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 루트 만㎞…사선을 넘다!

입력 2015.05.09 (07:49) 수정 2015.05.0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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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 이각경입니다.

5월 9일 토요일, 남북의 창 시작합니다.

남북의 창 취재진은 국내 인권 단체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국내 입국한 탈북자 3명의 한국행 여정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한반도의 최북단에서 남단까지는 약 천 킬로미터지만, 탈북자들은 그 열배가 넘는 만 킬로미터를 돌고 돌아 남한에 들어오는 데요,

특집, 통일로 미래로, 오늘은 사선을 넘나든 만 킬로미터의 여정,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현정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생사를 넘나드는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 : "곳곳에 경찰차가 계속 돌아. 막 지나가는 사람 불러 세우고, 다 잡고."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소리 내지 마라, 물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으니까 적당히 먹으라우."

20여일의 시간, 거친 도시만 해도 6곳.

살기 위해 도리어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탈북 여정을, 지금 공개합니다.

북한과 맞닿아있는 중국의 한 국경 도시.

<녹취> "안녕하세요?"

한 종교 단체가 가명으로 빌린 이 집엔, 한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이 숨죽인 채 모여 있습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집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이만하면 천상인거라. 세 번째 옮기는 거거든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

살기 위해서 호흡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내가) 숨어서 전화하면 중도에서 내려야해. 나머지 일행이 걸리지 않았으면 나머지 일행은 중간에 나가고... 마음의 준비가 없다가 탁 들이닥치면 그 때는 더 당황해 가지고 일이 안 돼."

<녹취> "여권 주세요. (지금 내려요? 내려요?) 아니 내리지마."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여정,

국경 수비대의 검문에 걸려 결국 사무실까지 끌려왔습니다.

<녹취> 중국 국경 수비대원 : "중국에 왜 이렇게 많이 왔나? (사업, 사업하러 왔습니다.) 누구랑 사업한단 말입니까? (......)"

불안한 마음에 목소리는 자꾸만 작아지는데요.

불행 중 다행으로 2시간 넘는 조사 끝에 가까스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또 다시 찾아 왔습니다.

황급히 건물 안으로 몸을 숨기는데요.

이번엔 중국 공안, 즉 경찰의 검문이 문제입니다.

단속에 걸리면 무조건 강제 북송,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녹취>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 : "곳곳에 경찰차가 계속 돌아. (막 지나가는 사람 불러 세우고, 다 잡고, 막.) 그냥 아무나 잡더라고. 우리 안 잡힌 거 다행이지."

천신만고 끝에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탈북자들.

먼 거리를 떠나야 하기에 선택한 침대 버스였건만, 상황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앞에가 굉장히 위험해. 어떻게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보다 더하지? 야, 사고 나면 내가 일등으로 죽겠네."

10시간도 넘는 힘든 여정이지만 숨 돌릴 새도 없이 허기만 겨우 달래야 합니다.

<녹취> "지금 내리고 있어요. ((휴식) 시간이 한 15분인가 밖에 안 되는데.) 많이 안 먹을 거예요. (많이 먹어, 많이.)"

한밤중이 돼서야 도착한 작은 도시.

차가운 밤거리엔 편히 몸을 뉘일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사우나 들어가서 목욕도 하고 따뜻하니까 여기 들어가 있다가 거기 식당 안에 있으니까 거기서도 밥도 먹고."

다음날 아침,

다음 도시로 안내해 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비용을 지불하는 일,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5,600 (위안) 맞는가 확인해 주십시오. 내 전화번호는 알고?"

이번에도 이동 수단은 고속버습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눈에 덜 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단속도 많아 방심은 금물입니다.

<녹취> 대북 인권 단체 관계자 : "이 사람들의 중압감은 우리가 상상할 수가 없거든요. 정말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면도칼부터 해서 걸리면 죽을 생각으로 자살할 생각으로 오는 수준이기 때문에...."

또 다시 10시간이 넘는 이동,

한밤중에야 겨우 도착했지만 약속 장소에 안내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아무 일 아니겠지. 좀 기다려보면 되지 뭐. 참아, OO야 화장실 갈래?"

<녹취> "들어와 있어도 된다고? (네, 들어와 있어도 된대요.)"

