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농구공 소녀’의 끝없는 도전

입력 2015.09.25 (00:48) 수정 2015.09.2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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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공 소녀농구공 소녀

▲ 시카고 트리뷴 홈페이지 화면 캡처


‘농구공소녀’라는 별명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19세 소녀가 있다. 농구를 잘해서가 아니다. 농구공을 발 삼아 걸어서다.

위 사진은 지난 2005년 중국 언론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진이다. 당시 9살이던 첸 홍엔이 할아버지가 만들어줬다는 ‘농구공발’과 나무 손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이 담겨있다. 어린 소녀의 안타까운 모습에 세계가 함께 울었다.

◆ 4살에 그녀를 덮친 불행

그녀는 중국에서도 벽촌에 속하는 윈난성 루량현에서 자랐다. 2000년 10월, 두명의 친구들과 함께 어른들을 도우러 밭에 가던 네 살 꼬마 첸홍엔을 모퉁이를 돌아 나오던 화물차가 덮쳤다. 사고당시 차체에 첸홍엔 휩쓸려 들어갔고, 골반 이하 양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한 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가난했던 가정형편 탓에 휠체어는 꿈도 못꿨다.

몸을 땅 바닥에 끌고다니면서 자주 다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그녀의 할아버지가 ‘농구공발’과 나무 손잡이를 만들어 줬다. 양 팔과 ‘농구공발’에 의지해 걷는 농구공소녀가 만들어진 사연이다.

◆ 농구공 소녀 수영과 만나다

농구공 소녀농구공 소녀

▲비즈니스 인사이더 홈페이지 화면 캡처


2005년 언론보도로 첸홍엔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농구공 대신 의족을 달았고, 중국 장애인 국가대표팀 감독인 장홍후 감독의 눈에 띄어 수영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물론 어려움이 있었다.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첸홍엔은 “물에 떠 있는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항상 숨이 막혔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리가 없는 그녀에게 수영은 힘든 운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수영에 매진했고, 2008년 윈난성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휩쓸었다.

이듬해인 2009년 18세 이하 전국 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엔 전국 장애인 수영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 3개를 따냈다. 그녀의 꿈은 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1년 장애인 올림픽 예선전 직전 그녀에게 ‘농구공발’을 만들어줬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낙심한 그녀는 언론의 눈을 피해 고향에 칩거했지만 좌절은 계속되지 않았다. 다시 수영 연습을 시작했고, 지난해 9월 윈난성 지방 장애인체육대회 여자 평형 100M 결승에서 2위와 큰 격차를 벌이며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2016년 리우 장애인 올림픽을 향한 그녀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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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농구공 소녀’의 끝없는 도전
    • 입력 2015-09-25 00:48:13
    • 수정2015-09-25 07:57:37
    국제
농구공 소녀 ▲ 시카고 트리뷴 홈페이지 화면 캡처
‘농구공소녀’라는 별명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19세 소녀가 있다. 농구를 잘해서가 아니다. 농구공을 발 삼아 걸어서다. 위 사진은 지난 2005년 중국 언론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진이다. 당시 9살이던 첸 홍엔이 할아버지가 만들어줬다는 ‘농구공발’과 나무 손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이 담겨있다. 어린 소녀의 안타까운 모습에 세계가 함께 울었다. ◆ 4살에 그녀를 덮친 불행 그녀는 중국에서도 벽촌에 속하는 윈난성 루량현에서 자랐다. 2000년 10월, 두명의 친구들과 함께 어른들을 도우러 밭에 가던 네 살 꼬마 첸홍엔을 모퉁이를 돌아 나오던 화물차가 덮쳤다. 사고당시 차체에 첸홍엔 휩쓸려 들어갔고, 골반 이하 양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한 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가난했던 가정형편 탓에 휠체어는 꿈도 못꿨다. 몸을 땅 바닥에 끌고다니면서 자주 다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그녀의 할아버지가 ‘농구공발’과 나무 손잡이를 만들어 줬다. 양 팔과 ‘농구공발’에 의지해 걷는 농구공소녀가 만들어진 사연이다. ◆ 농구공 소녀 수영과 만나다
농구공 소녀 ▲비즈니스 인사이더 홈페이지 화면 캡처
2005년 언론보도로 첸홍엔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농구공 대신 의족을 달았고, 중국 장애인 국가대표팀 감독인 장홍후 감독의 눈에 띄어 수영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물론 어려움이 있었다.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첸홍엔은 “물에 떠 있는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항상 숨이 막혔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리가 없는 그녀에게 수영은 힘든 운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수영에 매진했고, 2008년 윈난성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휩쓸었다. 이듬해인 2009년 18세 이하 전국 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엔 전국 장애인 수영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 3개를 따냈다. 그녀의 꿈은 올림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1년 장애인 올림픽 예선전 직전 그녀에게 ‘농구공발’을 만들어줬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녀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낙심한 그녀는 언론의 눈을 피해 고향에 칩거했지만 좌절은 계속되지 않았다. 다시 수영 연습을 시작했고, 지난해 9월 윈난성 지방 장애인체육대회 여자 평형 100M 결승에서 2위와 큰 격차를 벌이며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2016년 리우 장애인 올림픽을 향한 그녀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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