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 요리사 ‘통일 밥상’
입력 2015.10.17 (08:17)
수정 2015.10.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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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가는‘통일로 미래로’입니다.
남한에 온지 9년 동안 오롯이 북한식 된장을 재현하는데 몰두해 온 탈북 요리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맛, 고향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 요리사는 이제 된장뿐만 아니라 북한 음식의 전도사로도 나섰는데요.
요리로 통일을 꿈꾸는 현장으로 이현정 리포터가 안내해 드립니다.
<리포트>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장독으로 가득 찬 집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된장 전문가 허진 씨.
이제는 ‘장’을 넘어 북한 음식으로 꿈꾸는 제2의 도약.
그녀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맛은 과연 어떨까요?
이른 아침부터 장독을 닦느라 여념이 없는 허진 씨.
장독을 꼼꼼하게 닦고 일일이 뚜껑을 열어 맛까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는데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이게 완전 오리지널 전통식, 북한식이에요. 저희 집에서 자랑 할 건 된장 밖에 없어요."
태백에 정착해 장을 담근 지도 9년째 하나씩 늘어간 장독이 어느새 160개를 넘어섰습니다.
북한식 된장은 메주에서 간장을 거르지 않고 바로 만들다보니 텁텁한 맛이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녹취> 이현정(리포터) : "진짜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거 같아요. 인공적인 맛이 전혀 안 나고 진하네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북한은 (재료를) 단순하게 해서 매주 하나에 소금 한 가지면 그게 된장이에요. 북한 맛이라는 건 그냥 투박한 것 그대로예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장맛.
이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녹취> "(처음엔) 맛소금이라니까 맛있는 소금인 줄 알았죠. 그러니까 그 소금 10kg짜리를 10개를 가져다가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데 다 그걸로 써버린 거예요."
첫 된장을 담글 땐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언어차이로 ‘맛소금’을 혼동해 곤욕을 치렀고,
<녹취> "처음에 전라도, 충북, 이런 데를 가면 (콩 맛이 달라요) 전라도 쪽에는 콩이 달고 맛있긴 하지만 수량이 이렇게 100kg를 같이 담가서 보면 너무 양이 작았어요."
된장의 기본인 콩마저 지역마다 맛이 달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야 했습니다.
<녹취> "과연 여기서(태백에서) 된장이 되겠느냐. 북한 같은 맛이 나오겠느냐, 해서 그때 시험적으로 담았던 게 이거에요."
거듭되는 고생 속에서도 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데요.
<녹취> "어머니가 제일 잘 하시던 그 된장을 다시 내가 여기 와서 재현할 수 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된장 만들고 다 이런 게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 다 그 생각 때문이죠."
고난의 행군시기 만성질병에 영양실조까지 겹쳐 생사를 오가던 어머니.
결국 마지막 유언인 된장국 한 술을 떠드리지 못한 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녹취> "이것도 많이 못 드시고 그냥 그렇게 돌아가신 게 항상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저는 이 된장찌개를 항상 할 때마다 이렇게 작은데다 퍼놓고 ‘엄마 것입니다’ 해놓고 먹어요."
이제는 자신만의 장으로 어엿한 사장님이 된 허진 씨.
오늘에 오기까지 남편의 외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녹취> 조상록(남편) : "저는 딱 좋아하는 게 된장찌개, 우린 이거 하나만 있으면 돼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나는 9년 동안 돈을 버는 것 보다 공부를 위주로 했으니까 그 모든 걸 (남편 아니면) 누가 다 했겠어요."
말로만 듣던 남남북녀.
재료 공수부터 맛 평가까지, 남북의 다른 입맛의 정점을 찾는 덴 남편과의 대화가 큰 힘이었습니다.
<녹취> 조상록(남편) :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이 둘이서 손발이 잘 맞으니까 빨리빨리 (일을) 끝낸다고 그래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내가 얘기해요, 꼭 우리 집만 통일 됐다고 그래요. 사실은 요리로 통일하자 했는데."
