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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부끄러운 고백’ 공무원 철밥통 깨겠다고 나섰지만…
입력 2015.10.08 (00:05) 수정 2015.10.08 (09:17) 취재후
▲ 황서종 인사혁신처 차장


"인사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고백이 있다면, 성과 관리가 공무원 인사 관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한 번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던 유명무실한 제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인사혁신처 황서종 차장은 본격적인 브리핑에 앞서 '부끄러운 고백'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고위 공무원에 대한 퇴출 제도는 지난 2006년에 도입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고위 공무원들을 성과 중심으로 관리하겠다면서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때 무능한 고위 공무원을 직권 면직할 수 있도록 적격 심사제도를 함께 마련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적격 심사 대상이 된 고위 공무원은 단 두 명, 그마저도 성과 미흡으로 직권 면직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적격 심사 기준적격 심사 기준

▲ 적격 심사 기준


적격 심사가 이렇게 유명무실하게 운영된 것은 심사 대상을 정하는 조건 때문입니다. 고위 공무원이 된 뒤 성과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매우 미흡)을 두 번 받거나 특정한 보직 없이 '무보직' 상태가 1년을 넘을 경우 적격 심사 대상이 됩니다. 또는 최하위 등급 1번에 무보직 6개월일 경우입니다. 조건이 그렇게 까다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까다롭습니다.

먼저 성과 평가는 1년에 한 번 '매우 우수'·'우수'·'보통'·'미흡'·'매우 미흡' 5등급으로 이뤄집니다. '미흡'과 '매우 미흡'을 받은 사람을 합치면 전체 평가 대상자의 10%를 넘어야 하지만, '매우 미흡'의 비율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성과가 없어도 적격 심사는 피할 수 있게 '매우 미흡'보다 한 단계 바로 위의 '미흡'으로 평가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매우 미흡'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정확한 비율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부처별로 두세 명 정도는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에도 불구하고 '매우 미흡'이 아주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 때문에 두 번째 '매우 미흡'을 받은 사람은 아직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보직 기간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고위 공무원이 특정한 보직 없이, 이른바 '일없이' 보낸 기간이 1년을 넘길 수가 있을까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있었습니다. 그럼 그 공무원은 적격 심사를 받았을까요? 그동안은 해외 파견이나 휴직에서 복귀할 때 공석이 없어서 보직을 못 주는 경우에는 '귀책사유가 없는 무보직'으로 규정돼 보고 기간에 상관없이 적격 심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이번에 발표한 개선안의 핵심은 두 가집니다. 앞으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 해당하는 사람은 평가에서 '매우 미흡'을 주겠다. 또 '귀책사유가 없는 무보직'도 2개월이 넘어가면 적격 심사 기준인 무보직 기간에 포함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적격 심사를 실효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인사처 발표에서 새로 도입된 '퇴출' 제도는 없었습니다. 일각에서 "핵심을 비켜간 것 아니냐", "일정 비율을 정해 퇴출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인사처 관계자는 '퇴출 할당제'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시도됐지만, 부작용이 너무 컸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이번 방안의 취지가 꼭 몇 명을 퇴출시키기 보다는 이제는 공무원도 퇴출당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서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을 깨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방안은 정말 실효성이 있을까요? 그래서 정말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이 깨질까요? 당장 부처별로 '매우 미흡'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하지만 상당한 논란이 예상됩니다. 인사처가 정책 실패나 자질 미흡, 비리 등으로 분류해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지만, 부처별 업무가 다르고, 공직 특성상 명확한 잣대를 만드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또 인사처에서는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일괄적으로 '매우 미흡'으로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공무원이 그 기준에 해당하는지는 각 부처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과거보다는 다소 줄겠지만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일각에선 성과보다는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을 표적으로 한 '자의적 퇴출'에 대한 우려도 제기합니다. 무능한 사람을 정확하게 골라낸다는 것은 민간이든 정부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처음 취재할 때부터 줄곧 조심스러웠습니다. 특히 '저성과자 해고' 문제가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공직 사회가 스스로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인사처 계획대로라면 이르면 내년 초부터 대상이 되는 고위 공무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말 계획대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이번에도 유명무실하게 끝났던 과거를 답습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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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8 00:05:18
    • 수정2015-10-08 09:17:58
    취재후
▲ 황서종 인사혁신처 차장


