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폐허로 변한 볼티모어…폭동이 남긴 것은?

입력 2015.05.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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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로 변한 볼티모어…전쟁터가 따로 없다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TV를 통해 전해진 볼티모어는 약탈과 방화가 뒤덮은 무법천지였습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하철 역 주변 CVS와 상점들은 붉은 화염에 휩싸였고, 거리는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청소년과 흑인 시위대로 들끓었습니다. 기세등등한 폭도들의 위세 속에 경찰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25살의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평화롭던 볼티모어는 악마의 모습으로 돌변했습니다. 경찰력으로는 한계를 느낀 래리 호갠 메릴랜드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밤 10시를 기해 통해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수 천명의 주 방위군도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취재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볼티모어는 워싱턴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

하지만 현장에 접근한다는 건 상당한 고민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한인회를 접촉해 현지 상황을 알아봤지만 지금 당장 이곳에 오는 건 위험하다며 이구동성으로 취재진을 말렸습니다.

심지어 한인 업주들조차 눈 앞에 피해를 지켜보다가 경찰들에 의해 모두 현장에서 쫓겨난 상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날이 밝자 접한 볼티모어의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상점들은 흉칙한 몰골을 드러냈고, 상점 곳곳엔 잔인한 약탈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나오는 건 한숨 뿐”

그로부터 나흘 뒤 소요 사태가 잠시 진정된 볼티모어를 찾았습니다.

대낮이었는데도 폭동의 중심지인 몬다우민 몰과 펜 노스 스테이션 부근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상공에는 경찰 헬기가 순찰 비행중이고, 중무장한 주 방위군과 경찰은 뒷 골목까지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피해 상황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한인업주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뷰티 서플라이, 지난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도 한인 분들이 많이 운영하는 바로 미용용품 업소를 경영하는 업주분이었습니다. 흑인들이 워낙 억센 곱슬머리를 갖고 있다보니 헤어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곤 해서 흑인 밀집지역에선 한인들이 운영하는 미용용품 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본 업소는 피해를 가늠하기 쉽지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나무 판자로 덧대어 놓아 약탈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주분을 설득해 문을 열자 눈 앞에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난장판으로 변한 550여 제곱미터 규모의 상점 내부에 남은 것이라곤 가발을 씌어 놓았던 마네킹 뿐이었습니다. 쇠철망까지 휘고 들어온 폭도들은 아예 옆문에 차를 대놓고 가게를 싹쓸이 해갔습니다. 가게와 붙어있는 테이크 아웃 전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까지 파악된 피해는 대략 6억 여원, 할말을 잃은 업주분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2억원 정도의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바로 옆 주류 판매점은 매케한 냄새가 코를 가득했습니다. 27일 저녁 7시 반쯤, 가게를 급습한 폭도들은 물건을 훔쳐내고 불까지 질렀습니다. 불과 한 시간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별일 있겠냐며 지켜보던 업주는 황급히 셔터 문을 내리다 폭도들에게 얼굴을 폭행 당하고, 2층으로 피신했지만 쳐들어오는 폭도들을 피해 뛰어 내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다리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폭행 부위 치료를 위해 사흘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방화로 건물 전체가 불타버린 업소, 평소 주인밖에 모르는 지하 보관창고까지 털린 업주들은 10년 이상 상점을 운영해도 이같은 일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만큼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스스로를 폭도들로부터 보호한 경우도 있습니다.

20여 년전 LA 폭동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약탈을 당한 경험을 가진 한 업주는 스스로 권총 등으로 무장한 뒤 가게로 쳐들어오려는 폭도들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집계된 한인업소의 피해는 약 백 여군데, 피해를 당한 2백 여 업소의 절반이니 한인 업주들의 피해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주 정부는 즉각적인 피해 실태 파악에 나섰습니다. 특히 래리 호갠 주지사의 부인이 한국 출신인만큼 한인 업소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심야에 열린 교민 비상 대책회의에 직접 나온 주지사 부인 유미 호갠 여사는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인 피해에 대한 걱정과 함께 실질적인 대책을 약속했습니다.

■ 사태의 발단은? 향후 재발은?

35살 젊은 여 검사의 전격적인 기소 결정으로 경찰 6명이 재판에 회부되면서 사태는 진정국면 양상입니다.

볼티모어 시장도 경찰복에 카메라를 부착해 향후 있을 지도 모를 과잉진압 등을 모니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은 잠재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흑백 갈등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실례로,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볼티모어 사태를 놓고 흑백의 응답은 확연히 엇갈렸습니다.

흑인 응답자의 60%는 경찰이 흑인을 부당하게 대우한데 대한 오랜 불만 때문이라고 지적한 반면, 백인 응답자의 58%는 약탈의 구실을 찾으려는 자들의 폭동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의 5월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가 흑백 인종간 관계가 나빠졌다고 답했습니다.

