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병마·장애 넘어 ‘나눔 천사’된 사람들

입력 2016.01.01 (08:44) 수정 2016.01.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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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경제가 어렵습니다.

취업도 살림살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세상, 지옥 같은 나라라는 뜻의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세상에 희망의 빛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수십 년 째 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

빠듯한 살림에도 7년째 기부를 이어 온 장애인 가족.

2016년 첫날, 뉴스따라잡기에서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복지관.

71살 김정심 할머니가 익숙한 발걸음으로 들어섭니다.

할머니가 20년째 미용 봉사를 하는 곳입니다.

<녹취> "지금도 당뇨약 드셔요? 머리카락 많이 기셨네. (많이 길었죠.) 한 달에 한 번씩 잘라야 해."

이제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할머니가 미용 봉사를 오는 날은 복지관이 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바뀝니다.

김정심 할머니가 미용 봉사를 시작한 건 35년 전부터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이어 온 세월들.

<인터뷰> 박지혜(사회복지사/서울 중앙사회복지관) : "이렇게 오래 하신 분은 유일하세요. 마음이 있어도 여러 가지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봉사를 지속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선생님은 건강이나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 봉사를 마치고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합니다.

<인터뷰> 정성회(남편/80) : "굉장히 기다려져요. 걱정이 태산 같죠. 와야 마음이 놓이고 그렇지. 올 시간이 됐는데 안 오면 계속 기다려지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그토록 기다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강직성 척추염 염증이 너무 심하니까.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이고 원래 일주일에 한 번 맞는데 이게 심해지면 두 번도 맞는데요."

집 한 켠에 놓인 약 보따리.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아주머니 심장은 이렇게 돼버렸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이걸 필 수가 없어서 아주머니는 주사 맞을 필요도 없고 약 먹을 필요도 없고 제일 맛있는 음식을 드세요.”

23살, 꽃다운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혼한 지 불과 2년, 갓 태어난 딸도 있었습니다.

김정심 할머니는 생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우리 자식들 위해서 뭐든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하다 죽어야지 그 아프면서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뭘 배웠어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겨가며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

기적처럼 살아남았고, 10년 만인 1980년에 미용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남편한테 그랬어요. 내가 미용을 배웠는데 우리 일행들이 봉사하자니까 봉사해야겠다고."

<인터뷰> 정성회(남편/80) : "처음에는 내일모레 사형선고 받았다 하는데 가라고 하겠습니까? 맨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못하겠더라고요. 본인이 원해서 가니깐……."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미용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위암, 만성 신부전증, 경직성 척수염, 여러 병이 겹치며 수술만 5번을 넘게 받았습니다.

<인터뷰> 정성회(남편/80) : "봉사하고 들어와서 저녁 되면 끙끙 앓아요. 그러면 내가 다 주물러주고 오늘은 못 가겠지 하면 일어나서 머리 감고 갑니다. 그때 대단하다고 속으로 그렇지. ‘아!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마사지를 해 줬습니다.

최근엔 발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염증이 심해서 엄청 아파요. 가다가 어디 발 신발 치이잖아요?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숨 쉬기도 서있기도 힘든 신체적 고통을 견디며 35년 간 봉사를 이어온 할머니.

지난해 할머니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2015 대한민국 나눔국민 대상에서 국민포장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 대통령 포장을 타신대요.” 솔직히 말해서 좋다기보다도 내가 큰일을 한 건가 그랬어요. 뭔 큰일을 했다고 포장을 주지?"

2016년, 할머니의 미용 봉사는 올해도 계속됩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제겐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자원봉사는 제 사명이다. 그러니까 아무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봉사의 끈을 놓지 않을 거예요. 진짜로 할 수 있는 한……."

전북 전주에는 기부 천사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상훈(주임/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2009년) : "12월로 기억을 하는데요. 일 층에 내려와 있으니 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내려가서 확인을 해보니 몸이 불편하신 장애인 부부가 와서 기부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2009년, 장애인 부부가 처음 내민 봉투에는 5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김규정, 홍윤주 부부는 지금껏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남편 김규정 씨는 뇌병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생활해야 하고 아내 홍윤주 씨는 지체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고 그해, 부부에게 새 생명이 찾아 왔습니다.

<녹취> "태명이 튼튼이였어요. 엄마 아빠가 몸이 그러니깐 튼튼이로 짓자."

튼튼이를 위해 부부는 특별한 일을 계획했습니다.

