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은 살아있나?

입력 2015.10.18 (22:30) 수정 2015.10.1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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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강태용(추적 제보자) : "룸살롱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죠. 차는 폭스바겐 페이톤이라고"

<녹취> 이순향(조희팔 사건 피해자) : "남의 꼬임에 넘어가서 잃은 돈 꼭 찾을게 알았지"

<녹취> 김상전(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대표) :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고 지금은 구속된 경찰 검찰 간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프닝>

피해자 4만 명, 피해금액 4조원.

단군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 불리는 조희팔 다단계 유사금융 사건.

경찰은 지난 2011년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이렇게 조희팔의 묘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조희팔이 죽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희팔의 2인자 강태용이 도주 7년만에 중국에서 붙잡혔습니다.

강태용은 조희팔의 죽음을 포함한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과연 열 수 있을까요?

중국 상하이에서 차로 두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장쑤 성 우시 시.

KBS 취재진은 조희팔의 2인자 강태용이 이 곳에 은신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추적에 나섰습니다.

<녹취> 아파트 경비원(음성변조) : "(37, 38동이 어디입니까?) 여기 29동을 돌면 뒷편에 37, 38동이 있습니다."

추적 엿새만에 강태용의 은신처를 찾아 낸 취재진은 그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에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밤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강태용이 마침내 창밖으로 모습을 나타냅니다.

커튼 너머 고개를 돌린 이 남성이 바로 조희팔과 함께 4조 원대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인 조희팔의 오른팔 강태용입니다.

강태용이 창가에 앉아 가방에서 현금을 꺼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합니다.

인터폴 적색 수배범인 강태용은 이날 과감하게 외출을 나섭니다.

KBS 취재진도 강태용 추적에 나섰습니다.

우시 시의 중심가 완다 광장의 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강태용이 목격됐습니다.

취재진과 눈이 마주친 강태용은 수배 당시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인상이었습니다.

7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기도 했지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쌍꺼풀 수술을 통해 전체적인 인상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서정남(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 교수) : "원래 최초의 범죄인 사진을 보면 굉장히 갸름한 눈초리잖아요. 흐릿한 영상 속에서도 쌍꺼풀 수술했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밤에 집으로 돌아온 강태용은 도피 생활에 지쳤는지 불안한 모습입니다.

창가로 다가가 수시로 밖을 내다보며 아래를 감시했습니다.

<녹취> 제보자 : "경계를 하고 다니고 있는데, 언제나 경계하면서 조금만 이상하면 자리를 떠버리는 습성이 있어서"

하지만 그날 밤이 강태용에게는 자유를 누리는 마지막 밤이 됐습니다.

다음날 오전 10시 강태용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출입구를 나섭니다.

입구를 나온 강태용의 뒤를 중국 공안이 따라 붙습니다.

잠시 뒤 중국 공안 여러 명이 강태용을 둘러싼 뒤 강태용을 체포합니다.

강태용의 7년간의 도주극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럼 그동안 강태용의 도피생활은 어땠을까?

2008년 조희팔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기 전 강태용은 중국으로 달아났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산둥성입니다.

강태용은 칭다오와 웨이하이, 엔타이 등지에서 고급아파트를 빌려 은신처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골프장과 룸살롱 등을 드나들며 호화 도피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녹취> 제보자 : "거기서 동호회 모임도 나갔습니다. 실제로 김영남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을 했고 한국 사람 모임임에도 강태용이라고 인지를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씨가 중국 공안에 검거될 당시 머물고 있던 우시 시의 아파트도 150제곱미터가 넘는 대형 아파트입니다.

<녹취> 강태용 은신처 부동산 관계자(음성변조) : "(강태용이 머문 아파트 집의 실내 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152제곱미터(46평형)입니다. (월세가) 3500위안에서 5000위안 이상이고, 장식한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검거되기 전 강 씨는 이 아파트를 월세 5천 위안, 우리 돈 90만 원에 1년 임대했습니다.

