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5.18 그 특별한 인연

입력 2015.11.27 (10:48) 수정 2015.11.2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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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S 취임 뒤 5·18 담화문 발표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 운동 담화문을 발표한다. 1993년 5월 13일이다. 취임한 첫해 "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것이다. A4 석 장 분량의 이 담화문은 5·18의 큰 전환점이 됐다. 5·18의 위상이 달라졌고 광주 곳곳에 5·18의 유산을 남겼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광주에 남겨진 그의 유산을 돌아본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故 김영삼 전 대통령

▲ 1993년 5·18 담화문을 발표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 5·18 기념일을 제정하라

5·18은 1980년대 '광주사태'로 불렸다. 광주에서 기념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광주시민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문제를 놓고 많은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첫 번째 약속을 말한다. "첫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그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우선, 광주 시민과 온 국민이 그날을 기념할 수 있도록 광주시에서 기념일을 먼저 제정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담화문을 발표한 다음 날 광주시는 5·18 기념일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법률 검토를 시작한다. 당시 강영기 광주직할시장은 "공식적인 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조례안을 우리 집행부에서 마련해가지고..." 라고 인터뷰한다. 이후 5·18은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에 이른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뒤 첫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1997)


■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 5·18 민주묘지로

5월 영령들이 잠든 곳은 "망월동 묘역"으로 불렸다. 5월 영령들의 시신은 청소차에 실려 이곳에 안장됐다.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렇게 약속한다. "망월동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입니다." 이후 망월 묘역 바로 옆에 새로 5·18 민주묘지를 조성하고 5월 영령들도 새 묘지로 이장한다. 태극기와 시계 등 희생자와 함께 묻혔던 유물도 이때 발굴됐다. 이후 "망월동 묘역"은 국립 5·18 민주묘지가 됐고 정부 주관 기념식이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5·18 묘역 준공식5·18 묘역 준공식

▲ 광주광역시 운정동에 새로 조성된 5·18 묘역 준공식(1997)


■ 전남도청 이전하고 5·18기념공원 조성한다

전남도청은 5·18 최후의 항전지였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이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5·18의 상징과도 같은 전남도청을 기념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다.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의사에 따라 현재 광주 시내에 있는 전남도청을 전남도 관내로 이전하고, 당시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현 도청 위치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지원할 것입니다."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전남도청은 전남 무안으로 이전하고 전남도청 자리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맨 앞 도청 건물은 민주평화교류원이 됐다.

전남도청전남도청

▲ 민주평화교류원으로 탈바꿈한 전남도청


■ 상무대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5·18 때 시민군들이 끌려가 고문을 받았던 군부대의 이름이 상무대다.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 상무대 부지의 일부를 광주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현재 상무대 부지의 일부를 광주시에 추가로 무상 사용케 함으로써 시민공원을 조성하도록 할 것입니다."

상무대는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고 군부대 부지는 택지로 개발됐다. 그리고 약속대로 일부 부지를 광주시가 무상으로 받아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이렇게 해서 광주 상무지구에는 '5·18 기념공원'과 '상무시민공원'이 자리잡게 됐다.

5·18기념공원5·18기념공원

▲ 도심 속 한가운데 자리 잡은 5·18기념공원


■ YS의 유산 아닌 시민 모두의 유산이자 숙제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모두 일곱 차례 5·18 망월묘역을 다녀갔다.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 달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5·18 묘역 참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5·18 묘역 점거 시위로 무산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광주와 전남을 순시하는 내내 서운해했다. 1980년 5월 기자회견을 열어 5월의 비극을 해외에 알린 일화 등을 얘기하며 5·18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 전 대통령이지만,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 무산과 3당 합당 등으로 그에게 애증을 가진 광주전남 시·도민도 많다.

5·18 35주년을 맞았지만, 숙제는 여전히 많다. 광주에 남겨진 김 전 대통령의 유산이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남겨진 것도 아니다. 35년 동안 수많은 시민이 싸웠고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정치인들의 노력도 컸다. 시민에게 총을 쏜 발포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도 여전하다. 5·18 폄하 사진과 발언도 진행형이다.

