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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리포트] 기다림에 지친 ‘아바이 마을’…“죽기 전에 한번만”
입력 2015.09.25 (21:34) 수정 2015.09.25 (21:56)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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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오마니, 내 말 듣게요. 오마니, 박복태가 살아있습니다."

<앵커 멘트>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임진각에서 진행된 이산가족들의 망향제 모습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쪽 명절을 보내야 하는 이산가족들의 한, 세월이 흘러도 갈수록 깊어만 가는데요.

특히 생존 이산가족들의 절반 이상이 여든 살을 넘을 정도로 고령화 문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상봉자 100명에 들 확률은 무려 660대 1에 달해 상봉의 기회는 극히 적은 게 현실입니다.

고은희 기자가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촌, 아바이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함경도식 젓갈 가게를 하는 김송순 할머니는 23살이던 1.4 후퇴 때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북에 두고 온 남동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지만 고향 음식을 만들 때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인터뷰> 김송순(88살/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 "친구도 보고 싶고, 동기(동생)도 보고 싶고, 집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게 많지. 말해서 뭐하겠어."

다리가 생기기 전 육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갯배.

김진국 할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배를 타면 금세 그리운 북녘땅에 닿을 듯합니다.

<인터뷰> 김진국(76살/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 "이렇게 해서 북쪽으로는 가는데 고향은 못 가잖아요. 여러 가지 그런 애환이..."

6.25 전쟁 중 피란민들이 하나둘 모여 조성된 속초 아바이 마을.

실향민의 아픔이 묻어 있는 이 마을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습니다.

상봉 신청을 해도 대상자가 되는 게 쉽지 않았고 북측 가족에게 해가 될까 봐 아예 포기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진국(76세) : "'공산주의 싫어서 나간 사람인데 네 형제 찾을 필요 있느냐' 해서 이런 소식도 듣다 보니까 완전히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희망을 저버렸어요."

이제 생존해있는 일흔 살 이상 실향민은 불과 50여 명.

이번 상봉 대상자 선정에도 아무도 뽑히지 못했지만, 살아생전 혈육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여전합니다.

<인터뷰> 김필단(89살/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 "지금도 어머니,아버지 봤으면 싶어요. 그렇게 해요.마음이 그런데...그 전에 울고 나왔거든."

KBS 뉴스 고은희입니다.
  • [앵커&리포트] 기다림에 지친 ‘아바이 마을’…“죽기 전에 한번만”
    • 입력 2015-09-25 21:35:10
    • 수정2015-09-25 21:56:46
    뉴스 9
<녹취> "오마니, 내 말 듣게요. 오마니, 박복태가 살아있습니다."

<앵커 멘트>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임진각에서 진행된 이산가족들의 망향제 모습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반쪽 명절을 보내야 하는 이산가족들의 한, 세월이 흘러도 갈수록 깊어만 가는데요.

특히 생존 이산가족들의 절반 이상이 여든 살을 넘을 정도로 고령화 문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상봉자 100명에 들 확률은 무려 660대 1에 달해 상봉의 기회는 극히 적은 게 현실입니다.

고은희 기자가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촌, 아바이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함경도식 젓갈 가게를 하는 김송순 할머니는 23살이던 1.4 후퇴 때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북에 두고 온 남동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지만 고향 음식을 만들 때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인터뷰> 김송순(88살/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 "친구도 보고 싶고, 동기(동생)도 보고 싶고, 집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게 많지. 말해서 뭐하겠어."

다리가 생기기 전 육지와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갯배.

김진국 할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배를 타면 금세 그리운 북녘땅에 닿을 듯합니다.

<인터뷰> 김진국(76살/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 "이렇게 해서 북쪽으로는 가는데 고향은 못 가잖아요. 여러 가지 그런 애환이..."

6.25 전쟁 중 피란민들이 하나둘 모여 조성된 속초 아바이 마을.

실향민의 아픔이 묻어 있는 이 마을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습니다.

상봉 신청을 해도 대상자가 되는 게 쉽지 않았고 북측 가족에게 해가 될까 봐 아예 포기한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진국(76세) : "'공산주의 싫어서 나간 사람인데 네 형제 찾을 필요 있느냐' 해서 이런 소식도 듣다 보니까 완전히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희망을 저버렸어요."

이제 생존해있는 일흔 살 이상 실향민은 불과 50여 명.

이번 상봉 대상자 선정에도 아무도 뽑히지 못했지만, 살아생전 혈육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여전합니다.

<인터뷰> 김필단(89살/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 "지금도 어머니,아버지 봤으면 싶어요. 그렇게 해요.마음이 그런데...그 전에 울고 나왔거든."

KBS 뉴스 고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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