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동물’을 그렸을까?

입력 2015.10.17 (00:04) 수정 2015.10.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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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이중섭 ‘황소’

▲ 이중섭 ‘황소’


김시 ‘야우한와’김시 ‘야우한와’

▲ 김시 ‘야우한와’


우리나라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특정 동물을 정말 고집스럽게 그린 화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 그림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네, 맞습니다. 이중섭입니다. 이중섭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소 그림이지요. 소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한때 소에 미쳐 살았다는 증언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왔는데 스케치북을 보면 소의 몸통과 머리, 발, 꼬리 등이 그려져 있었다고도 하고, 어떤 날은 스케치북이 깨끗해서 알고 보니 소 관찰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고도 하고, 남의 집 소를 뚫어지게 관찰하다 그만 소도둑으로 몰려 잡혀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한 건 이중섭 화백이 우리의 향토색이 가장 짙은 소재로 소를 선택했다는 점이지요. 지금 남아 있는 이중섭의 소 그림은 10여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던 2010년 6월, 이중섭 화백의 저 유명한 걸작 ‘황소’가 37년 만에 경매에 나와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우리 미술 시장이 최대의 활황이던 2007년에 45억 2천만 원이란 역대 최고가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결국, 최종 낙찰가는 35억 6천만 원이었습니다. 불황의 여파가 그만큼 컸던 겁니다.

☞ [뉴스광장] 이중섭 ‘황소’ 최고가 기록 못 넘겨 (2010년 6월 30일)

이중섭의 소는 분명 우리 소입니다. 위에 소개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화가는 한국적 서정과 향토색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로 소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관찰과 사생을 통해 한국적 미감과 정서가 듬뿍 담긴 위대한 소 그림들을 남겼습니다. 지금은 우리 소를 그리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하시겠지만, 조선 회화사를 보면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중섭의 소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그림 속의 소를 한 번 보실까요. 이 소는 우리 소가 아니라 중국 강남 지방 물소입니다. 16세기의 유명 화가 김시(金禔, 1524~1593)라는 분이 그린 소인데, 왜 굳이 우리 소가 아닌 중국 소를 그렸을까요? 당시 화가들의 그림 교본이 바로 중국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들판에 나가 소를 관찰하고 사생한 그림이 아니라 중국 화보에 실린 중국 화가의 그림을 기준으로 따라 그리면서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때는 모든 화가가 다 그렇게 그림을 익혔답니다. 우리 소를 그리겠다는 생각은 아직 꿈에도 못했고, 또 그게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도 이런 게 현실이었습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 것을 먹고 자란 우리 동물을 우리 그림 속에 등장시키기까지는 그 뒤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김홍도 ‘황묘농접’김홍도 ‘황묘농접’

▲ 김홍도 ‘황묘농접’


이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설렘, 그 흥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2012년으로 기억합니다. 저 유명한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간송 전형필 선생 5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회 <진경시대회화대전>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본 순간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뙤약볕에 수백 미터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인파에 밀리고 밀리면서 그림 한 점이라도 더 눈에 담느라 정신없는 상황에도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은 그림. 전시장에 수두룩한 그 많은 보물 사이에서 단연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단 한 점의 조선 회화. 바로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황묘농접’입니다. 제목을 그대로 풀면 노란 고양이(黃猫)가 나비를 놀린다(弄蝶)는 뜻입니다. 긴 꼬리 제비나비 한 마리가 꽃을 찾아 날아오자 노란 고양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신기한 듯 올려다봅니다. 꽃과 풀, 나비에 고양이까지 이토록 알록달록한 색깔이 잘 어우러진 그림은 흔치 않습니다. 가히 색채의 향연이라 할 만하죠. 검은 고양이는 많이 봤어도 노란 고양이를 볼 기회는 참 드문데요. 가는 붓으로 일일이 정성껏 그려낸 고양이 털 묘사는 또 어떻습니까. 나비를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저 눈동자를 한 번 보세요. 호기심이 제대로 발동한 새끼 고양이의 천진난만함이 정말 생생하지 않나요?

