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中 고위직 잇단 ‘의문사’…커져가는 의혹

입력 2015.11.17 (06:08) 수정 2015.11.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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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중국 지린성 자오허(蛟河) 시의 공안국장 하오좡(郝壮)이 돌연 숨졌다. 오전 근무가 한창이던 10시 40분쯤, 공안국 건물 6층 자신의 사무실 창문에서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자오허 시 하오좡 공안국장자오허 시 하오좡 공안국장

▲ 자오허 시 하오좡 공안국장(우측)이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50세 전후로 알려진 하오 공안국장은 자오허 시의 상무위원이면서 동시에 법원과 검찰을 책임지는 정법위 서기까지 겸하고 있었다. 시정부 내 서열 8위, 잘나가는 젊은 고위직 관리였던 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추락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 “공안국장이 유리창 닦다가 실족?”

사고 이틀 뒤인 11일 자오허 시 정부는 관방 웨이보를 통해 하오좡 국장의 사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짧은 발표문을 공표한다.

「하오좡 국장은 공안국 6층 사무실에서 유리창을 닦다가 떨어져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사망했음. 시신은 이미 11일 화장했음」

이 공표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며 전국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누리꾼들은 한결같이 '어이없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권위적인 중국 공무원 사회에서 조직의 수장이 건물 6층 창턱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웨이보 상의 글들을 추려보면 이런 식이다.

"보통 공공청사에는 모두 청소원이 있는데, 왜 국장이 유리를 닦았을까?"
"웃긴다. 유리창을 직접 닦았다고? 관방 너무 재치있네!"
"지린성은 이미 엄동설한이다. 유리창이 얼고 서리가 끼는데, 6층 창문 밖을 스스로 닦았다니..."

창문을 닦는 청소원창문을 닦는 청소원

▲ 창문을 닦는 청소원 모습.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하오 국장의 사망소식을 지방정부의 발표 그대로 짧게 보도하고 있다. 다만 [북경청년보]는 해당 기사의 말미에 '사고 당일 현지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최저기온은 영하 3.4도, 최고기온은 영하 1.6도였다'라고 보도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 미궁에 빠진 ‘현직 시장의 익사’

지린성에서 공안국장 사망 사건이 나기 닷새 전, 정반대쪽인 서남부 류저우 시에서도 의문의 죽음이 발생했다. 4일 밤 9시 45분쯤, 류저우 시의 51살 샤오원순(肖文荪) 시장이 시내를 관통하는 류장허 강물에 빠져 숨졌다.

샤오 시장이 늦은 밤시각 왜 강가에 갔는지, 어떻게 강물에 빠지게 됐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정황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현직 시장의 사망 소식은 이틀이 지난 6일 저녁에야 시민들에게 지역방송을 통해 발표됐다. '시장이 사망했고, 8일 오전에 영결식이 치러진다'는 46초 짜리 단신이었다. 사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금까지 샤오 시장의 사망에 대한 당국의 발표는 이게 전부다. 중국 신문들도 '현재 사망원인은 조사중'이라고만 보도하고 있다.

류저우시 샤오원순 시장류저우시 샤오원순 시장

▲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류저우시 샤오원순 시장.


샤오 시장은 어떻게 숨진 것일까? 자살일까, 타살일까? SNS와 인터넷에선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부패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되자 강물에 투신했다'는 부패자살설, '물에 빠진 비서를 구하려다 숨졌다'는 영웅설,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지병 자살설까지 소문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모두 추측일 뿐이다. 사실을 아는, 혹은 알 수도 있는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렇게 한 도시의 최고위직이었던 샤오 시장의 죽음은 아무런 실체도 규명되지 못한 채 벌써 일주일 넘게 안갯속에 빠져있다.

■ 고위직 ‘비정상적’ 사망, 보름 동안 최소 7명

문제는 최근 중국에서 이렇게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비정상적인 사망사건'이 한 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국법제만보]는 최근 보름여 동안에만 최소 7명의 고위직 공무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3일 중국 유명 증권사인 궈신(國信)증권의 천홍차오 총재가 자택에서 숨졌다. 1966년생, 49세인 천홍차오는 북경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젊은 나이에 선전증권거래소 부사장을 지내다, 지난해 5월 궈신증권 총재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도양양하던 금융가의 죽음은 현재 자살로 잠정결론 내려진 상태이다.