오늘은 어렵게 빌린 이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버스와 승용차를 갈아타며 열흘 간 거친 도시만 5곳.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여러 도시를 돌면서 달린 것만 5천 여 킬로미터가 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순탄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현지 안내인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승용차 운전자는 빨리 내리라고 재촉할 뿐입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우리 보고 내리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그 차가 안 왔잖아요.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그랬지. 근데 왜 (안내인은) 전화를 안 받아요?"

<녹취> 대북 인권 단체 관계자 : "여기 지금 도착했는데요. 그 약속 장소에 왔는데 김OO씨 연락이 안돼서요. 예, 예, 근데 연락이 안돼서 어디서 만날지 몰라서요. 전화가 안 걸리네요."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이제야 지역 안내인이 나타났습니다.

<녹취> "쉿 조용히 하래."

안내인들이 이처럼 극도로 조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단속에 걸린 안내인들은 대부분 중국 법에 따라 인신매매범으로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변두리 지역의 한 임시 안전 가옥에 짐을 풀었습니다.

갑자기 강화된 단속에 한동안 이곳에서 숨어 지내기로 한 것인데요.

얼마 만에 찾은 휴식일까요, 이제야 그간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 놓을 수 있습니다.

2005년 북한을 탈출했다는 41살의 정모씨.

하지만 북한을 벗어나고도 곧바로 인신매매 브로커에 속아 중국의 한 농촌으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나를 이렇게 중국에 팔아서 나를, 자기가 돈을 받아서 장사하겠다는 목적이었단 말이에요. 그걸 또 훗날 알았어요."

이후 2명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같이 살던 중국인의 끊임없는 폭행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우린 살아도 인간 취급을 안 해줘요. 호구(주민등록)가 없고 하니까. 사람이 이렇게 참고 사는 것도 한두 번이잖아요. 중국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온 거 한국까지 가보려고요."

감시가 소홀했던 틈타, 7살 어린 딸과 한국행을 택해야만 했던 정씨.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새끼도 버리고 이렇게 나왔어요. 새끼 버렸다고 사람이 아니라고 욕은 하겠죠. 다 데리고 떠나고픈 마음은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힘이 안 되더라고요."

이런 사정은 정씨뿐만이 아닌데요.

꽃제비 출신인 31살 이모씨의 비극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먹을 것을 찾아 길거리를 떠도는 꽃제비 생활에 몰렸는데요.

<녹취> 이OO(탈북 여성/31살) : "굶어 죽어야만 되니까. 죽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야만 되니까요. 어떻게 해서 도둑질 해먹든 몸을 팔든 어떻게 살아야 되니까."

천신만고 끝에 10여 년 전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중국에 와서야 꽃제비 생활에선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은 브로커를 통해 팔려가야 했습니다.

<녹취> 이OO(탈북 여성/31살) : "(브로커가) 칼을 빼 드는데 그걸 보니까 막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중국 가서 남자 얻어서 살아라. 난 그렇게 절대 못한다고. 그러니까 그럼 아가씨 짓(성매매) 하라 그래요."

그렇게 농촌마을로 팔려가 끊임없는 폭행을 당해야했고, 결국 이 씨도 자식을 남겨놓고 살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녹취> 이OO(탈북 여성/31살) : "자식한테 미안한 건 많지만 남편한테 천대 받고 구박 받는 일이 너무 싫었어요. 인간 대접 못 받고 사는 게 너무 억울해서..."

다시 찾아온 아침 이제 마지막 관문을 향해 갑니다.

다시 천 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곳은 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접경지역인데요.

국경을 넘는 마지막 코스 역시 전문 안내인이 따로 있습니다.

<녹취> 정00(탈북여성/41살) : "남자들은 내리지 말래요. (자 이따 봐요, 물 물 물.) 이제 산 넘어가는 거야? 자 이제 마지막. 파이팅."

몸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마지막 고개를 넘습니다.

인도를 걷다가 누가 볼 새라 재빨리 방향을 틀고, 농가 뒤쪽을 돌아 산으로 들어갑니다.

이제부터 제법 가파른 산길...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는 동안 카메라도 흔들립니다.

거칠기만 한 산길에 숨소리마저 가빠집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소리 내지 마라. 물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으니까 적당히 먹으라우."

앞장 선 안내인은 가지를 쳐서 길을 내줍니다.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국경상황 확인도 잊지 않습니다.

