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 개봉…잊을 수 없는 그날

입력 2015.06.24 (17:47) 수정 2015.06.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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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5주년을 하루 앞두고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이 있던 날 발생한 연평해전은 6.25의 성격과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영화 준비 기간이 무려 7년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영화 개봉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김학순 감독 오늘 자리 함께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개봉하신다는데 좀 긴장되시겠어요.

-조금 긴장되지만 여느 때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예매율도 괜찮다고는 들었습니다.

-제가 아까 얘기 들은 바로는 국내외 영화를 통틀어서 1위를 지금 하고 있다고 얘기들었습니다.

-잘되시기를 바라는데.

준비과정이 7년씩이나 걸린 이유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결국은 제작비 때문이죠.

제작비를 구하기 쉽지가 않았고.

▼7년 준비한 영화 ‘연평해전’ 개봉▼

-왜 제작비를 구하기 쉽지 않습니까? 메이저 자본들이 이 영화 별로다 그러던가요?

-별로라기보다도 연평해전 하면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정치적으로.

그래서 투자를 꺼려했죠.

-연평해전이 왜 정치적으로 민감합니까? 북한과의 그런 대치에서 우리 장병들이 얼마나 자기 몸을 바쳐서 헌신적인 그런 상황인데 그게 정치적인가요?

-저도 그게 이해가 안 갑니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

-그러면 영화 연평해전 주요 장면들을 보시고 얘기 나누면 더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보시죠.

▼영화 ‘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의 아침.

참수리 357호에 오른 24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2002년.

그들도 3, 4위전을 고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여느 때처럼 전투 배치를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이상한 느낌이 있었어요.

-오전 11시.

서해 NLL해상에서 맞닥뜨린 북한군.

6명의 전사자,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제2연평해전.

13년 후 그들은 영화로 되살아났습니다.

한창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을 때잖아요.

감독님은 그 당시에 뭐하고 계셨나요?

-저는 그때 광화문에서 월드컵 응원하는 사람들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응원하시는 분들.

▼2002년 월드컵 당시 벌어진 제2 연평해전▼

-이 소식 접하셨었죠?

-그때 어디선가 방송에 자막으로 나가는 걸 잠깐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그때는 취재하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잠깐 지나가는데 그게 금방 사라졌어요.

또 다른 월드컵 뉴스가 나오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크게 저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는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랬는데 이게 영화까지 만드시게 된 계기가 따로 있습니까?

-2008년도인가 얘기하다가 연평해전 얘기를 했는데 그때에 제가 한 생각은 그 당시가 하필이면 월드컵 때 기간.

한쪽에서는 축제 분위기였고 한쪽에서는 같은 시간에 생사를 가르는 전투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고서 우리가 이런 아이러니한 그 현실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고.

그래서 그 자료조사를 했죠.

그랬더니 그때 일어났던 병사들의 처참한 모습.

그런 것들을 알게 되고 그다음에 자식을 잃은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의 그 슬픔을 너무 많이 와닿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

우리가 또 그러잖아요.

잊혀진 전투라고 하는데 사람들한테 알려야겠다.

-그렇죠.

제작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건 아까 말씀하신 제작비 여건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리얼리터,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현실감 있게 재현해낸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을 가장 많이 신경을 쓰셨나요?

-전쟁영화는 어쨌든 리얼하게 묘사하는 게 맞다고 봤고요.

▼실화 영화화 “사실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외국의 전쟁영화를 보면 굉장히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국은 그 리얼함을 영화를 통해서 병사들의 공포와 두려움 이런 것.

-지금 이 장면이 전쟁의 전투장면이죠.

-남북이 대치해서 조금 있으면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모습입니다.

-지금 화면이...

-모든 포가 일제히 공격이 돼서.

-우리 해군이 공격을 받는 장면이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공격을 받는 거죠.

-전혀 예상 못했죠.

-저렇게 해서 함교도 피격을 당하고.

어떻게 보면 함교가 지휘부인데 말이죠.

저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사실은 몸을 움츠리게 마련인데 부상당한 동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우리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본인도 총을 맞아서 참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죠.

고 박동혁 병장 얘기입니다.