마당에 놓인 장만큼이나 남쪽에서의 삶도 맛깔나게 익어갑니다.
허진 씨는 이제 북한 향토 음식점까지 차려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제가 그저 요리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서 이걸(요리를) 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닮아 타고난 손맛.
장 사업을 통해 겪는 실패와 성공이 있기에 다시 용기를 내 봅니다.
<녹취> "이 돼지껍질묵이 참 귀한 거예요. 이렇게 살짝 살얼음이 가게(되도록) 얼렸다가 썰어서 나가는 거예요."
‘돼지껍질묵’과 북한식순대, ‘게사니 전골’을 남쪽 식으로 개조한 ‘오리 전골’까지 다양한 요리가 손님상에 오르고 있는데요.
<녹취> "선지와 쌀을 섞어서 갖은 야채하고 고기하고 볶아서 밥을 해 먹어요. 북한 쪽에는 빈혈이 오거나 이럴 때는 이 음식(피밥)이 고급 음식에 속하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있기 있는 건 ‘피밥’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에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북한 음식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요.
<인터뷰> 정재웅(강원도 춘천시) : "(맛이) 담백하고 좋은데요. 괜찮아요. 우리나라에서 먹은 거 하고는 (맛이) 약간 다르고, 고향의 맛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 조성권(강원도 태백시) : "가장 사람이 교류하기 가장 좋은 게 문화하고 음식이니까. 그런 쪽에서 보면 우리가 (음식을 통해) 좀 더 많이 이해 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길 것이고."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허진 씨의 밥상, 이정도면 제2의 도약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허진(탈북 요리사) : "아 이 음식은 통일이구나. 나는 벌써 통일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나가고 있구나) 내가 다른 것으론 돕지 못하지만 음식 문화 쪽으로 통일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허진 씨는 오늘도 통일을 꿈꾸며 맛있는 북한 요리를 준비합니다.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맛, 허진씨는 아직 오지 않은 통일도 장처럼 인내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가는‘통일로 미래로’입니다.
남한에 온지 9년 동안 오롯이 북한식 된장을 재현하는데 몰두해 온 탈북 요리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맛, 고향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 요리사는 이제 된장뿐만 아니라 북한 음식의 전도사로도 나섰는데요.
요리로 통일을 꿈꾸는 현장으로 이현정 리포터가 안내해 드립니다.
<리포트>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장독으로 가득 찬 집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된장 전문가 허진 씨.
이제는 ‘장’을 넘어 북한 음식으로 꿈꾸는 제2의 도약.
그녀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맛은 과연 어떨까요?
이른 아침부터 장독을 닦느라 여념이 없는 허진 씨.
장독을 꼼꼼하게 닦고 일일이 뚜껑을 열어 맛까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는데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이게 완전 오리지널 전통식, 북한식이에요. 저희 집에서 자랑 할 건 된장 밖에 없어요."
태백에 정착해 장을 담근 지도 9년째 하나씩 늘어간 장독이 어느새 160개를 넘어섰습니다.
북한식 된장은 메주에서 간장을 거르지 않고 바로 만들다보니 텁텁한 맛이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녹취> 이현정(리포터) : "진짜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거 같아요. 인공적인 맛이 전혀 안 나고 진하네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북한은 (재료를) 단순하게 해서 매주 하나에 소금 한 가지면 그게 된장이에요. 북한 맛이라는 건 그냥 투박한 것 그대로예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장맛.
이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녹취> "(처음엔) 맛소금이라니까 맛있는 소금인 줄 알았죠. 그러니까 그 소금 10kg짜리를 10개를 가져다가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데 다 그걸로 써버린 거예요."
첫 된장을 담글 땐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언어차이로 ‘맛소금’을 혼동해 곤욕을 치렀고,
<녹취> "처음에 전라도, 충북, 이런 데를 가면 (콩 맛이 달라요) 전라도 쪽에는 콩이 달고 맛있긴 하지만 수량이 이렇게 100kg를 같이 담가서 보면 너무 양이 작았어요."
