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간디 암살범을 추모하겠다니…갈 데까지 간 극우파

입력 2015.11.06 (09:25) 수정 2015.11.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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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지도인도 지도


■ 모든 인도 지폐에는 간디 초상화

인도를 여행하는 외국인은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게 된다. 우선 인도 돈이다. 인도의 화폐 단위는 루피인데 지폐는 7종류가 통용된다. 그런데 5루피짜리부터 1,000루피짜리까지 모든 지폐에 오직 간디 얼굴만 들어가 있다. 다음으로 인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간디로(路)이다. Gandhi Marg 또는 Gandhi Road로 이름 붙여진 도로는 수도 뉴델리부터 시골 읍내까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간디 동상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인도에서 간디가 얼마나 대단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간디는 부처와 함께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도인일 것이다.

인도 지폐인도 지폐


간디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6개월 후인 1948년 1월 30일 암살당했다. 여느 때처럼 뉴델리에서 오후 기도를 인도하던 중 청중석에 섞여 있던 괴한의 총격을 받았다. 나투람 고드세라는 당시 38세의 힌두교도였다. 마틴 루터 킹, 케네디 암살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유명한 저격 사건으로 꼽힌다. 암살 이유는 간디가 친 파키스탄, 친 이슬람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평화주의자 간디는 엄청난 유혈 사태 끝에 분리 독립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화해를 추구했다. 하지만 무슬림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품고 있던 고드세 같은 극우적 힌두교도들은 간디를 조국의 배신자, 힌두교의 배신자쯤으로 여겼다. 고드세는 이듬해 11월 15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 극우 정당 “간디 암살범 추모하겠다”

간디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 지난 2015년, 한 정당이 지금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힌두 마하사바'라는 군소 정당인데, 간디 암살범 고드세를 추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고드세가 처형된 11월 15일을 '순교자의 날'로 정해 그의 뜻을 기리겠다는 것이다. 힌두 마하사바는 인도 전역의 지구당 120곳에 추모 행사를 개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추모일에 즈음해 나트람 고드세의 동생이자 간디 암살을 공모한 고팔 고드세의 저서를 요약해 배포하고, 고드세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도 공연할 계획이다. 이 정당 대표 카우시크는 "고드세가 간디보다 훨씬 더 애국자다. 인도인 중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순교자의 날'에는 인도인들이 함께 모여 고드세가 왜 간디를 죽였는지를 되새겨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드세고드세

▲ 간디 암살범 나트람 고드세


■ “힌두교도가 인도 땅의 주인이다”

인도의 자랑이자 인류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간디를 이렇게 폄하하는 힌두 마하사바는 도대체 무슨 정당일까. 인도 정계에서 힌두 마하사바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힌두 극우주의의 뿌리를 찾아갈 때 그 원조에 해당하는 정당이 바로 힌두 마하사바다. 힌두 극우주의는 독립 전 무슬림과의 적대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혈통적으로 문화적으로 힌두의 단일성을 강조하며 무슬림을 배척했다. 힌두교도만이 인도 땅의 주인이므로 인도는 힌두교도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념은 독립 당시 간디와 네루가 추구하던 국가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간디와 네루는 신실한 힌두교도였지만 인도를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근대화된 나라로 건설하고자 했다. 인도 건국의 기초가 된 '세속주의' 이념이었다. 그래서 힌두 마하사바는 간디와 네루가 이끄는 주류 독립운동 세력에게 적대적이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이 간디 암살이었다. 간디를 살해한 고드세가 바로 힌두 마하사바의 당원었다. 사건이 엄청난 역풍을 불러오면서 힌두 마하사바는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고 명맥만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정당이 품고 있는 이념은 이후 숱한 단체와 정당으로 전이됐다. 그 대표가 지금의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이다. 세속주의를 대변하는 국민회의당에 오랫동안 눌려오던 인도국민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 연방 정권을 놓고 국민회의당과 경쟁해오고 있다.

간디 암살 장소간디 암살 장소

▲ 간디가 암살된 장소 - 뉴델리


■ “무슬림과 기독교도를 강제로 불임시켜야”

힌두 마하사바는 흔적만 남은 극우주의 원조 자격을 되살리려는 것인지 과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이 정당은 고드세를 추모하는 기념관을 짓겠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올해 4월 힌두 마하사바 부대표 타쿠르는 무슬림과 기독교도에게 강제 불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켰다. 타쿠르는 인도에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를 억제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긴급조치를 발동해 강제 불임 시술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쿠르는 또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 안에 힌두 신상(神像)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힌두 마하사바의 주장은 워낙 극단적이어서 사람들의 동조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인도 내에서 힌두 마하사바 같은 극단적 언동이 힌두교 색채가 강한 우파 정당 인도국민당 집권 이후 부쩍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이후 힌두교 우상숭배를 비판한 대학 교수가 살해됐고 한 이슬람교도는 소고기를 먹었다는 소문 때문에 집단 구타당해 사망했다. 인도국민당 정부가 이런 폭력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서 갈수록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활개 치는 양상이다. 급기야 종교적 불관용 사태에 반발해 지식인들이 정부에서 받은 훈장과 포상을 반납하는 일도 벌어졌다.