5천 위안은 중국 판사의 한달 월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강태용이 숨은 아파트 입구에는 보시는 것처럼 공안 경무실이 있습니다.

인터폴 적색수배범인 강씨가 공안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하게 도피생활을 이어 온 겁니다.

하지만 강태용은 이 마지막 은신처에서 열흘 남짓 지내고 중국 공안에 붙잡힌 신세가 됐습니다.

조희팔과 강태용.

둘은 다단계 사기를 시작하기 전 조희팔이 과일 행상을 할 때부터 형, 동생 하는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다단계 업체 BMC의 부사장이 된 강씨는 조희팔 조직의 자금과 전산을 관리해 왔습니다.

재무와 함께 사업 내용을 직접 관할하는 실질적인 2인자였다고 이 사건 관련자들은 증언합니다.

<인터뷰> 전세훈(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메체국장) : "부동산 사업 IT 사업 국책사업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사업 아이템을 제시를 하면서 고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는 겁니다. 또한 이 과정에 이런 기획안들 전부 다 거의 대부분 강태용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다."

조희팔은 사기 행각이는 드러난 직후인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했습니다.

강태용은 그보다 먼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해외 도주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다음, 2인자였던 강태용이 먼저 중국으로 건너가서 조희팔을 기다렸다고 이들을 추적해온 피해자들은 말합니다.

<인터뷰> 김상전(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대표) : "어떤 핵심을 다 쥐고 있다는 봐야 되죠. 그래서 바로 먼저 중국으로 보냈고, 지금도 계속 보호관리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태용은 과연 조희팔 사건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조희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검경 인물은 모두 7명입니다.

수사기관이 밝힌 뇌물액수와 인물은 김광준 서울고검 전 부장검사 2억7천 만 원.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 모 전 서기관 15억 8천만 원.

대구경찰청 강력계장 권 모 전 총경 8억원.

대구경찰청 김 모 전 경위 1억원.

대구경찰청 임 모 전 경사 6억원.

대구성서경찰서 정 모 전 경사 1억원.

대구 동부경찰서 안 모 전 경사 5천 6백만원.

수사기관이 찾아낸 뇌물 혐의 액수만 35억 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조희팔 일당이 비호세력에게 준 뇌물이 이것 뿐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수조원 대 다단계 사기를 저지르고 유유히 밀항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 조직적인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로비 사건에서 돈 전달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강태용이 조사 과정에서 입을 연다면 그 실체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문(조희팔 사건 피해자) : "뇌물을 많이 줬지 않습니까? 그게 상부 어느 선까지 갔길래 전부가 이렇게 손을 못대고 있는지 정말 이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강태용이 중국에서 검거되자 대구지방경찰청은 강태용에게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전직 경찰관인 정 모씨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정 모씨는 강태용 검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13일 중국 광저우로 출국했지만 한국 경찰의 요청을 받은 중국 공안이 입국을 거부하자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체포됐습니다.

강태용 검거를 계기로 조희팔 비호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재수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경북 김천의 한센인 마을, 삼애원.

시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김천의 중심지역입니다.

하지만 이 곳은 수십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 2015년의 모습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됐습니다.

조희팔 일당은 2008년 3월, 이 지역을 재개발한다며 한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2백억 원을 건넸습니다.

수백억 원의 투자를 약속한 사업자의 등장에 기뻐했던 주민들, 하지만 투자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2008년 말 조희팔이 밀항하는 등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도 개발 사업은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OOO(사업자)이 (마을)땅을 계약한 부분에, 제3의 채권단이라고 해서 땅을 가압류를 해버린 거에요. 알고 보니까 조희팔 사건의 채권단들이 OOO 돈이 흘러간 것을 알고는 가압류 된거에요. 빼도 박도 못하는거에요."

삼애원 사례에서 보듯 조희팔이 부동산 매입이나 사업 투자를 가장해 국내에 숨겨 놓은 범죄 수익금은 검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 천 2백억 원에 이릅니다.

