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국적 강조한 외국인 범죄 보도

입력 2015.05.10 (17:09) 수정 2015.05.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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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하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보도 태도에 따라 외국인이나 이주민들과 갈등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오히려 편견을 더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불거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우리 사회의 외국인 범죄를 다룬 보도는 우리 언론의 인식 수준을 가늠해 볼 만한 사례들입니다.

오늘은 먼저 이 문제를 최서희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최서희 기자! 지난달 미국 볼티모어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죠.

우리 언론들도 이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는데, 어떤 관점에서 다뤘나요?

<답변>
네, 많은 언론들이 재난이나 사건사고를 다루듯이 볼티모어 시위 소식을 전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시위가 왜 발생했고 시위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리포트>

미국 볼티모어시 경찰이 흉기를 소지한 한 흑인 청년을 과격하게 진압한 뒤 연행하자 목격자가 거세게 항의합니다.

<녹취> 목격자 : "그 청년 발이 부러졌잖아요. 왜 그런 식으로 끌고 가요?"

프레디 그레이라는 이 청년은 체포된 지 일주일 만에 숨졌습니다.

그러자 볼티모어 시를 중심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에 반발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대의 상당수는 고등학생이었고 시위 초기만 해도 우리 언론들은 이 사안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만 관련 소식을 전했고 다른 일간지나 지상파 방송은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가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로 번진 지난달 25일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SBS 8시 뉴스(4.28) : “승용차 위에 올라가 창문 등을 마구 부수는가 하면”

<녹취> MBC 뉴스데스크(4.29) : “경찰차를 부수고 경찰들에게 돌과 집기를 집어던집니다.”

<녹취> KBS 뉴스9(4.28) : “항의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도심은 무법천지로 변했습니다“

신문들도 ‘흑인 폭동’, ‘약탈’이나 ‘전쟁터’ 같은 표현을 쓰며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부각시켰습니다.

특히, 한인사회의 피해 규모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YTN(4.29) : “밤새 약탈 사태도 잇따르면서 한인 업소 수십 곳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부 과격시위대의 폭력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고 언론의 비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전체 시위대의 성향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미국 현지 시민사회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녹취> KBS 뉴스라인(4.30) : “시민들은 뉴스에 나오는 방화나 약탈은 시위대 일부가 한 행동일 뿐, 지역민 대부분은 평화를 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의 원인은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흑인과 백인 간의 경제적인 격차 등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가 터져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이런 부분을 상세히 다룬 언론은 드물었습니다.

<녹취> 경향신문(4.29) : “흑백 빈부격차, 불평등 근본 원인...흑인 밀집지역 백인 경찰 비율 높아”

<인터뷰> 박경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사회학과 교수) : “주기적으로 흑인 폭동이 일어나고 있고 남미계에 의한 폭동들도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원인을 갖고 있는 것인데 현상 중심으로 사람들이 바라보기 때문에 감춰져 있는 구조적인 부분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수자들이, 이방인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무엇인가를 언론이 밝혀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이 이번 시위의 배경이나 원인보다는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더 초점을 맞춘 이유는 뭔가요?

<답변>
네, 미국의 인종 문제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진 국제 전문기자가 부족한데다, 국제뉴스의 경우 CNN 같은 외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도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리포트>

볼티모어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자 미국 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폭력으로 얼룩진 시가지를 생중계했습니다.

CNN 등 주요 언론사까지 흑인 시위대를 ‘폭력배’로 묘사하고, 비난하는 표현을 썼습니다.

<녹취> CNN(4.28) : “이들은 살인자입니다. 이 폭력배들이 도시에 대한 테러 말고 공익을 위한 좋은 일이나 어떤 일을 한다는 주장은 우습네요"

이런 외신들의 보도는 국내 언론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미디어인사이드는 프레디 그레이의 사망 소식이 처음 보도된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4일까지 10개 일간지의 관련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63건의 기사에서 모두 87건의 외신 기사가 인용됐습니다. 미국의 통신사 AP가 39%로 가장 많았고 CNN이 16%으로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미국 언론들의 시각이 상당수, 우리나라의 언론들의 기사에 그대로 반영된 겁니다.

<인터뷰> 채영길(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볼티모어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가 주요 자료 화면을 받는 것이 해외의 주요 언론사 그리고 통신사들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들 자체가 자료화면들이 굉장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자료화면을 많이 의제화를 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아예 폭력집단으로 묘사하는 것이죠. 이것이 재가공되서 한국의 수용자들에게 전달되는데요, 이런 것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지난, 1992년 발생한 ‘LA폭동’ 사건은 미국의 경찰관이 흑인 운전사 ‘로드니 킹’을 폭행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언론매체들이 한인 업체의 피해에 집중하면서 전반적인 폭동의 원인이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에 의해 야기된 것처럼 비화됐습니다.