간디간디


맨발의 마하트마 간디는 깡마른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강고한 영국 제국주의에 '비폭력'으로 맞서 싸웠다. 그 비폭력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가 바로 인도다. 그런 나라에서, 비폭력의 아버지를 폭력으로 제거한 사람을 숭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인도 극우주의자들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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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國記] 간디 암살범을 추모하겠다니…갈 데까지 간 극우파
    • 입력 2015-11-06 09:25:13
    • 수정2015-11-06 09:34:43
    7국기
인도 지도
■ 모든 인도 지폐에는 간디 초상화 인도를 여행하는 외국인은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게 된다. 우선 인도 돈이다. 인도의 화폐 단위는 루피인데 지폐는 7종류가 통용된다. 그런데 5루피짜리부터 1,000루피짜리까지 모든 지폐에 오직 간디 얼굴만 들어가 있다. 다음으로 인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간디로(路)이다. Gandhi Marg 또는 Gandhi Road로 이름 붙여진 도로는 수도 뉴델리부터 시골 읍내까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간디 동상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인도에서 간디가 얼마나 대단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간디는 부처와 함께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도인일 것이다.
인도 지폐
간디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6개월 후인 1948년 1월 30일 암살당했다. 여느 때처럼 뉴델리에서 오후 기도를 인도하던 중 청중석에 섞여 있던 괴한의 총격을 받았다. 나투람 고드세라는 당시 38세의 힌두교도였다. 마틴 루터 킹, 케네디 암살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유명한 저격 사건으로 꼽힌다. 암살 이유는 간디가 친 파키스탄, 친 이슬람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평화주의자 간디는 엄청난 유혈 사태 끝에 분리 독립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화해를 추구했다. 하지만 무슬림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품고 있던 고드세 같은 극우적 힌두교도들은 간디를 조국의 배신자, 힌두교의 배신자쯤으로 여겼다. 고드세는 이듬해 11월 15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 극우 정당 “간디 암살범 추모하겠다” 간디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 지난 2015년, 한 정당이 지금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힌두 마하사바'라는 군소 정당인데, 간디 암살범 고드세를 추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고드세가 처형된 11월 15일을 '순교자의 날'로 정해 그의 뜻을 기리겠다는 것이다. 힌두 마하사바는 인도 전역의 지구당 120곳에 추모 행사를 개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추모일에 즈음해 나트람 고드세의 동생이자 간디 암살을 공모한 고팔 고드세의 저서를 요약해 배포하고, 고드세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도 공연할 계획이다. 이 정당 대표 카우시크는 "고드세가 간디보다 훨씬 더 애국자다. 인도인 중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순교자의 날'에는 인도인들이 함께 모여 고드세가 왜 간디를 죽였는지를 되새겨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드세 ▲ 간디 암살범 나트람 고드세
■ “힌두교도가 인도 땅의 주인이다” 인도의 자랑이자 인류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간디를 이렇게 폄하하는 힌두 마하사바는 도대체 무슨 정당일까. 인도 정계에서 힌두 마하사바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힌두 극우주의의 뿌리를 찾아갈 때 그 원조에 해당하는 정당이 바로 힌두 마하사바다. 힌두 극우주의는 독립 전 무슬림과의 적대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혈통적으로 문화적으로 힌두의 단일성을 강조하며 무슬림을 배척했다. 힌두교도만이 인도 땅의 주인이므로 인도는 힌두교도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념은 독립 당시 간디와 네루가 추구하던 국가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간디와 네루는 신실한 힌두교도였지만 인도를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근대화된 나라로 건설하고자 했다. 인도 건국의 기초가 된 '세속주의' 이념이었다. 그래서 힌두 마하사바는 간디와 네루가 이끄는 주류 독립운동 세력에게 적대적이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이 간디 암살이었다. 간디를 살해한 고드세가 바로 힌두 마하사바의 당원었다. 사건이 엄청난 역풍을 불러오면서 힌두 마하사바는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고 명맥만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정당이 품고 있는 이념은 이후 숱한 단체와 정당으로 전이됐다. 그 대표가 지금의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이다. 세속주의를 대변하는 국민회의당에 오랫동안 눌려오던 인도국민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 연방 정권을 놓고 국민회의당과 경쟁해오고 있다.
간디 암살 장소 ▲ 간디가 암살된 장소 - 뉴델리
■ “무슬림과 기독교도를 강제로 불임시켜야” 힌두 마하사바는 흔적만 남은 극우주의 원조 자격을 되살리려는 것인지 과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이 정당은 고드세를 추모하는 기념관을 짓겠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올해 4월 힌두 마하사바 부대표 타쿠르는 무슬림과 기독교도에게 강제 불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켰다. 타쿠르는 인도에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를 억제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긴급조치를 발동해 강제 불임 시술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쿠르는 또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 안에 힌두 신상(神像)을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힌두 마하사바의 주장은 워낙 극단적이어서 사람들의 동조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인도 내에서 힌두 마하사바 같은 극단적 언동이 힌두교 색채가 강한 우파 정당 인도국민당 집권 이후 부쩍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5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이후 힌두교 우상숭배를 비판한 대학 교수가 살해됐고 한 이슬람교도는 소고기를 먹었다는 소문 때문에 집단 구타당해 사망했다. 인도국민당 정부가 이런 폭력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서 갈수록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 활개 치는 양상이다. 급기야 종교적 불관용 사태에 반발해 지식인들이 정부에서 받은 훈장과 포상을 반납하는 일도 벌어졌다.
간디
맨발의 마하트마 간디는 깡마른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강고한 영국 제국주의에 '비폭력'으로 맞서 싸웠다. 그 비폭력 정신 위에 세워진 나라가 바로 인도다. 그런 나라에서, 비폭력의 아버지를 폭력으로 제거한 사람을 숭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인도 극우주의자들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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