피해자들은 은닉 자금이 최소 1조 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희팔 조직에서 재무를 책임졌던 강태용이라면 숨겨 둔 자금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피해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재용(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법무팀장) : "막대한 피해자금이 나온 부분에 대해서 조희팔과 강태용이 서로 사기 금액에 대한 부분을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2인자 강태용이 붙잡히면서 이제 남은 건 조희팔 밖에 없습니다.

지난 2012년 경찰은 조희팔의 사망을 발표합니다.

조희팔이 2011년 도피 중이던 중국에서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말이 바뀌었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며, 생존 가능성에 여지를 둔 겁니다.

강 청장은 "살아 있다면 수사를 해야 한다"며, 조희팔 사망 발표 이후 사실상 중단된 수사를 재개할 뜻도 밝혔습니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중국 현지에서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이라면 조희팔의 위장 사망 의혹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뷰> 송민헌(대구지방경찰청 제2부장) : "완전히 죽은 것으로 단정할 수도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배상태는 계속 유지됐고"

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의 피해자인 이순향 씨.

7년 전, 의료기구 재임대 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수익금을 연금처럼 준다는 말만 믿고 전 재산 2억 4천만 원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다섯달 만에 모든 것이 사기로 드러나면서 희망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녹취> 이순향(조희팔 사건 피해자) "남의 꼬임에 넘어가서 잃은 돈은 꼭 찾을게 알았지"

이 씨가 투자한 돈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큰 딸의 보상금이었습니다.

그 충격에 남편마저 폐질환을 앓다가 3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터뷰> 이순향(조희팔 사건 피해자) : "그런 사연이 있는 돈이라서 말하기가 정말 힘들고 우리 딸 보기도 생각하면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피해자 단체들은 조희팔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이 서른 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사기극이 가능했는지 사기극 너머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조희팔의 비호세력. 숨겨둔 재산. 그리고 조희팔의 행방.

강태용은 조희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희팔이 살아있다면, 이제는 마지막 남은 조희팔을 잡으러 가야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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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희팔은 살아있나?
    • 입력 2015-10-18 22:54:02
    • 수정2015-10-18 23: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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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강태용(추적 제보자) : "룸살롱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죠. 차는 폭스바겐 페이톤이라고"

<녹취> 이순향(조희팔 사건 피해자) : "남의 꼬임에 넘어가서 잃은 돈 꼭 찾을게 알았지"

<녹취> 김상전(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대표) :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고 지금은 구속된 경찰 검찰 간부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프닝>

피해자 4만 명, 피해금액 4조원.

단군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 불리는 조희팔 다단계 유사금융 사건.

경찰은 지난 2011년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이렇게 조희팔의 묘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조희팔이 죽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희팔의 2인자 강태용이 도주 7년만에 중국에서 붙잡혔습니다.

강태용은 조희팔의 죽음을 포함한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과연 열 수 있을까요?

중국 상하이에서 차로 두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장쑤 성 우시 시.

KBS 취재진은 조희팔의 2인자 강태용이 이 곳에 은신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추적에 나섰습니다.

<녹취> 아파트 경비원(음성변조) : "(37, 38동이 어디입니까?) 여기 29동을 돌면 뒷편에 37, 38동이 있습니다."

추적 엿새만에 강태용의 은신처를 찾아 낸 취재진은 그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잠복에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밤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강태용이 마침내 창밖으로 모습을 나타냅니다.

커튼 너머 고개를 돌린 이 남성이 바로 조희팔과 함께 4조 원대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인 조희팔의 오른팔 강태용입니다.

강태용이 창가에 앉아 가방에서 현금을 꺼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합니다.

인터폴 적색 수배범인 강태용은 이날 과감하게 외출을 나섭니다.

KBS 취재진도 강태용 추적에 나섰습니다.

우시 시의 중심가 완다 광장의 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강태용이 목격됐습니다.

취재진과 눈이 마주친 강태용은 수배 당시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인상이었습니다.