<녹취> 시카고 트리뷴(1992.5.8) : “한인-흑인 간의 적대감이 폭동에 기름을 부었다”

일부 미국 언론은 일부 한인들의 개인적 편견을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녹취> 뉴욕타임스(1992.5.3) : “내 생각에 흑인들은 한국인들을 질투한다, 흑인들은 게으르다”

이같은 보도 이후, 흑인들은 한인 상점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는 등, 갈등은 더욱 증폭됐습니다.

<질문>
우리 사회도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는 만큼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이 더 이상 남의 일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이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등 외국인에 대해 어떤 태도로 보도하고 있나요?

<답변>
네, 이주노동자를 위한 대책과 같이 갈등을 줄이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 외국인 범죄가 발생 할 때, 그것도 인종과 국적을 강조해 보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포트>

우리 언론들은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들의 범죄가 발생하면 제목에 특별히 범인의 ‘출신 국적’을 붙여 강조합니다.

<녹취> 머니투데이(4.14) : “생활비 줄게 위장 결혼하자 한 국적 취득한 파키스타인”

<녹취> 뉴스1(5.3) : “술 마시던 친구 흉기 찌른 베트남 불법체류자 검거”

특히, 중국 동포의 범죄를 다룰 때는 잔혹한 범행수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과거의 사건들을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녹취> SBS뉴스(4.8) : “지난 2012년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오원춘, 지난해 11월 동거녀를 살해한 박춘풍, 그리고 이번에김하일까지 모두 중국 동포들입니다. 세명 모두 시신을 심하게 훼손한 뒤 버렸습니다.”

또, 중국인 밀집지역 전체를 ‘우범지역, 범죄지역’으로 묘사하는 보도도 적지 않습니다.

<녹취> TV조선(04.12) : “경기 남부지역에선...주말 밤이면 무법천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보도는 자칫, 대다수의 선량한 이주민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소모뚜 이주민 인권활동가 :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자기 삶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노동권이나 이런 걸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이런 면에서 보도를 해주지 않고 더구나 범죄자로서 명칭을 딱 붙이고 얘길하니 서운하죠”

실제 인구비례에 따른 범죄율은 외국인이 내국인의 절반 이하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이 외국인 범죄를 강조하는 보도를 하면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는 해당 이주민 집단 전체에 대해 혐오성 글들이 쏟아집니다.

또, 외국인 범죄를 강조하는 보도는, 화합보다는 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범죄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우형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외국인들에게 주어진 부정적인 인식들이 결국에는 낙인효과를 나타내서 외국인 소수 집단들이 주류 사회에서 분리되고 고립됨으로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죠."

<질문>
이주민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데, 이들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이 참 아쉽습니다.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를 개선할 방안이 없을까요?

<답변>
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일찍 소수인종에 대한 언론보도가 문제가 된 해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합니다.

<리포트>

지난 2012년, 미국 NBA 농구 스타로 급부상한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

당시,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ESPN은 제레미 린의 경기와 관련한 보도에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녹취> 맥스 브래토스(ESPN 앵커) : "린은 흔들림 없이 잘 뛰었지만,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린은 어떻게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문제가 된 문장은 Chink in the armor.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이 말에서 칭크(Chink)는 ‘찢어진 눈’을 뜻하는 속어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파문이 커지자, ESPN은 해당 기사를 35분 만에 내리면서 사과성명을 올렸고 담당기자를 해고했습니다.

당시, 전미아시아기자협회(AAJA)는 인종차별을 방지하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7가지 문구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녹취> “칭크: 경멸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해 이 표현을 사용하지 마라.."

사실, 우리 언론도 이미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언론보도의 준칙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인권보도 준칙은 언론이 다양한 문화를 존중해야 하고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함께 언론인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인터뷰> 채영길(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언론이나 방송 쪽 하시는 분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재교육 그리고 윤리적인 차원에 있어서의 인식 문제 이런 것들이 평소에 사회적으로 논의가 되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재교육들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지만 되지..”