☞ [뉴스9] 간송의 진경을 만나다…관람객 연일 ‘북적’ (2012년 5월 24일)

실로 못 그리는 게 없는 화가였다던 김홍도의 그림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또 한 번 놀라움을 주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후에도 한 차례 더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너무 좋아서 아예 컬러 인쇄본을 사다가 책상 앞에 붙여두고 오래오래 보고 있지요. 이 그림의 진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황묘농접’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백인산 선생은 <간송미술 36>이란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황묘농접’은 단원이 남긴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이다.” 정교한 고양이 묘사로 치자면 후대에 변 고양이로 불릴 정도로 고양이를 잘 그린 화가 변상벽에 도리어 못 미치지만, 단원의 그림에는 다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정교한 사실성만으론 절대 얻어지지 않는 분위기, 단원 특유의 ‘정취’입니다. 백 선생의 말대로 “‘황묘농접’의 고양이는 누구나 만지고 안아 주고픈 유혹”을 느끼게 해줍니다. 단순히 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림 안에 성큼 걸어 들어가 고양이, 나비와 함께 초여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고 싶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란 뜻입니다.

이암 ‘화조구자도’이암 ‘화조구자도’

▲ 이암 ‘화조구자도’


여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조선 초기의 강아지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볕이 따사로운 봄날, 화면 가운데에 앉아 있는 검둥이 녀석이 하얀 꽃망울을 피워 올린 배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돌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어딘가를 쳐다봅니다. 저 눈동자 표현 좀 보세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누렁이 한 마리가 두 발을 앙증맞게 모은 채 쿨쿨 낮잠을 자고 있군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평화롭게 잠든 저 표정, 너무나 귀엽습니다. 그런가 하면 호기심 가득한 흰둥이 녀석은 땅바닥에 철퍼덕 엎드린 채 앞발로 꾹 누른 방아깨비와 노느라 여념이 없네요. 생생하기 이를 데 없는 강아지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요즘 유행하는 반려동물 단체 사진을 보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그냥 보기만 좋은 그림이 아닙니다. 미술사학자 안휘준 선생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이란 책에서 이 그림을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강아지 그림”이자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룬 독보적인 그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며 위로를 얻었다고도 합니다. ‘화조구자도’란 제목이 붙은 이 대단한 그림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조선시대 최초의 개 그림으로 전합니다.

어떤 점이 그토록 대단한 걸까요? 미술사학자들은 화가가 먹을 쓴 방법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강아지는 분명 털을 가진 동물이죠. 그런데 그림 속 강아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털이 하나도 없습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만 봐도 가는 붓으로 고양이 털을 한 올 한 올 정말 세밀하게 그렸잖아요. 반면, 이 그림은 선으로 털을 그리는 대신 몸통을 먹으로 채웠습니다.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을 쓴 윤철규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붓질 위주의 옛 그림에서 이렇게 먹 위주의 기법은 누가 봐도 눈에 확 뜨입니다. 중국에서 개를 그린 화가가 더러 있지만 이런 용묵법(用墨法, 먹을 쓰는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파격과 독창성 때문에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물 제1392호로까지 지정돼 있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 초기에 개와 매 그림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왕족 출신 화가 이암(李巖, 1507~1566)이란 분의 작품입니다. 현재 전하는 그림 10여 점이 대부분 개와 매를 그린 것이라 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작품을 꼭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변상벽 ‘모계영자도’변상벽 ‘모계영자도’

▲ 변상벽 ‘모계영자도’


50이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걸출한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 선생이 생전에 강연할 때마다 절대 빼놓지 않았다는 이 그림, 18세기 화가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의 걸작 ‘모계영자도’입니다. 우리 토종닭을 등장시켜 더 친근감을 주는 이 그림은 어미닭(母鷄)과 병아리(領子)의 다정한 한때를 묘사하고 있는데요. 어미닭이 부리에 벌 한 마리를 문 채 주위에 모여든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장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의 깃털 묘사를 한 번 보세요. 기가 막힐 정도의 정교함이 살아 있습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오주석 선생도 이 그림을 두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원, 외국 박물관에서도 여기저기서 닭 그림을 많이 보시겠지만 이렇게 정답고 살가운 그림은 다시없어요!” 이 작품은 2011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이 마련한 기념비적인 전시 <조선화원대전>에 출품됐고, 당시에 저도 취재하러 가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잠시 소개해드린 것처럼 변상벽은 동물 세부 묘사의 달인이었습니다. 세밀한 묘사력에 있어서는 단원 김홍도를 능가한다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지요. 그중에서도 닭과 고양이를 얼마나 잘 그렸는지 심지어 별명도 변닭, 변고양이였다고 합니다.

