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소·고발 공화국’…무려 日의 60배 달해

입력 2015.07.02 (15:47) 수정 2015.07.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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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검 형사1부(조재연 부장검사)가 최근 구속한 건축사 A(54)씨에게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있었다. ‘불법을 고발하는 공익신고자’라는 평이 있었던 반면 ‘고발권 남용으로 사법기관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비난 의견으로 갈렸다.

결국 그는 무고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이 밝힌 그의 고발 건수는 최근 3년간 1953건에 달한다. 고발장을 제출한 검찰청도 전국 10개에 걸쳐 있고, 대상자는 4001명에 달한다. 고발이란 고소와는 달리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수사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는 것이다.

주로 고발 내용은 다가구 주택의 불법주택, 용도 변경 등에 관한 위법 사실이었다.

그의 무더기 고발 사실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만연한 불법 건축 실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광주지검에서만 806건의 고발을 접수하자 인식은 달라졌다. 검찰, 경찰, 지자체 건축 관련 부서는 그의 고발 사건을 처리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에서는 그의 고발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고발할 것처럼 겁을 줘 동료 건축사 3명에게 1300만 원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졌다. 또 “총 1775건의 건축법 위반을 확인했다. 실명으로 고발할 텐데 이를 방해하는 건축사에게는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 건축사에게 협박성 단체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고발이라는 사법 절차상의 권리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쓴 것이다.

지난해 창원에서 구속된 B씨의 경우는 고소와 고발을 이용해 자신의 복직을 노린 경우다.

창원지검에 따르면 B씨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허위주장으로 수천 건의 진정과 고소를 반복했다.

B씨는 2010년 8월 16일경 창원지방법원에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유죄판결(징역4월)을 받고 판결이 확정되자, 확정판결을 뒤집기 위해 그때부터 2014년까지 대법원장,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기획재정부 장관, 고용노동부장관, 교육부장관, 법원·검찰, 경찰공무원, 중소기업청 등 행정기관의 공무원, 민간신문사 등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수천 건의 진정, 고소를 남발했다.
.

피의자는 2009년 12월 15일경 창원지검 방호원인 A씨가 검찰청사로 진입하고자 하는 자신을 막았다는 이유로 머리로 A씨의 얼굴을 들이받아 상해를 가해 징역 4월의 재판이 확정되자 직장에서 징계해고됐다.

피의자는 자신의 형사사건에서 A씨가 증언한 것을 위증으로 고소를 해서 위증을 인정받게 되면 재심을 통해 직장 복귀가 가능하다는 조언을 듣고 무려 165회의 허위 고소와 58회의 진정을 냈다.

◆ 일본의 60배인 고소·고발

A씨와 B씨 사례처럼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고소와 고발의 남용으로 사법 기관의 업무를 방해해 국민에게 피해는 주는 일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법적 분쟁이나 불만 등을 고소나 고발을 통해 해결하려는 풍조가 널리 퍼지면서 ‘고소·고발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한해 185만2437건의 형사 사건 중 고소·고발 사안이 51만 2513건으로 전체의 30%나 된다. 결국 한해 평균 우리나라 인구 1만명당 고소·고발이 80건이라는 얘긴데, 우리나라와 사법 체계가 유사한 일본(1만명당 1.3건)의 60배에 달한다.

고소와 고발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하지만 취지에 어긋나서 지나치게 남용될 경우 사법 기관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법무부 관계자는 “고소나 고발이 접수되면 일단 해당 내용을 알아보고 처리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며 “꼭 필요하지 않은 고소·고발을 남발하게 되면 수사기관이 진짜 필요한 강력, 민생 범죄 수사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성희롱 발언’ 강용석이 처벌받는 진짜 이유는?

법무부는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사건사무 규칙’을 몇차례 바꿨다. 풍문에 근거하거나 음해성 고소·고발이라고 판단될 경우 ‘각하’ 결정을 내려 조기에 종결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접수단계에서부터 고소·고발 자체를 차단할 근거는 없기 때문에 고소·고발은 쉽게 줄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소·고발이 접수되면 일단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하다 종결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력 낭비가 심하다.

