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한국판 쥬라기? ‘사파리 아일랜드’의 엉뚱한 결말

입력 2015.08.14 (06:03) 수정 2015.08.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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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파리 아일랜드란?

"고라니다!"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고라니가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뒤이어 새끼 고라니가 엄마 고라니를 뒤따랐다. 백로가 한가로이 날고, 황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풀의 섬'이라는 전남 신안군 도초도(都草島)는 지난 2005년 사파리 아일랜드로 지정됐다. 영화 '쥬라기공원'처럼 야생 동물이 마음껏 뛰노는 섬을 만든다는 것이다. 118만 제곱미터 부지에 천3백억 원을 들여 초식 사파리, 육식 사파리와 숙박시설 등을 갖춘 사파리 아일랜드 관광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섬 관광 대박을 꿈꾸며 '사파리 아일랜드'를 야심차게 추진한다.

사파리 아일랜드 토지 이용 계획사파리 아일랜드 토지 이용 계획



■ 9년 논란 끝에 결국 중단

영화 같은 사파리 아일랜드 조성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2006년에 야생동물 복원공원 조성 및 기본구상 용역, 2009년 사파리 아일랜드 관광단지조성 기본계획 용역을 했지만 사업 추진은 난항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민간자본 유치였다. 사업비 천324억 원 가운데 민간 자본이 무려 814억 원이나 된다. 전라남도가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나서는 기업은 없었다. 이 와중에 전라남도는 도의원들과 섬 주민들을 설득해 예산 67억 원을 들여 사업부지 80만 제곱미터를 사들인다. 하지만, 박 전 지사가 물러나고 이낙연 지사가 취임하면서 이 사업은 F1대회와 함께 중단해야 할 사업으로 분류된다. 2005년 12월 시작된 도초도 사파리 아일랜드 관광단지는 9년 논란 끝에 지난해 결국 중단된다.

사파리 아일랜드 예정 부지사파리 아일랜드 예정 부지



■ 농사는 그대로…무단 점유

농민들은 평생을 일구던 터전을 사파리 아일랜드 사업 부지로 팔았다. 논 주인이 전라남도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땅을 판 뒤에도 1년에서 4년째 농사를 계속 짓고 있다. 섬 주민들에 따르면 이전 논 주인이 그대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다른 농민에게 소작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라남도에 땅을 팔지 않은 도초도의 다른 농민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땅값에다 영농 보상비까지 받고도 수년째 공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이같은 민원을 받은 전라남도는 신안군에 공문을 보낸다. 공유재산법에 따라 대부계약을 체결하고 사용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신안군은 이같은 전라남도의 공문을 네 차례나 받고도 무시한다.

사파리 아일랜드 예정지구 푯말사파리 아일랜드 예정지구 푯말



■ 거듭되는 말 바꾸기…신안군의 속내는?

사용료를 받지 않고 농민들의 공짜 농사를 묵인하는 이유가 뭘까? 공문을 받은 신안군 담당자는 거짓말부터 했다. 전라남도가 2016년부터 논 사용료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뒤이어 전라남도에서 논 사용료를 받으라는 공문은 단 한 차례만 받았다고 했다. 또, 신안군은 전라남도에서 토지 매입권만 위임 받았고, 토지 관리권은 위임받은 적이 없다며 전라남도 책임이라고 했다. 더욱이 매입한 토지는 공유재산 관리법에 따라 행정자산으로 분류돼 사용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저런 근거를 들이대니 그제서야 말을 바꿨다. 군수의 입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군수 비서실장은 고길호 신안군수가 휴가중이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석연치않은 해명에 취재 요청 거절까지, 신안군의 속내가 궁금하다.

전남 신안군청전남 신안군청



■ 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비화

주민들에게 받아야 할 사용료는 얼마일까? 전라남도 공유재산 관리 조례를 보면 농경지를 빌려줄 경우엔 땅값의 1%를 받는다. 전라남도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면 연간 2천2백만 원 정도, 보상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5천3백만 원 정도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라남도의 한 관계자는 박우량 전 군수나 현 고길호 군수가 선거를 염두에 두고 사용료를 받지 않은 게 아니냐고 말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선거에서 표를 더 얻기 위해 주민들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사용료를 면제해준 꼴이 된다. 전라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유재산 무단점유를 묵인한 게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 사파리 아일랜드 중단, 도초도의 운명은?

전라남도는 용역비와 토지보상비, 영농보상비 등 모두 80억 원 정도를 사파리 아일랜드 사업에 투자했다. 사업 중단 1년 만인 이달 초 사파리 아일랜드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간담회를 열었다. 친환경 농업단지 조성, 말 산업 단지, 청보리 식재, 농업 체험 마을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목포에서 5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섬,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기엔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손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일인데, 이건 사파리 사업 부지로 논밭을 내준 농민들에게 내세울 명분이 없다. 풀의 섬 도초도(都草島)는 고려 말부터 목장 용지로 써왔다고 한다. 마을 이름도 난초마을 고란리(古蘭里), 감나무 마을 시목리(枾木里) 등 풀과 나무를 품고 있다. 도초도에서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대안은 뭘까? 사파리 아일랜드 논란을 잠재울 대안이 주목된다.