된장의 기본인 콩마저 지역마다 맛이 달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야 했습니다.
<녹취> "과연 여기서(태백에서) 된장이 되겠느냐. 북한 같은 맛이 나오겠느냐, 해서 그때 시험적으로 담았던 게 이거에요."
거듭되는 고생 속에서도 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데요.
<녹취> "어머니가 제일 잘 하시던 그 된장을 다시 내가 여기 와서 재현할 수 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된장 만들고 다 이런 게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 다 그 생각 때문이죠."
고난의 행군시기 만성질병에 영양실조까지 겹쳐 생사를 오가던 어머니.
결국 마지막 유언인 된장국 한 술을 떠드리지 못한 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녹취> "이것도 많이 못 드시고 그냥 그렇게 돌아가신 게 항상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저는 이 된장찌개를 항상 할 때마다 이렇게 작은데다 퍼놓고 ‘엄마 것입니다’ 해놓고 먹어요."
이제는 자신만의 장으로 어엿한 사장님이 된 허진 씨.
오늘에 오기까지 남편의 외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녹취> 조상록(남편) : "저는 딱 좋아하는 게 된장찌개, 우린 이거 하나만 있으면 돼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나는 9년 동안 돈을 버는 것 보다 공부를 위주로 했으니까 그 모든 걸 (남편 아니면) 누가 다 했겠어요."
말로만 듣던 남남북녀.
재료 공수부터 맛 평가까지, 남북의 다른 입맛의 정점을 찾는 덴 남편과의 대화가 큰 힘이었습니다.
<녹취> 조상록(남편) :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이 둘이서 손발이 잘 맞으니까 빨리빨리 (일을) 끝낸다고 그래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내가 얘기해요, 꼭 우리 집만 통일 됐다고 그래요. 사실은 요리로 통일하자 했는데."
마당에 놓인 장만큼이나 남쪽에서의 삶도 맛깔나게 익어갑니다.
허진 씨는 이제 북한 향토 음식점까지 차려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제가 그저 요리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서 이걸(요리를) 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닮아 타고난 손맛.
장 사업을 통해 겪는 실패와 성공이 있기에 다시 용기를 내 봅니다.
<녹취> "이 돼지껍질묵이 참 귀한 거예요. 이렇게 살짝 살얼음이 가게(되도록) 얼렸다가 썰어서 나가는 거예요."
‘돼지껍질묵’과 북한식순대, ‘게사니 전골’을 남쪽 식으로 개조한 ‘오리 전골’까지 다양한 요리가 손님상에 오르고 있는데요.
<녹취> "선지와 쌀을 섞어서 갖은 야채하고 고기하고 볶아서 밥을 해 먹어요. 북한 쪽에는 빈혈이 오거나 이럴 때는 이 음식(피밥)이 고급 음식에 속하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있기 있는 건 ‘피밥’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에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북한 음식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요.
<인터뷰> 정재웅(강원도 춘천시) : "(맛이) 담백하고 좋은데요. 괜찮아요. 우리나라에서 먹은 거 하고는 (맛이) 약간 다르고, 고향의 맛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 조성권(강원도 태백시) : "가장 사람이 교류하기 가장 좋은 게 문화하고 음식이니까. 그런 쪽에서 보면 우리가 (음식을 통해) 좀 더 많이 이해 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길 것이고."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허진 씨의 밥상, 이정도면 제2의 도약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허진(탈북 요리사) : "아 이 음식은 통일이구나. 나는 벌써 통일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나가고 있구나) 내가 다른 것으론 돕지 못하지만 음식 문화 쪽으로 통일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허진 씨는 오늘도 통일을 꿈꾸며 맛있는 북한 요리를 준비합니다.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맛, 허진씨는 아직 오지 않은 통일도 장처럼 인내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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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가는‘통일로 미래로’입니다.