아버님이 지금 전화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평해전 영화는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보시면 자꾸 옛 생각이 나서 좀 그러셨을 텐데 어떠셨습니까?

-감독님 방금 말씀하셨습니다마는 무려 7년여 동안의 긴 세월 동안 영화가 만들어짐에 있어서 많이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영화를 기다렸던 만큼 잘 만들어지고 기획이 참 좋아서 감독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또 다 잊혀져가던 제2연평해전을 국민들 모두가 영화를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또 의무병이었던 아드님이 다친 전우들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이렇게 치료하려고 하다가 더 많이 다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80일 정도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당시 정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한마디로 날벼락 맞는다고 하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짐으로 해서.

저는 그때 28일날 옆구리의 갈비뼈를 중상을 입는 사고를 겪어서 마침 집에 그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시쯤 TV 자막을 통해서 쭉 지나가는 걸 보고 아차 싶더라고요.

그래서 산부인과에 근무하는 동혁이 엄마를 부리나케 집으로 오라고 해 가지고 마치 그날이 6월 29일날이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통합병원으로 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가지고 오후 3시에 병원에 도착을 해서 동혁이는 보지 못한 채 밤 12시를 넘겨서 새벽 2시가 지나서야 동혁이는 수술실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하실 말씀 또 저희도 여쭤보고 싶은 말씀들이 참 많은데 저희가 시간관계상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딱 한 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렵게 저희 연평해전이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감독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너무 좋은 영화인 만큼 또 그리고 앞으로 커나갈 어린 세대들에게 국가관을 확립시켜줄 좋은 기회인 만큼 부모님들께서 극장을 많이 찾아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그 아픔이 다 치유가 되지 않으셨을 텐데.

우리 감독님께서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까? 짧게 부탁드립니다.

-결코 이 전사자들을 잊지 말자.

우리를 위해서 희생했던 것들, 그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게 기억을 하자.

기억을 하면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지금 연평해전을 잊혀진 전투라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6.25전쟁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죠.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거겠죠.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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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연평해전’ 개봉…잊을 수 없는 그날
    • 입력 2015-06-24 17:47:08
    • 수정2015-06-24 21:50:52
    시사진단
-6.25 65주년을 하루 앞두고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이 있던 날 발생한 연평해전은 6.25의 성격과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영화 준비 기간이 무려 7년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영화 개봉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김학순 감독 오늘 자리 함께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개봉하신다는데 좀 긴장되시겠어요.

-조금 긴장되지만 여느 때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예매율도 괜찮다고는 들었습니다.

-제가 아까 얘기 들은 바로는 국내외 영화를 통틀어서 1위를 지금 하고 있다고 얘기들었습니다.

-잘되시기를 바라는데.

준비과정이 7년씩이나 걸린 이유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결국은 제작비 때문이죠.

제작비를 구하기 쉽지가 않았고.

▼7년 준비한 영화 ‘연평해전’ 개봉▼

-왜 제작비를 구하기 쉽지 않습니까? 메이저 자본들이 이 영화 별로다 그러던가요?

-별로라기보다도 연평해전 하면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정치적으로.

그래서 투자를 꺼려했죠.

-연평해전이 왜 정치적으로 민감합니까? 북한과의 그런 대치에서 우리 장병들이 얼마나 자기 몸을 바쳐서 헌신적인 그런 상황인데 그게 정치적인가요?

-저도 그게 이해가 안 갑니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

-그러면 영화 연평해전 주요 장면들을 보시고 얘기 나누면 더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보시죠.

▼영화 ‘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의 아침.

참수리 357호에 오른 24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2002년.

그들도 3, 4위전을 고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여느 때처럼 전투 배치를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이상한 느낌이 있었어요.

-오전 11시.

서해 NLL해상에서 맞닥뜨린 북한군.

6명의 전사자,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제2연평해전.

13년 후 그들은 영화로 되살아났습니다.

한창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을 때잖아요.

감독님은 그 당시에 뭐하고 계셨나요?

-저는 그때 광화문에서 월드컵 응원하는 사람들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응원하시는 분들.

