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야구 승부 가리는 번트, 원래는 000 이었다

입력 2015.07.23 (07:18) 수정 2015.07.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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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트의 원형은 ‘델릴링’?

현대 야구에서 번트는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언제라도 번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번트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번트의 역사를 살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번트의 역사는 18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타운볼이나 배트-앤-볼 게임에 이미 번트가 등장한다. 물론 이름은 달랐다. '델릴링(delilling)'이라고 했다. 어빙 라이트너는 번트의 원형이 된 델릴링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타운볼에서는 타자가 두 손을 쓰면, 크리켓 방망이처럼 넓고 평평한 것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 손을 쓰면 작은 야구 방망이 같은 '델릴(delill)'을 썼다. 델릴을 사용하는 타자는 스윙을 하는 대신 공에 방망이를 맞추는 타격을 했다. 이게 델릴링이다.

■ 기록이 남아있는 최초의 번트는 1860년

그렇다고 야구 선수들이 델릴링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초창기 야구에서는 힘찬 스윙으로 장타를 날리는 게 중요했다. 투수의 역할도 현대의 베팅볼 투수에 가까웠다. 이러다 보니 최초의 번트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났다. 1860년 6월 29일, 애틀랜틱과 퍼트남 베이스볼 클럽의 경기가 번트 상황이 기록된 최초의 사례다.

뉴욕 클리퍼 신문은 당시 2회 상황을 묘사했다. 크리켓 선수가 직구를 라켓으로 막는 것처럼 브라운이라는 타자가 낮은 공을 쳐냈다. 브라운은 1루로 출루했지만, 심판은 안타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판이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파울 규정 비교파울 규정 비교


■ 번트를 키운 건 ‘페어-파울’룰

브라운의 사례는 안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타구는 페어볼로 간주됐다. 이후에도 유사한 상황이 종종 일어났고 타자는 계속 출루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많은 타자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의 규칙도 도왔다. 바로 '페어-파울'룰이다.

현대 야구에서 내야 페어지역에 떨어진 타구가 파울 라인을 넘어서면 파울이 된다. 그러나 당시 '페어-파울'룰은 달랐다. 타구가 처음 떨어진 지역이 페어지역이면 이후에 파울 라인을 넘어도 페어볼로 간주했다. 이러다보니 타자들이 변칙적인 타격을 시작했다. 공을 페어지역에 떨어뜨린 뒤 파울지역으로 넘어가도록 교묘하게 친 것이다.

자연스럽게 3루수는 파울지역까지 수비해야 했다. 타자들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했다. 투수와 포수, 3루수 사이의 공백이 더 커진 만큼 이곳에 공을 떨어뜨리면 출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어-파울'룰이 번트를 키운 것이다.

번트의 아버지들번트의 아버지들


■ 누가 이런 잔머리를 썼나?

번트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을 때 여러 대답이 나온다.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해리 라이트라는 설이 있고, 브루클린 애틀랜틱스의 디키 피어스와 톰 발로우라는 설도 있다. 유력설의 주인공은 디키 피어스다.

디키 피어스는 페어-파울 히트와 번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선수였다. 디키 피어스와 톰 발로우의 동료였던 조지 홀은 1860년대 초 피어스가 페어-파울 히트를 소개했고, 몇년 뒤 번트를 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871년부터 톰 발로우가 60센티미터 안팎의 짧은 배트를 이용해 번트를 쳤다고 술회했다.

번트의 어원번트의 어원


■ 번트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번트에 대한 팬과 언론의 평가는 혹독했다. 장타를 칠 능력이 없는 타자들이 잔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폄하했다. 그래서 큰 새가 아닌 작은 새에 빗댔다. '멧새'를 뜻하는 'bunting'이 번트의 어원이 됐다는 설의 배경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다. 방망이의 끝 부분인 'butt'에 공을 대던 것에서 번트가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고, 화물 열차를 살짝 밀어 궤도를 바꾸는 'bunting'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초창기 야구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던 번트는 현대 야구에서 '백조'로 거듭났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발달하면서 번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도 홈런 더비와 함께 수년째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백오십년전 디키 피어스가 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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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야구 승부 가리는 번트, 원래는 000 이었다
    • 입력 2015-07-23 07:18:14
    • 수정2015-07-23 16: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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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트의 원형은 ‘델릴링’?