7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기도 했지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쌍꺼풀 수술을 통해 전체적인 인상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서정남(계명대학교 언론영상학 교수) : "원래 최초의 범죄인 사진을 보면 굉장히 갸름한 눈초리잖아요. 흐릿한 영상 속에서도 쌍꺼풀 수술했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밤에 집으로 돌아온 강태용은 도피 생활에 지쳤는지 불안한 모습입니다.

창가로 다가가 수시로 밖을 내다보며 아래를 감시했습니다.

<녹취> 제보자 : "경계를 하고 다니고 있는데, 언제나 경계하면서 조금만 이상하면 자리를 떠버리는 습성이 있어서"

하지만 그날 밤이 강태용에게는 자유를 누리는 마지막 밤이 됐습니다.

다음날 오전 10시 강태용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출입구를 나섭니다.

입구를 나온 강태용의 뒤를 중국 공안이 따라 붙습니다.

잠시 뒤 중국 공안 여러 명이 강태용을 둘러싼 뒤 강태용을 체포합니다.

강태용의 7년간의 도주극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럼 그동안 강태용의 도피생활은 어땠을까?

2008년 조희팔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기 전 강태용은 중국으로 달아났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산둥성입니다.

강태용은 칭다오와 웨이하이, 엔타이 등지에서 고급아파트를 빌려 은신처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골프장과 룸살롱 등을 드나들며 호화 도피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녹취> 제보자 : "거기서 동호회 모임도 나갔습니다. 실제로 김영남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을 했고 한국 사람 모임임에도 강태용이라고 인지를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씨가 중국 공안에 검거될 당시 머물고 있던 우시 시의 아파트도 150제곱미터가 넘는 대형 아파트입니다.

<녹취> 강태용 은신처 부동산 관계자(음성변조) : "(강태용이 머문 아파트 집의 실내 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152제곱미터(46평형)입니다. (월세가) 3500위안에서 5000위안 이상이고, 장식한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검거되기 전 강 씨는 이 아파트를 월세 5천 위안, 우리 돈 90만 원에 1년 임대했습니다.

5천 위안은 중국 판사의 한달 월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강태용이 숨은 아파트 입구에는 보시는 것처럼 공안 경무실이 있습니다.

인터폴 적색수배범인 강씨가 공안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하게 도피생활을 이어 온 겁니다.

하지만 강태용은 이 마지막 은신처에서 열흘 남짓 지내고 중국 공안에 붙잡힌 신세가 됐습니다.

조희팔과 강태용.

둘은 다단계 사기를 시작하기 전 조희팔이 과일 행상을 할 때부터 형, 동생 하는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다단계 업체 BMC의 부사장이 된 강씨는 조희팔 조직의 자금과 전산을 관리해 왔습니다.

재무와 함께 사업 내용을 직접 관할하는 실질적인 2인자였다고 이 사건 관련자들은 증언합니다.

<인터뷰> 전세훈(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메체국장) : "부동산 사업 IT 사업 국책사업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사업 아이템을 제시를 하면서 고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였다는 겁니다. 또한 이 과정에 이런 기획안들 전부 다 거의 대부분 강태용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다."

조희팔은 사기 행각이는 드러난 직후인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했습니다.

강태용은 그보다 먼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해외 도주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다음, 2인자였던 강태용이 먼저 중국으로 건너가서 조희팔을 기다렸다고 이들을 추적해온 피해자들은 말합니다.

<인터뷰> 김상전(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대표) : "어떤 핵심을 다 쥐고 있다는 봐야 되죠. 그래서 바로 먼저 중국으로 보냈고, 지금도 계속 보호관리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태용은 과연 조희팔 사건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조희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검경 인물은 모두 7명입니다.

수사기관이 밝힌 뇌물액수와 인물은 김광준 서울고검 전 부장검사 2억7천 만 원.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 모 전 서기관 15억 8천만 원.

대구경찰청 강력계장 권 모 전 총경 8억원.

대구경찰청 김 모 전 경위 1억원.

대구경찰청 임 모 전 경사 6억원.

대구성서경찰서 정 모 전 경사 1억원.

대구 동부경찰서 안 모 전 경사 5천 6백만원.

