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도박에 빠진 아내를 구해 주세요”

입력 2015.05.01 (08:33) 수정 2015.05.0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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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경찰이 받은 편지들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도박에 빠진 아내 때문에 가정이 파탄이 나게 생겼으니, 이걸 좀 막아달라는 겁니다.

여러 명의 남편들이 보낸 이 편지.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해, 도박판을 벌여온 사람들을 검거했는데요.

정말 남편들의 호소대로, 도박 참가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가정주부였습니다.

오늘 따라잡을 이야기는 도박의 늪에 빠진 주부들입니다.

<리포트>

늦은 오후, 충남의 한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주차장.

차에서 내린 중년 여성들이 남성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탑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여성들도, 차례차례 여러 대에 차량에 나눠탑니다.

줄이어 어디론가 향하는 차량들.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산을 뺑뺑 돌더라고요. 차를 옮겨 타면 우리야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요."

사람들을 태운 승합차가 향한 곳은 인근에 있는 야산이었습니다.

꽤 넓은 터가 눈앞에 나타나는데요.

<인터뷰> 이진영(형사/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여기가 입구고 저 앞까지 천막을 친 거예요. 기본적으로 4, 50명 들어갈 수 있는 텐트기 때문에 무지 크죠."

인적 드문 야산.

천막 안에서 이들이 벌인 건, ‘도박판’이었습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입니다.

대형 천막 안에 빽빽이 모여 있는 사람들.

판돈을 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녹취> "여덟이야. 여덟이야. 여덟, 여덟. (돈) 싹 걷어."

순식간에 바닥에 쌓여가는 지폐 뭉치들.

도박판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돌아갑니다.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패가 돌아가는 데 3, 4분밖에 안 걸려요. 밤새 하면 100판, 200판 이렇게 (하죠.)"

한참 동안 도박장 안팎에 잠입해 있던 경찰.

드디어 일시에 도박판을 급습합니다.

<녹취> "다 잡어.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가지 마. 이리 와. 이리 와."

도박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누군가 발전기 스위치를 내려버려, 천막 안이 컴컴해진 상태.

검거에 나선 경찰관들의 긴박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녹취> "가만히 있어. 아줌마 다쳐요. 다 가만히 있어요. 다칩니다. 거기 가만히 있어. 이쪽 가운데로 와요. 아줌마 이쪽으로"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무려 45명. 판돈만 5천만 원 정도가 압수됐습니다.

<녹취> "여러분들은 도박 개장 및 도박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지금부터 통제만 따라 주세요."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1년 가까이 충남 일대를 옮겨 다니며, 은밀하게 도박판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매일 장소를 변경하면서 산속에다가 산 속 정상이나 그 철탑 같은 사람이 안 다니는 곳에다가 천막을 치고 도박장을 하기 때문에 1년여 동안 단속이 안 걸리고 오랫동안 운영됐던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도박판에서 오간 판 돈이 무려 15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도박장 운영자들은 한 판에 이긴 금액에서 10%씩 고리를 뗍니다. 고리를 떼면 10%씩 남는 걸로 이익을 채우는 거고"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도박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뜻밖에도 이날 검거된 도박 참가자 45명 가운데 28명이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가정주부들이에요. 나이 드신 분들이 많고. 할 일이 없으니까 뭘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 세계에 들어와서"

사실, 경찰이 이 도박판을 급습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주부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내가 도박에 빠져 가정이 무너졌으니, 도박장을 단속해 달라는 남편들의 하소연.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여러 통의 편지를 받게 됐는데 남편들이 부인들이 산속 도박장에서 돈을 많이 잃고 빚을 지고 가출을 한다든가 아니면 많은 빚으로 인해서 이혼을, 가정 파탄이 났다."

구구절절한 편지 내용대로, 주부들의 도박 중독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완전히 매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여자들, 주부들은 하루도 안 빼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한번 발을 들이면 끊기가 어려운 게 이 도박이에요. 마약보다도 더 독한 게 이 도박이에요."

2년 전 경기도에서도 공장 창고에서, 대형 도박판을 벌인 100여 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는데요.

<인터뷰> 조경묵(경위/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매일 장소를 바꿔 가면서, (밤)11시 12시 정도에 쫙 들어가서 도박을 하고 아침에 빠지는 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때도 상당수의 도박 참자가들이 평범한 가정 주부였습니다.

<인터뷰> 조경묵(경위/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108명 중 56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확인됐습니다. 아무래도 도박을 하면서 가정을 좀 등한시하는"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주부들이 도박의 늪에 빠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전문가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인터뷰> 전영민(서울센터장/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 "남자들은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주부들은 시간이 있는데 여가 생활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놀이문화가 없으니까 집에서 하던 화투가 놀이 수준의 도박이 아니고 점차 하다 보면 진행성으로 악화합니다."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판을 찾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명기(정신과 전문의) : "한번 도박을 하게 되면 이 사람한테 있어서는 도박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잊고 현실을 잊는 효과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거예요."

취재팀이 접촉한 도박 참가 주부 역시,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도박이 이제는 끊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털어놨는데요.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잃을 때도 있지만 딸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발을 못 빼고 잃으면 잃어서 가고 따면 따서 가고……. 그렇게 되는 곳이 이 도박이에요. 이 도박은 마약이나 똑같은 거예요. 다 후회할거라고 봅니다."

이번에 검거된 도박 참가자의 절반 이상은 이미 다른 도박 전과가 있는 재범자였습니다.

