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현장 지키는 ‘위안부 평화 소녀상’
입력 2015.08.14 (21:36)
수정 2015.08.1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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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의 현장이었던 광산 터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습니다.
많은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지어져 의미가 더 깊습니다.
김지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휴가철 피서객들로 붐비는 동굴 테마파크.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곁에 위안부 소녀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터뷰> 임화자(인천시 남동구) : "요즘 말하면 중학생 정도 어린 나이잖아요. 그런 어린 나이에 일제 만행으로 (위안소)에 끌려 갔다는게 가슴 아픈 일이죠."
이 동굴은 일제 강점 초기인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광산이었습니다.
땅을 잃은 우리 농민들이 대거 광부로 끌려왔고, 땀흘려 캐낸 은과 동, 아연 등은 일제의 군수 물자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폐광된 뒤 40여 년이 흐르고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광명시민들이 이 곳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데는 그 수탈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성금을 낸 시민이 천7백 명을 넘습니다.
<인터뷰> 양기대(광명시장) : "(강제 동원된) 그분들을 위로도 하면서, 역사의 현장으로서 시민들한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함께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난 현장을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지선입니다.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의 현장이었던 광산 터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습니다.
많은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지어져 의미가 더 깊습니다.
김지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휴가철 피서객들로 붐비는 동굴 테마파크.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곁에 위안부 소녀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터뷰> 임화자(인천시 남동구) : "요즘 말하면 중학생 정도 어린 나이잖아요. 그런 어린 나이에 일제 만행으로 (위안소)에 끌려 갔다는게 가슴 아픈 일이죠."
이 동굴은 일제 강점 초기인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광산이었습니다.
땅을 잃은 우리 농민들이 대거 광부로 끌려왔고, 땀흘려 캐낸 은과 동, 아연 등은 일제의 군수 물자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폐광된 뒤 40여 년이 흐르고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광명시민들이 이 곳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데는 그 수탈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성금을 낸 시민이 천7백 명을 넘습니다.
<인터뷰> 양기대(광명시장) : "(강제 동원된) 그분들을 위로도 하면서, 역사의 현장으로서 시민들한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함께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난 현장을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지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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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수탈현장 지키는 ‘위안부 평화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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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08-14 21:54:43
- 수정2015-08-14 22:11:07
<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의 현장이었던 광산 터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습니다.
많은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지어져 의미가 더 깊습니다.
김지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휴가철 피서객들로 붐비는 동굴 테마파크.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곁에 위안부 소녀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터뷰> 임화자(인천시 남동구) : "요즘 말하면 중학생 정도 어린 나이잖아요. 그런 어린 나이에 일제 만행으로 (위안소)에 끌려 갔다는게 가슴 아픈 일이죠."
이 동굴은 일제 강점 초기인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광산이었습니다.
땅을 잃은 우리 농민들이 대거 광부로 끌려왔고, 땀흘려 캐낸 은과 동, 아연 등은 일제의 군수 물자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폐광된 뒤 40여 년이 흐르고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광명시민들이 이 곳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데는 그 수탈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성금을 낸 시민이 천7백 명을 넘습니다.
<인터뷰> 양기대(광명시장) : "(강제 동원된) 그분들을 위로도 하면서, 역사의 현장으로서 시민들한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함께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난 현장을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지선입니다.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의 현장이었던 광산 터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습니다.
많은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지어져 의미가 더 깊습니다.
김지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휴가철 피서객들로 붐비는 동굴 테마파크.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 곁에 위안부 소녀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터뷰> 임화자(인천시 남동구) : "요즘 말하면 중학생 정도 어린 나이잖아요. 그런 어린 나이에 일제 만행으로 (위안소)에 끌려 갔다는게 가슴 아픈 일이죠."
이 동굴은 일제 강점 초기인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광산이었습니다.
땅을 잃은 우리 농민들이 대거 광부로 끌려왔고, 땀흘려 캐낸 은과 동, 아연 등은 일제의 군수 물자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폐광된 뒤 40여 년이 흐르고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흔적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광명시민들이 이 곳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데는 그 수탈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성금을 낸 시민이 천7백 명을 넘습니다.
<인터뷰> 양기대(광명시장) : "(강제 동원된) 그분들을 위로도 하면서, 역사의 현장으로서 시민들한테도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함께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난 현장을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KBS뉴스 김지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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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기자 3rdl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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