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두 핵보유국의 대결…‘카슈미르’ 뇌관 터지나
입력 2015.08.26 (16:00)
수정 2015.08.27 (14:2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카슈미르 분리주의자 공항서 체포
인도 뉴델리 공항. 북부 스리나가르를 출발한 국내선 여객기 한 대가 활주로에 착륙했다. 덥수룩한 구레나룻에 날카로운 눈매를 한 60대 남자도 다른 승객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여느 승객들과 달리 도착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뉴델리 경찰이 그와 동료 두 명을 체포해 모처로 압송했다.
노신사의 이름은 샤비르 샤, 카슈미르 분리운동을 이끄는 저명한 정치 지도자다. 그의 목적지는 뉴델리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이었다. 다음날인 23일 대사관에서 파키스탄 국가안보보좌관 사르타지 아지즈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 아지즈는 인도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회담을 위해 뉴델리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카슈미르 지도
■ 카슈미르 '발목'...인도-파키스탄 고위급 회담 무산
노신사가 체포되던 날, 파키스탄 정부는 양국 안보보좌관 회담의 취소를 발표했다. 인도 정부도 기다렸다는 듯 회담 무산의 책임을 파키스탄에 돌렸다. 안보보좌관 회담은 지난달 두 나라 총리가 러시아에서 만나 성사시킨 일이었지만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모처럼 싹튼 고위급 대화 분위기를 깬 것은 이번에도 카슈미르였다.
파키스탄은 8월 23~24로 예정된 아지즈 안보보좌관 방문에 맞춰 인도령 카슈미르 분리주의 지도자들을 뉴델리의 파키스탄 대사관으로 초청했다. 카슈미르의 현황을 청취하겠다는 것이었다. 인도 정부는 발끈했다. 인도 땅에서 카슈미르를 분리해나가겠다는 운동가 겸 정치인을 파키스탄 고위급 인사가 만나겠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나라는 회담에서 무슨 문제를 다룰 지를 놓고도 회담 하루 전까지 티격태격했다. 인도는 테러 문제에 한정하자고 했다. 인도에서 일어나는 테러 배후에 파키스탄이 있다고 믿는 인도로서는 이번 기회에 증거를 들이밀고 파키스탄을 압박하려던 참이었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분쟁 등 더 폭넓은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맞섰다. 고위급 회담에서 카슈미르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슈화하겠다는 의도였다.
하리 싱
▲ 카슈미르 분쟁의 씨앗을 뿌린 군주 '하리 싱'
■ 인도-파키스탄, 68년째 '카슈미르 대결'
카슈미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분쟁 지역 중 하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게 1947년이니까 68년째 카슈미르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카슈미르 때문에 독립 직후인 1947년~1948년, 1965년, 두 차례 전면전을 치뤘고 지금도 끊임없이 교전을 벌이고 있다.
원래는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할 당시, 전국 각지에는 500개가 넘는 지방 군주국이 있었다. 카슈미르는 그 중 가장 큰 군주국이었다. 주민 다수가 힌두교도면 인도, 무슬림이면 파키스탄으로 복속되는 게 원칙이었다. 당시 카슈미르 주민 중 무슬림 비중은 76%였다. 하지만 군주 하리 싱은 힌두교도였다. 하리 싱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결국 인도 병합의 길을 선택했다. 카슈미르 비극의 시작이었다.
분리주의 시위
▲ 카슈미르 분리주의 시위
■ 카슈미르 사망자 4만7천 여명...전시 방불
인-파 전쟁 후에 인도는 카슈미르 지역의 45%를, 파키스탄은 35%를 관할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영토의 완전한 회복을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여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카슈미르는 성전(지하드)를 벌여 되찾아야 할 땅으로 인식돼 있다. 인도 관할 카슈미르 내 무슬림들의 정서도 인도보다는 파키스탄으로 병합 또는 독립국 건설에 치우쳐 있다. 이런 정서를 배경으로 카슈미르에는 분리주의 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슬람 무장세력도 수시로 보안군과 충돌을 일으킨다.
파키스탄에서 훈련받은 전사들이 인도 관할 카슈미르로 밀입국해 테러를 자행한다는 게 인도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파키스탄은 자신들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테러와 소요 등으로 인도 관할 카슈미르에서는 4만7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인명 피해다.
카슈미르 계곡
▲ 카슈미르 계곡의 험준하고 장엄한 광경
■ 핵전력 강화 경쟁…'카슈미르' 뇌관 터지나?
카슈미르의 위험성은 두 나라가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1970년대와 1990년대에 각각 핵실험에 성공한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 기술 발전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각각 10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나라는 과거 세 차례의 전면전을 핵이 없는 상태에서 치뤘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을 궤멸시킬 만한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래서 카슈미르는 그 전에도 폭탄의 뇌관이었지만 이제는 핵폭탄을 건드릴 수 있는 뇌관이 됐다.
무굴제국의 4대 황제 제항기르는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카슈미르가 바로 그곳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넓고 넓은 인도 땅에서 카슈미르만큼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카슈미르 산악 지역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때묻지 않은 장엄한 광경에 절로 탄복하게 된다. 분쟁 지역이 아니었다면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명소가 됐을 것이다.
카슈미르는 언제쯤 '피에 물든 지상낙원'에서 진짜 낙원으로 바뀔 수 있을까.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7國記] 두 핵보유국의 대결…‘카슈미르’ 뇌관 터지나
-
- 입력 2015-08-26 16:00:54
- 수정2015-08-27 14:25:44
-
-
이재강 기자 run2000@kbs.co.kr
이재강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