퍼거슨에 이어 볼티모어, 그리고 또 어디에서 불거질지 모르는 인종갈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예고하는 셈입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이후 흑백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판과 아이러니 속에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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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폐허로 변한 볼티모어…폭동이 남긴 것은?
    • 입력 2015-05-09 14:04:31
    취재후·사건후
■ 폐허로 변한 볼티모어…전쟁터가 따로 없다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TV를 통해 전해진 볼티모어는 약탈과 방화가 뒤덮은 무법천지였습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하철 역 주변 CVS와 상점들은 붉은 화염에 휩싸였고, 거리는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청소년과 흑인 시위대로 들끓었습니다. 기세등등한 폭도들의 위세 속에 경찰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25살의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 평화롭던 볼티모어는 악마의 모습으로 돌변했습니다. 경찰력으로는 한계를 느낀 래리 호갠 메릴랜드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밤 10시를 기해 통해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수 천명의 주 방위군도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취재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볼티모어는 워싱턴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 하지만 현장에 접근한다는 건 상당한 고민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한인회를 접촉해 현지 상황을 알아봤지만 지금 당장 이곳에 오는 건 위험하다며 이구동성으로 취재진을 말렸습니다. 심지어 한인 업주들조차 눈 앞에 피해를 지켜보다가 경찰들에 의해 모두 현장에서 쫓겨난 상황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날이 밝자 접한 볼티모어의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상점들은 흉칙한 몰골을 드러냈고, 상점 곳곳엔 잔인한 약탈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나오는 건 한숨 뿐” 그로부터 나흘 뒤 소요 사태가 잠시 진정된 볼티모어를 찾았습니다. 대낮이었는데도 폭동의 중심지인 몬다우민 몰과 펜 노스 스테이션 부근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상공에는 경찰 헬기가 순찰 비행중이고, 중무장한 주 방위군과 경찰은 뒷 골목까지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피해 상황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한인업주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뷰티 서플라이, 지난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도 한인 분들이 많이 운영하는 바로 미용용품 업소를 경영하는 업주분이었습니다. 흑인들이 워낙 억센 곱슬머리를 갖고 있다보니 헤어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곤 해서 흑인 밀집지역에선 한인들이 운영하는 미용용품 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본 업소는 피해를 가늠하기 쉽지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나무 판자로 덧대어 놓아 약탈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주분을 설득해 문을 열자 눈 앞에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난장판으로 변한 550여 제곱미터 규모의 상점 내부에 남은 것이라곤 가발을 씌어 놓았던 마네킹 뿐이었습니다. 쇠철망까지 휘고 들어온 폭도들은 아예 옆문에 차를 대놓고 가게를 싹쓸이 해갔습니다. 가게와 붙어있는 테이크 아웃 전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까지 파악된 피해는 대략 6억 여원, 할말을 잃은 업주분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2억원 정도의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바로 옆 주류 판매점은 매케한 냄새가 코를 가득했습니다. 27일 저녁 7시 반쯤, 가게를 급습한 폭도들은 물건을 훔쳐내고 불까지 질렀습니다. 불과 한 시간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별일 있겠냐며 지켜보던 업주는 황급히 셔터 문을 내리다 폭도들에게 얼굴을 폭행 당하고, 2층으로 피신했지만 쳐들어오는 폭도들을 피해 뛰어 내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다리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폭행 부위 치료를 위해 사흘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방화로 건물 전체가 불타버린 업소, 평소 주인밖에 모르는 지하 보관창고까지 털린 업주들은 10년 이상 상점을 운영해도 이같은 일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만큼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스스로를 폭도들로부터 보호한 경우도 있습니다. 20여 년전 LA 폭동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약탈을 당한 경험을 가진 한 업주는 스스로 권총 등으로 무장한 뒤 가게로 쳐들어오려는 폭도들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집계된 한인업소의 피해는 약 백 여군데, 피해를 당한 2백 여 업소의 절반이니 한인 업주들의 피해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주 정부는 즉각적인 피해 실태 파악에 나섰습니다. 특히 래리 호갠 주지사의 부인이 한국 출신인만큼 한인 업소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심야에 열린 교민 비상 대책회의에 직접 나온 주지사 부인 유미 호갠 여사는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인 피해에 대한 걱정과 함께 실질적인 대책을 약속했습니다. ■ 사태의 발단은? 향후 재발은? 35살 젊은 여 검사의 전격적인 기소 결정으로 경찰 6명이 재판에 회부되면서 사태는 진정국면 양상입니다. 볼티모어 시장도 경찰복에 카메라를 부착해 향후 있을 지도 모를 과잉진압 등을 모니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은 잠재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흑백 갈등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실례로,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볼티모어 사태를 놓고 흑백의 응답은 확연히 엇갈렸습니다. 흑인 응답자의 60%는 경찰이 흑인을 부당하게 대우한데 대한 오랜 불만 때문이라고 지적한 반면, 백인 응답자의 58%는 약탈의 구실을 찾으려는 자들의 폭동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의 5월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가 흑백 인종간 관계가 나빠졌다고 답했습니다. 퍼거슨에 이어 볼티모어, 그리고 또 어디에서 불거질지 모르는 인종갈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예고하는 셈입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이후 흑백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판과 아이러니 속에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 [지금 세계는] “이런 일은 처음”…폐허로 변한 한인업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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