▼2002년 월드컵 당시 벌어진 제2 연평해전▼

-이 소식 접하셨었죠?

-그때 어디선가 방송에 자막으로 나가는 걸 잠깐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그때는 취재하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잠깐 지나가는데 그게 금방 사라졌어요.

또 다른 월드컵 뉴스가 나오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크게 저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는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랬는데 이게 영화까지 만드시게 된 계기가 따로 있습니까?

-2008년도인가 얘기하다가 연평해전 얘기를 했는데 그때에 제가 한 생각은 그 당시가 하필이면 월드컵 때 기간.

한쪽에서는 축제 분위기였고 한쪽에서는 같은 시간에 생사를 가르는 전투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고서 우리가 이런 아이러니한 그 현실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고.

그래서 그 자료조사를 했죠.

그랬더니 그때 일어났던 병사들의 처참한 모습.

그런 것들을 알게 되고 그다음에 자식을 잃은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의 그 슬픔을 너무 많이 와닿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

우리가 또 그러잖아요.

잊혀진 전투라고 하는데 사람들한테 알려야겠다.

-그렇죠.

제작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건 아까 말씀하신 제작비 여건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리얼리터,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현실감 있게 재현해낸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을 가장 많이 신경을 쓰셨나요?

-전쟁영화는 어쨌든 리얼하게 묘사하는 게 맞다고 봤고요.

▼실화 영화화 “사실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외국의 전쟁영화를 보면 굉장히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국은 그 리얼함을 영화를 통해서 병사들의 공포와 두려움 이런 것.

-지금 이 장면이 전쟁의 전투장면이죠.

-남북이 대치해서 조금 있으면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모습입니다.

-지금 화면이...

-모든 포가 일제히 공격이 돼서.

-우리 해군이 공격을 받는 장면이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공격을 받는 거죠.

-전혀 예상 못했죠.

-저렇게 해서 함교도 피격을 당하고.

어떻게 보면 함교가 지휘부인데 말이죠.

저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사실은 몸을 움츠리게 마련인데 부상당한 동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우리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본인도 총을 맞아서 참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죠.

고 박동혁 병장 얘기입니다.

아버님이 지금 전화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평해전 영화는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보시면 자꾸 옛 생각이 나서 좀 그러셨을 텐데 어떠셨습니까?

-감독님 방금 말씀하셨습니다마는 무려 7년여 동안의 긴 세월 동안 영화가 만들어짐에 있어서 많이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영화를 기다렸던 만큼 잘 만들어지고 기획이 참 좋아서 감독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또 다 잊혀져가던 제2연평해전을 국민들 모두가 영화를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또 의무병이었던 아드님이 다친 전우들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이렇게 치료하려고 하다가 더 많이 다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80일 정도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당시 정말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한마디로 날벼락 맞는다고 하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짐으로 해서.

저는 그때 28일날 옆구리의 갈비뼈를 중상을 입는 사고를 겪어서 마침 집에 그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시쯤 TV 자막을 통해서 쭉 지나가는 걸 보고 아차 싶더라고요.

그래서 산부인과에 근무하는 동혁이 엄마를 부리나케 집으로 오라고 해 가지고 마치 그날이 6월 29일날이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통합병원으로 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가지고 오후 3시에 병원에 도착을 해서 동혁이는 보지 못한 채 밤 12시를 넘겨서 새벽 2시가 지나서야 동혁이는 수술실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하실 말씀 또 저희도 여쭤보고 싶은 말씀들이 참 많은데 저희가 시간관계상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딱 한 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렵게 저희 연평해전이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감독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너무 좋은 영화인 만큼 또 그리고 앞으로 커나갈 어린 세대들에게 국가관을 확립시켜줄 좋은 기회인 만큼 부모님들께서 극장을 많이 찾아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그 아픔이 다 치유가 되지 않으셨을 텐데.

우리 감독님께서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까? 짧게 부탁드립니다.

-결코 이 전사자들을 잊지 말자.

우리를 위해서 희생했던 것들, 그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게 기억을 하자.

기억을 하면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지금 연평해전을 잊혀진 전투라고 했는데 미국에서는 6.25전쟁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죠.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거겠죠.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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