전문가들이 처벌과 함께, 도박 치유 프로그램을 연계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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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도박에 빠진 아내를 구해 주세요”
    • 입력 2015-05-01 08:34:59
    • 수정2015-05-01 09: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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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경찰이 받은 편지들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도박에 빠진 아내 때문에 가정이 파탄이 나게 생겼으니, 이걸 좀 막아달라는 겁니다.

여러 명의 남편들이 보낸 이 편지.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해, 도박판을 벌여온 사람들을 검거했는데요.

정말 남편들의 호소대로, 도박 참가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가정주부였습니다.

오늘 따라잡을 이야기는 도박의 늪에 빠진 주부들입니다.

<리포트>

늦은 오후, 충남의 한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주차장.

차에서 내린 중년 여성들이 남성들의 안내를 받으며,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탑니다.

뒤이어 도착한 다른 여성들도, 차례차례 여러 대에 차량에 나눠탑니다.

줄이어 어디론가 향하는 차량들.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산을 뺑뺑 돌더라고요. 차를 옮겨 타면 우리야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요."

사람들을 태운 승합차가 향한 곳은 인근에 있는 야산이었습니다.

꽤 넓은 터가 눈앞에 나타나는데요.

<인터뷰> 이진영(형사/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여기가 입구고 저 앞까지 천막을 친 거예요. 기본적으로 4, 50명 들어갈 수 있는 텐트기 때문에 무지 크죠."

인적 드문 야산.

천막 안에서 이들이 벌인 건, ‘도박판’이었습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입니다.

대형 천막 안에 빽빽이 모여 있는 사람들.

판돈을 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녹취> "여덟이야. 여덟이야. 여덟, 여덟. (돈) 싹 걷어."

순식간에 바닥에 쌓여가는 지폐 뭉치들.

도박판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돌아갑니다.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패가 돌아가는 데 3, 4분밖에 안 걸려요. 밤새 하면 100판, 200판 이렇게 (하죠.)"

한참 동안 도박장 안팎에 잠입해 있던 경찰.

드디어 일시에 도박판을 급습합니다.

<녹취> "다 잡어.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가지 마. 이리 와. 이리 와."

도박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누군가 발전기 스위치를 내려버려, 천막 안이 컴컴해진 상태.

검거에 나선 경찰관들의 긴박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녹취> "가만히 있어. 아줌마 다쳐요. 다 가만히 있어요. 다칩니다. 거기 가만히 있어. 이쪽 가운데로 와요. 아줌마 이쪽으로"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무려 45명. 판돈만 5천만 원 정도가 압수됐습니다.

<녹취> "여러분들은 도박 개장 및 도박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지금부터 통제만 따라 주세요."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1년 가까이 충남 일대를 옮겨 다니며, 은밀하게 도박판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매일 장소를 변경하면서 산속에다가 산 속 정상이나 그 철탑 같은 사람이 안 다니는 곳에다가 천막을 치고 도박장을 하기 때문에 1년여 동안 단속이 안 걸리고 오랫동안 운영됐던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도박판에서 오간 판 돈이 무려 15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도박장 운영자들은 한 판에 이긴 금액에서 10%씩 고리를 뗍니다. 고리를 떼면 10%씩 남는 걸로 이익을 채우는 거고"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도박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뜻밖에도 이날 검거된 도박 참가자 45명 가운데 28명이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가정주부들이에요. 나이 드신 분들이 많고. 할 일이 없으니까 뭘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 세계에 들어와서"

사실, 경찰이 이 도박판을 급습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주부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내가 도박에 빠져 가정이 무너졌으니, 도박장을 단속해 달라는 남편들의 하소연.

<인터뷰> 천근창(팀장/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1팀) : "여러 통의 편지를 받게 됐는데 남편들이 부인들이 산속 도박장에서 돈을 많이 잃고 빚을 지고 가출을 한다든가 아니면 많은 빚으로 인해서 이혼을, 가정 파탄이 났다."

구구절절한 편지 내용대로, 주부들의 도박 중독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완전히 매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여자들, 주부들은 하루도 안 빼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한번 발을 들이면 끊기가 어려운 게 이 도박이에요. 마약보다도 더 독한 게 이 도박이에요."

2년 전 경기도에서도 공장 창고에서, 대형 도박판을 벌인 100여 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는데요.

<인터뷰> 조경묵(경위/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매일 장소를 바꿔 가면서, (밤)11시 12시 정도에 쫙 들어가서 도박을 하고 아침에 빠지는 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때도 상당수의 도박 참자가들이 평범한 가정 주부였습니다.

<인터뷰> 조경묵(경위/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 "108명 중 56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확인됐습니다. 아무래도 도박을 하면서 가정을 좀 등한시하는"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주부들이 도박의 늪에 빠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한 전문가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인터뷰> 전영민(서울센터장/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 "남자들은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주부들은 시간이 있는데 여가 생활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놀이문화가 없으니까 집에서 하던 화투가 놀이 수준의 도박이 아니고 점차 하다 보면 진행성으로 악화합니다."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판을 찾고 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명기(정신과 전문의) : "한번 도박을 하게 되면 이 사람한테 있어서는 도박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잊고 현실을 잊는 효과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거예요."

취재팀이 접촉한 도박 참가 주부 역시,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도박이 이제는 끊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털어놨는데요.

(녹취> 도박 참가자(음성변조) : "잃을 때도 있지만 딸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발을 못 빼고 잃으면 잃어서 가고 따면 따서 가고……. 그렇게 되는 곳이 이 도박이에요. 이 도박은 마약이나 똑같은 거예요. 다 후회할거라고 봅니다."

이번에 검거된 도박 참가자의 절반 이상은 이미 다른 도박 전과가 있는 재범자였습니다.

전문가들이 처벌과 함께, 도박 치유 프로그램을 연계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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