은 40m에 이르는 깊은 수심에서 거센 물살을 이겨내고, 비좁은 공간에서 작업하다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치료비 지원 기간을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지난해 말(2014년 12월)로 규정해 놓는 바람에 민간잠수사들은 해가 바뀌자마자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관련 피해자들의 배·보상 문제를 다룬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늦어지면서 공백기가 생겼다고 해명했고, 보도 이후 보건복지부는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될 때까지 치료비 지원을 연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부터 잠수사들은 다시 치료비 지원을 받을 길이 막막하게 됐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치료비 지원을 재개한 지 불과 한 달 만입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피해 지원 대상을 배에 탄 사람과 그 가족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민간잠수사 21명이 잠수병의 일종인 골괴사와 근골격계 질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완치되지 않으면 다른 잠수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정확히 언제 끝날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는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 보상 약속한 해경…“알아서 하세요”

그렇다면 보상을 받을 길은 없는 걸까요? 애초 해경은 업체 소속이 아닌 민간 잠수사들은 부상을 입어도 산재 신청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지난해 7월 수난구호법에 따른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이 법에는 "수난 구호 업무에 종사한 사람이 부상을 입은 때에는 치료를 하고, 사망이나 장애를 입은 때에는 보상금을 지급"하게 돼 있습니다. 법상 신청 대상이 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입니다. 이에 따라 잠수사들은 지난해 10월 전라남도에 보상금 지급 신청을 했습니다. 전라남도는 이미 보건복지부에서 치료비 지원을 하는 상황에서 중복 지급 우려가 있다며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습니다.

그사이 해경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천과 부산, 대전 등 전국에 흩어져있는 잠수사들이 직접 여러 차례 전라남도를 방문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법을 살펴보고, 경과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결국, 6달이 흐른 지난달에서야 법제처는 전라남도의 판단이 옳다고 결정했습니다.

해경은 뒤늦게 수난구호법이 아닌 '의사상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상을 신청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숨진 고 이광욱 잠수사가 의사자로 지정된 선례도 있습니다. 잠수사들은 이번엔 진도군에 의사상자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어디에서도 보상을 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 아직도 계속되는 ‘악몽’

세월호 수색 작업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현장 경험이 10~20년이 넘는 베테랑 잠수사들도 극복하기 어려운 대참사였습니다. 희생자만 304명. 대부분 희생자가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었던 만큼 잠수사들은 제 아들, 딸을 수습하는 애달픈 심정으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희생자 가족들의 통곡에 함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야가 나빠서 앞이 잘 안 보이니까, 손에만 의지해서 더듬더듬 찾아요. 시신은 감촉이 달라요. 한 번은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데, 도저히 움직이지를 않는 거예요. '엄마 보러 가자, 엄마 보러 가자!' 이렇게 달래면서 물 위로 나왔어요."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 잠수사)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세월호 잠수사(민,관,군) 434명 가운데 10%에 이르는 45명이 위험군에 포함됐습니다. 또 상당수가 우울감이나 불면증 등 이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24일 취재를 위해 만난 한 민간 잠수사는 "밤에 잠을 잘 수 없어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신 수습을 하면서 목격한 희생자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남아있는 실종자들에 대해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제주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 10여 명을 구해내 '파란 바지의 영웅'으로 불리는 김동수 씨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충격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 “차라리 그 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민간잠수사들이 참사 현장에 달려간 이유 중 하나는 사명감입니다. 열악한 작업 여건에 수당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한 명이라도 구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후유증과 부상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잠수사들에게 정부는 무책임한 모습만 보이고 있습니다.

잠수사들은 차라리 세월호 수색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평소처럼 산업 잠수일만 했다면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걱정 없이 지냈을 거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국가에 큰일이 생기더라고 나서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가 돼버린 민간잠수사들. 보람은 사라지고, 불신과 후회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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