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나는 추성훈과 다른 길을 간다”…재일동포 3세 안창림

입력 2015.06.24 (11:58) 수정 2015.06.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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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귀를 가진 아이돌 유도 선수

만 스물 한 살 안창림의 얼굴은 앳되다. 아이돌 가수처럼 잘 생겼다. 키는 170센티미터 안팎으로 선수 중에 작은 편이다. 그러나 도복을 벗으면 차돌 같이 단단한 몸이 드러난다. 유도 대표팀 송대남 코치가 힘이 좋다고 칭찬한 그대로다. 힘뿐만 아니라 근지구력도 타고났다고 한다.

안창림의 몸은 상처 투성이다. 두 귀는 피가 차 부풀어올랐다. 그 모습이 만두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른바 만두귀다. 왼쪽이 크고, 오른쪽은 작다. 왼손잡이기 때문이다. 손도 상처투성이다. 마디 마디가 부어올라 아프다고 한다. 매일 수백 번 메치고, 굳히기를 해서다.

■ 창림이는 추성훈과 비교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안창림은 일본의 옛 수도 교토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재일동포 3세다. 재일동포 유도선수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추성훈과 안창림을 비교한다.안창림은 그럴 때마다 굳게 입을 다문다.그래서 송대남 코치가 미리 당부했다. 추성훈에 관한 질문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재일동포라서 받는 차별은 일상이었다. 놀림은 참을 수 있었지만, 국적 때문에 대회에 나갈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는 귀화를 권유했다. 안창림은 거부했다.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져도 일본 국가대표가 되는 선수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태극 마크를 달고 그들을 꺾고 싶었다.그래서 귀화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정체성은 뼈속까지 한국인이었다.

■ 태극 마크를 달기 전에 일본에서 정상에 서고 싶었다.


(2013 유도 전일본학생선수권 결승전)

태극 마크를 달기 전 해야할 일이 있었다. 실력으로 일본에서 정상에 서고 싶었다. 국적 때문에 출전할 수 있는 대회는 별로 없었지만, 대학생 신분이라서 뛸 수 있는 대회가 있었다. 전일본학생선수권이었다. 그래서 쓰쿠바대학교 2학년 안창림은 2013년 대회에 출전했고, 도카이 대학의 하시모토를 꺾고 73kg 이하급 정상에 올랐다.

목표를 이룬 안창림은 짐을 쌌다. 용인대로 학교도 옮겼다.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섰고, 당당히 태극 마크를 달았다. 혜성처럼 등장한 어린 선수가 한국 유도의 간판 체급에서 단 번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록 경기 경험에서 방귀만에 밀려 2진이 됐지만, 안창림은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 패배의 아픔이 약이 돼 더 단단해졌다.


(2014 세계선수권 2회전 패배)

안창림은 지난해 유도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생애 처음 경험하는 국제대회였다. 1회전에서 일본계 스페인 선수인 키요시 우에마츠를 한 판으로 제압했다. 2회전 상대는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였다. 당시 세계랭킹 2위의 강자였다. 안창림은 유리한 경기를 펼치고도 밭다리걸기로 유효를 내줘 졌다.

패배의 아픔을 맛본 안창림은 더 열심히 연습했다. 기회는 금세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미국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출전했다. 결승에 오르기 전까지 상대 5명 가운데 3명은 한판으로 제압했다. 마지막 상대는 일본의 야마모토 유지였고, 잇따라 절반 2개를 뺐어 우승했다.


(2014 제주 그랑프리 결승전)

설욕전의 기회도 왔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 결승에서 사기 무키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제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빗당겨치기로 한판을 따냈다. 성인 국제대회에서 첫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뒤셀도르프에서도 사기 무키를 만났지만, 더 이상 안창림의 적수가 안됐다.

■ 이제 리우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습니다.

이제 안창림의 목표는 내년 리우 올림픽이다.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코앞이고, 세계선수권이 다가왔지만, 안창림은 모두 리우 결승에 오르는 사다리로 본다. 한 경기, 한 경기 결코 놓치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넘어야할 벽은 역시 일본이다. 국제대회에서 안창림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는 단 3명이다.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 몽골의 오드바야르 간바타르, 일본의 오노 쇼헤이다. 이 가운데 오노 쇼헤이에게만 설욕에 실패했다. 유일하게 2패를 안긴 선수다.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하는 야마모토 유지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안창림은 두 명의 일본 선수를 가장 위협적인 라이벌로 본다.