다문화 시대에 인종주의, 민족주의적인 언론의 보도 태도는 또 다른 ‘차별’과 ‘갈등’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언론도 이주민이나 외국인을 더 이상 ‘남’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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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국적 강조한 외국인 범죄 보도
    • 입력 2015-05-10 17:27:35
    • 수정2015-05-10 22:07:04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하면서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보도 태도에 따라 외국인이나 이주민들과 갈등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오히려 편견을 더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불거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우리 사회의 외국인 범죄를 다룬 보도는 우리 언론의 인식 수준을 가늠해 볼 만한 사례들입니다.

오늘은 먼저 이 문제를 최서희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최서희 기자! 지난달 미국 볼티모어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죠.

우리 언론들도 이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는데, 어떤 관점에서 다뤘나요?

<답변>
네, 많은 언론들이 재난이나 사건사고를 다루듯이 볼티모어 시위 소식을 전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시위가 왜 발생했고 시위대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리포트>

미국 볼티모어시 경찰이 흉기를 소지한 한 흑인 청년을 과격하게 진압한 뒤 연행하자 목격자가 거세게 항의합니다.

<녹취> 목격자 : "그 청년 발이 부러졌잖아요. 왜 그런 식으로 끌고 가요?"

프레디 그레이라는 이 청년은 체포된 지 일주일 만에 숨졌습니다.

그러자 볼티모어 시를 중심으로 경찰의 과잉진압에 반발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대의 상당수는 고등학생이었고 시위 초기만 해도 우리 언론들은 이 사안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만 관련 소식을 전했고 다른 일간지나 지상파 방송은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가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로 번진 지난달 25일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SBS 8시 뉴스(4.28) : “승용차 위에 올라가 창문 등을 마구 부수는가 하면”

<녹취> MBC 뉴스데스크(4.29) : “경찰차를 부수고 경찰들에게 돌과 집기를 집어던집니다.”

<녹취> KBS 뉴스9(4.28) : “항의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도심은 무법천지로 변했습니다“

신문들도 ‘흑인 폭동’, ‘약탈’이나 ‘전쟁터’ 같은 표현을 쓰며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부각시켰습니다.

특히, 한인사회의 피해 규모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YTN(4.29) : “밤새 약탈 사태도 잇따르면서 한인 업소 수십 곳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부 과격시위대의 폭력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고 언론의 비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전체 시위대의 성향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미국 현지 시민사회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녹취> KBS 뉴스라인(4.30) : “시민들은 뉴스에 나오는 방화나 약탈은 시위대 일부가 한 행동일 뿐, 지역민 대부분은 평화를 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의 원인은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흑인과 백인 간의 경제적인 격차 등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다가 터져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많지만 이런 부분을 상세히 다룬 언론은 드물었습니다.

<녹취> 경향신문(4.29) : “흑백 빈부격차, 불평등 근본 원인...흑인 밀집지역 백인 경찰 비율 높아”

<인터뷰> 박경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사회학과 교수) : “주기적으로 흑인 폭동이 일어나고 있고 남미계에 의한 폭동들도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원인을 갖고 있는 것인데 현상 중심으로 사람들이 바라보기 때문에 감춰져 있는 구조적인 부분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수자들이, 이방인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무엇인가를 언론이 밝혀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이 이번 시위의 배경이나 원인보다는 일부 과격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더 초점을 맞춘 이유는 뭔가요?

<답변>
네, 미국의 인종 문제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진 국제 전문기자가 부족한데다, 국제뉴스의 경우 CNN 같은 외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도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리포트>

볼티모어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자 미국 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폭력으로 얼룩진 시가지를 생중계했습니다.

CNN 등 주요 언론사까지 흑인 시위대를 ‘폭력배’로 묘사하고, 비난하는 표현을 썼습니다.

<녹취> CNN(4.28) : “이들은 살인자입니다. 이 폭력배들이 도시에 대한 테러 말고 공익을 위한 좋은 일이나 어떤 일을 한다는 주장은 우습네요"

이런 외신들의 보도는 국내 언론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미디어인사이드는 프레디 그레이의 사망 소식이 처음 보도된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4일까지 10개 일간지의 관련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63건의 기사에서 모두 87건의 외신 기사가 인용됐습니다. 미국의 통신사 AP가 39%로 가장 많았고 CNN이 16%으로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미국 언론들의 시각이 상당수, 우리나라의 언론들의 기사에 그대로 반영된 겁니다.

<인터뷰> 채영길(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볼티모어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가 주요 자료 화면을 받는 것이 해외의 주요 언론사 그리고 통신사들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들 자체가 자료화면들이 굉장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자료화면을 많이 의제화를 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아예 폭력집단으로 묘사하는 것이죠. 이것이 재가공되서 한국의 수용자들에게 전달되는데요, 이런 것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지난, 1992년 발생한 ‘LA폭동’ 사건은 미국의 경찰관이 흑인 운전사 ‘로드니 킹’을 폭행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언론매체들이 한인 업체의 피해에 집중하면서 전반적인 폭동의 원인이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에 의해 야기된 것처럼 비화됐습니다.