"인사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고백이 있다면, 성과 관리가 공무원 인사 관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한 번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았던 유명무실한 제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인사혁신처 황서종 차장은 본격적인 브리핑에 앞서 '부끄러운 고백'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고위 공무원에 대한 퇴출 제도는 지난 2006년에 도입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고위 공무원들을 성과 중심으로 관리하겠다면서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때 무능한 고위 공무원을 직권 면직할 수 있도록 적격 심사제도를 함께 마련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적격 심사 대상이 된 고위 공무원은 단 두 명, 그마저도 성과 미흡으로 직권 면직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적격 심사 기준적격 심사 기준

▲ 적격 심사 기준


적격 심사가 이렇게 유명무실하게 운영된 것은 심사 대상을 정하는 조건 때문입니다. 고위 공무원이 된 뒤 성과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매우 미흡)을 두 번 받거나 특정한 보직 없이 '무보직' 상태가 1년을 넘을 경우 적격 심사 대상이 됩니다. 또는 최하위 등급 1번에 무보직 6개월일 경우입니다. 조건이 그렇게 까다로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까다롭습니다.

먼저 성과 평가는 1년에 한 번 '매우 우수'·'우수'·'보통'·'미흡'·'매우 미흡' 5등급으로 이뤄집니다. '미흡'과 '매우 미흡'을 받은 사람을 합치면 전체 평가 대상자의 10%를 넘어야 하지만, '매우 미흡'의 비율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성과가 없어도 적격 심사는 피할 수 있게 '매우 미흡'보다 한 단계 바로 위의 '미흡'으로 평가하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매우 미흡'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정확한 비율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부처별로 두세 명 정도는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에도 불구하고 '매우 미흡'이 아주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 때문에 두 번째 '매우 미흡'을 받은 사람은 아직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보직 기간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고위 공무원이 특정한 보직 없이, 이른바 '일없이' 보낸 기간이 1년을 넘길 수가 있을까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있었습니다. 그럼 그 공무원은 적격 심사를 받았을까요? 그동안은 해외 파견이나 휴직에서 복귀할 때 공석이 없어서 보직을 못 주는 경우에는 '귀책사유가 없는 무보직'으로 규정돼 보고 기간에 상관없이 적격 심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이번에 발표한 개선안의 핵심은 두 가집니다. 앞으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 해당하는 사람은 평가에서 '매우 미흡'을 주겠다. 또 '귀책사유가 없는 무보직'도 2개월이 넘어가면 적격 심사 기준인 무보직 기간에 포함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적격 심사를 실효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인사처 발표에서 새로 도입된 '퇴출' 제도는 없었습니다. 일각에서 "핵심을 비켜간 것 아니냐", "일정 비율을 정해 퇴출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인사처 관계자는 '퇴출 할당제'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시도됐지만, 부작용이 너무 컸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이번 방안의 취지가 꼭 몇 명을 퇴출시키기 보다는 이제는 공무원도 퇴출당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서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을 깨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방안은 정말 실효성이 있을까요? 그래서 정말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이 깨질까요? 당장 부처별로 '매우 미흡'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하지만 상당한 논란이 예상됩니다. 인사처가 정책 실패나 자질 미흡, 비리 등으로 분류해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지만, 부처별 업무가 다르고, 공직 특성상 명확한 잣대를 만드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또 인사처에서는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은 일괄적으로 '매우 미흡'으로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공무원이 그 기준에 해당하는지는 각 부처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과거보다는 다소 줄겠지만 '온정주의적 평가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일각에선 성과보다는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을 표적으로 한 '자의적 퇴출'에 대한 우려도 제기합니다. 무능한 사람을 정확하게 골라낸다는 것은 민간이든 정부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처음 취재할 때부터 줄곧 조심스러웠습니다. 특히 '저성과자 해고' 문제가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공직 사회가 스스로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인사처 계획대로라면 이르면 내년 초부터 대상이 되는 고위 공무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말 계획대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이번에도 유명무실하게 끝났던 과거를 답습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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