오주석 선생의 책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그림 속에 노닐다>에 똑같이 이 그림에 얽힌 재미난 사연이 실려 있습니다. 강연 도중에 청중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동그랗게 모인 병아리 여섯 마리 가운데 어미닭은 과연 어느 녀석에게 먹이를 줄까요? 한참 강의를 하다 잠시 쉬는데 청중 한 분이 와서 이런 얘길 했답니다. “아까 선생님이, 암탉이 병아리 중 어떤 놈에게 모이를 줄지 맘이 안쓰럽다 하셨는데, 그거 걱정하실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닭이란 놈은 모성애가 아주 대단하거든요. 예를 들어 알곡을 하나 주웠어도 그걸 딱딱한 채로 그냥 주지 않고, 반드시 부리로 일일이 바숴서 병아리 먹기 좋게 흩어줍니다. 암탉은 그림 속의 벌도 아마 잘게 짜개줄 겁니다.” 양계장을 했었다는 어느 청중의 이 말을 떠올리면서 오주석 선생은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공부 더 한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사랑하고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림을 보는 눈을 키우는 데 왕도(王道)가 있을까요. 책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기회가 되면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고 음미하면서 수백 년 전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볼 일입니다. 그림 속에서 노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그림을 보는 눈 또한 몰라보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 [뉴스9] 조선시대 화원들의 빛나는 ‘예술 세계’ (2011년 10월 10일)

※ 작품 출처
이중섭 ‘황소’ 개인 소장
김시 ‘야우한와’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황묘농접’ 간송미술관 소장
이암 ‘화조구자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변상벽 ‘모계영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더 읽으면 좋은 책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컬처그라피, 2014)
안휘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사회평론, 2010)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솔, 2003)
오주석 <그림 속에 노닐다>(솔, 2008)
윤철규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컬처북스, 2015)
최 열 <이중섭 평전>(돌베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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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동물’을 그렸을까?
    • 입력 2015-10-17 00:04:09
    • 수정2015-10-27 14:25:15
    컬처 스토리
이중섭 ‘황소’
▲ 이중섭 ‘황소’


김시 ‘야우한와’
▲ 김시 ‘야우한와’


우리나라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특정 동물을 정말 고집스럽게 그린 화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 그림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네, 맞습니다. 이중섭입니다. 이중섭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소 그림이지요. 소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한때 소에 미쳐 살았다는 증언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왔는데 스케치북을 보면 소의 몸통과 머리, 발, 꼬리 등이 그려져 있었다고도 하고, 어떤 날은 스케치북이 깨끗해서 알고 보니 소 관찰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고도 하고, 남의 집 소를 뚫어지게 관찰하다 그만 소도둑으로 몰려 잡혀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한 건 이중섭 화백이 우리의 향토색이 가장 짙은 소재로 소를 선택했다는 점이지요. 지금 남아 있는 이중섭의 소 그림은 10여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던 2010년 6월, 이중섭 화백의 저 유명한 걸작 ‘황소’가 37년 만에 경매에 나와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우리 미술 시장이 최대의 활황이던 2007년에 45억 2천만 원이란 역대 최고가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결국, 최종 낙찰가는 35억 6천만 원이었습니다. 불황의 여파가 그만큼 컸던 겁니다.

☞ [뉴스광장] 이중섭 ‘황소’ 최고가 기록 못 넘겨 (2010년 6월 30일)

이중섭의 소는 분명 우리 소입니다. 위에 소개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화가는 한국적 서정과 향토색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로 소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관찰과 사생을 통해 한국적 미감과 정서가 듬뿍 담긴 위대한 소 그림들을 남겼습니다. 지금은 우리 소를 그리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하시겠지만, 조선 회화사를 보면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중섭의 소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그림 속의 소를 한 번 보실까요. 이 소는 우리 소가 아니라 중국 강남 지방 물소입니다. 16세기의 유명 화가 김시(金禔, 1524~1593)라는 분이 그린 소인데, 왜 굳이 우리 소가 아닌 중국 소를 그렸을까요? 당시 화가들의 그림 교본이 바로 중국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들판에 나가 소를 관찰하고 사생한 그림이 아니라 중국 화보에 실린 중국 화가의 그림을 기준으로 따라 그리면서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때는 모든 화가가 다 그렇게 그림을 익혔답니다. 우리 소를 그리겠다는 생각은 아직 꿈에도 못했고, 또 그게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도 이런 게 현실이었습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 것을 먹고 자란 우리 동물을 우리 그림 속에 등장시키기까지는 그 뒤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김홍도 ‘황묘농접’
▲ 김홍도 ‘황묘농접’


