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악행만 저지르는 ‘이 땅의 아들들’

입력 2015.10.24 (13:03) 수정 2015.10.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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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지도뭄바이 지도


■ 시민운동가 얼굴에 검은색 잉크 투척

지난 12일 인도인들은 텔레비전 뉴스 채널에서 전해지는 기자회견 장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에서 있었던 건데, 회견자의 얼굴이 온통 검은색 물질로 뒤덮여 있었다. 회견자는 쿨카니라는 시민운동가였고 검은색 물질은 잉크였다.

"시브 세나 당원 10여 명이 내 차 앞을 가로막고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붙잡고 얼굴에 잉크를 끼얹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녁 행사를 취소하라고 경고했는데 왜 말을 안 듣냐고 하더군요."


▲ 잉크를 뒤집어쓴 시민운동가


그 날 저녁에 열릴 행사는 출판기념회였다. '매도 비둘기도 아니다-내부자가 본 파키스탄 외교정책'이라는 책이었다. 저자는 파키스탄 전 외교부 장관이었다. 이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사람이 바로 잉크를 뒤집어쓴 쿨카니였다. 시브 세나 당원들은 '적국' 파키스탄 사람의 책을 발간하는데 불만을 품고 출판을 기획한 인도인 쿨카니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이었다.
참고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최대 적국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그 관계가 남한-북한처럼 경직돼 있지는 않다. 대사관도 개설돼 있고 직항로도 있다. 일반인들도 비자를 받아 상대국을 방문할 수 있다. 물론 상대국 저자의 책을 발간하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일을 벌인 시브 세나측은 "공격이 아니라 비폭력적 항의"라고 주장했다. 한 발 나아가 "그건 잉크가 아니라 우리 군인이 흘린 피"라며 파키스탄을 향한 극도의 적개심을 표출했다. 뭄바이 경찰은 잉크 공격에 가담한 6명을 체포해 조사중이다.

■ 인도 크리켓연맹 본부 난입…인-파 스포츠 회담 무산

잉크 투척 사건 일주일 후. 시브 세나 당원 수십 명이 이번에는 뭄바이에 있는 인도크리켓연맹(BCCI) 본부에 난입했다. 당원들은 BCCI 회장 집무실까지 쳐들어가 소란을 피웠다. 이곳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크리켓연맹 간의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양측은 올 연말 두 나라 국가대표 간 크리켓 경기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었다. 시브 세나 당원들은 '적국'과 스포츠 경기를 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난동을 부린 것이었다. 결국 회담은 취소됐다. 소식이 알려지자 파키스탄에서도 강경론자들이 길거리로 나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인형을 태우며 시위를 벌였다.
시브 세나는 이달 초에도 뭄바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파키스탄 유명 가수의 공연을 무산시킨 바 있다. 공연장에서 물리적 행동을 하겠다며 주최 측을 협박했다. 시브 세나의 성향과 전력을 잘 아는 기획사는 결국 불상사를 우려해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 인-파 크리켓 회담이 무산된 후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반인도 시위


■ 폭력적 극우 정당…텃밭에서 콘크리트 지지

얼핏 뒷골목 폭력조직을 연상시키지만 시브 세나는 엄연히 정식 정당이다. 그것도 중부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유력한 지역 정당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과 연합해 마하라슈트라 주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모디 총리 내각에는 이 정당 소속 장관도 있다.
이렇게 겉은 멀쩡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시브 세나, 이 정당의 정체는 무엇일까.
시브 세나는 1966년 '이 땅의 아들들'(Sons of the Soil)이라는 구호와 함께 창설됐다. 구호가 보여주듯 시브 세나의 첫번째이자 사실상 유일한 이념은 지역주의였다. 뭄바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번성한 도시다. 외지인이 일자리와 사업 기회를 찾아 몰려온다. 이들로부터 토착민의 문화와 권리를 보호하겠고 나선 게 시브 세나였다. 말이 보호지 실은 외지인에게 대놓고 폭력을 휘둘렀다.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은 여전히 이 정당의 특징이자 생존 전략이다.


