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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그 많던 전자제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5.06.10 (19:00) 수정 2015.06.10 (21:58) 취재후
■ 눈만 뜨면 새 제품…점점 줄어드는 기대 수명

저는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트북에는 충전 중인 스마트폰과 보조 모니터가 연결돼있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 탁상용 소형 선풍기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텔레비전, 전화기, 리모컨 등 못해도 열 개 남짓의 전자제품이 제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집이나 직장에서 각종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있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전자제품 없인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어딜 가든 내 몸에 붙어있는 스마트폰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현대인들은 이제 일상의 모든 일을 전자제품을 통해 처리합니다. 그리고 이 전자제품들은 인간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전자제품들을 생각해볼까요? 스트리밍 서비스는커녕 MP3도 없던 시절, 얼굴만 한 CD를 넣어 음악을 듣는 CD 플레이어는 학생들의 필수품이었습니다. 집집이 놓여있던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앞뒤로 뚱뚱한 두께 탓에 거실 대부분을 차지해야 했죠. 하지만 전자제품은 달라졌습니다. 가벼우면서도 기능은 다양해지고, 더 멋스럽게 변했습니다. 인류의 기술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전자제품을 생산해냈기 때문입니다. 미국 가전협회의 조사를 보면, 텔레비전의 기대수명이 7.4년, 그 외 나머지 전자제품은 평균 5년 안팎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제 취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많던 전자제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초록빛 해변 마을에서, 세계 최대 전자쓰레기장으로

2년 전, 미국의 환경단체가 세계 10대 유독물질 위험 지역을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가죽 공장이 밀집해있는 방글라데시 하자리바그 등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오염 지역들입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아프리카 가나의 '아그보그블로시'입니다. 수도 아크라의 빈민가에 위치한 아그보그블로시는 앞서 말한, 그 많던 전자제품들이 향하는 곳입니다. 즉, '전자쓰레기'의 무덤인 셈이죠.

지난해, 영국 가디언지는 아그보그블로시를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은, 제가 아그보그블로시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받은 느낌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아그보그블로시로 들어가는 입구는 수도 아크라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문제는 입구를 지나서입니다. 거리는 정비가 안 돼 온통 진흙투성입니다. 우리나라의 판자촌을 연상케 한 허름한 집들은 따닥따닥 붙어있고 주민들은 비좁은 집 밖으로 나와 요리와 빨래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마을의 제일 끝, 아니 어쩌면 마을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거대한 전자쓰레기장입니다.

아그보그블로시에는 폐전자제품이 정말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주민들은 매일 전자쓰레기로 뒤덮인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값이 될만한 것들을 추려냅니다. 전자제품을 망치나 드라이버로 분해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맨손으로 때려 부수기도 합니다. 이 방법보다 주민들이 더 선호하는 건 고철 더미를 그냥 불에 던져넣는 것입니다. 폐전자제품을 둘러싸고 있는 플라스틱 등이 불에 녹으면 주민들은 그 안에 있는 구리를 쉽게 추출할 수 있습니다. 대신 주민들은 폐제품을 불태울 때 나오는 검은 연기를 코와 입으로 온전히 들이마셔야 합니다. 주민들의 발과 손은 이미 상처투성입니다. 환경단체가 이 지역 토양의 중금속 오염을 조사해보니 허용치보다 45배가 높았습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위치합니다. 수도 아크라 역시 해안을 끼고 있고, 아그보그블로시도 본래 초록빛 바다를 자랑하는 해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 날, 온종일 취재를 위해 아그보그블로시를 헤집고 다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해변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주민들의 표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구호품’이란 이름의 전자쓰레기

'라파스'는 가나 최대의 중고 전자제품 시장입니다. 진열대가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곳에선 명성에 걸맞게 꽤 많은 전자제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운전기사 '프로스퍼'의 도움으로 라파스의 한 상인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요. 자신을 비스마르크라고 밝힌 상인은, 라파스에는 세계 각국에서 중고 제품들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두 개 중 한 개꼴로 작동이 안 된다는 거죠. 그중에는 일부 고쳐서 내다 팔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무리 손을 대도 고쳐지지 않아 그대로 아그보그블로시에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1992년, 세계 116개국 대표가 채택한 바젤 협약이 발효됐습니다.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것이 요지입니다. 이 협약 때문에 각 국가는, 특히 전자제품을 주로 사용하고 생산하는 선진국들은 유해 폐기물인 전자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내다 버릴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전자쓰레기들은 '중고품' 더 나아가 '구호품'이란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2013년, 가나는 연간 21만 5천 톤의 중고 전자제품을 유럽 등에서 수입했습니다. 하지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가나를 포함한 아프리카로 수출되는 중고 가전제품의 75%는 재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중고전자제품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구호품'과 '전자쓰레기' 중에 말이죠.