이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설렘, 그 흥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2012년으로 기억합니다. 저 유명한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간송 전형필 선생 50주기를 기념하는 전시회 <진경시대회화대전>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본 순간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뙤약볕에 수백 미터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인파에 밀리고 밀리면서 그림 한 점이라도 더 눈에 담느라 정신없는 상황에도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은 그림. 전시장에 수두룩한 그 많은 보물 사이에서 단연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단 한 점의 조선 회화. 바로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황묘농접’입니다. 제목을 그대로 풀면 노란 고양이(黃猫)가 나비를 놀린다(弄蝶)는 뜻입니다. 긴 꼬리 제비나비 한 마리가 꽃을 찾아 날아오자 노란 고양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신기한 듯 올려다봅니다. 꽃과 풀, 나비에 고양이까지 이토록 알록달록한 색깔이 잘 어우러진 그림은 흔치 않습니다. 가히 색채의 향연이라 할 만하죠. 검은 고양이는 많이 봤어도 노란 고양이를 볼 기회는 참 드문데요. 가는 붓으로 일일이 정성껏 그려낸 고양이 털 묘사는 또 어떻습니까. 나비를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저 눈동자를 한 번 보세요. 호기심이 제대로 발동한 새끼 고양이의 천진난만함이 정말 생생하지 않나요?

☞ [뉴스9] 간송의 진경을 만나다…관람객 연일 ‘북적’ (2012년 5월 24일)

실로 못 그리는 게 없는 화가였다던 김홍도의 그림 솜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또 한 번 놀라움을 주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후에도 한 차례 더 전시장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너무 좋아서 아예 컬러 인쇄본을 사다가 책상 앞에 붙여두고 오래오래 보고 있지요. 이 그림의 진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황묘농접’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백인산 선생은 <간송미술 36>이란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황묘농접’은 단원이 남긴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이다.” 정교한 고양이 묘사로 치자면 후대에 변 고양이로 불릴 정도로 고양이를 잘 그린 화가 변상벽에 도리어 못 미치지만, 단원의 그림에는 다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정교한 사실성만으론 절대 얻어지지 않는 분위기, 단원 특유의 ‘정취’입니다. 백 선생의 말대로 “‘황묘농접’의 고양이는 누구나 만지고 안아 주고픈 유혹”을 느끼게 해줍니다. 단순히 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림 안에 성큼 걸어 들어가 고양이, 나비와 함께 초여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고 싶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란 뜻입니다.

이암 ‘화조구자도’
▲ 이암 ‘화조구자도’


여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조선 초기의 강아지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볕이 따사로운 봄날, 화면 가운데에 앉아 있는 검둥이 녀석이 하얀 꽃망울을 피워 올린 배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돌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어딘가를 쳐다봅니다. 저 눈동자 표현 좀 보세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누렁이 한 마리가 두 발을 앙증맞게 모은 채 쿨쿨 낮잠을 자고 있군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평화롭게 잠든 저 표정, 너무나 귀엽습니다. 그런가 하면 호기심 가득한 흰둥이 녀석은 땅바닥에 철퍼덕 엎드린 채 앞발로 꾹 누른 방아깨비와 노느라 여념이 없네요. 생생하기 이를 데 없는 강아지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요즘 유행하는 반려동물 단체 사진을 보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그냥 보기만 좋은 그림이 아닙니다. 미술사학자 안휘준 선생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이란 책에서 이 그림을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강아지 그림”이자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룬 독보적인 그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며 위로를 얻었다고도 합니다. ‘화조구자도’란 제목이 붙은 이 대단한 그림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는 조선시대 최초의 개 그림으로 전합니다.