▲ 시브 세나의 군중 집회


시브 세나는 여기에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추가했다. 인도는 힌두교의 땅이라는 주장이었다. 특히, 소수지만 무시 못 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무슬림을 표적으로 삼았다. 독립 과정에서 분리된 이후 인도와 대립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원수였다. 시브 세나에게 파키스탄은 언제나 쳐부숴야 할 대상이지 화합할 상대가 아니다. 이 때문에 양국 간의 화해 무드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민간 차원의 문화, 스포츠 교류도 철저히 반대한다.
시브 세나는 종교적 배타성에서 뜻이 통하는 인도국민당(BJP)과 1980년대부터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BJP는 전국 정당으로 발전하고 연방정부까지 장악하면서 극단적 이념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지역 정당에 머물러 있는 시브 세나는 토착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아무리 욕을 먹어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시브 세나에게 표를 던진다.

시브 세나의 악행은 수십 가지 사건에서 거론된다. 파키스탄이 화해 차원에서 인도 뉴델리와 파키스탄 라호르 사이를 왕복하는 버스를 운행하자 버스를 공격하겠다고 협박했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외국 문화에 물들었다며 폭력을 휘둘렀다. 시브 세나 대표에게 비판적 보도를 했다며 뭄바이와 푸네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점거해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갤러리를 습격해 인도의 대표적 현대화가인 후세인의 작품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두르가나 사라스와티 같은 힌두 여신들을 누드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 시브 세나의 로고


세계인에게 오랜 세월 낯익었던 봄베이(Bombay)라는 이름이 1995년 뭄바이(Mumbai)로 바뀌었다. 이름을 바꾼 건 시브 세나였다. 1995년 마하라슈트라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해 주정부를 장악하자 시브 세나는 봄베이라는 이름이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라며 이 도시의 수호여신인 뭄바데비(Mumbadevi)의 이름을 따라 뭄바이로 개칭했다.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고유의 문화를 살려내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브 세나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지역적 종교적 배타성이 극단화됐고 반복적 폭력 의존증에 사로잡혔다. 갠지스의 관용 정신이 지금 극우주의 정당 시브 세나 앞에서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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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國記] 악행만 저지르는 ‘이 땅의 아들들’
    • 입력 2015-10-24 13:03:30
    • 수정2015-10-26 17:10:50
    7국기
뭄바이 지도


■ 시민운동가 얼굴에 검은색 잉크 투척

지난 12일 인도인들은 텔레비전 뉴스 채널에서 전해지는 기자회견 장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에서 있었던 건데, 회견자의 얼굴이 온통 검은색 물질로 뒤덮여 있었다. 회견자는 쿨카니라는 시민운동가였고 검은색 물질은 잉크였다.

"시브 세나 당원 10여 명이 내 차 앞을 가로막고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붙잡고 얼굴에 잉크를 끼얹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녁 행사를 취소하라고 경고했는데 왜 말을 안 듣냐고 하더군요."


▲ 잉크를 뒤집어쓴 시민운동가


그 날 저녁에 열릴 행사는 출판기념회였다. '매도 비둘기도 아니다-내부자가 본 파키스탄 외교정책'이라는 책이었다. 저자는 파키스탄 전 외교부 장관이었다. 이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사람이 바로 잉크를 뒤집어쓴 쿨카니였다. 시브 세나 당원들은 '적국' 파키스탄 사람의 책을 발간하는데 불만을 품고 출판을 기획한 인도인 쿨카니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이었다.
참고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최대 적국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그 관계가 남한-북한처럼 경직돼 있지는 않다. 대사관도 개설돼 있고 직항로도 있다. 일반인들도 비자를 받아 상대국을 방문할 수 있다. 물론 상대국 저자의 책을 발간하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일을 벌인 시브 세나측은 "공격이 아니라 비폭력적 항의"라고 주장했다. 한 발 나아가 "그건 잉크가 아니라 우리 군인이 흘린 피"라며 파키스탄을 향한 극도의 적개심을 표출했다. 뭄바이 경찰은 잉크 공격에 가담한 6명을 체포해 조사중이다.