수사기관이 찾아낸 뇌물 혐의 액수만 35억 원이 넘습니다.

그러나 조희팔 일당이 비호세력에게 준 뇌물이 이것 뿐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수조원 대 다단계 사기를 저지르고 유유히 밀항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 조직적인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로비 사건에서 돈 전달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강태용이 조사 과정에서 입을 연다면 그 실체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문(조희팔 사건 피해자) : "뇌물을 많이 줬지 않습니까? 그게 상부 어느 선까지 갔길래 전부가 이렇게 손을 못대고 있는지 정말 이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강태용이 중국에서 검거되자 대구지방경찰청은 강태용에게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전직 경찰관인 정 모씨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정 모씨는 강태용 검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13일 중국 광저우로 출국했지만 한국 경찰의 요청을 받은 중국 공안이 입국을 거부하자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체포됐습니다.

강태용 검거를 계기로 조희팔 비호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재수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경북 김천의 한센인 마을, 삼애원.

시청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김천의 중심지역입니다.

하지만 이 곳은 수십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 2015년의 모습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됐습니다.

조희팔 일당은 2008년 3월, 이 지역을 재개발한다며 한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2백억 원을 건넸습니다.

수백억 원의 투자를 약속한 사업자의 등장에 기뻐했던 주민들, 하지만 투자약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2008년 말 조희팔이 밀항하는 등 사건이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도 개발 사업은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음성변조) : "OOO(사업자)이 (마을)땅을 계약한 부분에, 제3의 채권단이라고 해서 땅을 가압류를 해버린 거에요. 알고 보니까 조희팔 사건의 채권단들이 OOO 돈이 흘러간 것을 알고는 가압류 된거에요. 빼도 박도 못하는거에요."

삼애원 사례에서 보듯 조희팔이 부동산 매입이나 사업 투자를 가장해 국내에 숨겨 놓은 범죄 수익금은 검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 천 2백억 원에 이릅니다.

피해자들은 은닉 자금이 최소 1조 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희팔 조직에서 재무를 책임졌던 강태용이라면 숨겨 둔 자금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피해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재용(바실련(조희팔 피해자 단체) 법무팀장) : "막대한 피해자금이 나온 부분에 대해서 조희팔과 강태용이 서로 사기 금액에 대한 부분을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2인자 강태용이 붙잡히면서 이제 남은 건 조희팔 밖에 없습니다.

지난 2012년 경찰은 조희팔의 사망을 발표합니다.

조희팔이 2011년 도피 중이던 중국에서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말이 바뀌었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며, 생존 가능성에 여지를 둔 겁니다.

강 청장은 "살아 있다면 수사를 해야 한다"며, 조희팔 사망 발표 이후 사실상 중단된 수사를 재개할 뜻도 밝혔습니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중국 현지에서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조희팔의 최측근 강태용이라면 조희팔의 위장 사망 의혹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뷰> 송민헌(대구지방경찰청 제2부장) : "완전히 죽은 것으로 단정할 수도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배상태는 계속 유지됐고"

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의 피해자인 이순향 씨.

7년 전, 의료기구 재임대 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수익금을 연금처럼 준다는 말만 믿고 전 재산 2억 4천만 원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다섯달 만에 모든 것이 사기로 드러나면서 희망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녹취> 이순향(조희팔 사건 피해자) "남의 꼬임에 넘어가서 잃은 돈은 꼭 찾을게 알았지"

이 씨가 투자한 돈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은 큰 딸의 보상금이었습니다.

그 충격에 남편마저 폐질환을 앓다가 3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터뷰> 이순향(조희팔 사건 피해자) : "그런 사연이 있는 돈이라서 말하기가 정말 힘들고 우리 딸 보기도 생각하면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피해자 단체들은 조희팔 사건으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이 서른 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거대한 사기극이 가능했는지 사기극 너머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조희팔의 비호세력. 숨겨둔 재산. 그리고 조희팔의 행방.

강태용은 조희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희팔이 살아있다면, 이제는 마지막 남은 조희팔을 잡으러 가야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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