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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성완종 리스트’ 파문
‘쓴소리’ 하겠다던 2인자, 63일 만에 퇴장
입력 2015.04.21 (11:25) 수정 2015.04.21 (16:01) 정치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지난 1월2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기자간담회)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 하겠다” (지난달 12일 대국민담화)

시작은 ‘탄탄대로’였다. 거칠 것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국정운영의 난맥상 해결책으로 이완구 국무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 국민은 이 총리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총리 지명 이후 이 총리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대권주자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탁월한 협상력과 리더십으로 여의도 정가에선 이미 이 총리의 별명을 ‘2PM'(2PM‧2는 이완구 원내대표의 성, PM은 총리Prime Minister의 약자)이라고 붙여서 부르는 등 그의 총리 지명을 이미 예견했을 정도였다.

여기에 선출직인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민 검증대’를 이미 여러 번 통과해 앞선 국무총리 후보자들에 비해 무난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높았다.

■ 불운의 전주곡이었던 청문회

그러나 이 총리가 2인자의 자리로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야당의 검증과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차남과 본인의 병역기피, 황제 특강논란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총리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언론 관련 발언 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진다.

청문회 과정에서 난타를 당한 이 총리는 “국민들께 사과 드린다”며 몸을 낮추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천신만고 끝에 이 총리는 임명동의안이 가결돼 대한민국 제43대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 부메랑이 된 사정(司正)

험난한 청문회를 거친 이 총리는 취임 후 무난히 국정을 이끌어 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취임 후 첫 국무회의(2월 24일)에서 장관 평가제 시행 의지를 밝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의 회의 불출석을 계기로 장관 군기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이 총리는 취임 후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사태로 표류하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동력을 되살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자신을 뒷받침해야 하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분위기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주변에 자주 토로하곤 했다.

실제로 이 총리는 지난 7일 취임 5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국정동력을 얻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해야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국회 있을 때부터 이 점이 불만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건다.

사실상 전임 정부인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비리 의혹을 규명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자 했으나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부메랑이 돼 이 총리를 내리치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 9일 자원외교 비리 의혹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심사를 앞두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 총리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10일에는 성 전 회장의 유류품에서 한 장의 메모가 발견됐는데, 이 총리를 포함한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친박계 핵심의원들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쪽지였다.

이와 함께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이 총리에 대한 의혹을 삽시간에 들불처럼 일어났다.

파장이 커지자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동료의원으로 알았던 것이지 친하지 않다’는 등의 해명을 내놓았지만, 이 총리의 해명을 반박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면서 이 총리가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여당 내부에서도 이 총리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총리는 결국 어제(20일) 남미를 순방 중인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며 63일간의 짧지만 길었던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사의 표명으로 이 총리는 헌정사상 최단기 총리로 기록되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역대 재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총리는 윤보선 대통령 당시 65일 동안 역임한 제6대 허정 총리다.

새누리당 수도권 출신 한 의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의 표명은 당연한 것”이라며 “야당도 이젠 정쟁을 중단하고 국정에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이 총리는 검찰 수사를 통해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그것이 그나마 대통령과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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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쓴소리’ 하겠다던 2인자, 63일 만에 퇴장
    • 입력 2015-04-21 11:25:09
    • 수정2015-04-21 16:01:45
    정치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지난 1월2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기자간담회)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 하겠다” (지난달 12일 대국민담화)

시작은 ‘탄탄대로’였다. 거칠 것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국정운영의 난맥상 해결책으로 이완구 국무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 국민은 이 총리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총리 지명 이후 이 총리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대권주자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탁월한 협상력과 리더십으로 여의도 정가에선 이미 이 총리의 별명을 ‘2PM'(2PM‧2는 이완구 원내대표의 성, PM은 총리Prime Minister의 약자)이라고 붙여서 부르는 등 그의 총리 지명을 이미 예견했을 정도였다.

여기에 선출직인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민 검증대’를 이미 여러 번 통과해 앞선 국무총리 후보자들에 비해 무난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높았다.

■ 불운의 전주곡이었던 청문회

그러나 이 총리가 2인자의 자리로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야당의 검증과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차남과 본인의 병역기피, 황제 특강논란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총리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언론 관련 발언 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진다.

청문회 과정에서 난타를 당한 이 총리는 “국민들께 사과 드린다”며 몸을 낮추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천신만고 끝에 이 총리는 임명동의안이 가결돼 대한민국 제43대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 부메랑이 된 사정(司正)

험난한 청문회를 거친 이 총리는 취임 후 무난히 국정을 이끌어 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취임 후 첫 국무회의(2월 24일)에서 장관 평가제 시행 의지를 밝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의 회의 불출석을 계기로 장관 군기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이 총리는 취임 후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사태로 표류하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동력을 되살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자신을 뒷받침해야 하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분위기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주변에 자주 토로하곤 했다.

실제로 이 총리는 지난 7일 취임 5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국정동력을 얻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해야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국회 있을 때부터 이 점이 불만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이 총리는 지난달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건다.

사실상 전임 정부인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비리 의혹을 규명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자 했으나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부메랑이 돼 이 총리를 내리치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 9일 자원외교 비리 의혹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심사를 앞두고 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 총리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10일에는 성 전 회장의 유류품에서 한 장의 메모가 발견됐는데, 이 총리를 포함한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친박계 핵심의원들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쪽지였다.

이와 함께 성 전 회장이 자살 직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이 총리에 대한 의혹을 삽시간에 들불처럼 일어났다.

파장이 커지자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동료의원으로 알았던 것이지 친하지 않다’는 등의 해명을 내놓았지만, 이 총리의 해명을 반박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면서 이 총리가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여당 내부에서도 이 총리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총리는 결국 어제(20일) 남미를 순방 중인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며 63일간의 짧지만 길었던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사의 표명으로 이 총리는 헌정사상 최단기 총리로 기록되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역대 재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총리는 윤보선 대통령 당시 65일 동안 역임한 제6대 허정 총리다.

새누리당 수도권 출신 한 의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의 표명은 당연한 것”이라며 “야당도 이젠 정쟁을 중단하고 국정에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이 총리는 검찰 수사를 통해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그것이 그나마 대통령과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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