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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표 “나의 레슬링은 쇼 아닌 진짜였다”
입력 2015.05.24 (21:58) 수정 2015.05.24 (22:14) 연합뉴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죠. 오직 경기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40년을 달려왔습니다."

은퇴를 앞둔 노장 프로레슬러 이왕표(61)는 2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왕표는 25일 장충체육관, 27일 유관순체육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열리는 '이왕표 은퇴기념 포에버 챔피언'에서 은퇴식을 갖는다.

1975년 김일 체육관 1기생으로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이왕표는 심한 부침을 겪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산증인이다.

한때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인기를 누렸으나 1970년대 이후 프로레슬링 인기가 급락하면서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이왕표는 그러나 꾸준히 경기를 이어갔고 2009년과 2010년 종합격투기 출신 밥샙과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했다.

그는 담도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이날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것도 검진을 위해서다.

이왕표는 "투병중이어서 마지막 경기를 화려하게 치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40년 현역 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으로는 밥샙과의 경기를 꼽았다. 밥샙과의 3연전은 그가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마지막 경기다.

이왕표는 "나는 레슬링에 강하다 보니 주먹을 안 쓰려고 했고 밥샙은 입식타격 선수여서 나에게 잡히지 않는 데 집중하다 보니 관중들 입장에서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당시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과 사뭇 다르다. 대다수 관중들은 두 선수가 각본에 따라 경기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왕표는 "정말 짜고 했다면 드롭킥도 날리고 멋진 시합을 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2015년의 한국 스포츠 팬들은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따라 이뤄지는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는 점을 대부분 알고 있다.

리듬체조나 피겨스케이팅같은 종목은 선수가 펼치는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프로레슬링은 두 선수가 미리 맞춰 놓은 '합'에 따라 때로는 묘기에 가까운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며 관중을 열광시킨다. 그리고 흥행으로 평가받는다. 프로레슬러들 역시 다른 종목 선수들처럼 더 멋진 경기를 펼치기 위해 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이런 점에서 프로레슬링 역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젊은 프로레슬러들이 주축이 된 국내의 몇몇 신생 단체들은 '각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더 화끈한 '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왕표는 여전히 "내가 해온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닌 '진짜'였다"고 말한다.

미국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 대해서도 "각본 작가들은 있기는 하지만 작가들은 설전 대사만 써 주는 것이며 경기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내가 해온 프로레슬링이야말로 요즘 인기를 끄는 종합격투기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이왕표는 "UFC같은 종합격투기는 과거에는 우리같은 프로레슬러만 했던 것"이라면서 "프로레슬러들은 어떤 격투기 선수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은퇴 후 프로모터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후배 20여명을 조련하는 그는 이중 종합격투기에도 통할만한 인재를 발굴해 프로레슬링의 강함을 종합격투기 판에서 증명해 보이겠다며 벼르고 있다.

로드FC 등 국내 단체 경기에 내보내는 것뿐 아니라 직접 종합격투기 단체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가 함께 나아간다면 좁은 국내 격투기 시장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 이왕표 “나의 레슬링은 쇼 아닌 진짜였다”
    • 입력 2015-05-24 21:58:57
    • 수정2015-05-24 22:14:47
    연합뉴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죠. 오직 경기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40년을 달려왔습니다."

은퇴를 앞둔 노장 프로레슬러 이왕표(61)는 2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왕표는 25일 장충체육관, 27일 유관순체육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열리는 '이왕표 은퇴기념 포에버 챔피언'에서 은퇴식을 갖는다.

1975년 김일 체육관 1기생으로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이왕표는 심한 부침을 겪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산증인이다.

한때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인기를 누렸으나 1970년대 이후 프로레슬링 인기가 급락하면서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이왕표는 그러나 꾸준히 경기를 이어갔고 2009년과 2010년 종합격투기 출신 밥샙과 타이틀전을 치르는 등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했다.

그는 담도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이날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것도 검진을 위해서다.

이왕표는 "투병중이어서 마지막 경기를 화려하게 치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40년 현역 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으로는 밥샙과의 경기를 꼽았다. 밥샙과의 3연전은 그가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마지막 경기다.

이왕표는 "나는 레슬링에 강하다 보니 주먹을 안 쓰려고 했고 밥샙은 입식타격 선수여서 나에게 잡히지 않는 데 집중하다 보니 관중들 입장에서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당시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과 사뭇 다르다. 대다수 관중들은 두 선수가 각본에 따라 경기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왕표는 "정말 짜고 했다면 드롭킥도 날리고 멋진 시합을 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2015년의 한국 스포츠 팬들은 프로레슬링이 각본에 따라 이뤄지는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는 점을 대부분 알고 있다.

리듬체조나 피겨스케이팅같은 종목은 선수가 펼치는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프로레슬링은 두 선수가 미리 맞춰 놓은 '합'에 따라 때로는 묘기에 가까운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며 관중을 열광시킨다. 그리고 흥행으로 평가받는다. 프로레슬러들 역시 다른 종목 선수들처럼 더 멋진 경기를 펼치기 위해 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이런 점에서 프로레슬링 역시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젊은 프로레슬러들이 주축이 된 국내의 몇몇 신생 단체들은 '각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더 화끈한 '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왕표는 여전히 "내가 해온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닌 '진짜'였다"고 말한다.

미국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 대해서도 "각본 작가들은 있기는 하지만 작가들은 설전 대사만 써 주는 것이며 경기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내가 해온 프로레슬링이야말로 요즘 인기를 끄는 종합격투기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이왕표는 "UFC같은 종합격투기는 과거에는 우리같은 프로레슬러만 했던 것"이라면서 "프로레슬러들은 어떤 격투기 선수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은퇴 후 프로모터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후배 20여명을 조련하는 그는 이중 종합격투기에도 통할만한 인재를 발굴해 프로레슬링의 강함을 종합격투기 판에서 증명해 보이겠다며 벼르고 있다.

로드FC 등 국내 단체 경기에 내보내는 것뿐 아니라 직접 종합격투기 단체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가 함께 나아간다면 좁은 국내 격투기 시장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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