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술 취해 택시 탄 것만 기억…내 돈 어디 갔지?

입력 2015.05.18 (15:00) 수정 2015.05.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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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해서 택시를 탔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택시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지게 되죠. 대부분 별 생각없이 잠에 들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만 노려 범행을 저지른 택시기사가 있습니다. 택시기사 A씨는 밤이 되면 서울 강남 일대를 돌며 만취한 승객들을 노렸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택시에 태운 뒤 신용카드와 소지품을 훔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3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훔친 돈이 모두 1억 천만원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35명입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A씨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 범행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피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범죄 수법도 여러가지였습니다. A씨는 승객에게 '카드 결제를 하려면 카드 비밀번호가 필요하다'고 속였습니다. 만취한 승객이 카드 비밀번호를 말해주면, 지갑에서 카드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때로는 카드 결제기에 문제가 생겼으니 승객에게 현금을 뽑아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승객이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면, 뒤에서 몰래 비밀번호 누르는 것을 훔쳐봤다가 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했습니다. 언뜻 생각해서는 승객이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취해 판단력이 흐려지면 경계심이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택시기사만 10년을 해 온 A씨는 수많은 취객들을 태우며 이런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A씨가 훔친 건 카드뿐만이 아닙니다. 경찰이 공개한 압수품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이 있었습니다. 수백만 원인 외제 시계부터, 외장하드와 MP3까지. A씨는 승객이 만취해 잠들어 있으면 손목에 찬 시계를 풀러 의자 밑에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잠에서 깬 승객이 눈치 채지 못하고 내리면 그대로 챙겨 달아나고, 만약 시계가 없어진 걸 발견한 승객이 시계를 찾으면 발 밑에 떨어졌다고 태연하게 가르쳐 줬습니다. 많은 승객들이 물건이 없어진 걸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A씨는 훔친 물건들을 헐값에 팔아넘겼습니다.

A씨의 수법은 점점 대담해졌습니다. 지난달 A씨는 여느 때처럼 만취한 승객을 태웠습니다. 이번에는 손님에게 택시비를 직접 인출해 올테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피해자는 별 의심 없이 카드를 넘겨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대신해 택시기사들이 종종 현금인출기에서 대신 현금을 인출해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드를 넘겨주고 피해자가 잠들어 있던 3시간 동안, A씨는 편의점과 은행을 전전하며 8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인출했습니다. 목적 달성을 하자 다시 택시로 돌아와 피해자를 아무 곳에나 내려주고 달아났습니다.

2년 가까이 발각되지 않았던 A씨의 억대 절도 행각은 경찰이 신고를 받고 CCTV를 분석하면서 마침내 덜미가 잡혔습니다. A씨의 통장에 지난 2년간 입금된 정체불명의 현금만 2억에 달합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훔친 돈을 생활비와 도박자금으로 탕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피해자들은 A씨가 잡혔어도 피해금액을 되돌려받을 길이 요원한 셈입니다. 경찰은 아직 파악되지 못한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A씨를 집중 조사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일행이 택시를 탈 때에는 서로 택시번호를 적어 주면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카드 결제를 하면 물건을 도난당해도 택시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피해를 입으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결국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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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술 취해 택시 탄 것만 기억…내 돈 어디 갔지?
    • 입력 2015-05-18 15:00:11
    • 수정2015-05-18 15:31:55
    취재후·사건후
만취해서 택시를 탔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택시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지게 되죠. 대부분 별 생각없이 잠에 들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만 노려 범행을 저지른 택시기사가 있습니다. 택시기사 A씨는 밤이 되면 서울 강남 일대를 돌며 만취한 승객들을 노렸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택시에 태운 뒤 신용카드와 소지품을 훔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3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훔친 돈이 모두 1억 천만원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35명입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A씨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 범행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피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범죄 수법도 여러가지였습니다. A씨는 승객에게 '카드 결제를 하려면 카드 비밀번호가 필요하다'고 속였습니다. 만취한 승객이 카드 비밀번호를 말해주면, 지갑에서 카드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때로는 카드 결제기에 문제가 생겼으니 승객에게 현금을 뽑아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승객이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면, 뒤에서 몰래 비밀번호 누르는 것을 훔쳐봤다가 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했습니다. 언뜻 생각해서는 승객이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취해 판단력이 흐려지면 경계심이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택시기사만 10년을 해 온 A씨는 수많은 취객들을 태우며 이런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A씨가 훔친 건 카드뿐만이 아닙니다. 경찰이 공개한 압수품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이 있었습니다. 수백만 원인 외제 시계부터, 외장하드와 MP3까지. A씨는 승객이 만취해 잠들어 있으면 손목에 찬 시계를 풀러 의자 밑에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잠에서 깬 승객이 눈치 채지 못하고 내리면 그대로 챙겨 달아나고, 만약 시계가 없어진 걸 발견한 승객이 시계를 찾으면 발 밑에 떨어졌다고 태연하게 가르쳐 줬습니다. 많은 승객들이 물건이 없어진 걸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A씨는 훔친 물건들을 헐값에 팔아넘겼습니다.

A씨의 수법은 점점 대담해졌습니다. 지난달 A씨는 여느 때처럼 만취한 승객을 태웠습니다. 이번에는 손님에게 택시비를 직접 인출해 올테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피해자는 별 의심 없이 카드를 넘겨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대신해 택시기사들이 종종 현금인출기에서 대신 현금을 인출해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드를 넘겨주고 피해자가 잠들어 있던 3시간 동안, A씨는 편의점과 은행을 전전하며 8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인출했습니다. 목적 달성을 하자 다시 택시로 돌아와 피해자를 아무 곳에나 내려주고 달아났습니다.

2년 가까이 발각되지 않았던 A씨의 억대 절도 행각은 경찰이 신고를 받고 CCTV를 분석하면서 마침내 덜미가 잡혔습니다. A씨의 통장에 지난 2년간 입금된 정체불명의 현금만 2억에 달합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훔친 돈을 생활비와 도박자금으로 탕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피해자들은 A씨가 잡혔어도 피해금액을 되돌려받을 길이 요원한 셈입니다. 경찰은 아직 파악되지 못한 피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A씨를 집중 조사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일행이 택시를 탈 때에는 서로 택시번호를 적어 주면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카드 결제를 하면 물건을 도난당해도 택시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피해를 입으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결국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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