전문가들은 악의적인 고소나 고발을 접수단계에서 걸러내는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고소·고발 에는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고소나 고발은 헌법상 권리로 보호돼야 하지만, 만일 타인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경우 무고죄로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윤상목 변호사는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방송인 강용석씨가 지난해 유죄판결을 받은 혐의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아닌 이를 보도한 기자를 무고했다는 것이었다”며 “무고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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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고소·고발 공화국’…무려 日의 60배 달해
    • 입력 2015-07-02 15:47:25
    • 수정2015-07-02 16:39:02
    사회
광주지검 형사1부(조재연 부장검사)가 최근 구속한 건축사 A(54)씨에게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있었다. ‘불법을 고발하는 공익신고자’라는 평이 있었던 반면 ‘고발권 남용으로 사법기관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비난 의견으로 갈렸다.

결국 그는 무고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이 밝힌 그의 고발 건수는 최근 3년간 1953건에 달한다. 고발장을 제출한 검찰청도 전국 10개에 걸쳐 있고, 대상자는 4001명에 달한다. 고발이란 고소와는 달리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수사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는 것이다.

주로 고발 내용은 다가구 주택의 불법주택, 용도 변경 등에 관한 위법 사실이었다.

그의 무더기 고발 사실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만연한 불법 건축 실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광주지검에서만 806건의 고발을 접수하자 인식은 달라졌다. 검찰, 경찰, 지자체 건축 관련 부서는 그의 고발 사건을 처리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에서는 그의 고발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고발할 것처럼 겁을 줘 동료 건축사 3명에게 1300만 원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졌다. 또 “총 1775건의 건축법 위반을 확인했다. 실명으로 고발할 텐데 이를 방해하는 건축사에게는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 건축사에게 협박성 단체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고발이라는 사법 절차상의 권리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쓴 것이다.

지난해 창원에서 구속된 B씨의 경우는 고소와 고발을 이용해 자신의 복직을 노린 경우다.

창원지검에 따르면 B씨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허위주장으로 수천 건의 진정과 고소를 반복했다.

B씨는 2010년 8월 16일경 창원지방법원에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유죄판결(징역4월)을 받고 판결이 확정되자, 확정판결을 뒤집기 위해 그때부터 2014년까지 대법원장,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기획재정부 장관, 고용노동부장관, 교육부장관, 법원·검찰, 경찰공무원, 중소기업청 등 행정기관의 공무원, 민간신문사 등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수천 건의 진정, 고소를 남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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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는 2009년 12월 15일경 창원지검 방호원인 A씨가 검찰청사로 진입하고자 하는 자신을 막았다는 이유로 머리로 A씨의 얼굴을 들이받아 상해를 가해 징역 4월의 재판이 확정되자 직장에서 징계해고됐다.

피의자는 자신의 형사사건에서 A씨가 증언한 것을 위증으로 고소를 해서 위증을 인정받게 되면 재심을 통해 직장 복귀가 가능하다는 조언을 듣고 무려 165회의 허위 고소와 58회의 진정을 냈다.

◆ 일본의 60배인 고소·고발

A씨와 B씨 사례처럼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고소와 고발의 남용으로 사법 기관의 업무를 방해해 국민에게 피해는 주는 일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법적 분쟁이나 불만 등을 고소나 고발을 통해 해결하려는 풍조가 널리 퍼지면서 ‘고소·고발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한해 185만2437건의 형사 사건 중 고소·고발 사안이 51만 2513건으로 전체의 30%나 된다. 결국 한해 평균 우리나라 인구 1만명당 고소·고발이 80건이라는 얘긴데, 우리나라와 사법 체계가 유사한 일본(1만명당 1.3건)의 60배에 달한다.

고소와 고발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하지만 취지에 어긋나서 지나치게 남용될 경우 사법 기관에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법무부 관계자는 “고소나 고발이 접수되면 일단 해당 내용을 알아보고 처리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며 “꼭 필요하지 않은 고소·고발을 남발하게 되면 수사기관이 진짜 필요한 강력, 민생 범죄 수사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성희롱 발언’ 강용석이 처벌받는 진짜 이유는?

법무부는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사건사무 규칙’을 몇차례 바꿨다. 풍문에 근거하거나 음해성 고소·고발이라고 판단될 경우 ‘각하’ 결정을 내려 조기에 종결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접수단계에서부터 고소·고발 자체를 차단할 근거는 없기 때문에 고소·고발은 쉽게 줄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소·고발이 접수되면 일단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하다 종결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력 낭비가 심하다.

전문가들은 악의적인 고소나 고발을 접수단계에서 걸러내는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고소·고발 에는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을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고소나 고발은 헌법상 권리로 보호돼야 하지만, 만일 타인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경우 무고죄로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윤상목 변호사는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방송인 강용석씨가 지난해 유죄판결을 받은 혐의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아닌 이를 보도한 기자를 무고했다는 것이었다”며 “무고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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