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천재’ 서울대 교수님의 민낯

입력 2015.05.18 (06:03) 수정 2015.05.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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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떨군 천재 수학자

“피고인을 징역 2년 6월에 처한다.”

서울 북부지방법원 301호실 법정에서 판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푸른 줄무늬의 수의를 입은 피고인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고 있지만 미세하게 떨었다.

지난해 7월,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를 거친 끝에 실형을 선고받은 강석진 전 서울대 수학과 교수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강 전 교수는 결국 7명의 여성을 8차례에 걸쳐 상습 강제 추행한 혐의가 인정돼 대학 교단이 아닌 교도소의 감방에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강 전 교수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160시간 이수할 것과 함께 3년 동안 자신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1심 재판이 끝난 뒤 법정 밖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 전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 여성들이었다. 한 여성은 법정에서 꿋꿋하게 판결을 들었지만 끝내 승강기에서 털썩 주저 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 교수님의 범행은 ‘패턴’

재판부는 강 전 교수가 지난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모두 7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8차례에 걸쳐 상습 강제추행을 했다고 봤다. 검찰이 기소한 2명의 피해자는 행위 자체가 인정되지만 공소사실을 기각했다.(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판결문을 토대로 본 강 전 교수는 일정한 패턴을 보이면서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공통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혹은 영향력 아래에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술자리 혹은 배웅을 빙자해 단 둘이 있는 자리를 만든 뒤 강제로 추행한 것이다. 강 전 교수가 피해자에게 했던 언행은 차마 기사로 옮기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제자들 혹은 강 전 교수에게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부할 경우 돌아올 보복과 불이익, 그리고 폐쇄적인 대학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강 전 교수가 만든 자리에 나온 순간 이미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이 된 것이다. 발버둥 칠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 재판부의 판단 “상습적이다”

재판부는 '상습성'에 주목했다. 일반 강제 추행과 상습 강제 추행은 형량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공판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됐다. 검찰 측은 수집한 증거와 증언을 토대로 상습 강제 추행 혐의를 적용해 강 전 교수를 기소했고, 강 전 교수의 변호인 측은 추행 사실은 인정했지만 상습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엇갈리는 공방 속에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강 전 교수가 저지른 범행을 '습벽', 즉 상습성으로 본 것이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양형을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양형 이유-

강 전 교수는 파면 처분을 받음으로써 더는 대학교 교수로서 강단에 설 수 없게 됐고, 상대적으로 추행의 정도가 심했던 피해자와 합의해 긍정적 양형 요소가 있다. 하지만 강 전 교수의 강제 추행행위 수법이나 방법, 정도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들의 느꼈을 두려움 내지 배신감, 치욕 등 정신적 고통은 미루어 짐작이 가는데도 피해자 1명을 제외한 유죄 부분의 나머지 6명의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하였다. 피해자들 합의나 용서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는 나머지 피해자들이 그만큼 피고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구하는 방증이다.

재판부의 1심 판결이 끝난 이후 법원은 "강 전 교수가 지위와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해 다수 피해자들을 상대로 계획적,상습적으로 강제추행 범행을 저지른 점을 감안해 엄중한 처벌을 내린 판결"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법조계 안팎으로 비교적 무거운 형이 떨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성폭력과 달리 성추행의 경우 실형이 잘 선고되지 않는 전례에 비추어 봐도 그랬다.

■ 부족하다고 외치는 피해자들

하지만 피해자들은 기자들에게 메일을 통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전 교수에게 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 모임인 '피해자 X'는 강 전 교수가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한 반성과 사과의 말도 전달하지 않았으나 재판부에는 반성문을 수차례 제출했다며 이는 감형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강 전 교수의 파면 처분은 법적 처분과 별도의 것으로 범죄자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결정이며 교수의 지위가 범죄에 이용되었음에도 불구, 파면을 감형의 사유로 하는 것은 교수에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검찰의 항소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판결문은 2008년과 2009년 사이 강 전 교수에게 성추행 당했던 2명의 피해자들은 공소 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에 해당하고, 이 때문에 공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강 전 교수가 이들을 성추행했을 당시에는 '강제추행죄'에 대한 상습범 처벌 규정이 없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피해가 있고 난 뒤 1년이 지나기 전에 고소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범행 사실은 인정되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2명에 대한 공소는 기각됐다.

그 밖에도 재판부는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강 전 교수의 '나쁜 짓'이 훨씬 더 많은 빈도로 계속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같은 사실은 모두 혐의에 적용되지 않았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심은 끝났지만 검찰과 강 전 교수 측 모두 항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문을 살핀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강 전 교수도 실형이 선고된 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항소 여부를 떠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다. 믿고 존경해야할 대상이었던 교수님은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피해자들을 괴롭혔던 '천재 교수님'은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천재 교수님'이 남긴 '아픈 기억'은 여전히 치유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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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제자 상습 성추행’ 전 서울대 교수 징역 2년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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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천재’ 서울대 교수님의 민낯
    • 입력 2015-05-18 06:03:15
    • 수정2015-05-18 15:31:55
    취재후·사건후
■고개를 떨군 천재 수학자

“피고인을 징역 2년 6월에 처한다.”