<인터뷰> 김규정(남편/38) : "가정의 가장이 되고 보니 좀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하람이 뱃속에 있을 때. 그래서 그때부터 (기부를) 해서……."

첫 아이 임신을 기념해 시작한 기부.

3년 전엔 둘째도 태어나, 가족은 네 사람으로 늘었습니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 수당을 합쳐 130만 원이 전부입니다.

부부는 여기서 매달 만 이천 원씩을 기부금액으로 따로 모읍니다.

<인터뷰> 김규정(남편/38) :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우리는 돈 걱정 안 하느냐고. 근데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린 돈 걱정 안 한다고. 왜냐면 돈 걱정하는 순간 기부할 마음도 사라지거든요."

1년에 14만여 원을 기부해 왔습니다.

지난 7년 동안 기부한 금액이 벌써 100여 만 원이나 됩니다.

기부금은 부부의 뜻에 따라 독거노인의 난방비로 지원됩니다.

부부의 따뜻한 마음은 두 아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7살 장남 하람이는 3살 때부터 저금통에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하림(장남/7) : "(저금통 돈 가지고 장난감 사고 싶진 않아요?) 아니요. (왜요?) 어려운 사람 그냥 주려고. 주려고요."

가족의 사연은 입소문을 타고 이웃들 사이에도 퍼졌습니다.

<녹취> 뻥튀기 장수 : 좋은 일 하시데요? (감사합니다.)"

<녹취> 마트직원 : "놀랐어요. 사실은 저 같은 사람도 못하는데."

부부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게 많습니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도 해야 합니다.

<인터뷰> 홍윤주(아내/35) : "엄마가 안 씻겨주고 이모들이 씻겨주느냐고 하면 엄마가 할 말이 없고 미안하고 그래요. 너무 미안하죠."

그래도 가족 간 사랑은 더욱 깊어갑니다.

<녹취> 남편 : "아빠."

<녹취> 아들 : "아빠."

<녹취> 남편 : "우와! 우리 아들!"

<인터뷰> 김규정(남편) : "내가 기부를 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금액이 중요하다.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해석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진 게 많고 적음을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는 것뿐이라는 사람들.

2016년이 희망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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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병마·장애 넘어 ‘나눔 천사’된 사람들
    • 입력 2016-01-01 08:46:09
    • 수정2016-01-01 17: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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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습니다.

취업도 살림살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세상, 지옥 같은 나라라는 뜻의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세상에 희망의 빛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수십 년 째 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

빠듯한 살림에도 7년째 기부를 이어 온 장애인 가족.

2016년 첫날, 뉴스따라잡기에서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복지관.

71살 김정심 할머니가 익숙한 발걸음으로 들어섭니다.

할머니가 20년째 미용 봉사를 하는 곳입니다.

<녹취> "지금도 당뇨약 드셔요? 머리카락 많이 기셨네. (많이 길었죠.) 한 달에 한 번씩 잘라야 해."

이제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할머니가 미용 봉사를 오는 날은 복지관이 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바뀝니다.

김정심 할머니가 미용 봉사를 시작한 건 35년 전부터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이어 온 세월들.

<인터뷰> 박지혜(사회복지사/서울 중앙사회복지관) : "이렇게 오래 하신 분은 유일하세요. 마음이 있어도 여러 가지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봉사를 지속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선생님은 건강이나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 봉사를 마치고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합니다.

<인터뷰> 정성회(남편/80) : "굉장히 기다려져요. 걱정이 태산 같죠. 와야 마음이 놓이고 그렇지. 올 시간이 됐는데 안 오면 계속 기다려지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그토록 기다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강직성 척추염 염증이 너무 심하니까.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이고 원래 일주일에 한 번 맞는데 이게 심해지면 두 번도 맞는데요."

집 한 켠에 놓인 약 보따리.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아주머니 심장은 이렇게 돼버렸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이걸 필 수가 없어서 아주머니는 주사 맞을 필요도 없고 약 먹을 필요도 없고 제일 맛있는 음식을 드세요.”

23살, 꽃다운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혼한 지 불과 2년, 갓 태어난 딸도 있었습니다.

김정심 할머니는 생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우리 자식들 위해서 뭐든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하다 죽어야지 그 아프면서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뭘 배웠어요."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겨가며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

기적처럼 살아남았고, 10년 만인 1980년에 미용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남편한테 그랬어요. 내가 미용을 배웠는데 우리 일행들이 봉사하자니까 봉사해야겠다고."