예정부지 인근 마을 전경예정부지 인근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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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한국판 쥬라기? ‘사파리 아일랜드’의 엉뚱한 결말
    • 입력 2015-08-14 06:03:11
    • 수정2015-08-14 10:11:53
    취재후·사건후
■ 사파리 아일랜드란?

"고라니다!"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고라니가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뒤이어 새끼 고라니가 엄마 고라니를 뒤따랐다. 백로가 한가로이 날고, 황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풀의 섬'이라는 전남 신안군 도초도(都草島)는 지난 2005년 사파리 아일랜드로 지정됐다. 영화 '쥬라기공원'처럼 야생 동물이 마음껏 뛰노는 섬을 만든다는 것이다. 118만 제곱미터 부지에 천3백억 원을 들여 초식 사파리, 육식 사파리와 숙박시설 등을 갖춘 사파리 아일랜드 관광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섬 관광 대박을 꿈꾸며 '사파리 아일랜드'를 야심차게 추진한다.

사파리 아일랜드 토지 이용 계획



■ 9년 논란 끝에 결국 중단

영화 같은 사파리 아일랜드 조성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2006년에 야생동물 복원공원 조성 및 기본구상 용역, 2009년 사파리 아일랜드 관광단지조성 기본계획 용역을 했지만 사업 추진은 난항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민간자본 유치였다. 사업비 천324억 원 가운데 민간 자본이 무려 814억 원이나 된다. 전라남도가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나서는 기업은 없었다. 이 와중에 전라남도는 도의원들과 섬 주민들을 설득해 예산 67억 원을 들여 사업부지 80만 제곱미터를 사들인다. 하지만, 박 전 지사가 물러나고 이낙연 지사가 취임하면서 이 사업은 F1대회와 함께 중단해야 할 사업으로 분류된다. 2005년 12월 시작된 도초도 사파리 아일랜드 관광단지는 9년 논란 끝에 지난해 결국 중단된다.

사파리 아일랜드 예정 부지



■ 농사는 그대로…무단 점유

농민들은 평생을 일구던 터전을 사파리 아일랜드 사업 부지로 팔았다. 논 주인이 전라남도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땅을 판 뒤에도 1년에서 4년째 농사를 계속 짓고 있다. 섬 주민들에 따르면 이전 논 주인이 그대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다른 농민에게 소작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라남도에 땅을 팔지 않은 도초도의 다른 농민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땅값에다 영농 보상비까지 받고도 수년째 공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이같은 민원을 받은 전라남도는 신안군에 공문을 보낸다. 공유재산법에 따라 대부계약을 체결하고 사용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신안군은 이같은 전라남도의 공문을 네 차례나 받고도 무시한다.

사파리 아일랜드 예정지구 푯말



■ 거듭되는 말 바꾸기…신안군의 속내는?

사용료를 받지 않고 농민들의 공짜 농사를 묵인하는 이유가 뭘까? 공문을 받은 신안군 담당자는 거짓말부터 했다. 전라남도가 2016년부터 논 사용료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뒤이어 전라남도에서 논 사용료를 받으라는 공문은 단 한 차례만 받았다고 했다. 또, 신안군은 전라남도에서 토지 매입권만 위임 받았고, 토지 관리권은 위임받은 적이 없다며 전라남도 책임이라고 했다. 더욱이 매입한 토지는 공유재산 관리법에 따라 행정자산으로 분류돼 사용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저런 근거를 들이대니 그제서야 말을 바꿨다. 군수의 입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군수 비서실장은 고길호 신안군수가 휴가중이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석연치않은 해명에 취재 요청 거절까지, 신안군의 속내가 궁금하다.

전남 신안군청



■ 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비화

주민들에게 받아야 할 사용료는 얼마일까? 전라남도 공유재산 관리 조례를 보면 농경지를 빌려줄 경우엔 땅값의 1%를 받는다. 전라남도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면 연간 2천2백만 원 정도, 보상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5천3백만 원 정도 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라남도의 한 관계자는 박우량 전 군수나 현 고길호 군수가 선거를 염두에 두고 사용료를 받지 않은 게 아니냐고 말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선거에서 표를 더 얻기 위해 주민들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사용료를 면제해준 꼴이 된다. 전라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유재산 무단점유를 묵인한 게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 사파리 아일랜드 중단, 도초도의 운명은?

전라남도는 용역비와 토지보상비, 영농보상비 등 모두 80억 원 정도를 사파리 아일랜드 사업에 투자했다. 사업 중단 1년 만인 이달 초 사파리 아일랜드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간담회를 열었다. 친환경 농업단지 조성, 말 산업 단지, 청보리 식재, 농업 체험 마을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목포에서 5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섬,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기엔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손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일인데, 이건 사파리 사업 부지로 논밭을 내준 농민들에게 내세울 명분이 없다. 풀의 섬 도초도(都草島)는 고려 말부터 목장 용지로 써왔다고 한다. 마을 이름도 난초마을 고란리(古蘭里), 감나무 마을 시목리(枾木里) 등 풀과 나무를 품고 있다. 도초도에서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대안은 뭘까? 사파리 아일랜드 논란을 잠재울 대안이 주목된다.

예정부지 인근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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