■ 도시 광산이냐, 독성 광산이냐

아그보그블로시의 전자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가나 환경청과 미국환경단체는 이 마을에 피복을 자동으로 벗겨주는 기계를 설치했습니다. 전선을 둘러싸고 있는 고무를 자동으로 제거함으로써 폐전자제품을 태우지 않고도 구리를 얻을 수 있게 한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한 기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일단 주민들이 기계를 사용하려면 전기세 등 소정의 사용료를 내야 했고, 기계 특성상 규모가 작은 전선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폐전자제품을 긁어모아 한꺼번에 불에 태우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전자쓰레기도 환경적으로 재활용하면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 세계에 버려지는 전자폐기물에는 1,650만 톤의 철과 구리 190만 톤이 포함돼있다고 합니다. 귀금속인 금도 300톤에 달합니다. 52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56조 원에 달하는 자원인데, 잘만 활용한다면 말 그대로 '도시 광산'입니다. 하지만 전자폐기물의 재활용 비율은 6분의 1 수준.. 그러는 새 폐기물은 배출 국가가 아닌 가난한 이들의 땅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전자폐기물은 사상 최대인 4천백만 톤을 기록했습니다. 40톤 트럭 115만대 규모인데, 한 줄로 세우면 뉴욕에서 도쿄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돕니다. 이 전자폐기물을 재활용해 가치를 재생산하는 도시 광산을 만들지, 아니면 아그보그블로시처럼 환경 재앙을 낳는 '독성 광산'으로 남길지, 세계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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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지금 세계는] ‘구호품’이란 이름의 개도국 전자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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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그 많던 전자제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입력 2015-06-10 19:00:37
    • 수정2015-06-10 21:58:07
    취재후
■ 눈만 뜨면 새 제품…점점 줄어드는 기대 수명

저는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트북에는 충전 중인 스마트폰과 보조 모니터가 연결돼있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 탁상용 소형 선풍기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텔레비전, 전화기, 리모컨 등 못해도 열 개 남짓의 전자제품이 제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집이나 직장에서 각종 전자제품에 둘러싸여 있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전자제품 없인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어딜 가든 내 몸에 붙어있는 스마트폰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냉장고와 세탁기까지.. 현대인들은 이제 일상의 모든 일을 전자제품을 통해 처리합니다. 그리고 이 전자제품들은 인간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전자제품들을 생각해볼까요? 스트리밍 서비스는커녕 MP3도 없던 시절, 얼굴만 한 CD를 넣어 음악을 듣는 CD 플레이어는 학생들의 필수품이었습니다. 집집이 놓여있던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앞뒤로 뚱뚱한 두께 탓에 거실 대부분을 차지해야 했죠. 하지만 전자제품은 달라졌습니다. 가벼우면서도 기능은 다양해지고, 더 멋스럽게 변했습니다. 인류의 기술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전자제품을 생산해냈기 때문입니다. 미국 가전협회의 조사를 보면, 텔레비전의 기대수명이 7.4년, 그 외 나머지 전자제품은 평균 5년 안팎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제 취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많던 전자제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초록빛 해변 마을에서, 세계 최대 전자쓰레기장으로

2년 전, 미국의 환경단체가 세계 10대 유독물질 위험 지역을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가죽 공장이 밀집해있는 방글라데시 하자리바그 등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오염 지역들입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아프리카 가나의 '아그보그블로시'입니다. 수도 아크라의 빈민가에 위치한 아그보그블로시는 앞서 말한, 그 많던 전자제품들이 향하는 곳입니다. 즉, '전자쓰레기'의 무덤인 셈이죠.

