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밑에 있던 고양이, 갑자기 공격

입력 2015.05.13 (15:52) 수정 2015.05.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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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대덕구에 사는 30대 여성 이미영씨(가명)는 2주 전에 겪은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4세, 6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볼일을 보러 가는 중 자동차 밑에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이씨의 다리로 달려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씨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고양이의 발톱은 이씨의 피부에 닿지 않은 채 그녀의 청바지에 박혔다. 이씨는 고양이를 떼고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청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고 있었다면 다리가 찢어졌을 것 같다"고 그때 일을 회상했다.

그런데 이씨가 고양이 때문에 봉변을 당한 것은 이 일만이 아니다. 그녀가 사는 주택의 대문과 현관문 사이에는 6.6㎡ 정도 크기의 텃밭이 있다. 그녀는 그 텃밭에 씨를 뿌려 채소를 가꾸는데, 고양이가 이 텃밭을 헤집어 놓고 거기에 배변을 보고 가기 일쑤다.

그녀의 남편은 빙초산을 뿌려 고양이의 접근을 막았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대문 밑에 나무 조각을 끼워 넣어 고양이가 들어오는 틈새를 막아 버렸다.

이씨는 "이웃집에서는 개에게 준 밥을 고양이가 다 먹고 간다"며 "요즘 고양이들은 무서운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경기 용인에 사는 박승원씨(35)의 네 살배기 아들은 고양이가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지난달 아파트 단지 내에서 고양이가 비둘기를 물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 뒤부터다.

주말 오전 나들이를 하기 위해 외출한 박씨 가족 앞으로 한 고양이가 비둘기를 입에 문 채로 유유히 걸어갔다. 박씨 부부도 놀랐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들이었다. 박씨는 "그 고양이를 본 뒤로 아이가 멀리서 고양이가 보이면 깜짝 놀라 엄마 뒤에 숨는다"며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 개체수 늘고 먹이는 부족…야생성 강해지는 길고양이

서울시는 주인 없이 길에서 사는 고양이가 서울에만 25만 마리 이상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수백만 마리의 길고양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주인 없는 고양이들은 주로 쥐나 비둘기를 잡아먹거나 사람들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어 배를 채운다. 실제 고양이와 관련한 민원 가운데 상당수는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아 생활 환경이 더러워졌다는 내용이다. 배고픈 길고양이로 인한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간혹 고양이가 비둘기 등을 사냥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고양이의 야생성에 놀라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성신여대 생명과학화학부 전용필 교수는 "주인이 없이 길에서 떠도는 고양이들의 사냥 능력은 당연한 것"이라며 "먹이가 부족한 고양이가 비둘기 등을 잡아먹는 것은 동물 행동 측면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길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고양이들을 가엽게 여겨 먹이를 챙겨주는 이른바 캣맘, 캣대디들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사비를 들여 고양이 사료를 구입해 정해진 곳에 둔다. 캣맘의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지며 힘겹게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된다.



◆ 고양이 급식, 결코 고양이 위한 게 아니다?

하지만 먹이를 주는 행동이 결코 고양이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쉽게 배를 채우는 고양이들은 생식 능력이 활발해져 그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음 등 고양이에 따른 사람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고양이들의 먹이 부족 현상도 해결되기 어렵다. 여기에 동물 종의 특성상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주무관(수의사)은 "고양이는 뛰어난 번식력을 갖고 있어 먹이를 쉽게 얻는다면 출산율이 매우 높아진다"며 "개체 수가 많아지면 전염병이 돌아서 새끼가 몰살당할 위험이 커진다.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 고양이의 생활 환경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무분별한 길고양이 급식은 이웃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지난 7일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새끼 고양이가 고양이 사료통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돼 충격을 줬다. 이 사료통은 한 아파트 주민 A씨가 설치한 것이다. 그는 2010년부터 아파트 20여곳에 사료통을 설치하고 길고양이를 돌봤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악취와 병균 전염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고양이 급식을 반대하면서 A씨와 다른 주민 간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고양이 급식을 반대하는 주민이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범인을 찾고 있다.