또 지난달 29일엔 푸젠성 샤먼시의 국토자원부동산관리국 린(林)모 국장이 현지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란저우만보]는 '공안국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으나 타살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고 보도해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이다.

같은 날 중국신화에너지주식회사의 왕핀강 부총재가 사무실에서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숨졌고, 이달 3일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당조직 기율검사조장이던 장젠웨이가 사무실에서 돌연사했다. 역시 사망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

▲ 10월 23일 궈신증권 총재 천홍차오, 자택에서 사망(자살 결론)
▲ 10월 29일 샤먼시 국토자원부동산국장 린모, 공원에서 사망
▲ 10월 29일 중국신화에너지 부총재 왕핀강, 사무실에서 사망
▲ 11월 3일 중국해양석유총공사 당조직 장젠웨이, 돌연사
▲ 11월 4일 류저우시 시장 샤오원순, 강물에 빠져 사망
▲ 11월 9일 후베이성 언스저우 재정국장 왕진웨이, 자택서 추락사
▲ 11월 9일 지린성 자오허시 공안국장 하오좡, 사무실에서 추락사

■ “왜 숨졌지?”에서 “왜 숨기지?”로.

부고를 접한 중국의 '라오바이싱(일반백성)'들은 처음에는 "그가 왜 숨졌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확인되거나 결론나지 않은 특정인의 사망원인을 함부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발표될지 모를 당국의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몰래 '자살이다, 타살이다' 논쟁을 벌이고,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정책에 꼬리가 잡혔기 때문이다',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다'는 등의 온갖 추측과 소문에 귀 기울이던 중국인들도 이제는 지쳐가는 모양이다. 일반인들의 관심은 차츰 "그런데 왜 사실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는 거야?"로 바뀌어가고 있다.

잇단 중국 고위직들의 의문스런 죽음에 '알릴 만한 특별한 사실'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중국 당국의 태도는 오히려 시민들에게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은밀한 정황'이 더 있을 것이라는 의심만 키우는 꼴이 되고 있다.

그 의심의 내용이 '진실인지, 오해인지'는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중국국민이 품은 의심의 크기만큼 중국당국의 공신력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권력의 정보 차단에 맞서 의심을 품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정부는 왜 신뢰의 위기에 빠지는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부메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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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中 고위직 잇단 ‘의문사’…커져가는 의혹
    • 입력 2015-11-17 06:08:24
    • 수정2015-11-17 09:06:58
    취재후·사건후
지난 9일 중국 지린성 자오허(蛟河) 시의 공안국장 하오좡(郝壮)이 돌연 숨졌다. 오전 근무가 한창이던 10시 40분쯤, 공안국 건물 6층 자신의 사무실 창문에서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자오허 시 하오좡 공안국장
▲ 자오허 시 하오좡 공안국장(우측)이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50세 전후로 알려진 하오 공안국장은 자오허 시의 상무위원이면서 동시에 법원과 검찰을 책임지는 정법위 서기까지 겸하고 있었다. 시정부 내 서열 8위, 잘나가는 젊은 고위직 관리였던 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추락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 “공안국장이 유리창 닦다가 실족?”

사고 이틀 뒤인 11일 자오허 시 정부는 관방 웨이보를 통해 하오좡 국장의 사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짧은 발표문을 공표한다.

「하오좡 국장은 공안국 6층 사무실에서 유리창을 닦다가 떨어져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사망했음. 시신은 이미 11일 화장했음」

이 공표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며 전국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누리꾼들은 한결같이 '어이없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권위적인 중국 공무원 사회에서 조직의 수장이 건물 6층 창턱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웨이보 상의 글들을 추려보면 이런 식이다.

"보통 공공청사에는 모두 청소원이 있는데, 왜 국장이 유리를 닦았을까?"
"웃긴다. 유리창을 직접 닦았다고? 관방 너무 재치있네!"
"지린성은 이미 엄동설한이다. 유리창이 얼고 서리가 끼는데, 6층 창문 밖을 스스로 닦았다니..."

창문을 닦는 청소원
▲ 창문을 닦는 청소원 모습.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하오 국장의 사망소식을 지방정부의 발표 그대로 짧게 보도하고 있다. 다만 [북경청년보]는 해당 기사의 말미에 '사고 당일 현지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최저기온은 영하 3.4도, 최고기온은 영하 1.6도였다'라고 보도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 미궁에 빠진 ‘현직 시장의 익사’

지린성에서 공안국장 사망 사건이 나기 닷새 전, 정반대쪽인 서남부 류저우 시에서도 의문의 죽음이 발생했다. 4일 밤 9시 45분쯤, 류저우 시의 51살 샤오원순(肖文荪) 시장이 시내를 관통하는 류장허 강물에 빠져 숨졌다.