서울 북부지방법원 301호실 법정에서 판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푸른 줄무늬의 수의를 입은 피고인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듣고 있지만 미세하게 떨었다.

지난해 7월,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를 거친 끝에 실형을 선고받은 강석진 전 서울대 수학과 교수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강 전 교수는 결국 7명의 여성을 8차례에 걸쳐 상습 강제 추행한 혐의가 인정돼 대학 교단이 아닌 교도소의 감방에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강 전 교수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160시간 이수할 것과 함께 3년 동안 자신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1심 재판이 끝난 뒤 법정 밖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 전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 여성들이었다. 한 여성은 법정에서 꿋꿋하게 판결을 들었지만 끝내 승강기에서 털썩 주저 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 교수님의 범행은 ‘패턴’

재판부는 강 전 교수가 지난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모두 7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8차례에 걸쳐 상습 강제추행을 했다고 봤다. 검찰이 기소한 2명의 피해자는 행위 자체가 인정되지만 공소사실을 기각했다.(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판결문을 토대로 본 강 전 교수는 일정한 패턴을 보이면서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공통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혹은 영향력 아래에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술자리 혹은 배웅을 빙자해 단 둘이 있는 자리를 만든 뒤 강제로 추행한 것이다. 강 전 교수가 피해자에게 했던 언행은 차마 기사로 옮기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제자들 혹은 강 전 교수에게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부할 경우 돌아올 보복과 불이익, 그리고 폐쇄적인 대학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강 전 교수가 만든 자리에 나온 순간 이미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이 된 것이다. 발버둥 칠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 재판부의 판단 “상습적이다”

재판부는 '상습성'에 주목했다. 일반 강제 추행과 상습 강제 추행은 형량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공판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됐다. 검찰 측은 수집한 증거와 증언을 토대로 상습 강제 추행 혐의를 적용해 강 전 교수를 기소했고, 강 전 교수의 변호인 측은 추행 사실은 인정했지만 상습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엇갈리는 공방 속에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강 전 교수가 저지른 범행을 '습벽', 즉 상습성으로 본 것이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양형을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양형 이유-

강 전 교수는 파면 처분을 받음으로써 더는 대학교 교수로서 강단에 설 수 없게 됐고, 상대적으로 추행의 정도가 심했던 피해자와 합의해 긍정적 양형 요소가 있다. 하지만 강 전 교수의 강제 추행행위 수법이나 방법, 정도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들의 느꼈을 두려움 내지 배신감, 치욕 등 정신적 고통은 미루어 짐작이 가는데도 피해자 1명을 제외한 유죄 부분의 나머지 6명의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하였다. 피해자들 합의나 용서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는 나머지 피해자들이 그만큼 피고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구하는 방증이다.

재판부의 1심 판결이 끝난 이후 법원은 "강 전 교수가 지위와 인적 신뢰 관계를 이용해 다수 피해자들을 상대로 계획적,상습적으로 강제추행 범행을 저지른 점을 감안해 엄중한 처벌을 내린 판결"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법조계 안팎으로 비교적 무거운 형이 떨어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성폭력과 달리 성추행의 경우 실형이 잘 선고되지 않는 전례에 비추어 봐도 그랬다.

■ 부족하다고 외치는 피해자들

하지만 피해자들은 기자들에게 메일을 통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전 교수에게 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 모임인 '피해자 X'는 강 전 교수가 피해자들에게는 어떠한 반성과 사과의 말도 전달하지 않았으나 재판부에는 반성문을 수차례 제출했다며 이는 감형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특히 강 전 교수의 파면 처분은 법적 처분과 별도의 것으로 범죄자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당연한 결정이며 교수의 지위가 범죄에 이용되었음에도 불구, 파면을 감형의 사유로 하는 것은 교수에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검찰의 항소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판결문은 2008년과 2009년 사이 강 전 교수에게 성추행 당했던 2명의 피해자들은 공소 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에 해당하고, 이 때문에 공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강 전 교수가 이들을 성추행했을 당시에는 '강제추행죄'에 대한 상습범 처벌 규정이 없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피해가 있고 난 뒤 1년이 지나기 전에 고소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범행 사실은 인정되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2명에 대한 공소는 기각됐다.

그 밖에도 재판부는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강 전 교수의 '나쁜 짓'이 훨씬 더 많은 빈도로 계속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같은 사실은 모두 혐의에 적용되지 않았다.

■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심은 끝났지만 검찰과 강 전 교수 측 모두 항소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문을 살핀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강 전 교수도 실형이 선고된 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항소 여부를 떠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다. 믿고 존경해야할 대상이었던 교수님은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피해자들을 괴롭혔던 '천재 교수님'은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천재 교수님'이 남긴 '아픈 기억'은 여전히 치유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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