일본에서 태어나 유도를 배운 한국인 안창림. 차별과 멸시 속에서 간절히 원했던 태극 마크를 단 그가 내년 리우에서 꿈을 이룰지 지켜보고 응원할 시간이다. 그리고 전초전이 될 야마모토 유지와의 리턴 매치는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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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나는 추성훈과 다른 길을 간다”…재일동포 3세 안창림
    • 입력 2015-06-24 11:58:16
    • 수정2015-06-24 13:24:22
    취재후·사건후
■ 만두귀를 가진 아이돌 유도 선수

만 스물 한 살 안창림의 얼굴은 앳되다. 아이돌 가수처럼 잘 생겼다. 키는 170센티미터 안팎으로 선수 중에 작은 편이다. 그러나 도복을 벗으면 차돌 같이 단단한 몸이 드러난다. 유도 대표팀 송대남 코치가 힘이 좋다고 칭찬한 그대로다. 힘뿐만 아니라 근지구력도 타고났다고 한다.

안창림의 몸은 상처 투성이다. 두 귀는 피가 차 부풀어올랐다. 그 모습이 만두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른바 만두귀다. 왼쪽이 크고, 오른쪽은 작다. 왼손잡이기 때문이다. 손도 상처투성이다. 마디 마디가 부어올라 아프다고 한다. 매일 수백 번 메치고, 굳히기를 해서다.

■ 창림이는 추성훈과 비교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안창림은 일본의 옛 수도 교토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재일동포 3세다. 재일동포 유도선수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추성훈과 안창림을 비교한다.안창림은 그럴 때마다 굳게 입을 다문다.그래서 송대남 코치가 미리 당부했다. 추성훈에 관한 질문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재일동포라서 받는 차별은 일상이었다. 놀림은 참을 수 있었지만, 국적 때문에 대회에 나갈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는 귀화를 권유했다. 안창림은 거부했다.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져도 일본 국가대표가 되는 선수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태극 마크를 달고 그들을 꺾고 싶었다.그래서 귀화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정체성은 뼈속까지 한국인이었다.

■ 태극 마크를 달기 전에 일본에서 정상에 서고 싶었다.


(2013 유도 전일본학생선수권 결승전)

태극 마크를 달기 전 해야할 일이 있었다. 실력으로 일본에서 정상에 서고 싶었다. 국적 때문에 출전할 수 있는 대회는 별로 없었지만, 대학생 신분이라서 뛸 수 있는 대회가 있었다. 전일본학생선수권이었다. 그래서 쓰쿠바대학교 2학년 안창림은 2013년 대회에 출전했고, 도카이 대학의 하시모토를 꺾고 73kg 이하급 정상에 올랐다.

목표를 이룬 안창림은 짐을 쌌다. 용인대로 학교도 옮겼다.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섰고, 당당히 태극 마크를 달았다. 혜성처럼 등장한 어린 선수가 한국 유도의 간판 체급에서 단 번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록 경기 경험에서 방귀만에 밀려 2진이 됐지만, 안창림은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 패배의 아픔이 약이 돼 더 단단해졌다.


(2014 세계선수권 2회전 패배)

안창림은 지난해 유도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생애 처음 경험하는 국제대회였다. 1회전에서 일본계 스페인 선수인 키요시 우에마츠를 한 판으로 제압했다. 2회전 상대는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였다. 당시 세계랭킹 2위의 강자였다. 안창림은 유리한 경기를 펼치고도 밭다리걸기로 유효를 내줘 졌다.

패배의 아픔을 맛본 안창림은 더 열심히 연습했다. 기회는 금세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미국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출전했다. 결승에 오르기 전까지 상대 5명 가운데 3명은 한판으로 제압했다. 마지막 상대는 일본의 야마모토 유지였고, 잇따라 절반 2개를 뺐어 우승했다.


(2014 제주 그랑프리 결승전)

설욕전의 기회도 왔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 결승에서 사기 무키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제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빗당겨치기로 한판을 따냈다. 성인 국제대회에서 첫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뒤셀도르프에서도 사기 무키를 만났지만, 더 이상 안창림의 적수가 안됐다.

■ 이제 리우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습니다.

이제 안창림의 목표는 내년 리우 올림픽이다.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코앞이고, 세계선수권이 다가왔지만, 안창림은 모두 리우 결승에 오르는 사다리로 본다. 한 경기, 한 경기 결코 놓치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넘어야할 벽은 역시 일본이다. 국제대회에서 안창림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는 단 3명이다.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 몽골의 오드바야르 간바타르, 일본의 오노 쇼헤이다. 이 가운데 오노 쇼헤이에게만 설욕에 실패했다. 유일하게 2패를 안긴 선수다.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하는 야마모토 유지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안창림은 두 명의 일본 선수를 가장 위협적인 라이벌로 본다.

일본에서 태어나 유도를 배운 한국인 안창림. 차별과 멸시 속에서 간절히 원했던 태극 마크를 단 그가 내년 리우에서 꿈을 이룰지 지켜보고 응원할 시간이다. 그리고 전초전이 될 야마모토 유지와의 리턴 매치는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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