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된 형제·자매…한 맺힌 눈물 ‘펑펑’

입력 2015.10.21 (12:19) 수정 2015.10.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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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77살 김순탁 할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금강산을 찾았습니다.

올해 여든 셋의 염진례 할머니는 허리 통증을 참으려 손수건을 입에 물어야 했습니다.

쇠약한 건강 탓에 상봉 직전 만남을 포기한 이산가족도 5명이나 됐습니다.

상봉자들의 첫 인사는 "살아있어 줘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산가족 1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이번 상봉 행사에 참석한 96가족 가운데 부부나 부모 자식간 직계 상봉은 다섯 가족에 불과했고, 대신 형제 자매나 3촌 이상 상봉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성성한 백발로 다시 만난 형제 자매들은 먼저 간 부모를 떠올리며 서러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송영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녹취> "오빠 사랑도 못 받고 살았어."

전쟁 통에 헤어진 오빠를 손꼽아 기다려온 여동생들,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만 펑펑 쏟아냅니다.

5남매 맏이인 누님이 백발이 된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자 북받친 한들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김철식(81살,南/北 남동생 상봉) : "(얘가 복녀잖아.) 얘가 복녀야? (얘가 복순이잖아. 희자는 죽었어)"

<녹취> "살았다. 누나 왔어. 누나 누나 왔다."

여든이 넘어 나타난 누님 앞에서 삼 형제는 6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 마냥 기뻐합니다.

누님 걱정에 잠도 못 이뤘던 삼 형제는 이제서야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냅니다.

하지만, 저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제일 처음 전해야 했던 소식은 부모님의 부고입니다.

<녹취> "(며칠 안 있으면 아버지 제사야. 아버지 제사야?) 몇일이야? (9월 26일이에요. 음력으로...)"

그래도, 너무나 짧은 만남이기에 빨리 금 마음을 가다듬고 못다 한 추억을 나눕니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름 가득한 얼굴로 다시 만났지만, 부모님을 떠나보낸 형제자매들의 애절은 사연은 긴 세월만큼이나 더욱 애달파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영석입니다.

<앵커 멘트>

하지만 이렇게라도 상봉의 행운을 잡은 이들을 마냥 부럽게만 쳐다보고 있을 수많은 실향민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봉을 신청한 13만 명 가운데 컴퓨터 추첨을 통과한 2천2백35명만 가족을 만났습니다.

1.7% 입니다.

상봉을 기다리는 사이 이미 절반 가까운 6만3천여 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지금처럼 한 해 2백 명 남짓 만나는 식이라면 생존해 있는 상봉 신청자들이 가족을 만나는데 300년도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아직까지 상봉의 기회를 잡지못한 남은 이산가족들의 심경을 서병립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열 세 살 어린 동생을 북에 두고 아버지를 따라 피난을 내려온 이월섭 할머니.

동생이 마음에 밟혀 10여 년 전 상봉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다른 이들의 상봉 장면만 보면 동생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녹취> 이월섭(83살/북한 평양 출신) : "나는 못 보고 죽을까 봐 한이 돼요. 지금 그거 부모 없이 혼자 13살 먹은 거 두고 나와서..."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박경순 할머니, 상봉행사 첫해 상봉을 신청했지만 TV로 상봉 장면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내년이면 팔순, 동생들 생사만이라도 아는 게 소원입니다.

<녹취> 박경순(79살/북한 개성 출신) : "고향에서 피난 나올 때 어린 동생 둘을 두고 나왔는데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그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요."

계속된 상봉 탈락에 그리운 북녘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줄어만 갑니다.

<녹취> 김동흡(85살/북한 함경도 출신) : "이번에는 되겠지. 이번에는 되겠지... 희망은 항상 가지고 있지 있는데, 할 때마다 안되니까 이제는 뭐 되기 싫으면 되지말라는 식이 돼버렸어요."

상봉 신청자 13만 명중 생존한 이산가족은 6만 6천여 명, 매년 3천 8백여 명의 이산가족이 혈육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서병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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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5-10-21 13: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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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77살 김순탁 할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금강산을 찾았습니다.