<녹취> 시카고 트리뷴(1992.5.8) : “한인-흑인 간의 적대감이 폭동에 기름을 부었다”

일부 미국 언론은 일부 한인들의 개인적 편견을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녹취> 뉴욕타임스(1992.5.3) : “내 생각에 흑인들은 한국인들을 질투한다, 흑인들은 게으르다”

이같은 보도 이후, 흑인들은 한인 상점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는 등, 갈등은 더욱 증폭됐습니다.

<질문>
우리 사회도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는 만큼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이 더 이상 남의 일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들이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등 외국인에 대해 어떤 태도로 보도하고 있나요?

<답변>
네, 이주노동자를 위한 대책과 같이 갈등을 줄이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 외국인 범죄가 발생 할 때, 그것도 인종과 국적을 강조해 보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포트>

우리 언론들은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들의 범죄가 발생하면 제목에 특별히 범인의 ‘출신 국적’을 붙여 강조합니다.

<녹취> 머니투데이(4.14) : “생활비 줄게 위장 결혼하자 한 국적 취득한 파키스타인”

<녹취> 뉴스1(5.3) : “술 마시던 친구 흉기 찌른 베트남 불법체류자 검거”

특히, 중국 동포의 범죄를 다룰 때는 잔혹한 범행수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과거의 사건들을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녹취> SBS뉴스(4.8) : “지난 2012년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오원춘, 지난해 11월 동거녀를 살해한 박춘풍, 그리고 이번에김하일까지 모두 중국 동포들입니다. 세명 모두 시신을 심하게 훼손한 뒤 버렸습니다.”

또, 중국인 밀집지역 전체를 ‘우범지역, 범죄지역’으로 묘사하는 보도도 적지 않습니다.

<녹취> TV조선(04.12) : “경기 남부지역에선...주말 밤이면 무법천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보도는 자칫, 대다수의 선량한 이주민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소모뚜 이주민 인권활동가 :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자기 삶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노동권이나 이런 걸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이런 면에서 보도를 해주지 않고 더구나 범죄자로서 명칭을 딱 붙이고 얘길하니 서운하죠”

실제 인구비례에 따른 범죄율은 외국인이 내국인의 절반 이하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이 외국인 범죄를 강조하는 보도를 하면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는 해당 이주민 집단 전체에 대해 혐오성 글들이 쏟아집니다.

또, 외국인 범죄를 강조하는 보도는, 화합보다는 갈등을 부추겨 오히려 범죄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우형진(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외국인들에게 주어진 부정적인 인식들이 결국에는 낙인효과를 나타내서 외국인 소수 집단들이 주류 사회에서 분리되고 고립됨으로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이죠."

<질문>
이주민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데, 이들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이 참 아쉽습니다.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를 개선할 방안이 없을까요?

<답변>
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일찍 소수인종에 대한 언론보도가 문제가 된 해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합니다.

<리포트>

지난 2012년, 미국 NBA 농구 스타로 급부상한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

당시,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ESPN은 제레미 린의 경기와 관련한 보도에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녹취> 맥스 브래토스(ESPN 앵커) : "린은 흔들림 없이 잘 뛰었지만,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린은 어떻게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문제가 된 문장은 Chink in the armor.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이 말에서 칭크(Chink)는 ‘찢어진 눈’을 뜻하는 속어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파문이 커지자, ESPN은 해당 기사를 35분 만에 내리면서 사과성명을 올렸고 담당기자를 해고했습니다.

당시, 전미아시아기자협회(AAJA)는 인종차별을 방지하는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7가지 문구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녹취> “칭크: 경멸어: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해 이 표현을 사용하지 마라.."

사실, 우리 언론도 이미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언론보도의 준칙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인권보도 준칙은 언론이 다양한 문화를 존중해야 하고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함께 언론인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인터뷰> 채영길(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언론이나 방송 쪽 하시는 분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재교육 그리고 윤리적인 차원에 있어서의 인식 문제 이런 것들이 평소에 사회적으로 논의가 되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재교육들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지만 되지..”

다문화 시대에 인종주의, 민족주의적인 언론의 보도 태도는 또 다른 ‘차별’과 ‘갈등’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언론도 이주민이나 외국인을 더 이상 ‘남’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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