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역대 유감 표명 살펴보니…

입력 2015.08.25 (11:57) 수정 2015.08.2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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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측과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문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북한이 최근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우리 병사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는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직접 스스로의 잘못을 사과하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며 사과라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북한의 그동안 유감 표명 전례로 봤을 때 유감 표명을 이끌어 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이전 북한의 유감 표명은 언제 어떤 식으로 했을까. 사건별로 북한의 유감 표명을 살펴봤다.

◆ 과거 북한의 4차례 유감 표명 문구는 무엇?

김일성 사과김일성 사과


북한이 처음으로 실질적인 사과를 한 것은 지난 1972년이다. 1968년 있었던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면담에서 직접 미안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그것은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으며 우리 내부에서 생긴 좌익동맹분자들이 한 짓이지 결코 내 의사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두 번째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였다. 1976년 8월18일 미군 2명이 북한 군인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한미 양국이 데프콘 3호를 발령하고 전투대세를 갖추며 압박하자, 북한은 김일성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사과문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사건들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란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했다.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이후 있었던 1996년과 2002년 북한의 유감표명은 남북 장관급 회담 등 대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 9월 북한은 북한 공작원 25명을 태운 잠수함을 강원도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시켰다. 당시 군은 150만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작전을 벌여 24명의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는 전공을 올렸다. 하지만 우리 측도 민간인을 포함한 5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약 2000여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해 12월 북한은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남조선 강릉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힘쓸 것”이라고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2002년 2차 연평해전2002년 2차 연평해전

▲ 2002년 2차 연평해전


또 2002년 6월 서해상에서 발생한 2차 연평해전에 대해서는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김성령 단장이 당시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차 연평해전은 당시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도발에 맞서 싸우다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한 사건으로 최근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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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역대 유감 표명 살펴보니…
    • 입력 2015-08-25 11:57:09
    • 수정2015-08-25 12:14:03
    정치
북한이 남측과의 마라톤 협상 끝에 합의문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북한이 최근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우리 병사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는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직접 스스로의 잘못을 사과하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며 사과라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북한의 그동안 유감 표명 전례로 봤을 때 유감 표명을 이끌어 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이전 북한의 유감 표명은 언제 어떤 식으로 했을까. 사건별로 북한의 유감 표명을 살펴봤다. ◆ 과거 북한의 4차례 유감 표명 문구는 무엇?
김일성 사과
북한이 처음으로 실질적인 사과를 한 것은 지난 1972년이다. 1968년 있었던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면담에서 직접 미안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그것은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으며 우리 내부에서 생긴 좌익동맹분자들이 한 짓이지 결코 내 의사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두 번째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였다. 1976년 8월18일 미군 2명이 북한 군인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한미 양국이 데프콘 3호를 발령하고 전투대세를 갖추며 압박하자, 북한은 김일성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사과문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사건들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란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했다.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이후 있었던 1996년과 2002년 북한의 유감표명은 남북 장관급 회담 등 대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 9월 북한은 북한 공작원 25명을 태운 잠수함을 강원도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시켰다. 당시 군은 150만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작전을 벌여 24명의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는 전공을 올렸다. 하지만 우리 측도 민간인을 포함한 5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약 2000여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해 12월 북한은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남조선 강릉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힘쓸 것”이라고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2002년 2차 연평해전
▲ 2002년 2차 연평해전
또 2002년 6월 서해상에서 발생한 2차 연평해전에 대해서는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김성령 단장이 당시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차 연평해전은 당시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도발에 맞서 싸우다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한 사건으로 최근 영화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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