현대 야구에서 번트는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언제라도 번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번트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번트의 역사를 살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번트의 역사는 18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타운볼이나 배트-앤-볼 게임에 이미 번트가 등장한다. 물론 이름은 달랐다. '델릴링(delilling)'이라고 했다. 어빙 라이트너는 번트의 원형이 된 델릴링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타운볼에서는 타자가 두 손을 쓰면, 크리켓 방망이처럼 넓고 평평한 것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 손을 쓰면 작은 야구 방망이 같은 '델릴(delill)'을 썼다. 델릴을 사용하는 타자는 스윙을 하는 대신 공에 방망이를 맞추는 타격을 했다. 이게 델릴링이다.

■ 기록이 남아있는 최초의 번트는 1860년

그렇다고 야구 선수들이 델릴링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초창기 야구에서는 힘찬 스윙으로 장타를 날리는 게 중요했다. 투수의 역할도 현대의 베팅볼 투수에 가까웠다. 이러다 보니 최초의 번트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났다. 1860년 6월 29일, 애틀랜틱과 퍼트남 베이스볼 클럽의 경기가 번트 상황이 기록된 최초의 사례다.

뉴욕 클리퍼 신문은 당시 2회 상황을 묘사했다. 크리켓 선수가 직구를 라켓으로 막는 것처럼 브라운이라는 타자가 낮은 공을 쳐냈다. 브라운은 1루로 출루했지만, 심판은 안타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판이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파울 규정 비교


■ 번트를 키운 건 ‘페어-파울’룰

브라운의 사례는 안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타구는 페어볼로 간주됐다. 이후에도 유사한 상황이 종종 일어났고 타자는 계속 출루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많은 타자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의 규칙도 도왔다. 바로 '페어-파울'룰이다.

현대 야구에서 내야 페어지역에 떨어진 타구가 파울 라인을 넘어서면 파울이 된다. 그러나 당시 '페어-파울'룰은 달랐다. 타구가 처음 떨어진 지역이 페어지역이면 이후에 파울 라인을 넘어도 페어볼로 간주했다. 이러다보니 타자들이 변칙적인 타격을 시작했다. 공을 페어지역에 떨어뜨린 뒤 파울지역으로 넘어가도록 교묘하게 친 것이다.

자연스럽게 3루수는 파울지역까지 수비해야 했다. 타자들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했다. 투수와 포수, 3루수 사이의 공백이 더 커진 만큼 이곳에 공을 떨어뜨리면 출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어-파울'룰이 번트를 키운 것이다.

번트의 아버지들


■ 누가 이런 잔머리를 썼나?

번트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을 때 여러 대답이 나온다.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해리 라이트라는 설이 있고, 브루클린 애틀랜틱스의 디키 피어스와 톰 발로우라는 설도 있다. 유력설의 주인공은 디키 피어스다.

디키 피어스는 페어-파울 히트와 번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선수였다. 디키 피어스와 톰 발로우의 동료였던 조지 홀은 1860년대 초 피어스가 페어-파울 히트를 소개했고, 몇년 뒤 번트를 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871년부터 톰 발로우가 60센티미터 안팎의 짧은 배트를 이용해 번트를 쳤다고 술회했다.

번트의 어원


■ 번트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번트에 대한 팬과 언론의 평가는 혹독했다. 장타를 칠 능력이 없는 타자들이 잔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폄하했다. 그래서 큰 새가 아닌 작은 새에 빗댔다. '멧새'를 뜻하는 'bunting'이 번트의 어원이 됐다는 설의 배경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다. 방망이의 끝 부분인 'butt'에 공을 대던 것에서 번트가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고, 화물 열차를 살짝 밀어 궤도를 바꾸는 'bunting'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초창기 야구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던 번트는 현대 야구에서 '백조'로 거듭났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발달하면서 번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도 홈런 더비와 함께 수년째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백오십년전 디키 피어스가 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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