이런 산길만 7시간째, 하지만 이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긴 여정에 카메라 배터리도 방전, 촬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마지막 여정은, 무사히 끝을 맺었을까?

<녹취> 이00(탈북여성/31살) : "너무 춥고, 떨리고, 얘는 자꾸 울지. 연락도 안 되지. 말도 모르지. 찾아올 방법도 없어 될 대로 되라고. 나는 북한으로 가든 어디로 가든, 마음 대로 해라."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야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합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다 여기서 안전하게 있으니까 우리 이제 여권을 만든단 말이에요. 우리 것, 지금 다 이름이 올라갔어요."

이제 간다고 하니까 긴장되고, 되게. 아까까지만 해도 모르겠는데 (대사관으로) 딱 간다고 하니까.

거기만 들어가면 끝, 통과. 간첩인지 조사하는데 간첩 아니잖아요. 간첩만 아니면 돼요.

목숨을 걸고 달려온 여정. 생사를 오갔던 20여일의 사투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녹취> "수고 많았습니다. 들어가죠."

중국 대륙을 관통하고 동남아를 거쳐 한국까지, 만 킬로미터의 여정.

아마 전문 안내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누군가 한 명 또는 모두에게 오늘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현재 구출한 인명 가지고 있는 것만 한 이천 명, 삼천 명 가지고 있어요. 내가 직접 브로커들, 중계인들 연계해서 보내온 사람들 받아서 안내만 한 거예요. 안내자죠."

뿐만 아니라 잠시라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준 안전가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더욱 교묘해진 단속에 탈북 루트는 점점 좁아지기만 합니다.

<녹취>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 :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던 곳이 털린 적도 있었어요? (많죠. 공안(경찰)이 들이닥치거나 아니면 (북한) 보위부에서 한국 가고 싶어 하는 탈북자라고 위장해서 오거나. 그런 게 많죠.)"

인권단체가 추정하는 중국 내 탈북 여성과 그 자녀들은 최대 6만 명.

하지만 국적이 없다보니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습니다.

비극이 낳은 또 다른 비극.

분단의 세월은 또 다른 상처만을 남기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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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 루트 만㎞…사선을 넘다!
    • 입력 2015-05-09 08:52:18
    • 수정2015-05-09 22:59:24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 이각경입니다.

5월 9일 토요일, 남북의 창 시작합니다.

남북의 창 취재진은 국내 인권 단체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국내 입국한 탈북자 3명의 한국행 여정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한반도의 최북단에서 남단까지는 약 천 킬로미터지만, 탈북자들은 그 열배가 넘는 만 킬로미터를 돌고 돌아 남한에 들어오는 데요,

특집, 통일로 미래로, 오늘은 사선을 넘나든 만 킬로미터의 여정,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현정 리포터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생사를 넘나드는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 : "곳곳에 경찰차가 계속 돌아. 막 지나가는 사람 불러 세우고, 다 잡고."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소리 내지 마라, 물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으니까 적당히 먹으라우."

20여일의 시간, 거친 도시만 해도 6곳.

살기 위해 도리어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탈북 여정을, 지금 공개합니다.

북한과 맞닿아있는 중국의 한 국경 도시.

<녹취> "안녕하세요?"

한 종교 단체가 가명으로 빌린 이 집엔, 한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이 숨죽인 채 모여 있습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집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이만하면 천상인거라. 세 번째 옮기는 거거든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

살기 위해서 호흡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내가) 숨어서 전화하면 중도에서 내려야해. 나머지 일행이 걸리지 않았으면 나머지 일행은 중간에 나가고... 마음의 준비가 없다가 탁 들이닥치면 그 때는 더 당황해 가지고 일이 안 돼."

<녹취> "여권 주세요. (지금 내려요? 내려요?) 아니 내리지마."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여정,

국경 수비대의 검문에 걸려 결국 사무실까지 끌려왔습니다.

<녹취> 중국 국경 수비대원 : "중국에 왜 이렇게 많이 왔나? (사업, 사업하러 왔습니다.) 누구랑 사업한단 말입니까? (......)"

불안한 마음에 목소리는 자꾸만 작아지는데요.

불행 중 다행으로 2시간 넘는 조사 끝에 가까스로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또 다시 찾아 왔습니다.

황급히 건물 안으로 몸을 숨기는데요.

이번엔 중국 공안, 즉 경찰의 검문이 문제입니다.

