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도핑 파문’ 벤 존슨 “선수는 노예”

입력 2015.12.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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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日 신문 인터뷰서 `도핑내막' 털어놓아
현재 체육지도자 일하면서 반도핑운동가로 활동중


"운동선수가 기업과 후원계약을 맺고 경기결과가 상금과 관련이 있는 한 약물 복용의 유혹을 느끼는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운동경기가 막대한 돈이 걸린 비즈니스의 경쟁터가 돼 버렸다. 도핑사실이 드러나면 선수만 처벌받는 상황이 서글프다. 선수들은 노예나 마찬가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1위로 들어왔지만 금지약물 복용사실이 드러나 사흘 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기록도 취소당한 비운의 육상스타 벤 존슨(54)이 27년만에 입을 열었다. 23일 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반 도핑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존슨은 2013년 9월 서울을 방문, 88 올림픽 당시 자신이 뛰었던 올림픽 주경기장을 찾아 "25년 전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지만 도핑사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100m 세계기록과 금메달, 명성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고 회고했다.

존슨은 아사히 인터뷰에서 몇 년에 걸쳐 매일 몇 시간씩 연습을 하는 건 불가능하며 몸도 여기저기 아프기 마련이라면서 코치나 매니저가 "걱정 말고 뛰기만 하라"며 약물을 권하면 응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선수가 `싫다'고 버틸 수는 있다. 결승진출이 걸린 정도의 경기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 선수가 되고 싶으면, 그리고 꼭 우승하고 싶으면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

존슨은 서울 올림픽 육상 100m 결승에서 9초79의 세계신기록으로 미국의 동갑내기 육상영웅 칼 루이스를 제치고 1위로 골인했다.

루이스는 직전 올림픽인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4관왕에 오른 말 그대로 수퍼 스타였다. 캐나다 대표인 존슨은 바로 전해인 8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9초83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신예로 세계 스포츠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의 이목이 이 경기에 쏠린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스타트가 좋았다. 90m쯤 달렸을 때 대형 스크린의 시계가 보였다. 9초였다. 이 스피드라면 아무도 못따라 올거라고 생각했다. 옆을 보면서 스피드를 조금 줄였다. 그대로 뛰었더라면 9초70 정도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의 영광은 사흘만에 끝났다.

"나는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 다음해 호주에서 열린 육상월드컵에서 동독의 마리타 코흐가 여자 400m에서 47초60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기록을 작성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이 대회에서 나는 100m를 10초에 주파, 우승했다"

육상월드컵 당시 코치였던 찰리가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동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찰리 코치는 약물복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훌륭한 코치였지만 도핑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의사팀을 끌어들여 약을 어느 정도 사용하는 게 좋을지 확인했다. 당시 나는 주 6일, 하루 4-5시간씩 연습하고 있었다. 굉장히 어려운 연습이라서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또 훈련을 더 열심히 하려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다. 몇 년간 매일 연습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나온다. 회복을 돕기 위한 약을 복용하고 더 열심히 연습했다. 도핑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위험 같은 건 코치나 의사가 걱정할 일이었다.

서울 올림픽에서 도핑 사실이 적발돼 메달을 박탈당한 존슨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다음해 금지약물 복용사실이 드러나 육상계에서 영구추방됐다. 그해 '꿈의 신기록'인 9초78을 작성한 미국의 팀 몽고메리도 3년 후 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 약물복용 판정을 받고 은퇴했다.

존슨은 다른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는 걸 실제로 본 일은 없지만 불과 1년 만에 놀랄만한 성장을 하는 선수를 보고 놀란 적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올림픽에서 결승에 진출한 8명 중에서도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선수가 있었다고 한다. 10초대 중반 정도 밖에 못 뛰던 선수가 후반에 9초대에 달리더라는 것이다.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존슨은 말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산하 독립위원회는 지난 11월 러시아 육상계의 조직적인 도핑사실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도핑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확인시켰다. WADA는 보고서를 근거로 내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에 러시아의 출전정지를 세계육상연맹에 권고했고 연맹은 러시아 육상연맹에 대해 잠정적으로 자격정지조치를 했다.