남한에 온지 9년 동안 오롯이 북한식 된장을 재현하는데 몰두해 온 탈북 요리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맛, 고향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 요리사는 이제 된장뿐만 아니라 북한 음식의 전도사로도 나섰는데요.
요리로 통일을 꿈꾸는 현장으로 이현정 리포터가 안내해 드립니다.
<리포트>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장독으로 가득 찬 집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된장 전문가 허진 씨.
이제는 ‘장’을 넘어 북한 음식으로 꿈꾸는 제2의 도약.
그녀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맛은 과연 어떨까요?
이른 아침부터 장독을 닦느라 여념이 없는 허진 씨.
장독을 꼼꼼하게 닦고 일일이 뚜껑을 열어 맛까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는데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이게 완전 오리지널 전통식, 북한식이에요. 저희 집에서 자랑 할 건 된장 밖에 없어요."
태백에 정착해 장을 담근 지도 9년째 하나씩 늘어간 장독이 어느새 160개를 넘어섰습니다.
북한식 된장은 메주에서 간장을 거르지 않고 바로 만들다보니 텁텁한 맛이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녹취> 이현정(리포터) : "진짜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거 같아요. 인공적인 맛이 전혀 안 나고 진하네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북한은 (재료를) 단순하게 해서 매주 하나에 소금 한 가지면 그게 된장이에요. 북한 맛이라는 건 그냥 투박한 것 그대로예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장맛.
이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녹취> "(처음엔) 맛소금이라니까 맛있는 소금인 줄 알았죠. 그러니까 그 소금 10kg짜리를 10개를 가져다가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데 다 그걸로 써버린 거예요."
첫 된장을 담글 땐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언어차이로 ‘맛소금’을 혼동해 곤욕을 치렀고,
<녹취> "처음에 전라도, 충북, 이런 데를 가면 (콩 맛이 달라요) 전라도 쪽에는 콩이 달고 맛있긴 하지만 수량이 이렇게 100kg를 같이 담가서 보면 너무 양이 작았어요."
된장의 기본인 콩마저 지역마다 맛이 달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야 했습니다.
<녹취> "과연 여기서(태백에서) 된장이 되겠느냐. 북한 같은 맛이 나오겠느냐, 해서 그때 시험적으로 담았던 게 이거에요."
거듭되는 고생 속에서도 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데요.
<녹취> "어머니가 제일 잘 하시던 그 된장을 다시 내가 여기 와서 재현할 수 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된장 만들고 다 이런 게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 다 그 생각 때문이죠."
고난의 행군시기 만성질병에 영양실조까지 겹쳐 생사를 오가던 어머니.
결국 마지막 유언인 된장국 한 술을 떠드리지 못한 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녹취> "이것도 많이 못 드시고 그냥 그렇게 돌아가신 게 항상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저는 이 된장찌개를 항상 할 때마다 이렇게 작은데다 퍼놓고 ‘엄마 것입니다’ 해놓고 먹어요."
이제는 자신만의 장으로 어엿한 사장님이 된 허진 씨.
오늘에 오기까지 남편의 외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녹취> 조상록(남편) : "저는 딱 좋아하는 게 된장찌개, 우린 이거 하나만 있으면 돼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나는 9년 동안 돈을 버는 것 보다 공부를 위주로 했으니까 그 모든 걸 (남편 아니면) 누가 다 했겠어요."
말로만 듣던 남남북녀.
재료 공수부터 맛 평가까지, 남북의 다른 입맛의 정점을 찾는 덴 남편과의 대화가 큰 힘이었습니다.
<녹취> 조상록(남편) :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이 둘이서 손발이 잘 맞으니까 빨리빨리 (일을) 끝낸다고 그래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내가 얘기해요, 꼭 우리 집만 통일 됐다고 그래요. 사실은 요리로 통일하자 했는데."
마당에 놓인 장만큼이나 남쪽에서의 삶도 맛깔나게 익어갑니다.