올해 여든 셋의 염진례 할머니는 허리 통증을 참으려 손수건을 입에 물어야 했습니다.

쇠약한 건강 탓에 상봉 직전 만남을 포기한 이산가족도 5명이나 됐습니다.

상봉자들의 첫 인사는 "살아있어 줘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산가족 1세대가 고령화되면서 이번 상봉 행사에 참석한 96가족 가운데 부부나 부모 자식간 직계 상봉은 다섯 가족에 불과했고, 대신 형제 자매나 3촌 이상 상봉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성성한 백발로 다시 만난 형제 자매들은 먼저 간 부모를 떠올리며 서러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송영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녹취> "오빠 사랑도 못 받고 살았어."

전쟁 통에 헤어진 오빠를 손꼽아 기다려온 여동생들,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만 펑펑 쏟아냅니다.

5남매 맏이인 누님이 백발이 된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자 북받친 한들이 터져 나옵니다.

<녹취> 김철식(81살,南/北 남동생 상봉) : "(얘가 복녀잖아.) 얘가 복녀야? (얘가 복순이잖아. 희자는 죽었어)"

<녹취> "살았다. 누나 왔어. 누나 누나 왔다."

여든이 넘어 나타난 누님 앞에서 삼 형제는 6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 마냥 기뻐합니다.

누님 걱정에 잠도 못 이뤘던 삼 형제는 이제서야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냅니다.

하지만, 저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제일 처음 전해야 했던 소식은 부모님의 부고입니다.

<녹취> "(며칠 안 있으면 아버지 제사야. 아버지 제사야?) 몇일이야? (9월 26일이에요. 음력으로...)"

그래도, 너무나 짧은 만남이기에 빨리 금 마음을 가다듬고 못다 한 추억을 나눕니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름 가득한 얼굴로 다시 만났지만, 부모님을 떠나보낸 형제자매들의 애절은 사연은 긴 세월만큼이나 더욱 애달파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영석입니다.

<앵커 멘트>

하지만 이렇게라도 상봉의 행운을 잡은 이들을 마냥 부럽게만 쳐다보고 있을 수많은 실향민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봉을 신청한 13만 명 가운데 컴퓨터 추첨을 통과한 2천2백35명만 가족을 만났습니다.

1.7% 입니다.

상봉을 기다리는 사이 이미 절반 가까운 6만3천여 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지금처럼 한 해 2백 명 남짓 만나는 식이라면 생존해 있는 상봉 신청자들이 가족을 만나는데 300년도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아직까지 상봉의 기회를 잡지못한 남은 이산가족들의 심경을 서병립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열 세 살 어린 동생을 북에 두고 아버지를 따라 피난을 내려온 이월섭 할머니.

동생이 마음에 밟혀 10여 년 전 상봉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다른 이들의 상봉 장면만 보면 동생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녹취> 이월섭(83살/북한 평양 출신) : "나는 못 보고 죽을까 봐 한이 돼요. 지금 그거 부모 없이 혼자 13살 먹은 거 두고 나와서..."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박경순 할머니, 상봉행사 첫해 상봉을 신청했지만 TV로 상봉 장면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내년이면 팔순, 동생들 생사만이라도 아는 게 소원입니다.

<녹취> 박경순(79살/북한 개성 출신) : "고향에서 피난 나올 때 어린 동생 둘을 두고 나왔는데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그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요."

계속된 상봉 탈락에 그리운 북녘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줄어만 갑니다.

<녹취> 김동흡(85살/북한 함경도 출신) : "이번에는 되겠지. 이번에는 되겠지... 희망은 항상 가지고 있지 있는데, 할 때마다 안되니까 이제는 뭐 되기 싫으면 되지말라는 식이 돼버렸어요."

상봉 신청자 13만 명중 생존한 이산가족은 6만 6천여 명, 매년 3천 8백여 명의 이산가족이 혈육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서병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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