<인터뷰> 정성회(남편/80) : "처음에는 내일모레 사형선고 받았다 하는데 가라고 하겠습니까? 맨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못하겠더라고요. 본인이 원해서 가니깐……."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미용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위암, 만성 신부전증, 경직성 척수염, 여러 병이 겹치며 수술만 5번을 넘게 받았습니다.

<인터뷰> 정성회(남편/80) : "봉사하고 들어와서 저녁 되면 끙끙 앓아요. 그러면 내가 다 주물러주고 오늘은 못 가겠지 하면 일어나서 머리 감고 갑니다. 그때 대단하다고 속으로 그렇지. ‘아!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마사지를 해 줬습니다.

최근엔 발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염증이 심해서 엄청 아파요. 가다가 어디 발 신발 치이잖아요?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숨 쉬기도 서있기도 힘든 신체적 고통을 견디며 35년 간 봉사를 이어온 할머니.

지난해 할머니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2015 대한민국 나눔국민 대상에서 국민포장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 대통령 포장을 타신대요.” 솔직히 말해서 좋다기보다도 내가 큰일을 한 건가 그랬어요. 뭔 큰일을 했다고 포장을 주지?"

2016년, 할머니의 미용 봉사는 올해도 계속됩니다.

<인터뷰> 김정심(35년 미용 봉사자/71) : "제겐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자원봉사는 제 사명이다. 그러니까 아무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봉사의 끈을 놓지 않을 거예요. 진짜로 할 수 있는 한……."

전북 전주에는 기부 천사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상훈(주임/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2009년) : "12월로 기억을 하는데요. 일 층에 내려와 있으니 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내려가서 확인을 해보니 몸이 불편하신 장애인 부부가 와서 기부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2009년, 장애인 부부가 처음 내민 봉투에는 5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김규정, 홍윤주 부부는 지금껏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남편 김규정 씨는 뇌병변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생활해야 하고 아내 홍윤주 씨는 지체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르렀고 그해, 부부에게 새 생명이 찾아 왔습니다.

<녹취> "태명이 튼튼이였어요. 엄마 아빠가 몸이 그러니깐 튼튼이로 짓자."

튼튼이를 위해 부부는 특별한 일을 계획했습니다.

<인터뷰> 김규정(남편/38) : "가정의 가장이 되고 보니 좀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하람이 뱃속에 있을 때. 그래서 그때부터 (기부를) 해서……."

첫 아이 임신을 기념해 시작한 기부.

3년 전엔 둘째도 태어나, 가족은 네 사람으로 늘었습니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 수당을 합쳐 130만 원이 전부입니다.

부부는 여기서 매달 만 이천 원씩을 기부금액으로 따로 모읍니다.

<인터뷰> 김규정(남편/38) :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우리는 돈 걱정 안 하느냐고. 근데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린 돈 걱정 안 한다고. 왜냐면 돈 걱정하는 순간 기부할 마음도 사라지거든요."

1년에 14만여 원을 기부해 왔습니다.

지난 7년 동안 기부한 금액이 벌써 100여 만 원이나 됩니다.

기부금은 부부의 뜻에 따라 독거노인의 난방비로 지원됩니다.

부부의 따뜻한 마음은 두 아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7살 장남 하람이는 3살 때부터 저금통에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김하림(장남/7) : "(저금통 돈 가지고 장난감 사고 싶진 않아요?) 아니요. (왜요?) 어려운 사람 그냥 주려고. 주려고요."

가족의 사연은 입소문을 타고 이웃들 사이에도 퍼졌습니다.

<녹취> 뻥튀기 장수 : 좋은 일 하시데요? (감사합니다.)"

<녹취> 마트직원 : "놀랐어요. 사실은 저 같은 사람도 못하는데."

부부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게 많습니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도 해야 합니다.

<인터뷰> 홍윤주(아내/35) : "엄마가 안 씻겨주고 이모들이 씻겨주느냐고 하면 엄마가 할 말이 없고 미안하고 그래요. 너무 미안하죠."

그래도 가족 간 사랑은 더욱 깊어갑니다.

<녹취> 남편 : "아빠."

<녹취> 아들 : "아빠."

<녹취> 남편 : "우와! 우리 아들!"

<인터뷰> 김규정(남편) : "내가 기부를 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금액이 중요하다. 그건 아니에요. 그렇게 해석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진 게 많고 적음을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는 것뿐이라는 사람들.

2016년이 희망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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