어떤 점이 그토록 대단한 걸까요? 미술사학자들은 화가가 먹을 쓴 방법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강아지는 분명 털을 가진 동물이죠. 그런데 그림 속 강아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털이 하나도 없습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만 봐도 가는 붓으로 고양이 털을 한 올 한 올 정말 세밀하게 그렸잖아요. 반면, 이 그림은 선으로 털을 그리는 대신 몸통을 먹으로 채웠습니다.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을 쓴 윤철규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붓질 위주의 옛 그림에서 이렇게 먹 위주의 기법은 누가 봐도 눈에 확 뜨입니다. 중국에서 개를 그린 화가가 더러 있지만 이런 용묵법(用墨法, 먹을 쓰는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파격과 독창성 때문에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물 제1392호로까지 지정돼 있습니다. 이 그림은 조선 초기에 개와 매 그림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왕족 출신 화가 이암(李巖, 1507~1566)이란 분의 작품입니다. 현재 전하는 그림 10여 점이 대부분 개와 매를 그린 것이라 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작품을 꼭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변상벽 ‘모계영자도’
▲ 변상벽 ‘모계영자도’


50이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걸출한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 선생이 생전에 강연할 때마다 절대 빼놓지 않았다는 이 그림, 18세기 화가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의 걸작 ‘모계영자도’입니다. 우리 토종닭을 등장시켜 더 친근감을 주는 이 그림은 어미닭(母鷄)과 병아리(領子)의 다정한 한때를 묘사하고 있는데요. 어미닭이 부리에 벌 한 마리를 문 채 주위에 모여든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장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의 깃털 묘사를 한 번 보세요. 기가 막힐 정도의 정교함이 살아 있습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오주석 선생도 이 그림을 두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원, 외국 박물관에서도 여기저기서 닭 그림을 많이 보시겠지만 이렇게 정답고 살가운 그림은 다시없어요!” 이 작품은 2011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이 마련한 기념비적인 전시 <조선화원대전>에 출품됐고, 당시에 저도 취재하러 가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잠시 소개해드린 것처럼 변상벽은 동물 세부 묘사의 달인이었습니다. 세밀한 묘사력에 있어서는 단원 김홍도를 능가한다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지요. 그중에서도 닭과 고양이를 얼마나 잘 그렸는지 심지어 별명도 변닭, 변고양이였다고 합니다.

오주석 선생의 책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그림 속에 노닐다>에 똑같이 이 그림에 얽힌 재미난 사연이 실려 있습니다. 강연 도중에 청중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동그랗게 모인 병아리 여섯 마리 가운데 어미닭은 과연 어느 녀석에게 먹이를 줄까요? 한참 강의를 하다 잠시 쉬는데 청중 한 분이 와서 이런 얘길 했답니다. “아까 선생님이, 암탉이 병아리 중 어떤 놈에게 모이를 줄지 맘이 안쓰럽다 하셨는데, 그거 걱정하실 필요 하나도 없습니다. 닭이란 놈은 모성애가 아주 대단하거든요. 예를 들어 알곡을 하나 주웠어도 그걸 딱딱한 채로 그냥 주지 않고, 반드시 부리로 일일이 바숴서 병아리 먹기 좋게 흩어줍니다. 암탉은 그림 속의 벌도 아마 잘게 짜개줄 겁니다.” 양계장을 했었다는 어느 청중의 이 말을 떠올리면서 오주석 선생은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공부 더 한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사랑하고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림을 보는 눈을 키우는 데 왕도(王道)가 있을까요. 책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기회가 되면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고 음미하면서 수백 년 전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볼 일입니다. 그림 속에서 노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그림을 보는 눈 또한 몰라보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 [뉴스9] 조선시대 화원들의 빛나는 ‘예술 세계’ (2011년 10월 10일)

※ 작품 출처
이중섭 ‘황소’ 개인 소장
김시 ‘야우한와’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황묘농접’ 간송미술관 소장
이암 ‘화조구자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변상벽 ‘모계영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더 읽으면 좋은 책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컬처그라피, 2014)
안휘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사회평론, 2010)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솔, 2003)
오주석 <그림 속에 노닐다>(솔, 2008)
윤철규 <조선 회화를 빛낸 그림들>(컬처북스, 2015)
최 열 <이중섭 평전>(돌베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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