길고양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작정 눈에 보이는 고양이들을 없애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길고양이는 특정 영역을 몇 마리가 공유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한 지역의 길고양이를 모두 제거하더라도 이웃의 고양이가 들어와 처음과 같은 개체 수가 될 때까지 번식하게 된다. 이를 진공효과라고 한다.



◆ 사람과 길고양이, 공존하는 방법은?

따라서 먹이 급식은 중성화 수술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렇게 되면 개체 수 증가에 대한 우려 없이 길고양이의 야생성을 감소시켜 사람과의 공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길에 사는 고양이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불임 수술)을 시킨 뒤 돌려보내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에서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총 3만7865마리의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을 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강동구는 고양이와 구민 간 공존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강동구는 2013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했다. 기존 47개였던 급식소는 올해부터 60개로 확대됐다.

강동구는 지역 곳곳에 급식소를 마련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일부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있다. 급식소 운영으로 포획이 쉬워지면서 급식소 운영 전 월 평균 8.8건이었던 중성화 수술 횟수는 운영 후 월 21.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양이 관련 민원이 줄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급식소 운영과 중성화 수술을 병행한 뒤부터 고양이 피해를 고발하는 민원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현행 중성화 사업에 보다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TNR에 참여했다고 밝힌 한 여성은 12일 서울 서소문 별관에서 열린 '서울동물복지계획 2020 현황과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현재의 TNR 사업은 동물 학대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녀는 "용산에서 포획된 길고양이는 애견업자가 포획하기 때문에 최소 하루 이상 강아지에 둘러싸인 채 생활하고 병원으로 인계돼도 수의사가 여유가 있을 때에 중성화 수술이 이뤄져 대기 시간이 길다"며 "지나치게 오랫동안 자신의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제자리로 돌려 보내지지 않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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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 밑에 있던 고양이, 갑자기 공격
    • 입력 2015-05-13 15:52:58
    • 수정2015-05-13 19:05:50
    사회
# 대전 대덕구에 사는 30대 여성 이미영씨(가명)는 2주 전에 겪은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4세, 6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볼일을 보러 가는 중 자동차 밑에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이씨의 다리로 달려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씨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고양이의 발톱은 이씨의 피부에 닿지 않은 채 그녀의 청바지에 박혔다. 이씨는 고양이를 떼고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청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고 있었다면 다리가 찢어졌을 것 같다"고 그때 일을 회상했다.

그런데 이씨가 고양이 때문에 봉변을 당한 것은 이 일만이 아니다. 그녀가 사는 주택의 대문과 현관문 사이에는 6.6㎡ 정도 크기의 텃밭이 있다. 그녀는 그 텃밭에 씨를 뿌려 채소를 가꾸는데, 고양이가 이 텃밭을 헤집어 놓고 거기에 배변을 보고 가기 일쑤다.

그녀의 남편은 빙초산을 뿌려 고양이의 접근을 막았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대문 밑에 나무 조각을 끼워 넣어 고양이가 들어오는 틈새를 막아 버렸다.

이씨는 "이웃집에서는 개에게 준 밥을 고양이가 다 먹고 간다"며 "요즘 고양이들은 무서운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 경기 용인에 사는 박승원씨(35)의 네 살배기 아들은 고양이가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지난달 아파트 단지 내에서 고양이가 비둘기를 물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 뒤부터다.