허진 씨는 이제 북한 향토 음식점까지 차려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제가 그저 요리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서 이걸(요리를) 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닮아 타고난 손맛.
장 사업을 통해 겪는 실패와 성공이 있기에 다시 용기를 내 봅니다.
<녹취> "이 돼지껍질묵이 참 귀한 거예요. 이렇게 살짝 살얼음이 가게(되도록) 얼렸다가 썰어서 나가는 거예요."
‘돼지껍질묵’과 북한식순대, ‘게사니 전골’을 남쪽 식으로 개조한 ‘오리 전골’까지 다양한 요리가 손님상에 오르고 있는데요.
<녹취> "선지와 쌀을 섞어서 갖은 야채하고 고기하고 볶아서 밥을 해 먹어요. 북한 쪽에는 빈혈이 오거나 이럴 때는 이 음식(피밥)이 고급 음식에 속하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있기 있는 건 ‘피밥’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에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북한 음식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요.
<인터뷰> 정재웅(강원도 춘천시) : "(맛이) 담백하고 좋은데요. 괜찮아요. 우리나라에서 먹은 거 하고는 (맛이) 약간 다르고, 고향의 맛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 조성권(강원도 태백시) : "가장 사람이 교류하기 가장 좋은 게 문화하고 음식이니까. 그런 쪽에서 보면 우리가 (음식을 통해) 좀 더 많이 이해 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길 것이고."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허진 씨의 밥상, 이정도면 제2의 도약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허진(탈북 요리사) : "아 이 음식은 통일이구나. 나는 벌써 통일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나가고 있구나) 내가 다른 것으론 돕지 못하지만 음식 문화 쪽으로 통일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허진 씨는 오늘도 통일을 꿈꾸며 맛있는 북한 요리를 준비합니다.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맛, 허진씨는 아직 오지 않은 통일도 장처럼 인내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가는‘통일로 미래로’입니다.
남한에 온지 9년 동안 오롯이 북한식 된장을 재현하는데 몰두해 온 탈북 요리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맛, 고향의 맛을 전하고 싶었다는 이 요리사는 이제 된장뿐만 아니라 북한 음식의 전도사로도 나섰는데요.
요리로 통일을 꿈꾸는 현장으로 이현정 리포터가 안내해 드립니다.
<리포트>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장독으로 가득 찬 집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된장 전문가 허진 씨.
이제는 ‘장’을 넘어 북한 음식으로 꿈꾸는 제2의 도약.
그녀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맛은 과연 어떨까요?
이른 아침부터 장독을 닦느라 여념이 없는 허진 씨.
장독을 꼼꼼하게 닦고 일일이 뚜껑을 열어 맛까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는데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이게 완전 오리지널 전통식, 북한식이에요. 저희 집에서 자랑 할 건 된장 밖에 없어요."
태백에 정착해 장을 담근 지도 9년째 하나씩 늘어간 장독이 어느새 160개를 넘어섰습니다.
북한식 된장은 메주에서 간장을 거르지 않고 바로 만들다보니 텁텁한 맛이 특징이라고 하는데요.
<녹취> 이현정(리포터) : "진짜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거 같아요. 인공적인 맛이 전혀 안 나고 진하네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북한은 (재료를) 단순하게 해서 매주 하나에 소금 한 가지면 그게 된장이에요. 북한 맛이라는 건 그냥 투박한 것 그대로예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장맛.
이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녹취> "(처음엔) 맛소금이라니까 맛있는 소금인 줄 알았죠. 그러니까 그 소금 10kg짜리를 10개를 가져다가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데 다 그걸로 써버린 거예요."
첫 된장을 담글 땐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언어차이로 ‘맛소금’을 혼동해 곤욕을 치렀고,
<녹취> "처음에 전라도, 충북, 이런 데를 가면 (콩 맛이 달라요) 전라도 쪽에는 콩이 달고 맛있긴 하지만 수량이 이렇게 100kg를 같이 담가서 보면 너무 양이 작았어요."