단속에 걸리면 무조건 강제 북송,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녹취>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 : "곳곳에 경찰차가 계속 돌아. (막 지나가는 사람 불러 세우고, 다 잡고, 막.) 그냥 아무나 잡더라고. 우리 안 잡힌 거 다행이지."

천신만고 끝에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탈북자들.

먼 거리를 떠나야 하기에 선택한 침대 버스였건만, 상황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앞에가 굉장히 위험해. 어떻게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보다 더하지? 야, 사고 나면 내가 일등으로 죽겠네."

10시간도 넘는 힘든 여정이지만 숨 돌릴 새도 없이 허기만 겨우 달래야 합니다.

<녹취> "지금 내리고 있어요. ((휴식) 시간이 한 15분인가 밖에 안 되는데.) 많이 안 먹을 거예요. (많이 먹어, 많이.)"

한밤중이 돼서야 도착한 작은 도시.

차가운 밤거리엔 편히 몸을 뉘일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사우나 들어가서 목욕도 하고 따뜻하니까 여기 들어가 있다가 거기 식당 안에 있으니까 거기서도 밥도 먹고."

다음날 아침,

다음 도시로 안내해 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비용을 지불하는 일,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5,600 (위안) 맞는가 확인해 주십시오. 내 전화번호는 알고?"

이번에도 이동 수단은 고속버습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눈에 덜 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단속도 많아 방심은 금물입니다.

<녹취> 대북 인권 단체 관계자 : "이 사람들의 중압감은 우리가 상상할 수가 없거든요. 정말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면도칼부터 해서 걸리면 죽을 생각으로 자살할 생각으로 오는 수준이기 때문에...."

또 다시 10시간이 넘는 이동,

한밤중에야 겨우 도착했지만 약속 장소에 안내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아무 일 아니겠지. 좀 기다려보면 되지 뭐. 참아, OO야 화장실 갈래?"

<녹취> "들어와 있어도 된다고? (네, 들어와 있어도 된대요.)"

오늘은 어렵게 빌린 이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버스와 승용차를 갈아타며 열흘 간 거친 도시만 5곳.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여러 도시를 돌면서 달린 것만 5천 여 킬로미터가 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순탄한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현지 안내인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승용차 운전자는 빨리 내리라고 재촉할 뿐입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우리 보고 내리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그 차가 안 왔잖아요.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그랬지. 근데 왜 (안내인은) 전화를 안 받아요?"

<녹취> 대북 인권 단체 관계자 : "여기 지금 도착했는데요. 그 약속 장소에 왔는데 김OO씨 연락이 안돼서요. 예, 예, 근데 연락이 안돼서 어디서 만날지 몰라서요. 전화가 안 걸리네요."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이제야 지역 안내인이 나타났습니다.

<녹취> "쉿 조용히 하래."

안내인들이 이처럼 극도로 조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단속에 걸린 안내인들은 대부분 중국 법에 따라 인신매매범으로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변두리 지역의 한 임시 안전 가옥에 짐을 풀었습니다.

갑자기 강화된 단속에 한동안 이곳에서 숨어 지내기로 한 것인데요.

얼마 만에 찾은 휴식일까요, 이제야 그간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 놓을 수 있습니다.

2005년 북한을 탈출했다는 41살의 정모씨.

하지만 북한을 벗어나고도 곧바로 인신매매 브로커에 속아 중국의 한 농촌으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나를 이렇게 중국에 팔아서 나를, 자기가 돈을 받아서 장사하겠다는 목적이었단 말이에요. 그걸 또 훗날 알았어요."

이후 2명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같이 살던 중국인의 끊임없는 폭행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우린 살아도 인간 취급을 안 해줘요. 호구(주민등록)가 없고 하니까. 사람이 이렇게 참고 사는 것도 한두 번이잖아요. 중국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온 거 한국까지 가보려고요."

감시가 소홀했던 틈타, 7살 어린 딸과 한국행을 택해야만 했던 정씨.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새끼도 버리고 이렇게 나왔어요. 새끼 버렸다고 사람이 아니라고 욕은 하겠죠. 다 데리고 떠나고픈 마음은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힘이 안 되더라고요."

이런 사정은 정씨뿐만이 아닌데요.

꽃제비 출신인 31살 이모씨의 비극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먹을 것을 찾아 길거리를 떠도는 꽃제비 생활에 몰렸는데요.