주말 오전 나들이를 하기 위해 외출한 박씨 가족 앞으로 한 고양이가 비둘기를 입에 문 채로 유유히 걸어갔다. 박씨 부부도 놀랐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들이었다. 박씨는 "그 고양이를 본 뒤로 아이가 멀리서 고양이가 보이면 깜짝 놀라 엄마 뒤에 숨는다"며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 개체수 늘고 먹이는 부족…야생성 강해지는 길고양이

서울시는 주인 없이 길에서 사는 고양이가 서울에만 25만 마리 이상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수백만 마리의 길고양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주인 없는 고양이들은 주로 쥐나 비둘기를 잡아먹거나 사람들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어 배를 채운다. 실제 고양이와 관련한 민원 가운데 상당수는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아 생활 환경이 더러워졌다는 내용이다. 배고픈 길고양이로 인한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간혹 고양이가 비둘기 등을 사냥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고양이의 야생성에 놀라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성신여대 생명과학화학부 전용필 교수는 "주인이 없이 길에서 떠도는 고양이들의 사냥 능력은 당연한 것"이라며 "먹이가 부족한 고양이가 비둘기 등을 잡아먹는 것은 동물 행동 측면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길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고양이들을 가엽게 여겨 먹이를 챙겨주는 이른바 캣맘, 캣대디들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사비를 들여 고양이 사료를 구입해 정해진 곳에 둔다. 캣맘의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지며 힘겹게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된다.



◆ 고양이 급식, 결코 고양이 위한 게 아니다?

하지만 먹이를 주는 행동이 결코 고양이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쉽게 배를 채우는 고양이들은 생식 능력이 활발해져 그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음 등 고양이에 따른 사람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고양이들의 먹이 부족 현상도 해결되기 어렵다. 여기에 동물 종의 특성상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주무관(수의사)은 "고양이는 뛰어난 번식력을 갖고 있어 먹이를 쉽게 얻는다면 출산율이 매우 높아진다"며 "개체 수가 많아지면 전염병이 돌아서 새끼가 몰살당할 위험이 커진다. 먹이를 주는 것만으로 고양이의 생활 환경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더구나 무분별한 길고양이 급식은 이웃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지난 7일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새끼 고양이가 고양이 사료통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돼 충격을 줬다. 이 사료통은 한 아파트 주민 A씨가 설치한 것이다. 그는 2010년부터 아파트 20여곳에 사료통을 설치하고 길고양이를 돌봤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악취와 병균 전염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고양이 급식을 반대하면서 A씨와 다른 주민 간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고양이 급식을 반대하는 주민이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범인을 찾고 있다.

길고양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작정 눈에 보이는 고양이들을 없애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길고양이는 특정 영역을 몇 마리가 공유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한 지역의 길고양이를 모두 제거하더라도 이웃의 고양이가 들어와 처음과 같은 개체 수가 될 때까지 번식하게 된다. 이를 진공효과라고 한다.



◆ 사람과 길고양이, 공존하는 방법은?

따라서 먹이 급식은 중성화 수술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이렇게 되면 개체 수 증가에 대한 우려 없이 길고양이의 야생성을 감소시켜 사람과의 공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길에 사는 고양이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불임 수술)을 시킨 뒤 돌려보내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에서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총 3만7865마리의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을 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강동구는 고양이와 구민 간 공존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강동구는 2013년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했다. 기존 47개였던 급식소는 올해부터 60개로 확대됐다.

강동구는 지역 곳곳에 급식소를 마련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일부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있다. 급식소 운영으로 포획이 쉬워지면서 급식소 운영 전 월 평균 8.8건이었던 중성화 수술 횟수는 운영 후 월 21.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양이 관련 민원이 줄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급식소 운영과 중성화 수술을 병행한 뒤부터 고양이 피해를 고발하는 민원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현행 중성화 사업에 보다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TNR에 참여했다고 밝힌 한 여성은 12일 서울 서소문 별관에서 열린 '서울동물복지계획 2020 현황과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현재의 TNR 사업은 동물 학대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녀는 "용산에서 포획된 길고양이는 애견업자가 포획하기 때문에 최소 하루 이상 강아지에 둘러싸인 채 생활하고 병원으로 인계돼도 수의사가 여유가 있을 때에 중성화 수술이 이뤄져 대기 시간이 길다"며 "지나치게 오랫동안 자신의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제자리로 돌려 보내지지 않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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