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미스터 나이팅게일’ 65년만에 수훈십자훈장

입력 2015.06.2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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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붙잡혀 있으면서 부상한 동료병사들을 돌보는데 온몸을 던졌던 참전용사가 65년 만에 무공훈장을 받게 될 전망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 따르면 상·하원이 조정 중인 내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는 현재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에드워드 핼콤(84)씨에게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수훈십자훈장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이다.

이 조항을 발의한 데니스 로스(공화·플로리다) 하원의원에 따르면, 핼콤씨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미 육군 29보병연대 1대대 2중대 소속 일병으로 한국에 파병돼 경남 함양군 안의면의 한 초등학교에서 북한군과 교전을 벌였다.

핼콤씨는 전체 병력 235명 가운데 10분의 1인 24명 만이 생존한 이 전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결국 전쟁포로 붙잡혀 안의면에서 서울까지 총 150마일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행군해야 했다.

서울 포로수용소에 도착한 핼콤씨는 당시 19살의 나이에 9명의 다른 위생병들을 지휘하면서 376명이 넘는 전쟁포로들을 돌봤다. 특히 수용소에 격리된 병동에 계속 머물면서 질병에 걸리거나 감염의 위험이 높은 상황 속에서도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핼콤씨는 같은 해 9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서울에서 평양까지 120마일에 이르는 '죽음의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병사들과 동반해 무사히 수용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평양수용소에서도 동료들을 간호하는 데 힘을 쏟았던 핼콤씨는 수용소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자 같은 해 10월 동료 4명과 함께 탈출을 기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 자유를 찾게 됐다.

로스 의원은 "핼콤씨는 스스로를 질병과 감염에 노출시키면서 동료 병사의 간호에 힘을 쏟았고, 한 차례도 병상을 떠나지 않았으며, '죽음의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보다는 다른 환자들을 돌봤다"며 "이번 훈장 수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미 육군 규정은 훈장을 받을만한 행위를 한 지 3년 이내거나 그러한 행위를 공식 인지한 지 2년 이내에 수여하도록 하고 있으나 로스 의원은 핼콤씨의 경우 이 같은 기간규정에서 예외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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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 ‘미스터 나이팅게일’ 65년만에 수훈십자훈장
    • 입력 2015-06-21 07:46:25
    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붙잡혀 있으면서 부상한 동료병사들을 돌보는데 온몸을 던졌던 참전용사가 65년 만에 무공훈장을 받게 될 전망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 따르면 상·하원이 조정 중인 내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는 현재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에드워드 핼콤(84)씨에게 수훈십자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수여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수훈십자훈장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무공훈장이다. 이 조항을 발의한 데니스 로스(공화·플로리다) 하원의원에 따르면, 핼콤씨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미 육군 29보병연대 1대대 2중대 소속 일병으로 한국에 파병돼 경남 함양군 안의면의 한 초등학교에서 북한군과 교전을 벌였다. 핼콤씨는 전체 병력 235명 가운데 10분의 1인 24명 만이 생존한 이 전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결국 전쟁포로 붙잡혀 안의면에서 서울까지 총 150마일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행군해야 했다. 서울 포로수용소에 도착한 핼콤씨는 당시 19살의 나이에 9명의 다른 위생병들을 지휘하면서 376명이 넘는 전쟁포로들을 돌봤다. 특히 수용소에 격리된 병동에 계속 머물면서 질병에 걸리거나 감염의 위험이 높은 상황 속에서도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핼콤씨는 같은 해 9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서울에서 평양까지 120마일에 이르는 '죽음의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병사들과 동반해 무사히 수용소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평양수용소에서도 동료들을 간호하는 데 힘을 쏟았던 핼콤씨는 수용소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자 같은 해 10월 동료 4명과 함께 탈출을 기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 자유를 찾게 됐다. 로스 의원은 "핼콤씨는 스스로를 질병과 감염에 노출시키면서 동료 병사의 간호에 힘을 쏟았고, 한 차례도 병상을 떠나지 않았으며, '죽음의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보다는 다른 환자들을 돌봤다"며 "이번 훈장 수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미 육군 규정은 훈장을 받을만한 행위를 한 지 3년 이내거나 그러한 행위를 공식 인지한 지 2년 이내에 수여하도록 하고 있으나 로스 의원은 핼콤씨의 경우 이 같은 기간규정에서 예외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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