<녹취> 이OO(탈북 여성/31살) : "굶어 죽어야만 되니까. 죽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야만 되니까요. 어떻게 해서 도둑질 해먹든 몸을 팔든 어떻게 살아야 되니까."

천신만고 끝에 10여 년 전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중국에 와서야 꽃제비 생활에선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은 브로커를 통해 팔려가야 했습니다.

<녹취> 이OO(탈북 여성/31살) : "(브로커가) 칼을 빼 드는데 그걸 보니까 막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중국 가서 남자 얻어서 살아라. 난 그렇게 절대 못한다고. 그러니까 그럼 아가씨 짓(성매매) 하라 그래요."

그렇게 농촌마을로 팔려가 끊임없는 폭행을 당해야했고, 결국 이 씨도 자식을 남겨놓고 살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녹취> 이OO(탈북 여성/31살) : "자식한테 미안한 건 많지만 남편한테 천대 받고 구박 받는 일이 너무 싫었어요. 인간 대접 못 받고 사는 게 너무 억울해서..."

다시 찾아온 아침 이제 마지막 관문을 향해 갑니다.

다시 천 킬로미터를 달려 도착한 곳은 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접경지역인데요.

국경을 넘는 마지막 코스 역시 전문 안내인이 따로 있습니다.

<녹취> 정00(탈북여성/41살) : "남자들은 내리지 말래요. (자 이따 봐요, 물 물 물.) 이제 산 넘어가는 거야? 자 이제 마지막. 파이팅."

몸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마지막 고개를 넘습니다.

인도를 걷다가 누가 볼 새라 재빨리 방향을 틀고, 농가 뒤쪽을 돌아 산으로 들어갑니다.

이제부터 제법 가파른 산길...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는 동안 카메라도 흔들립니다.

거칠기만 한 산길에 숨소리마저 가빠집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소리 내지 마라. 물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으니까 적당히 먹으라우."

앞장 선 안내인은 가지를 쳐서 길을 내줍니다.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국경상황 확인도 잊지 않습니다.

이런 산길만 7시간째, 하지만 이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긴 여정에 카메라 배터리도 방전, 촬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마지막 여정은, 무사히 끝을 맺었을까?

<녹취> 이00(탈북여성/31살) : "너무 춥고, 떨리고, 얘는 자꾸 울지. 연락도 안 되지. 말도 모르지. 찾아올 방법도 없어 될 대로 되라고. 나는 북한으로 가든 어디로 가든, 마음 대로 해라."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야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합니다.

<녹취> 정OO(탈북 여성/41살) : "다 여기서 안전하게 있으니까 우리 이제 여권을 만든단 말이에요. 우리 것, 지금 다 이름이 올라갔어요."

이제 간다고 하니까 긴장되고, 되게. 아까까지만 해도 모르겠는데 (대사관으로) 딱 간다고 하니까.

거기만 들어가면 끝, 통과. 간첩인지 조사하는데 간첩 아니잖아요. 간첩만 아니면 돼요.

목숨을 걸고 달려온 여정. 생사를 오갔던 20여일의 사투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녹취> "수고 많았습니다. 들어가죠."

중국 대륙을 관통하고 동남아를 거쳐 한국까지, 만 킬로미터의 여정.

아마 전문 안내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쯤 누군가 한 명 또는 모두에게 오늘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녹취> 탈북 루트 안내인 : "현재 구출한 인명 가지고 있는 것만 한 이천 명, 삼천 명 가지고 있어요. 내가 직접 브로커들, 중계인들 연계해서 보내온 사람들 받아서 안내만 한 거예요. 안내자죠."

뿐만 아니라 잠시라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준 안전가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더욱 교묘해진 단속에 탈북 루트는 점점 좁아지기만 합니다.

<녹취>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 :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던 곳이 털린 적도 있었어요? (많죠. 공안(경찰)이 들이닥치거나 아니면 (북한) 보위부에서 한국 가고 싶어 하는 탈북자라고 위장해서 오거나. 그런 게 많죠.)"

인권단체가 추정하는 중국 내 탈북 여성과 그 자녀들은 최대 6만 명.

하지만 국적이 없다보니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습니다.

비극이 낳은 또 다른 비극.

분단의 세월은 또 다른 상처만을 남기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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