샤오 시장이 늦은 밤시각 왜 강가에 갔는지, 어떻게 강물에 빠지게 됐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정황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현직 시장의 사망 소식은 이틀이 지난 6일 저녁에야 시민들에게 지역방송을 통해 발표됐다. '시장이 사망했고, 8일 오전에 영결식이 치러진다'는 46초 짜리 단신이었다. 사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금까지 샤오 시장의 사망에 대한 당국의 발표는 이게 전부다. 중국 신문들도 '현재 사망원인은 조사중'이라고만 보도하고 있다.

류저우시 샤오원순 시장
▲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류저우시 샤오원순 시장.


샤오 시장은 어떻게 숨진 것일까? 자살일까, 타살일까? SNS와 인터넷에선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부패 문제로 조사를 받게 되자 강물에 투신했다'는 부패자살설, '물에 빠진 비서를 구하려다 숨졌다'는 영웅설,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지병 자살설까지 소문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모두 추측일 뿐이다. 사실을 아는, 혹은 알 수도 있는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이렇게 한 도시의 최고위직이었던 샤오 시장의 죽음은 아무런 실체도 규명되지 못한 채 벌써 일주일 넘게 안갯속에 빠져있다.

■ 고위직 ‘비정상적’ 사망, 보름 동안 최소 7명

문제는 최근 중국에서 이렇게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비정상적인 사망사건'이 한 둘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국법제만보]는 최근 보름여 동안에만 최소 7명의 고위직 공무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3일 중국 유명 증권사인 궈신(國信)증권의 천홍차오 총재가 자택에서 숨졌다. 1966년생, 49세인 천홍차오는 북경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젊은 나이에 선전증권거래소 부사장을 지내다, 지난해 5월 궈신증권 총재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전도양양하던 금융가의 죽음은 현재 자살로 잠정결론 내려진 상태이다.

또 지난달 29일엔 푸젠성 샤먼시의 국토자원부동산관리국 린(林)모 국장이 현지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란저우만보]는 '공안국이 현장을 조사하고 있으나 타살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고 보도해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이다.

같은 날 중국신화에너지주식회사의 왕핀강 부총재가 사무실에서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숨졌고, 이달 3일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당조직 기율검사조장이던 장젠웨이가 사무실에서 돌연사했다. 역시 사망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

▲ 10월 23일 궈신증권 총재 천홍차오, 자택에서 사망(자살 결론)
▲ 10월 29일 샤먼시 국토자원부동산국장 린모, 공원에서 사망
▲ 10월 29일 중국신화에너지 부총재 왕핀강, 사무실에서 사망
▲ 11월 3일 중국해양석유총공사 당조직 장젠웨이, 돌연사
▲ 11월 4일 류저우시 시장 샤오원순, 강물에 빠져 사망
▲ 11월 9일 후베이성 언스저우 재정국장 왕진웨이, 자택서 추락사
▲ 11월 9일 지린성 자오허시 공안국장 하오좡, 사무실에서 추락사

■ “왜 숨졌지?”에서 “왜 숨기지?”로.

부고를 접한 중국의 '라오바이싱(일반백성)'들은 처음에는 "그가 왜 숨졌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확인되거나 결론나지 않은 특정인의 사망원인을 함부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발표될지 모를 당국의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몰래 '자살이다, 타살이다' 논쟁을 벌이고,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정책에 꼬리가 잡혔기 때문이다',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다'는 등의 온갖 추측과 소문에 귀 기울이던 중국인들도 이제는 지쳐가는 모양이다. 일반인들의 관심은 차츰 "그런데 왜 사실을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는 거야?"로 바뀌어가고 있다.

잇단 중국 고위직들의 의문스런 죽음에 '알릴 만한 특별한 사실'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중국 당국의 태도는 오히려 시민들에게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은밀한 정황'이 더 있을 것이라는 의심만 키우는 꼴이 되고 있다.

그 의심의 내용이 '진실인지, 오해인지'는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중국국민이 품은 의심의 크기만큼 중국당국의 공신력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이 권력의 정보 차단에 맞서 의심을 품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정부는 왜 신뢰의 위기에 빠지는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부메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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