남은 과제가 많은 만큼 그가 이룬 것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은 통합과 화합이다.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완성하는 것 또한 통합과 화합으로 가는 길이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故 김영삼 전 대통령

▲ 대통령 취임 다음 달 전남도청을 찾은 故 김영삼 전 대통령(1993)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담화문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http://www.pa.go.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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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5.18 그 특별한 인연
    • 입력 2015-11-27 10:48:11
    • 수정2015-11-27 10:48:54
    취재후·사건후
■ YS 취임 뒤 5·18 담화문 발표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 운동 담화문을 발표한다. 1993년 5월 13일이다. 취임한 첫해 "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것이다. A4 석 장 분량의 이 담화문은 5·18의 큰 전환점이 됐다. 5·18의 위상이 달라졌고 광주 곳곳에 5·18의 유산을 남겼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광주에 남겨진 그의 유산을 돌아본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 ▲ 1993년 5·18 담화문을 발표한 故 김영삼 전 대통령
■ 5·18 기념일을 제정하라 5·18은 1980년대 '광주사태'로 불렸다. 광주에서 기념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광주시민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문제를 놓고 많은 고뇌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첫 번째 약속을 말한다. "첫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그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우선, 광주 시민과 온 국민이 그날을 기념할 수 있도록 광주시에서 기념일을 먼저 제정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담화문을 발표한 다음 날 광주시는 5·18 기념일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법률 검토를 시작한다. 당시 강영기 광주직할시장은 "공식적인 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조례안을 우리 집행부에서 마련해가지고..." 라고 인터뷰한다. 이후 5·18은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에 이른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뒤 첫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1997)
■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 5·18 민주묘지로 5월 영령들이 잠든 곳은 "망월동 묘역"으로 불렸다. 5월 영령들의 시신은 청소차에 실려 이곳에 안장됐다.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렇게 약속한다. "망월동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입니다." 이후 망월 묘역 바로 옆에 새로 5·18 민주묘지를 조성하고 5월 영령들도 새 묘지로 이장한다. 태극기와 시계 등 희생자와 함께 묻혔던 유물도 이때 발굴됐다. 이후 "망월동 묘역"은 국립 5·18 민주묘지가 됐고 정부 주관 기념식이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5·18 묘역 준공식 ▲ 광주광역시 운정동에 새로 조성된 5·18 묘역 준공식(1997)
■ 전남도청 이전하고 5·18기념공원 조성한다 전남도청은 5·18 최후의 항전지였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들이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한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5·18의 상징과도 같은 전남도청을 기념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다.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의사에 따라 현재 광주 시내에 있는 전남도청을 전남도 관내로 이전하고, 당시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현 도청 위치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지원할 것입니다."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전남도청은 전남 무안으로 이전하고 전남도청 자리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맨 앞 도청 건물은 민주평화교류원이 됐다.
전남도청 ▲ 민주평화교류원으로 탈바꿈한 전남도청
■ 상무대 부지를 시민공원으로 5·18 때 시민군들이 끌려가 고문을 받았던 군부대의 이름이 상무대다. 김 전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 상무대 부지의 일부를 광주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현재 상무대 부지의 일부를 광주시에 추가로 무상 사용케 함으로써 시민공원을 조성하도록 할 것입니다." 상무대는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고 군부대 부지는 택지로 개발됐다. 그리고 약속대로 일부 부지를 광주시가 무상으로 받아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이렇게 해서 광주 상무지구에는 '5·18 기념공원'과 '상무시민공원'이 자리잡게 됐다.
5·18기념공원 ▲ 도심 속 한가운데 자리 잡은 5·18기념공원
■ YS의 유산 아닌 시민 모두의 유산이자 숙제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모두 일곱 차례 5·18 망월묘역을 다녀갔다.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 달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5·18 묘역 참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5·18 묘역 점거 시위로 무산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광주와 전남을 순시하는 내내 서운해했다. 1980년 5월 기자회견을 열어 5월의 비극을 해외에 알린 일화 등을 얘기하며 5·18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 전 대통령이지만,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 무산과 3당 합당 등으로 그에게 애증을 가진 광주전남 시·도민도 많다. 5·18 35주년을 맞았지만, 숙제는 여전히 많다. 광주에 남겨진 김 전 대통령의 유산이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남겨진 것도 아니다. 35년 동안 수많은 시민이 싸웠고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정치인들의 노력도 컸다. 시민에게 총을 쏜 발포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도 여전하다. 5·18 폄하 사진과 발언도 진행형이다. 남은 과제가 많은 만큼 그가 이룬 것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은 통합과 화합이다.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완성하는 것 또한 통합과 화합으로 가는 길이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 ▲ 대통령 취임 다음 달 전남도청을 찾은 故 김영삼 전 대통령(1993)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담화문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http://www.pa.go.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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