■ 인도 크리켓연맹 본부 난입…인-파 스포츠 회담 무산

잉크 투척 사건 일주일 후. 시브 세나 당원 수십 명이 이번에는 뭄바이에 있는 인도크리켓연맹(BCCI) 본부에 난입했다. 당원들은 BCCI 회장 집무실까지 쳐들어가 소란을 피웠다. 이곳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크리켓연맹 간의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양측은 올 연말 두 나라 국가대표 간 크리켓 경기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었다. 시브 세나 당원들은 '적국'과 스포츠 경기를 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난동을 부린 것이었다. 결국 회담은 취소됐다. 소식이 알려지자 파키스탄에서도 강경론자들이 길거리로 나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인형을 태우며 시위를 벌였다.
시브 세나는 이달 초에도 뭄바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파키스탄 유명 가수의 공연을 무산시킨 바 있다. 공연장에서 물리적 행동을 하겠다며 주최 측을 협박했다. 시브 세나의 성향과 전력을 잘 아는 기획사는 결국 불상사를 우려해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 인-파 크리켓 회담이 무산된 후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반인도 시위


■ 폭력적 극우 정당…텃밭에서 콘크리트 지지

얼핏 뒷골목 폭력조직을 연상시키지만 시브 세나는 엄연히 정식 정당이다. 그것도 중부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유력한 지역 정당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과 연합해 마하라슈트라 주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모디 총리 내각에는 이 정당 소속 장관도 있다.
이렇게 겉은 멀쩡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시브 세나, 이 정당의 정체는 무엇일까.
시브 세나는 1966년 '이 땅의 아들들'(Sons of the Soil)이라는 구호와 함께 창설됐다. 구호가 보여주듯 시브 세나의 첫번째이자 사실상 유일한 이념은 지역주의였다. 뭄바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번성한 도시다. 외지인이 일자리와 사업 기회를 찾아 몰려온다. 이들로부터 토착민의 문화와 권리를 보호하겠고 나선 게 시브 세나였다. 말이 보호지 실은 외지인에게 대놓고 폭력을 휘둘렀다. 외지인에 대한 배타성은 여전히 이 정당의 특징이자 생존 전략이다.


▲ 시브 세나의 군중 집회


시브 세나는 여기에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추가했다. 인도는 힌두교의 땅이라는 주장이었다. 특히, 소수지만 무시 못 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무슬림을 표적으로 삼았다. 독립 과정에서 분리된 이후 인도와 대립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원수였다. 시브 세나에게 파키스탄은 언제나 쳐부숴야 할 대상이지 화합할 상대가 아니다. 이 때문에 양국 간의 화해 무드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민간 차원의 문화, 스포츠 교류도 철저히 반대한다.
시브 세나는 종교적 배타성에서 뜻이 통하는 인도국민당(BJP)과 1980년대부터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BJP는 전국 정당으로 발전하고 연방정부까지 장악하면서 극단적 이념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지역 정당에 머물러 있는 시브 세나는 토착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극단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아무리 욕을 먹어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시브 세나에게 표를 던진다.

시브 세나의 악행은 수십 가지 사건에서 거론된다. 파키스탄이 화해 차원에서 인도 뉴델리와 파키스탄 라호르 사이를 왕복하는 버스를 운행하자 버스를 공격하겠다고 협박했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외국 문화에 물들었다며 폭력을 휘둘렀다. 시브 세나 대표에게 비판적 보도를 했다며 뭄바이와 푸네의 텔레비전 방송국을 점거해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갤러리를 습격해 인도의 대표적 현대화가인 후세인의 작품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두르가나 사라스와티 같은 힌두 여신들을 누드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 시브 세나의 로고


세계인에게 오랜 세월 낯익었던 봄베이(Bombay)라는 이름이 1995년 뭄바이(Mumbai)로 바뀌었다. 이름을 바꾼 건 시브 세나였다. 1995년 마하라슈트라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해 주정부를 장악하자 시브 세나는 봄베이라는 이름이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라며 이 도시의 수호여신인 뭄바데비(Mumbadevi)의 이름을 따라 뭄바이로 개칭했다.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고유의 문화를 살려내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브 세나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지역적 종교적 배타성이 극단화됐고 반복적 폭력 의존증에 사로잡혔다. 갠지스의 관용 정신이 지금 극우주의 정당 시브 세나 앞에서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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