된장의 기본인 콩마저 지역마다 맛이 달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야 했습니다.
<녹취> "과연 여기서(태백에서) 된장이 되겠느냐. 북한 같은 맛이 나오겠느냐, 해서 그때 시험적으로 담았던 게 이거에요."
거듭되는 고생 속에서도 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데요.
<녹취> "어머니가 제일 잘 하시던 그 된장을 다시 내가 여기 와서 재현할 수 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된장 만들고 다 이런 게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 다 그 생각 때문이죠."
고난의 행군시기 만성질병에 영양실조까지 겹쳐 생사를 오가던 어머니.
결국 마지막 유언인 된장국 한 술을 떠드리지 못한 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녹취> "이것도 많이 못 드시고 그냥 그렇게 돌아가신 게 항상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저는 이 된장찌개를 항상 할 때마다 이렇게 작은데다 퍼놓고 ‘엄마 것입니다’ 해놓고 먹어요."
이제는 자신만의 장으로 어엿한 사장님이 된 허진 씨.
오늘에 오기까지 남편의 외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녹취> 조상록(남편) : "저는 딱 좋아하는 게 된장찌개, 우린 이거 하나만 있으면 돼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나는 9년 동안 돈을 버는 것 보다 공부를 위주로 했으니까 그 모든 걸 (남편 아니면) 누가 다 했겠어요."
말로만 듣던 남남북녀.
재료 공수부터 맛 평가까지, 남북의 다른 입맛의 정점을 찾는 덴 남편과의 대화가 큰 힘이었습니다.
<녹취> 조상록(남편) :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이 둘이서 손발이 잘 맞으니까 빨리빨리 (일을) 끝낸다고 그래요."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내가 얘기해요, 꼭 우리 집만 통일 됐다고 그래요. 사실은 요리로 통일하자 했는데."
마당에 놓인 장만큼이나 남쪽에서의 삶도 맛깔나게 익어갑니다.
허진 씨는 이제 북한 향토 음식점까지 차려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녹취> 허진(탈북 요리사) : "제가 그저 요리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서 이걸(요리를) 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닮아 타고난 손맛.
장 사업을 통해 겪는 실패와 성공이 있기에 다시 용기를 내 봅니다.
<녹취> "이 돼지껍질묵이 참 귀한 거예요. 이렇게 살짝 살얼음이 가게(되도록) 얼렸다가 썰어서 나가는 거예요."
‘돼지껍질묵’과 북한식순대, ‘게사니 전골’을 남쪽 식으로 개조한 ‘오리 전골’까지 다양한 요리가 손님상에 오르고 있는데요.
<녹취> "선지와 쌀을 섞어서 갖은 야채하고 고기하고 볶아서 밥을 해 먹어요. 북한 쪽에는 빈혈이 오거나 이럴 때는 이 음식(피밥)이 고급 음식에 속하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있기 있는 건 ‘피밥’이라고 합니다.
호기심에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북한 음식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요.
<인터뷰> 정재웅(강원도 춘천시) : "(맛이) 담백하고 좋은데요. 괜찮아요. 우리나라에서 먹은 거 하고는 (맛이) 약간 다르고, 고향의 맛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 조성권(강원도 태백시) : "가장 사람이 교류하기 가장 좋은 게 문화하고 음식이니까. 그런 쪽에서 보면 우리가 (음식을 통해) 좀 더 많이 이해 할 수 있는 부분도 생길 것이고."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허진 씨의 밥상, 이정도면 제2의 도약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허진(탈북 요리사) : "아 이 음식은 통일이구나. 나는 벌써 통일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나가고 있구나) 내가 다른 것으론 돕지 못하지만 음식 문화 쪽으로 통일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허진 씨는 오늘도 통일을 꿈꾸며 맛있는 북한 요리를 준비합니다.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맛, 허진씨는 아직 오지 않은 통일도 장처럼 인내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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