지난해, 영국 가디언지는 아그보그블로시를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은, 제가 아그보그블로시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받은 느낌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아그보그블로시로 들어가는 입구는 수도 아크라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문제는 입구를 지나서입니다. 거리는 정비가 안 돼 온통 진흙투성입니다. 우리나라의 판자촌을 연상케 한 허름한 집들은 따닥따닥 붙어있고 주민들은 비좁은 집 밖으로 나와 요리와 빨래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마을의 제일 끝, 아니 어쩌면 마을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거대한 전자쓰레기장입니다.

아그보그블로시에는 폐전자제품이 정말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주민들은 매일 전자쓰레기로 뒤덮인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값이 될만한 것들을 추려냅니다. 전자제품을 망치나 드라이버로 분해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맨손으로 때려 부수기도 합니다. 이 방법보다 주민들이 더 선호하는 건 고철 더미를 그냥 불에 던져넣는 것입니다. 폐전자제품을 둘러싸고 있는 플라스틱 등이 불에 녹으면 주민들은 그 안에 있는 구리를 쉽게 추출할 수 있습니다. 대신 주민들은 폐제품을 불태울 때 나오는 검은 연기를 코와 입으로 온전히 들이마셔야 합니다. 주민들의 발과 손은 이미 상처투성입니다. 환경단체가 이 지역 토양의 중금속 오염을 조사해보니 허용치보다 45배가 높았습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위치합니다. 수도 아크라 역시 해안을 끼고 있고, 아그보그블로시도 본래 초록빛 바다를 자랑하는 해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 날, 온종일 취재를 위해 아그보그블로시를 헤집고 다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해변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주민들의 표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구호품’이란 이름의 전자쓰레기

'라파스'는 가나 최대의 중고 전자제품 시장입니다. 진열대가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곳에선 명성에 걸맞게 꽤 많은 전자제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운전기사 '프로스퍼'의 도움으로 라파스의 한 상인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요. 자신을 비스마르크라고 밝힌 상인은, 라파스에는 세계 각국에서 중고 제품들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두 개 중 한 개꼴로 작동이 안 된다는 거죠. 그중에는 일부 고쳐서 내다 팔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무리 손을 대도 고쳐지지 않아 그대로 아그보그블로시에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1992년, 세계 116개국 대표가 채택한 바젤 협약이 발효됐습니다.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는 것이 요지입니다. 이 협약 때문에 각 국가는, 특히 전자제품을 주로 사용하고 생산하는 선진국들은 유해 폐기물인 전자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내다 버릴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전자쓰레기들은 '중고품' 더 나아가 '구호품'이란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2013년, 가나는 연간 21만 5천 톤의 중고 전자제품을 유럽 등에서 수입했습니다. 하지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가나를 포함한 아프리카로 수출되는 중고 가전제품의 75%는 재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사용할 수 없는 중고전자제품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구호품'과 '전자쓰레기' 중에 말이죠.

■ 도시 광산이냐, 독성 광산이냐

아그보그블로시의 전자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가나 환경청과 미국환경단체는 이 마을에 피복을 자동으로 벗겨주는 기계를 설치했습니다. 전선을 둘러싸고 있는 고무를 자동으로 제거함으로써 폐전자제품을 태우지 않고도 구리를 얻을 수 있게 한 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한 기계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일단 주민들이 기계를 사용하려면 전기세 등 소정의 사용료를 내야 했고, 기계 특성상 규모가 작은 전선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은 여전히 폐전자제품을 긁어모아 한꺼번에 불에 태우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전자쓰레기도 환경적으로 재활용하면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전 세계에 버려지는 전자폐기물에는 1,650만 톤의 철과 구리 190만 톤이 포함돼있다고 합니다. 귀금속인 금도 300톤에 달합니다. 52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56조 원에 달하는 자원인데, 잘만 활용한다면 말 그대로 '도시 광산'입니다. 하지만 전자폐기물의 재활용 비율은 6분의 1 수준.. 그러는 새 폐기물은 배출 국가가 아닌 가난한 이들의 땅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전자폐기물은 사상 최대인 4천백만 톤을 기록했습니다. 40톤 트럭 115만대 규모인데, 한 줄로 세우면 뉴욕에서 도쿄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돕니다. 이 전자폐기물을 재활용해 가치를 재생산하는 도시 광산을 만들지, 아니면 아그보그블로시처럼 환경 재앙을 낳는 '독성 광산'으로 남길지, 세계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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