존슨은 도핑문제가 불거지면 항상 논평을 구하는 전화를 받는다면서 언제, 어디서고 이런 사례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 육상계의 도핑사실에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육상경기에 거액의 상금이 걸리고 스폰서 계약문제가 끼어들면 선수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게 된다면서 도핑사실이 드러난 선수는 몰라도 러시아 선수 전체가 출전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강조했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존슨은 14세 때 캐나다로 이주해 국적을 취득, 현재 토론토에서 체육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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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올림픽 ‘도핑 파문’ 벤 존슨 “선수는 노예”
    • 입력 2015-12-23 16:38:54
    연합뉴스
27년 만에 日 신문 인터뷰서 `도핑내막' 털어놓아 현재 체육지도자 일하면서 반도핑운동가로 활동중 "운동선수가 기업과 후원계약을 맺고 경기결과가 상금과 관련이 있는 한 약물 복용의 유혹을 느끼는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운동경기가 막대한 돈이 걸린 비즈니스의 경쟁터가 돼 버렸다. 도핑사실이 드러나면 선수만 처벌받는 상황이 서글프다. 선수들은 노예나 마찬가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1위로 들어왔지만 금지약물 복용사실이 드러나 사흘 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기록도 취소당한 비운의 육상스타 벤 존슨(54)이 27년만에 입을 열었다. 23일 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반 도핑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존슨은 2013년 9월 서울을 방문, 88 올림픽 당시 자신이 뛰었던 올림픽 주경기장을 찾아 "25년 전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지만 도핑사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100m 세계기록과 금메달, 명성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고 회고했다. 존슨은 아사히 인터뷰에서 몇 년에 걸쳐 매일 몇 시간씩 연습을 하는 건 불가능하며 몸도 여기저기 아프기 마련이라면서 코치나 매니저가 "걱정 말고 뛰기만 하라"며 약물을 권하면 응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선수가 `싫다'고 버틸 수는 있다. 결승진출이 걸린 정도의 경기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 선수가 되고 싶으면, 그리고 꼭 우승하고 싶으면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 존슨은 서울 올림픽 육상 100m 결승에서 9초79의 세계신기록으로 미국의 동갑내기 육상영웅 칼 루이스를 제치고 1위로 골인했다. 루이스는 직전 올림픽인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4관왕에 오른 말 그대로 수퍼 스타였다. 캐나다 대표인 존슨은 바로 전해인 8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9초83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신예로 세계 스포츠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의 이목이 이 경기에 쏠린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스타트가 좋았다. 90m쯤 달렸을 때 대형 스크린의 시계가 보였다. 9초였다. 이 스피드라면 아무도 못따라 올거라고 생각했다. 옆을 보면서 스피드를 조금 줄였다. 그대로 뛰었더라면 9초70 정도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의 영광은 사흘만에 끝났다. "나는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 다음해 호주에서 열린 육상월드컵에서 동독의 마리타 코흐가 여자 400m에서 47초60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기록을 작성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이 대회에서 나는 100m를 10초에 주파, 우승했다" 육상월드컵 당시 코치였던 찰리가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동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찰리 코치는 약물복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훌륭한 코치였지만 도핑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의사팀을 끌어들여 약을 어느 정도 사용하는 게 좋을지 확인했다. 당시 나는 주 6일, 하루 4-5시간씩 연습하고 있었다. 굉장히 어려운 연습이라서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또 훈련을 더 열심히 하려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었다. 몇 년간 매일 연습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나온다. 회복을 돕기 위한 약을 복용하고 더 열심히 연습했다. 도핑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위험 같은 건 코치나 의사가 걱정할 일이었다. 서울 올림픽에서 도핑 사실이 적발돼 메달을 박탈당한 존슨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준결승까지 진출했지만 다음해 금지약물 복용사실이 드러나 육상계에서 영구추방됐다. 그해 '꿈의 신기록'인 9초78을 작성한 미국의 팀 몽고메리도 3년 후 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 약물복용 판정을 받고 은퇴했다. 존슨은 다른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는 걸 실제로 본 일은 없지만 불과 1년 만에 놀랄만한 성장을 하는 선수를 보고 놀란 적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올림픽에서 결승에 진출한 8명 중에서도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선수가 있었다고 한다. 10초대 중반 정도 밖에 못 뛰던 선수가 후반에 9초대에 달리더라는 것이다.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존슨은 말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산하 독립위원회는 지난 11월 러시아 육상계의 조직적인 도핑사실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도핑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확인시켰다. WADA는 보고서를 근거로 내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에 러시아의 출전정지를 세계육상연맹에 권고했고 연맹은 러시아 육상연맹에 대해 잠정적으로 자격정지조치를 했다. 존슨은 도핑문제가 불거지면 항상 논평을 구하는 전화를 받는다면서 언제, 어디서고 이런 사례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 육상계의 도핑사실에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육상경기에 거액의 상금이 걸리고 스폰서 계약문제가 끼어들면 선수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게 된다면서 도핑사실이 드러난 선수는 몰라도 러시아 선수 전체가 출전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강조했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존슨은 14세 때 캐나다로 이주해 국적을 취득, 현재 토론토에서 체육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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