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인 위안부 150명 ‘망향의 한’ 재조명
입력 2015.08.17 (06:35)
수정 2015.08.17 (06:4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중일전쟁 당시 중국 우한의 한 위안소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수치심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한국인 위안부의 비참한 삶이 중국에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태욱 특파원이 우한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내 한복판에 빼곡히 들어선 낡은 2층 집들.
1938년 우한을 점령한 일본 육군의 위안솝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이 위안소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두홍잉(우한도서관 연구원) : "조선인 150명을 포함해 모두 280여 명의 위안부가 이 곳에 있었습니다."
인근 농촌 마을에서 만난 94살 박차순 할머니.
스무살 때 우한에 끌려와 4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의지할 곳 없어 양녀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수치심 때문에 고국에 돌아갈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인터뷰> 박차순(위안부 피해자) :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면 뭐해? 집도 없고 아무도 없어."
박 할머니와 같은 중국 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는 연극으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참혹했던 위안부의 삶은 한중 양국이 겪은 일제 침략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쟈오뤼이타이(연극 작가) : "역사는 부인해서도 은폐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아무 인연도 없는 중국 땅에 뿌리내려야 했던 한인 위안부 피해자.
이제는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생존자는 단 2명뿐인 것으로 중국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KBS 뉴스 김태욱입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우한의 한 위안소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수치심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한국인 위안부의 비참한 삶이 중국에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태욱 특파원이 우한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내 한복판에 빼곡히 들어선 낡은 2층 집들.
1938년 우한을 점령한 일본 육군의 위안솝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이 위안소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두홍잉(우한도서관 연구원) : "조선인 150명을 포함해 모두 280여 명의 위안부가 이 곳에 있었습니다."
인근 농촌 마을에서 만난 94살 박차순 할머니.
스무살 때 우한에 끌려와 4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의지할 곳 없어 양녀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수치심 때문에 고국에 돌아갈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인터뷰> 박차순(위안부 피해자) :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면 뭐해? 집도 없고 아무도 없어."
박 할머니와 같은 중국 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는 연극으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참혹했던 위안부의 삶은 한중 양국이 겪은 일제 침략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쟈오뤼이타이(연극 작가) : "역사는 부인해서도 은폐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아무 인연도 없는 중국 땅에 뿌리내려야 했던 한인 위안부 피해자.
이제는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생존자는 단 2명뿐인 것으로 중국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KBS 뉴스 김태욱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중국의 한국인 위안부 150명 ‘망향의 한’ 재조명
-
- 입력 2015-08-17 06:31:38
- 수정2015-08-17 06:47:50
<앵커 멘트>
중일전쟁 당시 중국 우한의 한 위안소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수치심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한국인 위안부의 비참한 삶이 중국에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태욱 특파원이 우한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내 한복판에 빼곡히 들어선 낡은 2층 집들.
1938년 우한을 점령한 일본 육군의 위안솝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이 위안소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두홍잉(우한도서관 연구원) : "조선인 150명을 포함해 모두 280여 명의 위안부가 이 곳에 있었습니다."
인근 농촌 마을에서 만난 94살 박차순 할머니.
스무살 때 우한에 끌려와 4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의지할 곳 없어 양녀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수치심 때문에 고국에 돌아갈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인터뷰> 박차순(위안부 피해자) :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면 뭐해? 집도 없고 아무도 없어."
박 할머니와 같은 중국 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는 연극으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참혹했던 위안부의 삶은 한중 양국이 겪은 일제 침략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쟈오뤼이타이(연극 작가) : "역사는 부인해서도 은폐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아무 인연도 없는 중국 땅에 뿌리내려야 했던 한인 위안부 피해자.
이제는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생존자는 단 2명뿐인 것으로 중국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KBS 뉴스 김태욱입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우한의 한 위안소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수치심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한국인 위안부의 비참한 삶이 중국에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김태욱 특파원이 우한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내 한복판에 빼곡히 들어선 낡은 2층 집들.
1938년 우한을 점령한 일본 육군의 위안솝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이 위안소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두홍잉(우한도서관 연구원) : "조선인 150명을 포함해 모두 280여 명의 위안부가 이 곳에 있었습니다."
인근 농촌 마을에서 만난 94살 박차순 할머니.
스무살 때 우한에 끌려와 4년 동안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의지할 곳 없어 양녀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수치심 때문에 고국에 돌아갈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인터뷰> 박차순(위안부 피해자) :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가면 뭐해? 집도 없고 아무도 없어."
박 할머니와 같은 중국 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는 연극으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참혹했던 위안부의 삶은 한중 양국이 겪은 일제 침략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쟈오뤼이타이(연극 작가) : "역사는 부인해서도 은폐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아무 인연도 없는 중국 땅에 뿌리내려야 했던 한인 위안부 피해자.
이제는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생존자는 단 2명뿐인 것으로 중국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KBS 뉴스 김태욱입니다.
-
-
김태욱 기자 twkim@kbs.co.kr
김태욱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